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현지 시간) 커탄지 브라운 잭슨(52) 판사가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 자리에 올랐다. 여성으로는 역대 6번째, 흑인으로는 3번째이며, ‘흑인 여성’으로는 사상 최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월 25일 그를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했다. 한 달여가 지난 이날, 미 연방 상원이 찬성 53표 대 반대 47표로 지명안을 가결했다. 이로써 잭슨 대법관은 지난 2월 퇴임을 공식 발표한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 후임으로 임명되는 데 필요한 모든 관문을 통과한 상황. 브라이어 대법관이 물러나는 대로 이르면 6월 말 공식 취임해 미국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 전망이다.
하버드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잡지 ‘타임’ 기자를 거쳐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잭슨 대법관은 1999년 브라이어 대법관의 재판연구원(law clerk)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법조 경력을 쌓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2년 워싱턴DC 지방법원 판사가 됐고, 오바마의 후계자인 바이든 정부에서 대법관으로 낙점됐다.
미 연방대법원은 어떤 기관일까. 미국은 우리나라와 같이 입법부-사법부-행정부를 분리해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3권분립’ 체제를 갖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사법 분야 최고 법원이다. 모두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는데, 이 숫자는 헌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 정치권의 합의와 여론 동의만 있으면 대법관 수를 10명 이상으로 늘리거나 5명 이하로 줄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미국은 관행적으로 9명의 대법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 대법관은 ‘지구에서 가장 좋은 직업’으로 여겨진다. 대통령이 지명하고 연방 상원 청문회를 거쳐 인준 투표를 통과하고 나면 죽을 때까지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종신직이라는 점이 첫째 이유다. 미 연방대법원의 공석은 대법관 가운데 누군가 사망하거나 자발적으로 은퇴하는 경우에만 생긴다. 2020년 연방대법원에 입성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의 경우 1972년생으로 이제 50세다. 현대인 평균수명을 고려하면 앞으로 30년 이상 대법관 자리를 유지할 전망이다.
미 연방대법관이 ‘좋은 직업’인 이유는 또 있다. 업무 부담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3심제를 갖고 있다. 1심 지방법원 판단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은 2심 항소법원, 3심 연방대법원 문을 차례로 두드릴 수 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이 하위 법원에서 올라온 모든 사건을 검토하는 건 아니다. 연방대법원은 자체 판단에 따라 일부 사건만 직접 검토하고 나머지는 항소법원 판단을 그대로 따르도록 한다. 관련 통계를 보면 매년 미 연방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은 약 7000건이다. 이 가운데 연방대법원 판단을 받는 사례는 100~150건에 불과하다. 약 90%의 사건이 항소법원 결정으로 마무리된다고 보면 된다. 대법원 판단을 구하는 모든 사건을 심의하느라 과도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는 한국 대법관들로서는 매우 부러운 시스템일 것이다. 게다가 미 연방대법관은 매년 여름 3개월 동안 휴가를 간다. 이 또한 우리 대법관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법심사 결과가 미국 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어마어마하다. 심사 결과에 따라 기존 제도와 법, 심지어 관행까지 송두리째 바뀌곤 한다. 연방대법원이 1954년 내린 ‘브라운 대(對) 토피카 교육위원회’ 판결을 보자. 당시 대법관들은 “인종에 따라 공립학교를 달리 배정하는 것은 미 수정 헌법 제14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로써 미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속돼온 흑백 분리입학 제도가 막을 내렸다. 남부 지역 일부 주에서 공개 반발이 일었지만 연방대법원 결정을 뒤집지는 못했다. 최근에는 동성 간 결혼을 합헌으로 판단한 2015년의 ‘오버거펠 대 호지스’ 판결이 미국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 연방대법원의 사법심사 효력은 이처럼 막강하다. 그 결정에 부합하지 않는 법률과 행정명령은 모두 폐기 또는 수정 수순을 밟는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시민 여론이 첨예하게 맞서는 사안에 대해 연방대법원이 심의를 결정하기만 해도 그 자체를 중요한 뉴스로 다룬다.
문제는 연방대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이 늘 의심을 산다는 점. 투표를 통해 선출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사법부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것을 요구받는다. 정치적 중립성을 기반으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의 전횡을 견제하며 헌법 정신을 수호하는 게 사법부에 부여된 임무다. 하지만 미국 사법부의 행태를 보면 이런 ‘이상’이 실제로 구현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근본적인 이유는 대통령이 연방대법관을 포함한 연방법원 판사 지명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대법관 지명을 둘러싼 정치권 내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건 2016년. 그해 2월 보수 성향 안토닌 스칼리아 연방대법관이 급사했다. 임기 중 이미 두 차례 연방대법원 판사 지명권을 행사했던 오바마 대통령에게 또 한 번 기회가 왔다. 그는 당시 연방 상원 다수당인 공화당의 견제를 피하고자 중도 성향의 메릭 갈런드 판사를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그런데 공화당은 대통령 선거가 열리는 해에 연방대법관을 인준하지는 못하겠다며 버티기 시작했다. 당시 공화당 상원의원들 논리는 “연방대법원 판사 수가 반드시 9명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였다. 이들은 같은 해 11월 선출되는 차기 대통령이 연방대법관 공석을 채우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정부는 이에 맞서 대법관 임명을 강행하지 못했고 연방대법원은 한동안 8인 체제로 운영됐다. 2017년 임기를 시작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스칼리아 판사 자리에 보수 성향 닐 고서치 대법관을 임명한다.
그런데 2020년, 이번에는 공화당 정부 아래서 2016년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해 9월 연방대법원에서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사망한 것. 2016년 공화당 논리에 따르면 대선이 있는 2020년에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연방대법관을 지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불과 4년 전 자신들 주장을 180도 뒤엎으며 연방대법관 임명 절차를 시작한다. 긴즈버그 대법관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 성향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연방대법관 후보로 지명했다. 이후 공화당이 다수당인 연방 상원에서 무난히 인준 투표를 통과한 배럿 대법관은 ‘미국 헌법의 수호자’로서의 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2016년과 2020년에 보인 공화당의 이율배반적 행보는 미 사법부가 얼마나 정치화됐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현재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은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이다. 오바마 대통령 때 임명된 소니아 소토마요르와 엘레나 케이건, 그리고 이번에 임기를 시작한 잭슨이 그들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잭슨 대법관이 연방대법원에서 좀 더 강력하게 진보 목소리를 대변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초의 흑인 여성 연방대법관이라는 상징성을 가지는 데 그치지 말고, 사회 내 소수자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보 성향 대법관이 일치된 목소리를 낸다 해도 최종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면 보수 성향 대법관 2명을 자기편에 끌어와야 한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잭슨 대법관을 위시한 진보 성향 판사들이 운신할 폭은 좁을 수밖에 없다.
정치적 중립 원칙을 지켜야 하는 사법부의 일거수일투족이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 논리에 의해 재단되는 현실은 여러모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연방 상원 청문회 과정에서 잭슨 대법관은 정치적 중립, 법치, 이해 충돌의 회피 등을 강조하면서 최대한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럼에도 공화당 상원의원 50명 가운데 그의 인준에 찬성한 이는 3명에 불과했다.
최근 들어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 2020년 배럿 대법관 인준 투표 당시 민주당 상원의원은 전원 반대표를 던졌다. 최종 결과는 찬성 52표, 반대 48표로 팽팽했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브렛 캐버노 대법관의 경우 2018년 인준 투표에서 민주당 상원의원 1명의 지지를 받았다. 이때는 찬성 50표, 반대 48표로 인준 투표가 마무리됐다.
그러나 시곗바늘을 조금만 더 과거로 돌려보면 상황이 달랐던 걸 알 수 있다. 올해 84세로 은퇴를 결정해 잭슨 대법관에게 자리를 물려주게 된 스티븐 브레이어 전 대법관의 경우, 1994년 인준 투표 당시 찬성 87표를 받았다. 반대는 9표에 불과했다. 1993년 긴즈버그 대법관 인준 투표 때도 찬성 96표, 반대 3표였다. 이때와 비교하면 현재 미국의 정치 양극화가 얼마나 심한지를 알 수 있다.
양극화에 신음하는 미국 사회에서 잭슨 대법관이 흑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사법심사를 수행한다면, 환호의 목소리 못지않게 반발 기류도 심화할 것이다. 잭슨 대법관이 앞으로 정치적 중립을 원칙적으로 유지하면서 사회 변화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커탄지브라운잭슨 #연방대법관 #이념양극화 #여성동아
Who is 커탄지 브라운 잭슨?
“233년에 걸쳐 115명의 인준을 거친 후에야 흑인 여성이 연방대법관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해냈습니다.”
4월 8일(현지 시각) 미국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커탄지 브라운 잭슨 신임 연방대법관 인준 축하 행사가 열렸다. 그는 6월 말 혹은 7월 초로 예상되는 공식 취임 전까지 후보자 지위를 갖는다. 하지만 연방 상원 인준 투표를 통과한 이상 연방대법관이 되는 것이 확정적이라 미리 축하를 받은 것이다. 잭슨 대법관은 이날 조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사이에 서서 새 역사를 쓴 소감을 밝혔다.
그는 1970년 미국 워싱턴DC 출생으로 유년 시절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보냈다. 플로리다 등 남부 지역 주정부가 흑백 분리 정책을 유지하던 때라 잭슨 대법관의 부모는 모두 흑인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는 잭슨 대법관이 유치원생일 때 로스쿨에 입학해 공부한 끝에 변호사가 됐다. 그는 아버지가 로스쿨 과제를 위해 읽던 판례집과 자료를 보며 법학을 처음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잭슨 대법관의 남편 패트릭 잭슨은 조지타운대 대학병원 의사로 잭슨 대법관과는 학부 시절 처음 만났다. 두 사람 슬하에는 딸이 둘 있다. 남동생 케타흐 브라운은 전직 경찰이자 중동 파병에 2번 참여한 참전용사다.
잭슨 대법관은 하버드대 학부와 로스쿨을 거쳐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법조 경력 초기 자신에게 자리를 물려준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의 법률 서기로 근무했다. 이후 연방 국선변호사, 연방 양형위원회 부위원장, 워싱턴DC 연방 지방법원 판사, 워싱턴DC 연방 항소법원 판사를 지냈다.
잭슨 대법관은 이처럼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인준 과정에서 공화당 상원의원 대부분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3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만 그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잭슨 대법관 인준 축하 행사에서 밋 롬니를 비롯한 이들 3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감사를 표했다.
잭슨 대법관의 판결 성향은 진보로 분류된다. 워싱턴DC 연방 지방법원 판사 시절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서류 미비 이민자(undocumented immigrants)’ 신속 추방 조치와 공무원 해고 간소화 행정명령 등에 대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대법관 인준을 위한 연방 상원 청문회에서 여성의 낙태권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1973년 연방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며 “여성의 낙태할 수 있는 권리는 이미 법으로 확립된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사진 뉴스1
사진출처 미국연방대법원홈페이지
하버드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잡지 ‘타임’ 기자를 거쳐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잭슨 대법관은 1999년 브라이어 대법관의 재판연구원(law clerk)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법조 경력을 쌓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2년 워싱턴DC 지방법원 판사가 됐고, 오바마의 후계자인 바이든 정부에서 대법관으로 낙점됐다.
지구에서 가장 좋은 직업, 美 연방대법관
능력과 역량만 놓고 보면 놀라울 게 없는 인선이다. 다만 미국 국민들은 잭슨 대법관이 최초의 흑인 여성으로서 연방대법원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통령 후보 시절 “내가 대통령이 되면 흑인 여성을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연방대법관이 미국 사회에서 갖는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미 연방대법원은 어떤 기관일까. 미국은 우리나라와 같이 입법부-사법부-행정부를 분리해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3권분립’ 체제를 갖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사법 분야 최고 법원이다. 모두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는데, 이 숫자는 헌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 정치권의 합의와 여론 동의만 있으면 대법관 수를 10명 이상으로 늘리거나 5명 이하로 줄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미국은 관행적으로 9명의 대법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 대법관은 ‘지구에서 가장 좋은 직업’으로 여겨진다. 대통령이 지명하고 연방 상원 청문회를 거쳐 인준 투표를 통과하고 나면 죽을 때까지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종신직이라는 점이 첫째 이유다. 미 연방대법원의 공석은 대법관 가운데 누군가 사망하거나 자발적으로 은퇴하는 경우에만 생긴다. 2020년 연방대법원에 입성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의 경우 1972년생으로 이제 50세다. 현대인 평균수명을 고려하면 앞으로 30년 이상 대법관 자리를 유지할 전망이다.
미 연방대법관이 ‘좋은 직업’인 이유는 또 있다. 업무 부담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3심제를 갖고 있다. 1심 지방법원 판단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은 2심 항소법원, 3심 연방대법원 문을 차례로 두드릴 수 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이 하위 법원에서 올라온 모든 사건을 검토하는 건 아니다. 연방대법원은 자체 판단에 따라 일부 사건만 직접 검토하고 나머지는 항소법원 판단을 그대로 따르도록 한다. 관련 통계를 보면 매년 미 연방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은 약 7000건이다. 이 가운데 연방대법원 판단을 받는 사례는 100~150건에 불과하다. 약 90%의 사건이 항소법원 결정으로 마무리된다고 보면 된다. 대법원 판단을 구하는 모든 사건을 심의하느라 과도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는 한국 대법관들로서는 매우 부러운 시스템일 것이다. 게다가 미 연방대법관은 매년 여름 3개월 동안 휴가를 간다. 이 또한 우리 대법관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미 역사 좌우하는 연방대법원 판결들
미 연방대법관이 이런 대우를 받는 건 그들의 결정이 미국 사회 전반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 연방대법원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사법심사(judicial review). 연방의회 혹은 주 의회가 제정한 법률, 그리고 대통령 혹은 주지사가 발효한 행정명령이 연방헌법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이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은 헌법재판소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별도로 존재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는 두 업무를 모두 연방대법원이 수행한다.사법심사 결과가 미국 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어마어마하다. 심사 결과에 따라 기존 제도와 법, 심지어 관행까지 송두리째 바뀌곤 한다. 연방대법원이 1954년 내린 ‘브라운 대(對) 토피카 교육위원회’ 판결을 보자. 당시 대법관들은 “인종에 따라 공립학교를 달리 배정하는 것은 미 수정 헌법 제14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로써 미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속돼온 흑백 분리입학 제도가 막을 내렸다. 남부 지역 일부 주에서 공개 반발이 일었지만 연방대법원 결정을 뒤집지는 못했다. 최근에는 동성 간 결혼을 합헌으로 판단한 2015년의 ‘오버거펠 대 호지스’ 판결이 미국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 연방대법원의 사법심사 효력은 이처럼 막강하다. 그 결정에 부합하지 않는 법률과 행정명령은 모두 폐기 또는 수정 수순을 밟는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시민 여론이 첨예하게 맞서는 사안에 대해 연방대법원이 심의를 결정하기만 해도 그 자체를 중요한 뉴스로 다룬다.
문제는 연방대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이 늘 의심을 산다는 점. 투표를 통해 선출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사법부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것을 요구받는다. 정치적 중립성을 기반으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의 전횡을 견제하며 헌법 정신을 수호하는 게 사법부에 부여된 임무다. 하지만 미국 사법부의 행태를 보면 이런 ‘이상’이 실제로 구현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근본적인 이유는 대통령이 연방대법관을 포함한 연방법원 판사 지명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코드 맞는 판사 임명하려는 정치권의 말 바꾸기
사법부의 결정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보니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든 연방대법원에 공석이 생기면 자기 정당 이념에 동조하는, 이른바 ‘코드’가 맞는 인물을 연방대법관으로 임명하려 한다. 민주당 대통령은 진보 성향 판사, 공화당 대통령은 보수 성향 판사를 각각 연방대법관에 지명하는 게 보통이다. 연방 상원에서도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은 대법관 인준 여부를 놓고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인다.연방대법관 지명을 둘러싼 정치권 내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건 2016년. 그해 2월 보수 성향 안토닌 스칼리아 연방대법관이 급사했다. 임기 중 이미 두 차례 연방대법원 판사 지명권을 행사했던 오바마 대통령에게 또 한 번 기회가 왔다. 그는 당시 연방 상원 다수당인 공화당의 견제를 피하고자 중도 성향의 메릭 갈런드 판사를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그런데 공화당은 대통령 선거가 열리는 해에 연방대법관을 인준하지는 못하겠다며 버티기 시작했다. 당시 공화당 상원의원들 논리는 “연방대법원 판사 수가 반드시 9명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였다. 이들은 같은 해 11월 선출되는 차기 대통령이 연방대법관 공석을 채우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정부는 이에 맞서 대법관 임명을 강행하지 못했고 연방대법원은 한동안 8인 체제로 운영됐다. 2017년 임기를 시작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스칼리아 판사 자리에 보수 성향 닐 고서치 대법관을 임명한다.
그런데 2020년, 이번에는 공화당 정부 아래서 2016년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해 9월 연방대법원에서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사망한 것. 2016년 공화당 논리에 따르면 대선이 있는 2020년에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연방대법관을 지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불과 4년 전 자신들 주장을 180도 뒤엎으며 연방대법관 임명 절차를 시작한다. 긴즈버그 대법관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 성향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연방대법관 후보로 지명했다. 이후 공화당이 다수당인 연방 상원에서 무난히 인준 투표를 통과한 배럿 대법관은 ‘미국 헌법의 수호자’로서의 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2016년과 2020년에 보인 공화당의 이율배반적 행보는 미 사법부가 얼마나 정치화됐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심화되는 미국의 이념 양극화
현재 미 연방대법관 가운데 6명은 보수 성향, 3명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4년의 짧은 임기 동안 3명의 연방대법관을 지명했다. 그 영향으로 연방대법원 무게 추가 보수 쪽으로 확 쏠리게 됐다.현재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은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이다. 오바마 대통령 때 임명된 소니아 소토마요르와 엘레나 케이건, 그리고 이번에 임기를 시작한 잭슨이 그들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잭슨 대법관이 연방대법원에서 좀 더 강력하게 진보 목소리를 대변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초의 흑인 여성 연방대법관이라는 상징성을 가지는 데 그치지 말고, 사회 내 소수자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보 성향 대법관이 일치된 목소리를 낸다 해도 최종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면 보수 성향 대법관 2명을 자기편에 끌어와야 한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잭슨 대법관을 위시한 진보 성향 판사들이 운신할 폭은 좁을 수밖에 없다.
정치적 중립 원칙을 지켜야 하는 사법부의 일거수일투족이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 논리에 의해 재단되는 현실은 여러모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연방 상원 청문회 과정에서 잭슨 대법관은 정치적 중립, 법치, 이해 충돌의 회피 등을 강조하면서 최대한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럼에도 공화당 상원의원 50명 가운데 그의 인준에 찬성한 이는 3명에 불과했다.
최근 들어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 2020년 배럿 대법관 인준 투표 당시 민주당 상원의원은 전원 반대표를 던졌다. 최종 결과는 찬성 52표, 반대 48표로 팽팽했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브렛 캐버노 대법관의 경우 2018년 인준 투표에서 민주당 상원의원 1명의 지지를 받았다. 이때는 찬성 50표, 반대 48표로 인준 투표가 마무리됐다.
그러나 시곗바늘을 조금만 더 과거로 돌려보면 상황이 달랐던 걸 알 수 있다. 올해 84세로 은퇴를 결정해 잭슨 대법관에게 자리를 물려주게 된 스티븐 브레이어 전 대법관의 경우, 1994년 인준 투표 당시 찬성 87표를 받았다. 반대는 9표에 불과했다. 1993년 긴즈버그 대법관 인준 투표 때도 찬성 96표, 반대 3표였다. 이때와 비교하면 현재 미국의 정치 양극화가 얼마나 심한지를 알 수 있다.
양극화에 신음하는 미국 사회에서 잭슨 대법관이 흑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사법심사를 수행한다면, 환호의 목소리 못지않게 반발 기류도 심화할 것이다. 잭슨 대법관이 앞으로 정치적 중립을 원칙적으로 유지하면서 사회 변화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커탄지브라운잭슨 #연방대법관 #이념양극화 #여성동아
Who is 커탄지 브라운 잭슨?
오홍석 기자
“233년에 걸쳐 115명의 인준을 거친 후에야 흑인 여성이 연방대법관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해냈습니다.”4월 8일(현지 시각) 미국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커탄지 브라운 잭슨 신임 연방대법관 인준 축하 행사가 열렸다. 그는 6월 말 혹은 7월 초로 예상되는 공식 취임 전까지 후보자 지위를 갖는다. 하지만 연방 상원 인준 투표를 통과한 이상 연방대법관이 되는 것이 확정적이라 미리 축하를 받은 것이다. 잭슨 대법관은 이날 조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사이에 서서 새 역사를 쓴 소감을 밝혔다.
그는 1970년 미국 워싱턴DC 출생으로 유년 시절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보냈다. 플로리다 등 남부 지역 주정부가 흑백 분리 정책을 유지하던 때라 잭슨 대법관의 부모는 모두 흑인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는 잭슨 대법관이 유치원생일 때 로스쿨에 입학해 공부한 끝에 변호사가 됐다. 그는 아버지가 로스쿨 과제를 위해 읽던 판례집과 자료를 보며 법학을 처음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잭슨 대법관의 남편 패트릭 잭슨은 조지타운대 대학병원 의사로 잭슨 대법관과는 학부 시절 처음 만났다. 두 사람 슬하에는 딸이 둘 있다. 남동생 케타흐 브라운은 전직 경찰이자 중동 파병에 2번 참여한 참전용사다.
잭슨 대법관은 하버드대 학부와 로스쿨을 거쳐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법조 경력 초기 자신에게 자리를 물려준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의 법률 서기로 근무했다. 이후 연방 국선변호사, 연방 양형위원회 부위원장, 워싱턴DC 연방 지방법원 판사, 워싱턴DC 연방 항소법원 판사를 지냈다.
잭슨 대법관은 이처럼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인준 과정에서 공화당 상원의원 대부분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3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만 그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잭슨 대법관 인준 축하 행사에서 밋 롬니를 비롯한 이들 3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감사를 표했다.
잭슨 대법관의 판결 성향은 진보로 분류된다. 워싱턴DC 연방 지방법원 판사 시절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서류 미비 이민자(undocumented immigrants)’ 신속 추방 조치와 공무원 해고 간소화 행정명령 등에 대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대법관 인준을 위한 연방 상원 청문회에서 여성의 낙태권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1973년 연방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며 “여성의 낙태할 수 있는 권리는 이미 법으로 확립된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사진 뉴스1
사진출처 미국연방대법원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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