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워에서 열렸던 ‘한터뮤직어워즈 2023’은 화려한 라인업으로 이틀간 진행됐으나 부실한 현장 안전 관리로 도마에 올랐다.
지상파 3사 연말 가요제 시상식은 사라졌지만, 요즘도 K-팝 시상식이 열린다. 열리는 정도가 아니라 이름도 다 못 외울 만큼 1년 내내 20여 개의 시상식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차별화를 위해 시상식을 해외에서 개최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마마 어워즈(MAMA AWARDS)’가 대표적이다. 그간 홍콩, 싱가포르, 일본 등지에서 개최됐던 마마 어워즈는 올해 처음으로 미국에 진출한다. 생긴 지 25년 만에 팝의 본고장으로 무대를 넓힌 것이다. 시상식은 현지 시간으로 11월 21일 미국 LA 돌비 시어터, 11월 22~23일 일본 오사카 교세라 돔에서 개최되며 온라인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될 예정이다.
올해 신설된 시상식들에서도 저마다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엿보인다. 지난 4월 10일 일본 요코하마시 K아레나 요코하마에서 개최된 ‘아시아 스타 엔터테이너 어워즈 2024’는 연예 전문매체 뉴스엔과 앳스타일이 주최한 행사다. 주관사에 일본 온라인 패션 플랫폼 ‘조조타운’이 포함됐으며, 일본 TBS 채널 1과 일본 OTT 서비스인 유넥스트를 통해 독점 생중계했다. 애초 타깃을 일본 시장으로 넓혀 잡은 것이다.
섭외 위해 온갖 상 남발, 팬·가수는 피로 호소
팬들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각종 이벤트가 열리고, 남녀 그룹 팬덤간 투표 연합을 맺기도 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시상식이 많아질수록 가수는 상 받을 기회가 늘고, 팬은 좋아하는 가수를 볼 기회가 많아진다. 그러나 시상식을 위해 팬들은 투표, 가수들은 무대라는 숙제를 해야 한다. 물론 투표를 안 하고 그냥 무대만 즐겨도 된다. 투표에 대한 강제성은 없다. 아무도 시키는 사람은 없지만 팬들이 열심히 투표를 하는 이유는, 이왕이면 내 가수가 인정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게 팬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시상식이 우후죽순 늘어나 심사의 공정성과 시상식의 권위가 예전만 하지 않더라도 내 가수가 수상자 명단에는 늘 끼어 있어야 한다. 수상자 명단에서 보기 힘들어지는 순간 “코어 팬이 별로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투표야말로 곧 팬덤의 화력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투표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려면 각종 시상식의 투표 앱을 설치하고, 계정을 만들고, 광고를 시청하거나 유료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심지어 한 달 가까이 혹은 그 이상 매일 투표를 해야 한다. 시상식이 몰린 시즌이 되면 팬 커뮤니티마다 서로 투표를 인증하고 독려하거나 팬덤끼리 동맹을 맺어 서로 투표해주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가수도 힘들다.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시상식일지언정 똑같은 춤과 노래로 시상식을 돌면 성의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또 음악방송 무대와 달리 시상식 무대는 훨씬 규모가 커 춤과 노래 구성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다. 신인이라면 각 팀에서 1∼2명씩 차출해 특별 공연을 배당받기도 한다. 의상도 신경 써야 한다. 시상식마다 식전 행사로 레드카펫에서 포토 타임을 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될 일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음반 판매량이나 스트리밍 100% 등 명확한 수상 기준이 있는 시상식이 아니라면 시상식에 참석한 아티스트에게 상을 주는 게 업계의 ‘국룰’이다. 그래서 시상식 출연자들이 온갖 다양한 이름의 상을 나눠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변화의 시작이 될 음콘협 ‘시상식 출연 계약서’
시상식마다 ‘K-팝으로 하나 되는 축제’를 표방하지만 정작 무대에 서서 상을 받는 사람도, 그 상을 받게 해주는 사람도 축제가 축제 같지 않다. 시상식이 넘쳐나면서 시상식의 질적 저하와 관객 안전, 지나치게 비싼 티켓 가격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방콕 라차망칼라 국립 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1회 청룡뮤직어워즈’가 행사를 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티켓 가격이 너무 비싼 탓에 판매율이 저조했던 것도 행사 취소 이유 중 하나로 알려졌다. 2월 열린 ‘한터뮤직어워즈’는 스탠딩석 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아티스트석 쪽으로 스탠딩 관객들이 몰리면서 안전사고 우려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시상식이 ‘도대체 누굴 위한 행사일까’ ‘꼭 해야만 하나’라는 의문이 생긴다.
한편 우후죽순 늘어나는 시상식이 결국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이란 목소리가 강해지면서 시상식 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9월 27일 열린 ‘콘텐츠 창의인재동반사업 오픈 특강’에 참석했다가 한국음악콘텐츠협회(이하 음콘협) 최광호 사무총장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는 “요즘 경쟁적으로 열리고 있는 K-팝 시상식이 상을 준다는 명목으로 출연료 없이 섭외할 수 있다 보니 그 본연의 취지에 맞지 않게 되어가는 듯하다. 이 안에서 기획사 간의 기 싸움도 일어난다”며 “협회에서도 ‘써클차트(구 가온차트) 뮤직 어워즈’를 10년 넘게 해왔지만 이런 K-팝 시상식에 큰 비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내년부터 공연이 있는 대형 시상식은 개최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수들이 시상식 무대를 준비하느라 힘들지 않도록 진짜 상만 주는 시상식을 계획하고 있다. 또 그는 “음콘협에서 표준 계약서를 곧 발표하는데, 시장에서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광호 사무총장이 말했던 표준 계약서는 K-팝 시상식 출연 계약서다. 계약서 주요 내용으로 출연료, 아티스트와 관객을 위한 안전 조치, 저작권, 사전 합의 사항 준수 등을 포함하고 있다. 사실 음콘협에서 발표한 이번 계약서는 아티스트와 매니지먼트사가 시상식 출연 시 공정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현재 문제가 되는 시상식의 숫자 자체를 줄이는 데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하지만 시상식이 주최자를 위한 돈벌이장으로 흐르지 않도록 수상자 입장에서도 깐깐하게 따져보겠다는 의미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1959년부터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그래미상조차도 공정성 논란에 휩싸이는 요즘이다. 세계로 뻗어가는 K-팝 시상식이 칭찬을 상으로 받는 날, 언젠가 오지 않을까.
#K-팝시상식 #마마어워즈 #여성동아
사진제공 SNS(한터뮤직어워즈 팬캐스트 팀 버니즈 플레이브 음원총공팀) 아이돌챔프 앱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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