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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교육계 화제

미 하버드대 첫 여성 총장 드루 길핀 파우스트 교수

기획·김명희 기자 / 글·공종식‘동아일보 뉴욕 특파원’

2007. 03. 20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꼽히는 미국 하버드대에 첫 여성 총장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역사학자 드루 길핀 파우스트 교수. 아홉 살 때 대통령에게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내용의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던 파우스트 교수의 남달랐던 어린 시절 & 하버드대 총장에 오르기까지의 숨은 이야기 공개.

지난 2월11일 미국 보스턴에 자리 잡은 하버드대학 캠퍼스에는 ‘3·7·1’이라는 숫자가 적힌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여성 차별적 발언 논란으로 지난해 6월 사임한 로런스 서머스 전 총장 후임으로 역사학자 드루 길핀 파우스트 교수(59)가 선출된 직후였다.
‘371’은 하버드의 역사를 의미한다. 파우스트 교수는 371년 하버드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장이다. 이로써 하버드를 포함, 펜실베이니아(에이미 커트먼), 프린스턴(셜리 틸먼), 브라운(루스 시먼스) 등 아이비리그(미국 동부 명문) 8개 대학 중 절반을 여성 총장이 이끌게 됐다.
남북 전쟁 및 미국 남부 역사 분야 권위자인 파우스트 신임 총장은 기자회견에서 “내 총장 선임은 우리보다 불과 한 세대 전 여성들조차 갖지 못했던 기회를 상징한다”면서도 “나는 하버드대의 여성 총장이 아니라 하버드대의 총장이다. 우리는 모두 인간일 뿐, 그 어떤 차이도 없다”고 말했다.
“당신의 총장 선출이 대학에서 성 불평등의 종료를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니다. 아직도 과학분야 등에서 할 일이 많다”고 대답했다.
파우스트 총장은 브린머대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후 펜실베이니아대에서 25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 하버드대에서 학부나 대학원 수업을 듣지 않은 외부 출신 총장이라는 점에서도 그의 선임은 매우 드문 사례다.
99년 하버드대에 인수된 래드클리프 고등학문연구원 학장으로 2001년 하버드대와 인연을 맺은 그는 사려 깊고 화합을 이끌어내는 인간적인 리더라는 평가를 듣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머스 전 총장이 “남성이 여성보다 과학·기술 분야 고위직에 더 많은 이유는 선천적인 차이” 때문이라는 여성 차별적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면서 사퇴 압력이 높아졌을 때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한 사람도 바로 파우스트 총장이었다.
그는 경영 능력도 인정받았다. 그가 부임할 당시 래드클리프 연구원은 하버드의 10개 단과대 중 가장 작고 전임교수나 연구원조차 없었으며, 3백만 달러 이상의 예산 삭감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비용감축 등 구조조정 후 수십 명의 석학을 영입하고 산하 슐레진저 도서관을 여성사 분야 최고의 도서관으로 키워냈다. 그간 누적된 30억 달러의 적자를 털어냈을 뿐 아니라 놀라운 기금모금 수완을 발휘, 2002년 회계년도에 4천9백30만 달러에 불과하던 연구원의 기금을 10배에 가까운 4억7천3백만 달러로 키워놓았다.
“얘야, 그것은 남자들이 하는 일이란다. 네가 이런 현실을 빨리 알수록 더 행복해질 거야.”
보수적인 미국 남부 버지니아의 부유한 농장주 딸로 태어난 파우스트 총장이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다. 아버지, 삼촌, 그리고 남자 형제 세 명 중 둘이 명문으로 손꼽히는 프린스턴대를 졸업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남자 형제들처럼 공부를 잘해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가정교육을 잘 받아 좋은 집안에 시집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아홉 살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편지 써 보냈던 당찬 소녀
파우스트 교수는 종종 그런 어머니와 갈등을 빚었다. 그는 당시 여학생들의 ‘필수 과목’이던 바느질을 거부하고 4H클럽에 가입해 남자아이들과 함께 양치기를 하는가 하면 아홉 살 때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내용의 편지를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보낸 당찬 소녀였다.
공부도 꽤 잘하는 편이었던 그는, 그러나 집안 남자들이 입학했던 프린스턴대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가 대학에 진학하던 시기인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프린스턴대가 여학생을 뽑지 않았기 때문. 눈물을 머금고 그는 여성들에게 더 큰 꿈을 갖도록 동기 부여를 하는 브린머대를 선택했다. 미국 남부사를 전공한 대학 시절 그는 베트남전 반대 시위에 나서는 등 사회 참여에도 적극적인 면모를 보였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그는 특히 흑인 여성들의 삶을 조명하는 연구에 매달렸다. 미국 남부에 있는 24개 박물관을 샅샅이 뒤질 정도로 열정을 다해 저술한 그의 대표적인 저서 ‘창조의 어머니들·Mothers of invention’에는 당시 남부 여성들의 삶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는 책 서문에 “내 할머니와 어머니께 바친다”면서 “순종을 강조한 이 분들이 내게 영감을 줬고 이 분들의 말이 틀린 걸 입증하는 데 미국 사회와 문화가 나를 도왔다”고 밝혔다.
첫 남편 스티븐스 파우스트와 75년 이혼한 그는 하버드대 찰스 로젠버그 과학사 교수와 만나 재혼했다. 역시 하버드대를 졸업한 딸 제시카는 시사주간지 ‘뉴요커’ 기자로 일하고 있다.
“역사학자로서 과거뿐 아니라, 과거가 미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고 이를 통해 하버드, 그리고 여성들의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파우스트 총장의 임기는 오는 7월1일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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