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목공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시내에서도 심심찮게 공방을 볼 수 있지만, ‘더 우드 스튜디오’는 용인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호젓한 곳에 둥지를 틀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찍힌 주소지에 도착해보니 건물 뒤쪽으로 야트막한 산이 병풍처럼 둘려 있다. 봄의 한가운데에 들어섰음에도 도심보다 기온이 2~3℃는 낮은 듯 제법 쌀쌀한 기운이 돈다. 하지만 작업실은 목재 난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나무 타는 냄새로 기분 좋은 훈훈함이 감돌았다.
바쁜 일상에 쫓겨 빛을 보지 못하고 묵히는 경우가 많지만 사람은 저마다 숨은 재주 한 가지씩은 갖고 있다. 김명성(50) 씨, 손영진(56) 씨, 박지용(30) 씨는 나무를 다루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주인장인 김명성 씨는 사진 프린트 전문가로, 10년 전 목조 주택을 짓는 과정에서 목공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IT 기업(시스코코리아) 대표이사를 지낸 손영진 씨는 은퇴 후 소일거리를 찾다가 목공을 발견했다. “골프도 쳐보고 다른 운동도 해봤지만, 돈 적게 들면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로 목공만 한 게 없다”는 게 그의 지론.
“어려서부터 그림, 조각 같은 걸 좋아했는데 그땐 그런 걸 할 만한 환경이 안 됐어요. 어머니가 살아 계셔서 지금 제가 목공 하는 걸 보셨더라면 ‘쟤 결국 저거 할 줄 알았다’라고 말씀하셨을 거예요. 서울 강남에서 살다가 이 일이 좋아서 농사도 지을 겸 목공소 근처로 이사도 했어요.”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박지용 씨는 건축 관련 일을 하다 보니 가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지난해 소목 장인으로부터 전통 목가구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한 그는 이곳에서 목공 실력을 좀 더 연마한 뒤 가구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북유럽으로 유학을 갈 계획이다.
목공은 머릿속에 있는 디자인을 손으로 구현해내는 일이다. 몸과 마음을 골고루 쓰는 덕분인지, 세 사람 모두 건강한 기운이 넘친다. 특히 가장 연장자인 손영진 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규칙적으로 ‘근무’한다. 도대체 목공의 어떤 매력이 이들을 사로잡은 것일까.
“우리 집에 꼭 맞는 가구를 만들어 공간을 채우는 재미도 크고, 딸·며느리가 왔다가 ‘아버님, 이거 너무 예뻐요’라고 하면 하나씩 챙겨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뿌듯함이 좋죠.”(손영진)
“제 경우엔 1950~70년대 한국 가구를 재해석한 스타일의 가구를 만들고 있는데, 디자인 작업이 가장 힘들면서도 보람 있어요. 제가 만든 가구를 보고 다른 사람도 좋아할 때 희열을 느끼죠.”(김명성)
“얼마 전에 새로 식탁을 만들어서 주방에 놨더니 가족이 모이는 시간이 늘더라고요. 원래 식탁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가족 구성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아는 제가 직접 거기에 맞는 가구를 만들었더니 그게 생활의 변화를 가져온 거죠. 그런 점이 가구 디자인의 재미고, 보람 같아요.”(박지용)
살아 있는 나무에서는 피톤치드라는 몸에 좋은 물질이 나온다. 어릴 때 나무를 많이 가지고 논 아이들은 인성이 좋아지고, 지능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들은 비록 죽은 나무를 다루지만, 그 안에도 마음을 안정시키는 힘이 있다고 한다.
“오동나무를 잘라서 트레이를 만들어 지인에게 선물했더니, 확실히 합판으로 만든 것과는 분위기가 다르다고 좋아하더군요. 원목 책상에서 공부하면 마음이 차분해져서 집중이 더 잘되고, 작은 소품이라도 집 안에 나무로 된 것 하나를 갖다 놓으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는 것 같아요.”(손영진)
1 은퇴 후 목공일을 시작한 손영진 씨. 2 더 우드 스튜디오 ‘주인장’ 김명성 씨. 3 건축을 전공한 박지용 씨는 가구를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준비 중이다.
동료들의 객관적인 의견은 좋은 창작 위한 디딤돌
운 좋게 자신의 재능을 찾은 이들에게 서로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이를 넘어 든든한 후원군이자 자신을 알아주는 ‘지음(知音)’ 같은 존재들이다. 숙련도는 다 다르지만 서로의 작품을 격의 없이 평가하고, 조언도 한다.
“혼자 하다 보면 가끔 황당한 그림을 그릴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동료들로부터 설계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다거나 비슷한 구조의 가구를 만들어봤더니 어떤 문제가 있었다거나 하는 조언을 들을 수 있어요. 이곳에선 오래 붙들고 있던 작품을 끝내면 출고식이란 걸 해요. 완성되기까지 알게 모르게 동료들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고맙다는 의미로 한턱 내는 거죠.”(손영진)
“목재 다루는 게 생각보다 거칠고 몸을 많이 쓰는 일이에요. 무거운 원목을 들어 옮긴다든가, 가구를 만들어서 조립할 때 혼자 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죠.”(박지용)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혼자 무인도에서 작업하면 재미가 없을 거예요. 여긴 다양한 경험을 가진 분들이 많이 오시니까 같이 작업하면서 인생 이야기도 하고, 목공 외적으로 얻는 부분이 많죠.”(김명성)
“지용 씨가 우리 아들과 동갑인데, 아들보다 대화를 더 많이 해요(웃음). 같이 어울리다 보면 요즘 젊은이들 생각도 알 수 있고, 저도 덩달아 젊어지는 것 같아요.”(손영진)
더 우드 스튜디오의 연회비는 3백50만원.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목공을 배우면서 공간과 공구를 맘껏 쓰고, 덤으로 든든한 친구까지 생긴다면 결코 비싸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현재 회원은 스무 명 안팎. 취미로 목공을 배우는 사람, 집에서 쓸 가구를 직접 만들려는 주부, 가구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 등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대패를 한 번도 손에 잡아본 적이 없는 사람도 목공에 도전할 수 있을까.
“‘여자라서’ ‘나이가 많아서’라며 망설이는 분들께는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목공은 자신이 노력한 만큼 배우고, 그만큼 결과물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소극적인 자세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반대로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열린 자세, 열정이 있다면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얼마든 전혀 상관 없이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김명성)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