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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 간호사 법제화한 간호법이 남긴 숙제

임경진 기자

2024. 09. 25

간호법 제정안이 8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내년 6월 간호법이 시행되면 PA 간호사는 합법화된다. PA 간호사 제도화에 간호계는 환영했으나 의사 단체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8월 28일 진료지원(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들의 숨통이 트였다. 간호법 제정안은 재석 의원 290명 중 283명의 찬성을 얻어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제정안의 골자는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해 국가와 지방정부가 노동 환경 개선 등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도록 하고, 현행 의료법에 규정된 간호사 업무 외 의사의 지도·위임 아래 진료지원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로써 PA 간호사가 법적 보호를 받을 근거가 마련됐다.

간호법 제정에 간호계는 환영했다. 대한간호협회는 “지난 3년여간 국회 앞에서 염원을 외치고 호소해, 간절히 바라던 간호법 제정안이 드디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며 “2005년 국회 입법이 시도된 후 무려 19년 만에 이루어진 매우 뜻깊고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했다.

일한 지 한 달 만에 의사 대신 환자 체크

8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한간호협회 소속 간호사들이 간호법 제정안이 통과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8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한간호협회 소속 간호사들이 간호법 제정안이 통과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PA 간호사는 의료 현장에서 의사 업무의 일부를 대신하는 인력으로 ‘전담 간호사’ ‘진료 보조 간호사’ 등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PA 간호사는 의료 현장에서 관습적으로 의사 업무를 대신 해오던 간호사들을 부르는 명칭일 뿐, 법적 용어가 아니다. 현행 의료법상 PA 간호사는 불법이다. 의료법 제2조는 간호사 등 의료인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는데, 환자의 간호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를 하는 것으로 명시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장에서 간호사들은 의료법 원칙에서 벗어난 진료를 해왔다.

“간호사가 된 지 한 달 차였어요. MRI를 찍을 때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관찰하는 게 원칙이에요. 하지만 그날은 방사선사와 저만 검사실에 있었죠. 환자에게 진정제를 투여하자마자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어요. 정상 심박수는 보통 분당 60~100회인데 심박수가 30회까지 떨어지고, 적정 혈압은 120/80mmHg 미만인데 60/30mmHg까지 떨어졌어요. 제가 의사 대신 그 자리에 있었던 건데, 그때 막 간호사 일을 시작했던 저는 그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몰랐어요.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3년 차 간호사 박 모(26) 씨는 트라우마가 된 그날의 기억을 조심스레 털어놨다. 박 씨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2021년 12월부터 2023년 4월까지 PA 간호사로 일했다. 박 씨는 “PA 간호사로 일하며 의사에게 보고하지 않고 환자에게 진통제 처방하기, 교수가 수술을 마치면 수술 부위 꿰매기, L-tube(기관절개관) 삽관 등 인턴과 레지던트가 하는 일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PA 간호사 자체가 불법이니 PA 간호사가 될 수 있는 자격 요건과 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규정도 당연히 없다. 박 씨는 대학 졸업 후 병원에 처음 입사하자마자 바로 PA 간호사 업무를 맡았다. 일반적으로 PA 간호사는 임상 경력이 3~5년 이상인 간호사 중에서 선발한다. “PA 간호사는 레지던트와 똑같은 일을 하므로 경력이 있어야 한다”는 게 의료인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박 씨가 일했던 병원은 인력이 부족하다며 갓 간호사가 된 박 씨에게 PA 간호사 업무를 시켰다. 박 씨는 “병원에서 일한 경험이 하나도 없으니, PA 간호사로서 환자의 검사 수치를 보고 진통제를 처방하면서도 내 판단이 맞을지 확신이 없었다”고 했다. 박 씨는 격양된 어조로 이렇게 덧붙였다.

“PA 간호사 업무를 하며 ‘내 부모님은 절대 이 병원에서 치료 안 받게 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신규 간호사가 의사 업무를 보는 줄도 모르고 치료받는 환자들이 불쌍했습니다.”

PA 간호사의 존재가 불법인 상황에서도, 의료 현장은 PA 간호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PA 간호사 없이 수술하는 곳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전공의 파업으로 인한 의료 공백이 지속하면서 3월 정부도 ‘PA 간호사 시범사업’을 도입해 한시적으로 PA 간호사가 의사의 업무 중 일부를 맡는 것을 허용했다. 지난해 3월 윤석열 대통령은 간호법 제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으나 이번에 여야 합의로 간호법이 통과된 데는 의대 증원 갈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전공의 업무가 과중한 상황에서 PA 간호사 없이는 의료 현장이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가 6월 19일부터 7월 8일까지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PA 간호사 수는 1만3502명이다. 이는 보건복지부의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151개 의료기관을 조사한 결과다.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간호사에게 의사 업무를 시키는 병원을 합하면 실제 PA 간호사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1만 명이 넘는 현장 PA 간호사들은 ‘법외 존재’로서의 불안감을 호소해왔다. 박 씨는 “환자가 의료 소송을 걸어 법정에 서게 됐을 때, ‘간호사가 왜 의사 일을 했냐’며 내게 책임을 물을까 걱정돼 PA 간호사로 일하던 병원을 그만뒀다”고 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1월 11일 어깨 염증 환자에게 체외충격파 시술을 한 간호사와 이를 지시한 의사에 대해 의료법 위반(무면허 의료행위)을 이유로 벌금형을 확정한 바 있다.

간호법 제정안은 9월 국무회의를 거쳐 이르면 내년 6월 시행될 예정이다. 이제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자격 요건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숙제로 남았다. 간호법 제12조에 따르면 간호사는 “의사의 일반적 지도와 위임에 근거하여 진료지원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는 PA 간호사를 법적으로 보호할 기초가 된다. 하지만 진료지원 업무의 구체적인 기준과 내용은 추후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간호계는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에서 PICC(말초삽입 중심정맥관) 삽입, T-tube 발관 및 교체, 피부 이외 수술 부위 봉합 또는 봉합 매듭은 제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업무 범위 선 긋기가 남은 과제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은 “제대로 규정되지 않은 업무영역과 보호 범위는 해당 직군을 반드시 법적 위험에 빠뜨린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의사 출신으로 간호법에 반대표를 던졌다.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구체화해 하위 법령에 명시하는 과정에서 진통도 예상된다. 정 교수는 “의사와 간호사가 각각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의료 현장에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보건복지부가 올해 초 PA 간호사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PA 간호사가 수행할 수 있는 업무 89가지를 제시했으나, 의료 현장에서는 수많은 의료 행위를 89가지로 다 규정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장석용 연세대 의료경영학과 부교수는 “수많은 개별 의료행위를 일일이 나열하는 방식은 불가능하고, 일정 수준의 행위를 예시로 제시한 뒤 PA 간호사가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이러한 행위에 한정되지 않음을 명시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PA 간호사 법제화에 대해 “간호사가 진단하고, 간호사가 투약 지시하고, 간호사가 수술하게 만들어주는 법”이라며 “간호법은 직역 갈등을 심화시키고 전공의 수련 생태계를 파괴하는 의료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PA간호사 #간호법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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