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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세상 제일 짜릿하고 흥미로운 방구석 1열에서 직관하는 남의 연애

이나래 프리랜서 기자

2024. 10. 30

불구경, 싸움 구경이 가장 재미있다는 건 옛말. 연애 프로그램 애청자들은 남의 연애 구경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짜릿하고 흥미롭다고 이야기한다.

연애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올해 공중파와 종편, 케이블TV 채널에서 방영된 연애 리얼리티쇼 프로그램은 11개에 달한다. 소재도 다양하다. 누가 봐도 핫한 싱글 남녀가 시선을 사로잡는 넷플릭스의 ‘솔로지옥’부터 이별한 커플이 재결합하거나 새로운 짝을 만나는 티빙의 ‘환승연애’, 이혼을 극복하고 새로운 짝을 찾으러 나선 이들을 위한 MBN의 ‘돌싱글즈’까지. 연애 예능 프로그램의 시초로 평가받는 채널A ‘하트시그널’이 2017년 6월 첫 방영되었으니,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기가 식기는커녕 아예 예능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참가자의 연령, 직업 등 면면이 더 다양해졌다. 50대 중장년층의 사랑을 비춘 JTBC의 ‘끝사랑’, 늘 남의 연애 운만 점쳐주던 용한 점술가들이 자기 연애를 위해 카메라 앞에 선 SBS의 ‘신들린 연애’, 과감한 남자들의 솔직한 연애 리얼리티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퀴어 연애를 조명한 웨이브의 ‘남의 연애’ 등 색다른 콘셉트를 시도하고 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이러다가는 곧 황혼 연애 프로그램까지 등장하겠다”는 얘기도 나온다.

연애 예능 프로그램은 빠르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트렌드 조사 기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진행한 ‘2024 연애 예능(리얼리티) 프로그램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200명 중 59.8%가 연애 예능을 시청한 경험이 있다. 이는 2022년의 52.2%에서 7.6% 증가한 수치로, 이를 통해 연애 예능의 인기가 수직 상승 중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괄목할 만한 점은 20대 여성의 시청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20대 초반은 69.5%, 20대 후반 68.5%, 30대 초반에서는 65%가 시청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10명 중 7명에 가까운 수치다. 그 밖에 30대 후반과 40대 여성 시청 비율이 각각 53.5%, 51%로 확인됐다.

현실과 판타지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

여성 시청자들이 유독 연애 예능에 반응하는 이유로 ‘현실적인 판타지 찾기’를 꼽을 수 있다. 드라마 속 실장님보다는 주변에 있는 일반인 상대와 간접적으로 가상 연애를 즐기는 것이다. 대학생 서주영 씨는 연애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최애가 갱신된다고 고백했다. 그는 “확실히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남자 출연자들이 주변 친구들보다는 멋있다”며 “‘솔로지옥’에 출연한 덱스를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언니네 산지직송’에서 활약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100% 내 이상형이라고 느꼈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친구들보다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0대 초반의 직장인 이지은 씨 역시 연애 예능을 통해 대리 만족을 하는 케이스다. “그는 취업 직후 남자 친구와 헤어진 뒤 5년 가까이 솔로다. 일이 너무 바빠 연애를 할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러다 연애 감 다 죽으면 어떡하지?’ 싶을 때마다 연애 프로를 본다”며 “막 썸을 타기 시작한 사람들의 두근두근하는 감정선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렘이 충족되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이지은 씨는 쉽게 말해 TV 속 누군가와 가상 연애를 즐기는 것이다.

여론 조사 기관 갤럽리포트가 2023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68%는 비혼주의로 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며, 2030 응답자 중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29.9%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연애와 결혼에는 소극적이지만 설렘을 느끼고 싶은 이들 사이에서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의미다.

연애를 TV로 배우는 MZ세대

연애 예능을 교보재로 삼는 케이스도 있다. 취업 준비생인 김소연 씨는 연애 프로그램의 갈등 에피소드를 보며 지난 연애를 반추한다. “1년 전 결별한 이후 줄곧 솔로 상태다.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으로 뜬 연애 예능의 특정 에피소드를 보고 전 남친과 싸우던 상황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시는 내 입장에만 매몰돼 있어서 몰랐는데, 해당 에피소드에서 남자 출연자가 하는 말을 들으며 당시 남자 친구의 입장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고 털어놨다. 실제 출연자들의 MBTI를 통해 성향을 분석하거나, 이들의 화법을 보면서 본인이 겪었던 갈등 상황을 분석하는 게시물도 SNS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상 연애, 대리 만족, 반추 등의 키워드는 연애 예능 시청자들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2024 연애 예능(리얼리티) 프로그램 관련 인식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중 20대의 58%가 ‘연애 예능 출연진의 개인 정보를 찾아보거나 SNS를 살펴본 경험이 있다’고 밝혔고, 65.2%가 ‘프로그램을 보면서 연애 감정을 대리 만족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연애 예능에서 연애를 배운다’는 응답 비율도 높다. 이와 관련해 응답자의 91.5%가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감정 상태나 심리를 잘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고 답했다. ‘연애 관련 콘텐츠를 통해 연애의 현실적인 면을 되돌아보게 된다’는 답변도 76%나 됐다.

도파민 터지는 가십, 일상 속 길티 플레저가 되다

자칭 연애 예능 마니아인 20대 후반 직장인 김연진 씨는 공개되는 모든 연애 프로그램을 챙겨 본다. “대학생 때 ‘하트시그널’로 연애 예능에 입문했다. 출연자들이 비슷한 또래고, 학교나 연합 동아리 같은 커뮤니티에서 잘나가는 언니와 오빠의 연애를 구경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직장인이 된 지금은 퇴근 후 방영 중인 연애 예능을 챙겨서 보고 시간이 없을 때는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편집본을 찾아 내용을 파악한다고. 그는 “대학교 다닐 때 ‘누가 누구랑 사귄다더라’ ‘누가 누구랑 헤어졌다더라’는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눠본 경험이 있다”며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이런 일이 많지 않고 남의 사생활을 뒤에서 말하기도 싫다. 하지만 연애 프로그램은 화제를 만들기 위해 기획된 쇼니까 문제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관찰 예능의 묘미인 엿보는 재미도 즐기고, 친구들 사이에서 스몰 토크 주제로도 삼을 수 있으니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이보다 더 좋은 소재는 없는 것이다.

40대 전업주부인 류진경 씨도 자기 전 쇼츠로 편집된 연프(연애 예능 프로그램)를 보는 게 낙이다. 유치원생 아들을 둔 그는 “아이는 예쁘지만, 가끔은 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침대에 누워 짧게 보는 연애 프로그램 편집본은 과거 연애 시절을 상기시켜 마음이 몰랑몰랑해진다”는 류진경 씨는 남녀 간의 설렘을 구경하며 즐거움과 행복을 느낀다. “최근에는 40대 이상이 등장하는 프로그램도 많아 몰입도가 올라간다”는 그는 20대의 연애를 지켜보며 풋풋한 설렘을, 3040이나 돌싱의 에피소드를 바라보며 강한 몰입감을 경험하고 있었다.



#연애프로그램 #연프 #여성동아

사진출처 나는솔로 돌싱글즈 솔로지옥 연애남매 하트시그널 환승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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