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부부는 죽을 때까지 같이 살 겁니다. 행복하고 재미있게 사는 가족 이야기로 섭외해주세요. 부부 문제, 자녀 문제 섭외 사절합니다.”
지난해 12월 개그맨 황영진은 부부 불화를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의 섭외 요청에 이같이 거절한 내용을 소셜미디어에 게재했다. 섭외 메일을 공개하는 것은 업계의 불문율로 여겨지는데, 이를 알리기까지 고민도 깊었다. 하지만 주변 개그맨 동료 부부들에게도 무분별하게 난사된 내용이기도 했고, 그 또한 같은 메일을 수차례 받은 상황에서 고심 끝에 공개했다고.
이혼 예능 섭외를 단호히 거절한 후 황영진의 화목한 가정이 한 번 더 주목받았다. 2003년 SBS 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그는 코미디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에서 ‘잭슨황’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여기서 이름을 따온 유튜브 채널 ‘황영진TV (잭슨황 부부)’에서 그는 아내 김다솜 씨와 함께 부부 시트콤을 선보이고 있다. 이 땅의 초·중년 커플들의 삶을 리얼하게 잘 표현해 지난해 세계부부의 날 국회기념식 및 저출산 극복의 해 선포식에서 ‘올해의 개그맨 부부상’도 수상했다. 채널A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 SBS ‘동상이몽 2-너는 내 운명’ 등에서 알뜰살뜰한 부부 일상을 공개하며 제2의 전성기도 누렸다. 빅데이터 분석 전문 업체 랭키파이에 따르면 2024년 5월 2주 차 기준 황영진은 코미디언 부문 트렌드지수 1위로 집계됐다.
‘#쇼윈도부부아님’ ‘#내취미는아내’ 등 섭외 거절 게시글 하단에 적힌 해시태그를 보고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결혼 12년 차지만 여전히 ‘취미는 아내’인 가정의 모습은 어떨까. 곧바로 황영진 씨에게 부부 동반 인터뷰를 제안했고, 흔쾌히 만나자는 답변을 받았다.
12년 차 부부, 열 살 차이 커플, 두 아이의 부모 등 수식어를 차치하고서라도 두 사람은 영락없는 연인의 모습이었다. 황영진은 아직도 아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면서 쉬는 시간에도 아내를 촬영했다. “살면서 본 개그맨 중에 남편이 가장 진중하다”는 김다솜 씨의 말마따나 사뭇 진지한 모습이었다. 화기애애한 웃음으로 시작한 인터뷰는 “다시 태어나도 오빠와 결혼하겠다”는 김다솜 씨의 애틋한 고백과 함께 눈물로 마무리됐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 기댈 곳을 만들어주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부부와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처음 만난 날이 기억나나요.
영진 | 한 대학교 축제에서 아내를 처음 봤어요. 한눈에 반해서 말을 걸고 싶었는데 너무 떨리니까 말을 못 걸겠더라고요. 그날 지하철에서 또 만났는데 그때도 말을 걸 용기가 안 났어요. 인연이면 언젠가 만나겠거니 생각하며 지나쳤죠. 그런데 제가 공연하던 소극장 앞 카페에서 아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거예요. 세 번의 우연이 겹쳤죠. 반가운 마음에 보자마자 말을 걸고 싶었는데 도무지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3개월을 꾸준히 카페에 발 도장을 찍은 다음에야 처음 말을 걸었죠.
다솜 | 3개월 내내 카페에 와서 매번 아이스티를 시키고, 그 자리에서 저를 뚫어지게 보면서 마시고는 바로 나갔어요. 그러다 보니 항상 오는 시간에 맞춰서 저도 모르게 기다리게 되고요. 당시 그 카페가 ‘웃찾사’ 공연장 앞에 있어서 개그맨들이 많이 왔고, 직원들한테 가벼운 장난을 거는 분들도 많았어요. 아무 말 없는 개그맨은 오빠가 유일했고, 그 모습이 진중해 보였죠.
3개월 만에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는데, 첫 데이트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했다고요.
다솜 |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갈 줄 알았는데 재미있는 곳에 데려가겠다며 그 박물관으로 갔어요. 두 번째, 세 번째 데이트도 쭉 박물관이었죠. 저는 서울에 박물관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막상 가보니까, 평소 잘 안 다닌 곳이어서 그런지 신기했고 남편이 설명을 잘해줘서 재미있었어요.
영진 | 기억에 남는 데이트를 하고 싶었어요. 평소 제가 자주 가는 곳이기도 하고 볼거리도 많고요. 또 제가 역사를 좀 알아서 어딜 가든 웬만한 일타강사처럼 설명할 수 있어요. 남성분들, 데이트할 때 역사 공부를 미리 하고 박물관에 가서 여자 친구에게 설명을 쫙 해주면 싹 넘어옵니다. 데이트 비용도 훨씬 저렴하고요.
결혼을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영진 | 결혼은 옆에 있어서 좋은 사람보다, 곁에 없으면 안 되는 사람과 하고 싶었어요. 마침 그런 사람을 만났죠. 또 제가 어렵게 자랐기 때문에, 힘들게 일하는 아내를 보면서 더 잘살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요.
다솜 | 본인 일에 프라이드도 강하고, 성실하면서 또 어른스러운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만난 지 100일 만에,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결혼한다면 이 사람이랑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개그맨 아내들 모임에서 ‘같이 살기 싫은 개그맨 남편 1위’로 황영진 씨가 꼽혔다고요.
다솜 | 아내들끼리 모여서 가끔 남편 이야기를 할 때 흉을 보기도 하는데, 저는 당시에 정말 남편 흉볼 게 없었어요. 다들 이야기를 하는데 혼자 아무 말 안 하는 게 머쓱해서, 생각하다가 남편이 “짠돌이”라고 이야기했죠.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다들 “그렇게는 못 산다”고 말하면서 같이 못 살겠는 개그맨 남편으로 불린 거죠.
영진 | 10년 전 이야기입니다. 제가 최근 방송에 나오기 전까지는 재산을 밝히지도 않고 주변에 자랑도 안 해서, 다들 정말 제가 힘들게 살고 아내가 불쌍하게 산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진실을 알고는 다들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실은 돈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나요.
영진 | 절대로요. 부를 과시하는 순간 돈을 써야 해요. 안 그래도 요즘 주변에서 계속 밥 사라고 해서 사람 만나는 데 거리를 좀 두고 있습니다(웃음).
황영진 씨는 지난해 방송에서 은행 이자로만 연 수천만 원씩 받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TV, 냉장고 등 집 안의 가전과 가구도 중고 거래로 구매하고, 평소 ‘아름다운 가게’ 등을 애용하며 20년 이상 투철하게 절약해온 덕분이다. 그는 어릴 적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자취를 하며 혼자 학교에 다녔다. 춥고 배곯는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내 자식에게는 절대로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개그맨 최초의 성희롱 예방 강사로 활동하거나 연예부 기자로 근무하는 등 개그맨 일감이 없을 때도 성실히 일해 돈을 모았다. 황영진은 “가난하게 태어난 건 내 잘못은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며 “돈을 모으는 이유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쓰고 싶어서”라고 밝혔다.
영진 | 옷을 거래할 때, 팁이 있어요. 판매자의 체형을 스캔해야 해요. 자신과 비슷하면 그분과 자주 연락하면서 거래도 하고, 옷을 서로 바꿔 입기도 하죠. 우스갯소리로 서로 “살찌지 마세요”라고도 말해요. 중고 거래를 자주 하다 보니 팁이 생기는데, 손 편지를 쇼핑백에 같이 넣거나, 아내 몰래 산다고 귀띔하면 가격을 할인해주기도 해요. 이제 당근 매너온도가 50℃가 넘어요(웃음).
본인은 ‘짠 내’ 나게 살지만 가족에게는 강요를 안 한다고요.
다솜 | 오히려 제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통장을 남편이 따로 하나 만들어서 늘 채워주고 있어요. 때로는 말 안 하고 소비하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줘요.
영진 | 제가 ‘짠돌이 연합회’ 분들과 가끔 소통하는데, 더 아낄 수 있으면서 왜 ‘낭비’하냐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저는 가족에게 쓰려고 돈을 모으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명품을 사고 차에 튜닝하는 게 취미인 것처럼, 저도 제가 모은 돈으로 가족들이 무언가를 사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제 삶의 낙이자 취미죠.
가족들도 자연스럽게 절약하게 될 것 같아요.
다솜 | 남편이 아이들이나 저한테는 하나도 안 아끼는데도 워낙 절약하니까 저희가 덩달아 알뜰해져요. 강요했다면 하기 싫었겠지만 자연스레 스며들었죠. 큰애는 벌써 갖고 싶은 게 없대서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기가 어려웠어요. 야구팬이라 유니폼을 사고 싶어도 중고 거래 사이트를 먼저 검색해보고, 문구점에서도 가격을 비교하고 더 싼 걸 사려 하더라고요.
영진 | 비싼 걸로 사라고 해도 아이가 저렴한 것을 찾으니 걱정이 좀 됐어요. 혹시나 저 때문에 아이가 일부러 참고 있을까 봐서요. 걱정스러운 마음에 “너희에게 아빠는 어떤 존재냐”고 물었는데 애들이 “아빠는 무조건 다 사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답하더라고요. 고마웠어요.
재테크도 열심히 하나요.
영진 |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 같은 재테크는 하나도 안 했어요. 저는 피땀 흘려서 번 돈이 그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돈이기 때문에 새지 않게 모을 수 있었고요. 아시다시피 최고의 재테크는 절약입니다. 재테크로 수백만 원을 벌어도 막 쓰면 의미가 없어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치킨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오랜만에 먹는 치킨이에요. 먹는 것도, 사는 것도, 쓰는 것도 그렇게 아끼는 게 최고의 재테크라고 생각해요.
부부의 돈 관리법이 궁금합니다.
다솜 | 모든 수입, 지출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요. 급여통장이랑 생활비 통장 카드를 둘 다 각각 갖고 있어서 쓰는 즉시 문자를 받아요. 매일 밤 이번 달에는 얼마를 벌었고, 모았고, 썼는지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요. 남편은 결혼 전부터 입금 및 지출 내역을 모두 공유해줬어요.
영진 | 확실히 감시자가 두명이나 있으니까 돈을 더 절약할 수 있죠.
그럼 어떻게 서프라이즈로 큰돈을 선물했나요.
영진 | 기본적으로 돈을 같이 모으지만, 재방료처럼 따로 생기는 돈을 조금씩 모아서 아내한테 한 번씩 선물해요.
다솜 | 그런데 저에게 큰돈을 줘도 제가 못 쓴다는 걸 남편이 알고 주는 것 같아요. 100만 원을 주면 편하게 쓸 수 있는데, 1억 원을 주면 쓰기보다는 적금을 하나 더 들게 돼요. 지난 방송에서 1억 원을 선물 받았는데도 표정이 떨떠름했던 이유예요(웃음).
영진 | 문득 아내를 보고 있는데 빛이 나더라고요. 저와 결혼을 안 했으면 훨씬 대단한 사람이 됐을 텐데, 너무 일찍 결혼하는 바람에 가정주부로 살게 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요. 또 아내가 충분히 대중에게 사랑받고 호감을 받고 있다는 확신도 들었죠. 자연스레 아내를 영상으로 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저보다 아내가 더 잘한다는 댓글도 많아요. 단, 모든 컷은 한 번에 끝내야 합니다. 두 번 시키면 안 돼요(웃음).
다솜 씨는 원래 연예인이 아니었는데 유튜브 출연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다솜 | 어릴 때, TV에 나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결혼하고 나서도 ‘재연 배우 오디션에 한번 나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죠. 촬영을 주로 집에서 하니까 자연스럽게 생활 연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오히려 이제는 유튜브를 하며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생각에 살아 있는 느낌을 받아요.
두 분 사이가 참 좋은데, 영상 콘셉트를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 잡은 이유가 있나요.
영진 |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가부장적인 가정이 많아요. 남편이 가정의 중심이고, 아내보다 우위에 있다는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어요. 많은 분이 영상을 보고 “남편이 너무 당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이런 영상을 통해 아내를 조심스럽게 대하고 바라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또 아내들도 영상을 보면서 이런 풍자를 통해 ‘남편을 너무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할 수도 있고요.
결혼 생활 12년 차인데 여전히 금슬 좋은 비결이 궁금합니다.
영진 | 서로의 하루를 궁금해하는 거예요. 연애할 때는 ‘뭐 해?’라는 말이 일상적인데 결혼 후에는 잘 안 물어보게 돼요. 매일 붙어 있으니까 사실 다 알기도 하고요. 저희 부부도 조금씩 대화가 없어졌는데, 권태기가 왔다는 것을 느끼고는 제가 먼저 아내가 오늘 무얼 했는지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아내가 오늘은 어느 동네에서 누구 엄마와 놀았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듣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물었죠. 저는 듣다 보니 재미있어서 더 묻게 되고, 아내도 제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물어보면서 점점 사이가 좋아졌어요.
다솜 | 밖에서 일하고 돈을 벌어오는 것도, 집에서 가정을 돌보는 것도 어느 하나 당연하지 않아요. 이를 인정해주고 말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해요. 어젯밤 아이들을 재우고 나니까 오빠가 “고생했다”고 말하는데 하루의 고됨이 그 한마디에 녹더라고요. 먼저 ‘고생했어’ ‘오늘 힘들었지’ 하고 들여다볼수록 저도 짜증을 덜 내게 되고, 서로 도닥여주게 돼요. 가는 말이 고우니까 오는 말도 고와지고요.
좋은 배우자란 어떤 사람인가요.
영진 | 결국 연극은 끝나기 마련이에요. 가장 나다운 모습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좋은 배우자라고 생각해요. 아내는 저와 둘이 있을 때, 제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웃어주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줘요. 제가 연기를 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죠.
다솜 | 같은 맥락으로 좋은 배우자는 나를 쉴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에요. 이제는 힘든 일이 생겨도 부모님이 아니라 남편이 먼저 생각나고, 친정에 가도 하루만 지나면 ‘우리 집’에 가고 싶어져요. 남편은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인 것처럼 저를 늘 보듬어주고 편안하게 해줘요.
결혼을 고민하는 미혼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영진 | 저도 예전에는 비혼을 결심한 적이 있어요. 돈이 없는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고통을 물려주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니까 정말 초능력이 생기더라고요. 결혼 전에는 힘들 거라 생각하고 포기했던 일들도 결혼 후에는 이룰 힘이 생겼어요. 저는 결혼하고 인생이 더 잘 풀린 것 같아요. 제가 선택해온 모든 것 중에 결혼이 최고였어요.
다솜 | 결혼하면 확실히 여자들은 포기할 것도 많고 힘들죠. 그런데 힘든 것보다도 평생 함께할 사람과 아이를 기르면서 얻는 행복이 몇 배로 더 커요. 저는 어릴 때부터 단단하고 평범한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사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오빠 덕분에 그걸 이뤘어요. 세상살이가 팍팍한데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감사해요. .
#황영진 #잭슨황부부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출처 SBS유튜브 캡처
지난해 12월 개그맨 황영진은 부부 불화를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의 섭외 요청에 이같이 거절한 내용을 소셜미디어에 게재했다. 섭외 메일을 공개하는 것은 업계의 불문율로 여겨지는데, 이를 알리기까지 고민도 깊었다. 하지만 주변 개그맨 동료 부부들에게도 무분별하게 난사된 내용이기도 했고, 그 또한 같은 메일을 수차례 받은 상황에서 고심 끝에 공개했다고.
이혼 예능 섭외를 단호히 거절한 후 황영진의 화목한 가정이 한 번 더 주목받았다. 2003년 SBS 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그는 코미디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에서 ‘잭슨황’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여기서 이름을 따온 유튜브 채널 ‘황영진TV (잭슨황 부부)’에서 그는 아내 김다솜 씨와 함께 부부 시트콤을 선보이고 있다. 이 땅의 초·중년 커플들의 삶을 리얼하게 잘 표현해 지난해 세계부부의 날 국회기념식 및 저출산 극복의 해 선포식에서 ‘올해의 개그맨 부부상’도 수상했다. 채널A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 SBS ‘동상이몽 2-너는 내 운명’ 등에서 알뜰살뜰한 부부 일상을 공개하며 제2의 전성기도 누렸다. 빅데이터 분석 전문 업체 랭키파이에 따르면 2024년 5월 2주 차 기준 황영진은 코미디언 부문 트렌드지수 1위로 집계됐다.
‘#쇼윈도부부아님’ ‘#내취미는아내’ 등 섭외 거절 게시글 하단에 적힌 해시태그를 보고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결혼 12년 차지만 여전히 ‘취미는 아내’인 가정의 모습은 어떨까. 곧바로 황영진 씨에게 부부 동반 인터뷰를 제안했고, 흔쾌히 만나자는 답변을 받았다.
12년 차 부부, 열 살 차이 커플, 두 아이의 부모 등 수식어를 차치하고서라도 두 사람은 영락없는 연인의 모습이었다. 황영진은 아직도 아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면서 쉬는 시간에도 아내를 촬영했다. “살면서 본 개그맨 중에 남편이 가장 진중하다”는 김다솜 씨의 말마따나 사뭇 진지한 모습이었다. 화기애애한 웃음으로 시작한 인터뷰는 “다시 태어나도 오빠와 결혼하겠다”는 김다솜 씨의 애틋한 고백과 함께 눈물로 마무리됐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 기댈 곳을 만들어주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부부와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결혼하기 싫은 남자 개그맨 1위?
황영진·김다솜 부부는 ‘동상이몽2’에 출연해 ‘짠내’나는 절약의 배경을 터놓은 바 있다.
영진 | 한 대학교 축제에서 아내를 처음 봤어요. 한눈에 반해서 말을 걸고 싶었는데 너무 떨리니까 말을 못 걸겠더라고요. 그날 지하철에서 또 만났는데 그때도 말을 걸 용기가 안 났어요. 인연이면 언젠가 만나겠거니 생각하며 지나쳤죠. 그런데 제가 공연하던 소극장 앞 카페에서 아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거예요. 세 번의 우연이 겹쳤죠. 반가운 마음에 보자마자 말을 걸고 싶었는데 도무지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3개월을 꾸준히 카페에 발 도장을 찍은 다음에야 처음 말을 걸었죠.
다솜 | 3개월 내내 카페에 와서 매번 아이스티를 시키고, 그 자리에서 저를 뚫어지게 보면서 마시고는 바로 나갔어요. 그러다 보니 항상 오는 시간에 맞춰서 저도 모르게 기다리게 되고요. 당시 그 카페가 ‘웃찾사’ 공연장 앞에 있어서 개그맨들이 많이 왔고, 직원들한테 가벼운 장난을 거는 분들도 많았어요. 아무 말 없는 개그맨은 오빠가 유일했고, 그 모습이 진중해 보였죠.
3개월 만에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는데, 첫 데이트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했다고요.
다솜 |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갈 줄 알았는데 재미있는 곳에 데려가겠다며 그 박물관으로 갔어요. 두 번째, 세 번째 데이트도 쭉 박물관이었죠. 저는 서울에 박물관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막상 가보니까, 평소 잘 안 다닌 곳이어서 그런지 신기했고 남편이 설명을 잘해줘서 재미있었어요.
영진 | 기억에 남는 데이트를 하고 싶었어요. 평소 제가 자주 가는 곳이기도 하고 볼거리도 많고요. 또 제가 역사를 좀 알아서 어딜 가든 웬만한 일타강사처럼 설명할 수 있어요. 남성분들, 데이트할 때 역사 공부를 미리 하고 박물관에 가서 여자 친구에게 설명을 쫙 해주면 싹 넘어옵니다. 데이트 비용도 훨씬 저렴하고요.
결혼을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영진 | 결혼은 옆에 있어서 좋은 사람보다, 곁에 없으면 안 되는 사람과 하고 싶었어요. 마침 그런 사람을 만났죠. 또 제가 어렵게 자랐기 때문에, 힘들게 일하는 아내를 보면서 더 잘살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요.
다솜 | 본인 일에 프라이드도 강하고, 성실하면서 또 어른스러운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만난 지 100일 만에,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결혼한다면 이 사람이랑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개그맨 아내들 모임에서 ‘같이 살기 싫은 개그맨 남편 1위’로 황영진 씨가 꼽혔다고요.
다솜 | 아내들끼리 모여서 가끔 남편 이야기를 할 때 흉을 보기도 하는데, 저는 당시에 정말 남편 흉볼 게 없었어요. 다들 이야기를 하는데 혼자 아무 말 안 하는 게 머쓱해서, 생각하다가 남편이 “짠돌이”라고 이야기했죠.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다들 “그렇게는 못 산다”고 말하면서 같이 못 살겠는 개그맨 남편으로 불린 거죠.
영진 | 10년 전 이야기입니다. 제가 최근 방송에 나오기 전까지는 재산을 밝히지도 않고 주변에 자랑도 안 해서, 다들 정말 제가 힘들게 살고 아내가 불쌍하게 산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진실을 알고는 다들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실은 돈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나요.
영진 | 절대로요. 부를 과시하는 순간 돈을 써야 해요. 안 그래도 요즘 주변에서 계속 밥 사라고 해서 사람 만나는 데 거리를 좀 두고 있습니다(웃음).
황영진 씨는 지난해 방송에서 은행 이자로만 연 수천만 원씩 받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TV, 냉장고 등 집 안의 가전과 가구도 중고 거래로 구매하고, 평소 ‘아름다운 가게’ 등을 애용하며 20년 이상 투철하게 절약해온 덕분이다. 그는 어릴 적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자취를 하며 혼자 학교에 다녔다. 춥고 배곯는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내 자식에게는 절대로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개그맨 최초의 성희롱 예방 강사로 활동하거나 연예부 기자로 근무하는 등 개그맨 일감이 없을 때도 성실히 일해 돈을 모았다. 황영진은 “가난하게 태어난 건 내 잘못은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며 “돈을 모으는 이유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쓰고 싶어서”라고 밝혔다.
2만 원짜리 정장 입고 1억 원 선물해주는 남편
오늘 입은 정장도 중고 거래로 2만 원에 구매했다고요.
영진 | 옷을 거래할 때, 팁이 있어요. 판매자의 체형을 스캔해야 해요. 자신과 비슷하면 그분과 자주 연락하면서 거래도 하고, 옷을 서로 바꿔 입기도 하죠. 우스갯소리로 서로 “살찌지 마세요”라고도 말해요. 중고 거래를 자주 하다 보니 팁이 생기는데, 손 편지를 쇼핑백에 같이 넣거나, 아내 몰래 산다고 귀띔하면 가격을 할인해주기도 해요. 이제 당근 매너온도가 50℃가 넘어요(웃음).
본인은 ‘짠 내’ 나게 살지만 가족에게는 강요를 안 한다고요.
다솜 | 오히려 제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통장을 남편이 따로 하나 만들어서 늘 채워주고 있어요. 때로는 말 안 하고 소비하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줘요.
영진 | 제가 ‘짠돌이 연합회’ 분들과 가끔 소통하는데, 더 아낄 수 있으면서 왜 ‘낭비’하냐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저는 가족에게 쓰려고 돈을 모으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명품을 사고 차에 튜닝하는 게 취미인 것처럼, 저도 제가 모은 돈으로 가족들이 무언가를 사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제 삶의 낙이자 취미죠.
가족들도 자연스럽게 절약하게 될 것 같아요.
다솜 | 남편이 아이들이나 저한테는 하나도 안 아끼는데도 워낙 절약하니까 저희가 덩달아 알뜰해져요. 강요했다면 하기 싫었겠지만 자연스레 스며들었죠. 큰애는 벌써 갖고 싶은 게 없대서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기가 어려웠어요. 야구팬이라 유니폼을 사고 싶어도 중고 거래 사이트를 먼저 검색해보고, 문구점에서도 가격을 비교하고 더 싼 걸 사려 하더라고요.
영진 | 비싼 걸로 사라고 해도 아이가 저렴한 것을 찾으니 걱정이 좀 됐어요. 혹시나 저 때문에 아이가 일부러 참고 있을까 봐서요. 걱정스러운 마음에 “너희에게 아빠는 어떤 존재냐”고 물었는데 애들이 “아빠는 무조건 다 사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답하더라고요. 고마웠어요.
재테크도 열심히 하나요.
영진 |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 같은 재테크는 하나도 안 했어요. 저는 피땀 흘려서 번 돈이 그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돈이기 때문에 새지 않게 모을 수 있었고요. 아시다시피 최고의 재테크는 절약입니다. 재테크로 수백만 원을 벌어도 막 쓰면 의미가 없어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치킨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오랜만에 먹는 치킨이에요. 먹는 것도, 사는 것도, 쓰는 것도 그렇게 아끼는 게 최고의 재테크라고 생각해요.
부부의 돈 관리법이 궁금합니다.
다솜 | 모든 수입, 지출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요. 급여통장이랑 생활비 통장 카드를 둘 다 각각 갖고 있어서 쓰는 즉시 문자를 받아요. 매일 밤 이번 달에는 얼마를 벌었고, 모았고, 썼는지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요. 남편은 결혼 전부터 입금 및 지출 내역을 모두 공유해줬어요.
영진 | 확실히 감시자가 두명이나 있으니까 돈을 더 절약할 수 있죠.
그럼 어떻게 서프라이즈로 큰돈을 선물했나요.
영진 | 기본적으로 돈을 같이 모으지만, 재방료처럼 따로 생기는 돈을 조금씩 모아서 아내한테 한 번씩 선물해요.
다솜 | 그런데 저에게 큰돈을 줘도 제가 못 쓴다는 걸 남편이 알고 주는 것 같아요. 100만 원을 주면 편하게 쓸 수 있는데, 1억 원을 주면 쓰기보다는 적금을 하나 더 들게 돼요. 지난 방송에서 1억 원을 선물 받았는데도 표정이 떨떠름했던 이유예요(웃음).
“다시 태어나도 서로와 결혼”
부부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영진 | 문득 아내를 보고 있는데 빛이 나더라고요. 저와 결혼을 안 했으면 훨씬 대단한 사람이 됐을 텐데, 너무 일찍 결혼하는 바람에 가정주부로 살게 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요. 또 아내가 충분히 대중에게 사랑받고 호감을 받고 있다는 확신도 들었죠. 자연스레 아내를 영상으로 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저보다 아내가 더 잘한다는 댓글도 많아요. 단, 모든 컷은 한 번에 끝내야 합니다. 두 번 시키면 안 돼요(웃음).
다솜 씨는 원래 연예인이 아니었는데 유튜브 출연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다솜 | 어릴 때, TV에 나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결혼하고 나서도 ‘재연 배우 오디션에 한번 나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죠. 촬영을 주로 집에서 하니까 자연스럽게 생활 연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오히려 이제는 유튜브를 하며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생각에 살아 있는 느낌을 받아요.
두 분 사이가 참 좋은데, 영상 콘셉트를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 잡은 이유가 있나요.
영진 |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가부장적인 가정이 많아요. 남편이 가정의 중심이고, 아내보다 우위에 있다는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어요. 많은 분이 영상을 보고 “남편이 너무 당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이런 영상을 통해 아내를 조심스럽게 대하고 바라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또 아내들도 영상을 보면서 이런 풍자를 통해 ‘남편을 너무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할 수도 있고요.
결혼 생활 12년 차인데 여전히 금슬 좋은 비결이 궁금합니다.
영진 | 서로의 하루를 궁금해하는 거예요. 연애할 때는 ‘뭐 해?’라는 말이 일상적인데 결혼 후에는 잘 안 물어보게 돼요. 매일 붙어 있으니까 사실 다 알기도 하고요. 저희 부부도 조금씩 대화가 없어졌는데, 권태기가 왔다는 것을 느끼고는 제가 먼저 아내가 오늘 무얼 했는지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아내가 오늘은 어느 동네에서 누구 엄마와 놀았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듣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물었죠. 저는 듣다 보니 재미있어서 더 묻게 되고, 아내도 제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물어보면서 점점 사이가 좋아졌어요.
다솜 | 밖에서 일하고 돈을 벌어오는 것도, 집에서 가정을 돌보는 것도 어느 하나 당연하지 않아요. 이를 인정해주고 말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해요. 어젯밤 아이들을 재우고 나니까 오빠가 “고생했다”고 말하는데 하루의 고됨이 그 한마디에 녹더라고요. 먼저 ‘고생했어’ ‘오늘 힘들었지’ 하고 들여다볼수록 저도 짜증을 덜 내게 되고, 서로 도닥여주게 돼요. 가는 말이 고우니까 오는 말도 고와지고요.
좋은 배우자란 어떤 사람인가요.
영진 | 결국 연극은 끝나기 마련이에요. 가장 나다운 모습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좋은 배우자라고 생각해요. 아내는 저와 둘이 있을 때, 제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웃어주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줘요. 제가 연기를 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죠.
다솜 | 같은 맥락으로 좋은 배우자는 나를 쉴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에요. 이제는 힘든 일이 생겨도 부모님이 아니라 남편이 먼저 생각나고, 친정에 가도 하루만 지나면 ‘우리 집’에 가고 싶어져요. 남편은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인 것처럼 저를 늘 보듬어주고 편안하게 해줘요.
결혼을 고민하는 미혼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영진 | 저도 예전에는 비혼을 결심한 적이 있어요. 돈이 없는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고통을 물려주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니까 정말 초능력이 생기더라고요. 결혼 전에는 힘들 거라 생각하고 포기했던 일들도 결혼 후에는 이룰 힘이 생겼어요. 저는 결혼하고 인생이 더 잘 풀린 것 같아요. 제가 선택해온 모든 것 중에 결혼이 최고였어요.
다솜 | 결혼하면 확실히 여자들은 포기할 것도 많고 힘들죠. 그런데 힘든 것보다도 평생 함께할 사람과 아이를 기르면서 얻는 행복이 몇 배로 더 커요. 저는 어릴 때부터 단단하고 평범한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사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오빠 덕분에 그걸 이뤘어요. 세상살이가 팍팍한데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감사해요. .
#황영진 #잭슨황부부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출처 SBS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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