‘성동구 아이돌’로 불리는 정원오 성동구청장
보여주기식 SNS 운영만 잘하는 것은 아니다. 정 구청장은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치르고 서울에서 유일한 3연임 구청장이 됐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의 성동구 득표율은 60.9%, 정 구청장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지만 57.6%를 얻었다. 정치색과 무관하게 구민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전화번호는 성동구민들에게 공개돼 있다. 하루에 20~30개의 민원 문자를 직접 처리하기도 한다.
정 구청장의 임기 동안 이뤄진 경제적 발전도 지지세에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성수동 일대는 작은 공장들이 모여 있는 낙후된 지경에서 이제는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2030 세대가 찾는 핫 플레이스가 됐다. 정 구청장의 도시재생사업이 영향을 미쳤다. 최근 성수는 영국의 여행·문화 잡지 ‘타임아웃’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 4위에 오르기도 했다. ‘타임아웃’은 “서울의 브루클린으로 불리는 이곳은 붉은 벽돌로 된 창고와 오래된 공장, 선적 컨테이너로 가득하며 이제는 최신 유행 카페와 부티크, 갤러리들이 자리했다”고 평가했다.
성수동, 이렇게 될 줄 알았다
2020년 서울 성동구는 버스정류장 스마트 쉼터를 전국 지자체 최초로 설립했다.
서울시 총괄 건축가가 유럽을 다녀와서 성수동의 붉은 벽돌 거리를 인상적으로 여기는 건축가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덕담 정도로 여겼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이런 소식을 들으니 기쁩니다. 또 여기에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인 언더스탠드에비뉴나 붉은 벽돌 지원 사업 등 성동구가 추진했던 정책이 함께 언급됐어요. 중국인과 일본인들이 성수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유럽에서도 성수를 인식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10년 전 성수는 지금과 사뭇 달랐습니다.
제가 구청장 일을 시작할 때 성수동은 성동구에서 가장 낙후된 곳이었습니다. 지가도 제일 쌌고요. 당시에 지역 주민들에게 성수동을 위해 일해보겠다고 했을 때, 응원은 해주셨지만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못하셨던 것 같아요. 다들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죠.
성수가 성장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나요.
도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터가 있어야 합니다. 당시에는 기업이 부족했어요. 성수는 기업을 유치하기 좋은 조건인 준공업지역인데 저평가돼 있다고 생각했죠. 도시재생을 해서 성수가 핫플이 되면 젊은 사람들이 모이고, 그러면 기업들도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유니크함이 필요했고 그게 붉은 벽돌 지원 사업이었죠. 또 도시재생을 하며 폐공장을 리모델링했고요. 그게 다행히 유행과 맞아떨어진 거죠.
이제는 유동인구가 늘어 7월, 성수역 인파 사고 위험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출퇴근 시간의 과밀 현상은 그만큼 직장인들이 늘었다는 의미니까 어떤 면에선 기쁜 일이죠. 하지만 안전 문제가 있는데, 사실 그 전부터 출구 신설 요청을 계속해왔어요. 2021년부터는 서울교통공사에 공문으로도 공식 요청을 했는데 잘 진행이 안 됐습니다. 우선은 안전 요원 배치 등 조치를 취하긴 했습니다만 결국 출구가 신설돼야 해결되는 문제이긴 합니다.
성수동 길거리도 차와 사람이 뒤엉켜 있습니다.
특히 관광객이 많은 토요일이 문제였죠. 그래서 차 없는 거리 시범 사업을 하고 있고, 꽤 성과가 나와서 시범 사업이 끝나면 정식으로 진행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성수 외에도 성동구의 다른 핫스폿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중랑천 변을 추천해드립니다. 한강 변, 중랑천 변, 청계천 변으로 이어지는 수변 공간이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거주 지역과 가까워서 주민들은 그냥 슬리퍼만 신고 나와 편하게 걸을 수 있어요. 구 차원에서 인근을 정원처럼 꾸몄어요. 저 역시 출근 전에 중랑천을 산책하는 걸 좋아합니다.
민원 문자가 정책의 원천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X계정. 활발한 소통으로 1만8200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다.
2014년 선거 때 홍보 문자를 발신했는데 그 번호로 민원이 들어오더라고요. 2018년 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아예 민원 창구로 활용해보자고 생각해 이쪽으로 문자를 달라고 했죠. 지금도 하루에 20~30개는 옵니다.
업무에 방해가 되지는 않나요.
사실 시간을 뺏기죠. 그런데 조선시대 임금도 상소문을 본인이 다 읽어야 했잖아요. 저는 구청장이니까 당연히 들어오는 민원을 다 읽고 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자 말고도 SNS를 통해 들어오는 DM(다이렉트 메시지)이나 구청 홈페이지로 들어오는 민원도 다 읽어봅니다.
답장 매뉴얼이 있나요.
간단한 건 바로바로 답하기도 하고요. 그러기 어려운 것들은 회의도 해요. 여러 부서가 걸려 있는 문제는 관계자를 불러 제 방에서 의논하죠. 사실 이게 귀찮아 보이지만 이를 통해 새로운 정책을 만들 때 큰 도움이 돼요.
그렇게 만들어진 정책이 있나요.
코로나19 시기에 “검사받다가 감염되겠다. 왜 은행 창구처럼 안 하냐”는 문자를 받았어요. 그래서 줄을 서지 않고 근처에서 대기하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했어요. 또 주차된 차량에 자기 전화번호를 노출하면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민원에 대해서는 안심 번호를 제공하기도 했고요. 민원이 들어오고 여기에 답을 하려다 보면 고민이 필요하니 자연스럽게 정책으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SNS에 게시한 반려견 보안관 ‘호두’ 소식이 온라인을 달궜습니다. SNS 이용에 대해 조언을 받으시나요.
그렇게 반응이 클 줄 몰랐어요. 지금은 호두가 반려견 순찰대 상징이 돼서 최근에 명예 공무원으로 위촉되기도 했죠. 혼자 하는 건 한계가 있고 늘 직원들과 의논해요. 직원들 중에 그런 소통에 능력 있는 분들이 있으니 항상 조언을 받죠. 속으로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올렸을 때 반응이 좋은 사례를 보며 저도 배우고 있습니다(웃음).
‘성동구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걸 알고 있나요.
맘 카페 같은 곳에서 일부 그렇게 불러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뭐라고 하나요.
사실 별 관심이 없습니다. SNS를 통해서 알기는 아는 것 같은데 크게 내색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가끔 이렇게 행동하면 꼰대라고 이야기해주기도 하죠. 주로 까이면서 정신 차리는 편이고요.
길거리를 지나면 많이 알아본다던데요.
특히 학부모님들이 많이 알아보시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좀 친근하게 느끼시나 봐요. 학부모님들이 지역 살림에 관심이 많고 보육과 교육에도 관심이 커서 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22년 성동구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서울시(0.59명)에서 가장 높습니다. 비결이 있나요.
제가 처음 성동구에 왔을 때는 7~8위 정도였어요. 출산율이라는 게 사실은 국가 차원의 문제죠. 주거나 직장 문제와 연결돼 있으니까요. 저는 기초 지자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봤어요. 그게 보육이더라고요. 구민들에게 물어봤더니 어린이집 입소 대기가 너무 길다고 이야기해줬어요. 그래서 서울에서 공보육률 1위를 만들고자 노력했죠. 그게 좋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결국은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야 하는 건데, 이건 너무 포괄적인 말이죠. 결국 경제적인 부담을 줄여야 하는 거죠.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2세까지 지원되는 부모 급여 확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부담스러운 사교육비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 8월 성동구에서 시작된 버스 정류장, 스마트 쉼터가 전국으로 확산됐습니다.
교통 약자에게는 대중교통이 중요한데, 그중 꼭 필요한 축인 버스 이용에 불편을 느끼는 분들이 보였어요. 특히 정류장 문제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맞아야 하고요. 처음엔 겨울에 추위를 막기 위한 비닐 천막을 설치해봤어요. 반응이 좋아서 사시사철 이용할 수 있는 정류장, 그러니까 공항 대합실 같은 공간을 만들어놓으면 안락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봤어요. 그러면 버스 이용객도 늘어나고요. 사실 처음에는 세금 낭비한다는 욕도 들었어요. 예상한 바였죠. 그래도 확신이 있었어요. 스마트 쉼터 제작에 크기에 따라 1억 원까지 드는데, 주차장 한 면을 만드는 데는 2억 원이 들거든요. 이용자를 생각해보면 낭비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열일’하는 수장 밑에서 일하면 직원들이 피곤해하지 않나요.
그렇겠죠(웃음). 그래도 직원들이 느끼는 보람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이 주민분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힘들어도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서울시 신입 공무원을 배치할 때, 성동구 선호도가 높다고 합니다. 공시 커뮤니티에 “일은 빡세지만 보람 있다”는 평이 돈다고(웃음). 사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오면 성동구는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여야 다투는 국회보다 지자체가 나았다
정 구청장의 임기는 2026년 6월, 3연임한 그는 다음 선거에서 성동구청장직에 출마할 수 없다. 강북의 강남으로 불리는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중 하나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3연임을 한 만큼 차기 서울시장 등 다음 행보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출마설도 돌았으나 “성동구 발전을 위해 책임을 다할 생각”이라며 불출마 선언을 했다.
차기 행보를 묻자 “일단은 구청장 일을 잘 마무리하는 게 목표”라며 말을 아꼈다. 그가 정치를 시작한 것 역시 중앙 정계가 아닌 지자체였다. 서울시립대 86학번으로 총학생회장까지 맡았던 그는 1995년 양재호 서울 양천구청장의 비서실장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왜 지자체였나요.
정치를 시작한 건 우연한 일이었어요. 학생운동을 하고 재야 생활하다가 제안을 받았어요. 구청장 선거에 출마하는데 도와달라는 거였죠. 양천구에서 일한 뒤에는 국회에서도 보좌관으로 8년 일했습니다. 일을 해보니 저는 지자체가 더 잘 맞더라고요. 국회는 국회의원 과반 동의가 있어야 일이 성사되거든요. 그러려면 여야 합의가 필요한데 그러지 못해 답답했어요. 지자체는 지자체장만 의지가 있으면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일이 많거든요.
학생회 활동과 정치는 자연스러운 연결 아닌가요.
정치를 꿈꾸진 않았어요. 오히려 좀 싫어하는 쪽이었고요. 양천구청장 비서실장을 해달라고 했을 때는 잠깐만 할 생각이었죠. 20대 때 약자의 편이 되자는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았는데, 정치는 직접 도우는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계속할 수 있었어요. 정치가 약자를 위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정책이나 필수노동자 지원 정책, 경력 보유(단절) 여성을 위한 정책이 나왔죠. 성동구 캐치프레이즈를 ‘포용 도시’라고 붙인 것도 그런 이유고요.
정책도 필요하지만 인식도 바뀌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매년 서울시에서 ‘포용 지수’를 조사해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적 태도를 조사하는 겁니다. 당신의 아이가 장애를 가진 아이와 어울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성과 노인 복지정책을 늘리는 데 찬성하느냐 등을 묻는 거죠. 성동구가 2023년 1위를 했습니다. 실제로 성수동에 특수학교인 성진학교를 짓기로 했는데 일부 정치인이 와서 반대 여론을 만들려다 실패했어요. 물론 모든 주민이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많은 분이 찬성하고 계십니다.
정치인들이 신뢰받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요.
결국 정치인은 주민들을 바라봐야 합니다. 제가 전화번호를 공개하는 이유도 그거고요. 구민들이 사진 하나 찍어서 바로 문자로 보냅니다. 실시간으로 불만 사항이 들어와요. 그걸 자꾸 받아봐야 어떻게 바꿀지도 고민하게 되죠. 그런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원오 #성동구 #성수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사진제공 성동구청
사진출처 정원오성동구청장X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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