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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정상에 서다

소녀 가장의 역경 딛고 최고의 가수로 우뚝 선 이수영

“힘든 때 많았지만 돌아가신 부모님과 동생들 떠올리며 꿋꿋이 견뎌냈어요”

■ 글·김지영 기자 ■ 사진·이가엔터테인먼트 제공

2004. 02. 03

지난 연말 MBC 10대가수 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수영에게는 남모르는 아픔이 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잃고, 고교 시절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지금껏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해온 것. 그럼에도 구김살 없이 밝고 성실하게 살아온 그가 데뷔 4년만에 최고의 가수로 우뚝 서기까지 가슴 찡 한 인생 고백.

소녀 가장의 역경 딛고 최고의 가수로 우뚝 선 이수영

지난 연말 이효리의 아성을 깨고 MBC 10대가수 가요제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은 가수 이수영(25). 소녀가장으로 어렵게 자란 그는 시상식장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하는 수상 소감과 함께 하염없는 눈물을 쏟으며 대성통곡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를 잃었다. 그러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어머니마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 졸지에 어린 두 동생과 함께 남겨진 그는 눈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려면 뭐든지 해야 했다.
그런 그가 희망을 걸 수 있는 일은 어릴적부터 열망해온 가수의 꿈을 실현하는 것. 고등학교 2학년이던 95년 그는 유재하의 히트곡 ‘사랑하기 때문에’를 불러 MBC 라디오에서 주최한 ‘별밤노래뽐내기대회’ 대상을 차지했고, 이어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을 거쳐 현 소속사인 이가엔터테인먼트에 발탁됐다.
하지만 가수 데뷔는 바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4년간의 준비 기간을 가져야 했던 것. 99년 1집 ‘아이 빌리브’를 발표한 그는 24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이후 애달픈 발라드로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발라드의 여왕’으로 자리매김, 급기야 지난해 발표한 5집 앨범으로 40만장이 넘는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과 그의 성실성은 대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MBC 10대가수 가요제의 평가기준인 음반 판매량과 방송 출연 횟수에서 만점을 받으며 이효리를 누른 것.
그의 수상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그가 힘겨울 때마다 떠올렸다는 두 동생들이었다. 어느새 23세의 어엿한 직장인이 된 여동생과 고3 수험생이 된 남동생은 고맙게도 반듯하고 성실하게 자라주었다. 다음은 본격적인 일본 진출을 앞두고 리메이크 앨범 발매와 고별 콘서트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

대상 수상 때 힘겨웠던 지난날 한꺼번에 떠올라 통곡
-MBC 10대가수 가요제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소감은?
소녀 가장의 역경 딛고 최고의 가수로 우뚝 선 이수영

어려서부터 가수가 아닌 다른 꿈을 꾸어본 적이 없다는 이수영.


“내가 대상을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자격을 갖추었기에 주는 상이 아니라 좀더 잘하라는 격려의 의미로 알고 더욱 성실하고 겸손한 가수가 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수상 당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는데,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인가?
“꼭 받고 싶었던 상이지만 친구인 이효리를 대상 수상자로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효리의 엉켜 있는 이어모니터 줄을 풀어주고 있었다. 그러다 동료가수들이 등을 떠밀어 얼떨결에 앞으로 나왔고 그제서야 꿈에 그리던 대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무척 감격스러우면서 그 짧은 순간 지금까지 걸어온 가수의 길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대상을 받은 감격만으로도 눈물이 나올 판인데 힘들었던 지난 시절까지 떠오르니까 정말이지 다리가 풀리고 숨이 막혔다. 옆에서 효리가 계속 부축해주지 않았다면 서 있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때는 감동과 행복, 그리고 가수가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참아왔던 지난 세월에 대한 기억이 뒤엉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소녀 가장의 역경 딛고 최고의 가수로 우뚝 선 이수영

그는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15차례나 2위만 하다 4집의 ‘라라라’로 처음 1등을 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가수의 꿈은 언제부터 키웠나?

“아주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게 꿈이었다. 노래 부르는 사람만 봐도 가슴이 뛰었고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성장하다 보니 가수가 되어야겠다는 의지가 점점 확고해졌다. 돌이켜보면 단 한번도 가수가 아닌 다른 꿈을 가져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연극반의 리더로 활동할 때도 내 꿈은 연기자가 아니라 가수였다.”
-가수가 된 계기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너무나 가수가 되고 싶어서 당시 이지훈이 소속되어 있던 회사로 데모테이프를 만들어 보냈는데 연락이 왔다. 그곳이 바로 지금 소속돼 있는 이가엔터테인먼트다.”
-가수로 데뷔하기까지 4년이라는 준비 기간을 가졌는데 어떤 과정을 거쳤나?
“당시에는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학교 수업을 마치면 곧장 연습실로 달려가 연습을 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막연하게나마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공부와 노래 연습을 병행했는데 결코 쉽지 않았다. 고교생 가수들이 붐을 이룬 시기여서 내심 빨리 활동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서두르지 않고 기본기를 충실히 다졌다. 노래 연습뿐 아니라 다른 가수들의 모니터도 많이 하고 말투, 언어 사용법, 연기, 춤 등을 두루두루 익히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다양한 재능을 갖춰야 한다는 신념으로.”
-데뷔 후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2집 준비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데뷔 곡이 어느 정도 알려져 지명도를 얻었지만 그만큼 2집을 더 잘 만들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컸다. 나의 능력에 비해 주변의 기대가 너무 크고, 방송 스케줄과 연습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무엇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척 고단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자유를 잃고 살아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1집 때는 뭐가 뭔지 몰라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2집을 준비하면서는 뒤도 돌아보고 앞일도 생각하다 보니 이게 진정 내가 원했던 길인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머릿속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한데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고 혼자 삭이며 많이 울었다. 그런 고뇌의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테지만 그땐 정말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싶을 만큼 현실이 싫었다. 새벽에 눈떠 다음날 새벽에 잠들 때까지 순간마다 지옥 같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때는…(웃음).”
소녀 가장의 역경 딛고 최고의 가수로 우뚝 선 이수영

-힘들 때는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추스른다. 만일 신앙이 없었다면 나는 벌써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데뷔 후 가장 기쁜 일 또는 기억에 남는 일은?
“MBC 10대가수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게 가장 기쁘지만, 가요프로에서 2위만 열다섯번을 하다 4집의 ‘라라라’로 처음 1위를 했을 때 또한 그에 못지 않게 기뻤다. ‘게릴라콘서트’도 기억에 많이 남고,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로 활동할 때도 하루하루 행복했다. 홍콩스타 성룡과 듀엣곡을 녹음하고 나서 홍콩에서 만났을 때 성룡으로부터 목걸이를 선물 받은 일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소녀 가장의 역경 딛고 최고의 가수로 우뚝 선 이수영

-이효리와 단짝 친구로 알려져 있는데 두 사람이 친해진 계기는?
“힘들 때 옆에 있어준 사람이 가장 소중한데 2집 준비하면서 힘들어할 때 늘 곁에서 응원해주고 위로해준 사람이 효리다. 그때 효리는 내게 너무나 따뜻하고 포근한 햇빛과도 같았다. 효리에게 늘 고마움을 느낀다.”
-곁에서 지켜본 이효리는 어떤 사람인가?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친구다. 그만큼 남도 배려할 줄 안다. 남의 행복을 진심으로 함께 기뻐하고 남의 슬픔을 자신이 더 아파할 만큼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을 지녔다. 옆에 있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성격이지만 한편으로는 감수성이 풍부해서 웬만한 여자들보다 더 여린 면도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장단점을 너무 잘 알고 그 장단점을 잘 활용해서 옆에서 지켜보면서 많이 배운다. 그리고 예쁘지만 예쁜 척하지 않아서 시기할래야 시기할 수 없다(웃음).”
-여가를 어떻게 활용하는가?
“지금까지 여가라고 느낄 만큼의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다. 앞만 보고 달려온 기억밖에는 없는 것 같다. 아주 가끔 짧은 휴가가 주어지면 그때는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심신을 가만히 내버려둔다. 가끔은 여느 사람들처럼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밥도 해먹고 수다도 떨고 영화도 보러 가고 쇼핑도 하지만 대개는 찜질방 가서 땀을 빼며 보낸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곧 발매될 리메이크앨범 ‘더 클래식’이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고, 2월7,8일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있을 고별 콘서트가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한다. 또 낯선 땅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앨범을 내고 활동하게 될 텐데 잘 적응하면 좋겠고, 일본에서도 좋은 가수로 인정받고 싶다. 한국 음반시장이 예전처럼 다시 활발해져서 더 좋은 앨범들이 많이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
-일본 진출을 앞두고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고별 콘서트를 마치고 나서 일본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펼칠 계획인데 혹여 팬들의 기억 속에서 내가 잊히지 않을지 걱정이다. 열심히 하고 돌아오겠다.”
그는 인터뷰 내내 성실한 답변을 해주었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소녀가장으로서의 어려움에 관한 질문에는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이에 대해 매니저는 “개인적인 아픔을 앞세워 언론 플레이 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어려운 시절을 꿋꿋이 이겨내고 가수로서 더 큰 열매를 맺기 위해 일본 진출을 결심한 이수영. 그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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