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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With specialist | 김선영의 TV 읽기

SBS 주말드라마 ‘청담동 앨리스’

추한 사랑도 사랑일까

글·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 사진제공·SBS

2013. 02. 05

SBS 주말드라마 ‘청담동 앨리스’

1 노력형 긍정녀에서 사모님의 삶을 부러워하는 자신을 깨닫게 된 한세경. 2 세계적 명품 유통회사 아르테미스의 차승조 회장은 순수한 사랑을 원하는 남자다. 3 한세경이라는 앨리스에게 청담동이라는 이상한 세계를 동경하게 만든 서윤주. 4 차승조와 한세경은 서로의 사랑을 찌질한 사랑, 추한 사랑이라 부른다.



SBS 주말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는 신데렐라 로맨스다. 여기엔 두 명의 신데렐라가 있다. ‘청담동 며느리’를 꿈꾸는 주인공 한세경(문근영)과 그보다 먼저 청담동에 입성한 친구 서윤주(소이현). 청담동 대표 마담뚜 타미홍(김지석)의 말을 빌리자면, 신데렐라 로맨스의 핵심은 “가난하지만 착한 여자가 부자 남자와 사랑에 빠져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세경과 윤주 모두 정통파 신데렐라는 아니다. 둘 다 신분 상승을 위해 사랑을 이용하는 ‘가난하고 나쁜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경과 윤주는 자신들을 ‘노력형 신데렐라’라고 부른다.
‘가난하지만 착한’ 정통파 신데렐라와 ‘가난하고 나쁜’ 노력형 신데렐라의 차이는 결국 사랑에 대한 태도의 차이다. 순수한 사랑인가 아니면 속물적 사랑인가. ‘청담동 앨리스’에서 이 구분은 순정녀와 속물녀로 표현된다. 이를테면 윤주와 세경은 같은 노력형 신데렐라지만 처음엔 노선이 서로 달랐다. 윤주가 일찍부터 “남자 잘 물어 인생 한 방에 역전”하는 길을 꿈꿔왔던 속물녀였다면, 세경은 가난한 연인과의 사랑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순정녀였다. 세경이 윤주처럼 속물녀로 변한 것은 결국 가난으로 인해 디자이너의 꿈도, 연인과의 사랑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둘은 같은 남자를 사랑했다. 두 신데렐라의 왕자님은 로열그룹 후계자 차승조(박시후). 어린 시절 자신과 아버지를 버린 엄마에 대한 상처 때문에 순수한 사랑에 대한 열망이 큰 인물이다. 윤주는 파리 유학 시절 승조와 사랑에 빠졌지만, 승조가 둘의 결혼을 반대한 아버지 차일남(한진희)과 의절하자 그를 배신한다. 그리고 승조를 떠난 대가로 차일남으로부터 청담동 입성 소개장을 받은 뒤 철저한 계산을 통해 신데렐라의 꿈을 이룬다. 세경은 승조가 사랑에 빠진 두 번째 여자다. 윤주로부터 배신당한 뒤 더욱 철저한 속물녀 혐오자가 된 승조는 속물녀로 변신하기 이전의 세경에게 반해버린다. 당시 세경은 가난한 연인을 끝까지 지키려 했던 순정녀였고, 승조는 소위 ‘된장녀’와는 차원이 다른 그에게 사로잡힌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세경은 그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기 위해 계속해서 순수한 여자인 척 연기한다.
여기에서 세경과 윤주의 길이 갈린다. 윤주는 “사랑과 비즈니스는 공존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세경은 “공존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차승조는 내가 갖고 싶은 거 다 가진 남자야. 돈, 사랑. 나 그거 둘 다 가질 거야.” 그것이 윤주와는 다른 자신만의 방식이라 선언하면서. 세경의 방식이란 속물녀와 순정녀를 반씩 섞은 절충형 신데렐라의 길이다. 그녀는 여기에 “추한 사랑”이란 이름을 붙인다.
사실 세경과 윤주 중 어느 쪽이 더 ‘나쁜 여자’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단지 사랑과 돈을 다 지킬 자신이 없었던 윤주보다 둘 다 가지고 싶은 세경의 욕망이 더 강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세경의 사랑에는 ‘나쁜’ 걸 넘어 ‘추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유가 뭘까. 역시 문제는 사랑에 대한 태도다. 세경의 사랑은 순수하지 못해서 추한 게 아니라, 떳떳하지 못하고 구차해서 추한 거다.
윤주는 사랑을 버리고 철저한 속물의 길을 택함으로써 적어도 사랑과 속물성을 분리시켰다. 승조에게 대놓고 나쁜 여자였기에 솔직하게 그를 “찌질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경은 승조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떳떳할 수 없다. 나쁜 여자가 아닌 척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경이 정말로 “추한 사랑도 사랑”이라고 자신한다면 타미홍 앞에서처럼 승조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차라리 세경은 승조에게 먼저 반박했어야 하지 않을까. ‘순수한 사랑만 원하는 것도 이기적인 거라고. 당신은 이미 돈을 가졌기에 순정만 원할 수 있는 거라고. 당신의 사랑이 정말로 진실하다면 그 사람의 속물적 욕망까지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어차피 순수한 사랑은 이제 드라마에서도 보기 힘든 판타지다. 그러니까 속물적 사랑도, 추한 사랑도 사랑일 수 있다. 그러나 구차해서 추한 사랑은 정말 최악이다. 세경은 진작 그걸 알았어야 했다.

SBS 주말드라마 ‘청담동 앨리스’


김선영은…
텐아시아, 경향신문, 한겨레21 등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 하고 있으며, MBC, KBS, SBS 미디어 비평프로그램에서 드라마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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