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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화제의 주인공

폴 포츠 감동 스토리

휴대전화 외판원에서 세계적 가수로 성공~

글·김민지 기자 || ■ 사진제공·소니BMG

2008. 06. 20

지난해 영국에서 일반인들이 참여해 노래 실력을 겨루는 프로그램에서 우승, 가수의 꿈을 이룬 폴 포츠가 지난 5월 초 내한공연을 가졌다. 못생긴 휴대전화 외판원이던 그가 세계적 팝페라 가수로 성공하기까지의 사연을 들었다.

폴 포츠 감동 스토리

“전 이것을 이루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아요.”
“그게 뭔데요?”
“오페라 가수요. 하지만 전 언제나 자신감이 문제였어요. 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해도 항상 떨렸거든요.”
지난해 6월 중순, 폴 포츠(37)는 평범한 사람들이 참가해 노래 실력을 겨루는 영국 ITV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 예선 심사를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꿈은 “오페라 가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러진 앞니, 불룩하게 튀어나온 배, 허름한 양복 차림으로 무대에 선 폴 포츠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조그만 목소리로 “오페라를 부르겠다”고 말하자 심사위원들은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하게 그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가 노래를 시작하자 사람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불렀던 것. 특히 그가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안정적인 고음을 내뿜어내자 관중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의 예선전 장면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를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9일 만에 1천만 명이 다운받아 볼 정도로 화제가 됐다.
서른여섯 살에 평생을 꿈꿔온 가수가 된 폴 포츠. 온갖 시련을 이겨낸 그의 목소리에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가수가 된 후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공연을 펼치고 있는 그는 지난 5월 초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내한을 앞두고 일부에서는 “가수로 성공하기까지의 스토리는 감동적이지만 과대평가된 점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던 것이 사실. 하지만 공연을 본 관객들은 “감미로운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폴 포츠는 영국 남부 웨일스 지방의 브리스톨 외곽에서 버스운전사인 아버지와 할인 마트점 계산원으로 일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3남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어눌한 말투에 항상 같은 옷을 입고 다녀 친구들에게 ‘난쟁이, 땅딸보, 가난뱅이’ 등으로 불리며 놀림받았다고 한다. 원만하지 못한 학교생활 속에서 그에게 힘을 주었던 것은 바로 ‘노래’였다.
“노래는 저의 가장 오랜 친구처럼 언제나 곁에 있어줬어요. 힘들고 외롭게 느껴질 때마다 노래를 부르며 어려운 상황을 이겨냈죠.”
어릴 때부터 성가대 활동을 해온 그는 호세 카레라스의 오페라 아리아를 듣고 난 뒤 오페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일찌감치 첫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합창단 연습에 늦지 않으려고 뛰어가다가 건축 자재에 부딪혀 앞니가 부러지고 치골이 흔들리는 부상을 얻었던 것. 그 뒤 치료를 받지 못해 치골은 기형적으로 성장했고, 친구들은 그런 그를 “프랑켄슈타인 같다”며 놀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99년 친구와 함께 영국 ITV 노래 경연 프로그램 ‘마이 카인드 오브 뮤직(My Kind of Music)’에 나가 1등을 했고, 이것을 계기로 용기를 얻어 오페라 회사의 문을 수차례 두드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은 그의 외모를 보고는 외면했다고. 그는 거기서 좌절하지 않고, 마트에서 수년간 일해 모은 돈과 상금을 가지고 이탈리아 오페라 스쿨에서 수업을 듣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폴 포츠 감동 스토리

“여기서 제 창법의 기본을 형성하게 됐어요. 처음으로 이탈리아어를 제대로 배우기도 했고요. 그곳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만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죠.”
그는 수업 도중 파바로티 앞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의 노래를 들은 파바로티는 앙코르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는 “여러 명의 학생 중 유일하게 나만 두 곡을 불렀다. 그를 만난 것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추억”이라고 말했다. 고급 과정을 들을 만한 수업료가 없던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오페라 극단에 들어가 무보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꿈을 향한 그의 신념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을까. 2003년 그는 잇따른 건강 이상으로 시련을 겪어야 했다.
“맹장염에 걸려서 수술을 했는데 퇴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장 쪽에 종양이 발견됐죠. 다행히 양성 종양이었지만 당시 공연 중이던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에서 배역을 맡고 있어서 수술 일정을 미뤘어요. 노래는 제 인생의 전부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거든요.”

가난한 가정형편, 못생긴 외모, 잇단 시련도 꿈을 향한 그의 도전 막지 못해
뒤늦게 종양 수술을 해 다행히 완쾌했지만, 그는 다시 몸져누워야 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 쇄골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그는 2년간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특히 의사는 쇄골뼈 골절로 성대를 다친 그에게 “다시는 노래를 못 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하기도 했다고. 이렇게 아프고 힘든 시기,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됐던 사람은 바로 아내 줄리 앤이었다. 두 사람은 2001년 인터넷 채팅방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고, 폴 포츠는 자신이 아플 때 늘 곁에 있어준 줄리 앤의 착한 마음씨에 반해 2003년 크리스마스 이브 날 청혼했다고 한다.
“노래를 계속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힘든 시기에 아내는 항상 제 옆을 지키며 저를 ‘스타’라고 격려해줬어요.”
아내의 극진한 정성으로 건강을 되찾은 그는 휴대전화 외판원으로 일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의 꿈을 이루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재능을 겨루는 ‘브리튼스 갓 탤런트’의 출연자 모집공고를 발견했던 것. 결국 그는 첫 오디션에서부터 뛰어난 목소리를 선보이며 1등을 거머쥐었다.
“제가 우승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저는 ‘하나님, 왜 저를(God, why me)’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제 남은 절반의 인생을 노래하며 보내라는 ‘마지막 기회(One Chance)’를 주신 것 같아요.”
그는 우승 후 심사위원이자 음반기획자 사이먼 코웰과 음반 계약을 맺고, 한 달 만에 그의 첫 번째 앨범 ‘One Chance’를 발매했다. 또 그해 연말에는 역경을 이겨낸 그의 감동적인 스토리에 반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앞에서 노래 부르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우승한 다음 날도 우승을 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침에 알람이 울리고 아내가 출근하라고 깨우기만을 기다렸을 정도였죠(웃음). 우승하고 나니,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이뤄지더군요. 아파서 일하지 못하는 동안 사용했던 카드빚 3만 파운드(약 5천5백만원)도 한꺼번에 갚았고요. 그동안 돈이 없어서 아이 갖는 것도 미뤄왔는데, 그런 것들도 생각할 수 있게 돼 정말 행복했어요.”
시련을 극복하고 꿈을 이룬 폴 포츠는 자신의 노래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고 한다.
“‘정글북’에 보면 ‘If’라는 제목의 시가 나와요. 그 시에는 ‘인생을 살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단 한 번의 작은 기회도 놓쳐선 안 된다’고 쓰여 있어요. 많은 사람이 제 노래를 통해 이 메시지를 얻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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