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라고 하면 흔히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과 같은 대형 공간을 떠올린다. 비싼 입장료를 감수할 수 없다면 3층 꼭대기에서 연주자의 머리꼭지만 보고 오기도 한다. 유명 콘서트는 그림의 떡이다. 그러나 하우스콘서트에서라면 이런 서러움을 겪을 일이 없다. 2002년 첫선을 보인 하우스콘서트는 이미 유럽에서는 성행하고 있는 공연 형식. 쉽게 말하자면 17~18세기 유럽의 저택에서 열린 작은 콘서트를 생각하면 된다.
국내에서는 박창수(48) 씨가 2002년 7월 12일 처음으로 ‘더하우스콘서트’를 시작한 뒤 입소문이 퍼져 현재는 약 2백~3백 곳에서 하우스콘서트가 열린다. 그러나 박창수 씨와 그의 친구들이 여는 콘서트처럼 꾸준히 열리는 곳은 찾기 힘들다. 그와 함께 새로운 공연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러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빌딩 지하에 위치한 ‘율하우스’를 찾았다. ‘음율’이라는 단어에서 따온 ‘율(律)하우스’는 소리의 집이라는 뜻. 문을 열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니 모든 벽면과 바닥이 나무로 이뤄진 공간이 나온다. 음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도록 나무와 나무 사이에 약간의 틈을 내고 붙였다고 한다. ‘소리의 집’답게 오롯이 음이 놀다 갈 수 있는 곳이다.
박씨에게 “하우스콘서트라기에 가정집에서 열리는 줄 알았다”고 했더니 “왜 진작 집에서 할 때 오지 않았느냐”고 장난삼아 핀잔을 준다. ‘더하우스콘서트’가 처음 열린 곳은 박씨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2백 회 가까이는 진짜 집에서 콘서트를 열었는데 두 번의 이사 끝에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이 공간은 ‘하콘지기’ 중 한 사람이 빌린 녹음실이다.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나가는 공연
10년째를 맞은 ‘더하우스콘서트’는 3백 회를 넘겼다. 이제까지 이곳을 거쳐간 뮤지션으로 가수 강산에·크라잉넛, 기타리스트 이병우, 비올리스트 에이브리 레비탄, 피아니스트 올리버 케른, 소리꾼 이자람 등 장르도 가수도 다양해서 ‘세상의 모든 음악’을 선보인다고 보면 된다. 처음에는 적은 개런티(1백만원)에 무대에 오르길 거절했다가 작은 콘서트가 제법 큰 힘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꼭 하고 싶다고 요청하는 이도 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외르크 데무스의 개런티는 최소 5만 달러라고 하지만 하우스콘서트에 대해 듣고는 1백만원에 무대에 올랐다. 그는 대신 열렬한 사람들의 반응과 감동을 선물 받고 돌아갔다.
신발을 벗고 공연장으로 들어가니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다.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연주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편안한 자세로 앉는다. 그 정도 거리가 둘 사이의 경계선. 어느 누구도 그 선을 넘지 않는다. 나름의 암묵적인 룰인 셈이다.
공연이 횟수를 거듭할수록, 관객들의 내공도 쌓여간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열리는 이 콘서트에 여러 차례 참가한 관객들은 오자마자 나무로 된 벽에 몸을 기댄다. 소리의 울림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홈시어터의 5.1채널 스피커 중 베이스 우퍼에 해당하는 울림이다. 여느 콘서트처럼 무대 앞쪽이 인기 있는 자리가 아니라 벽면이 R석인 셈. 벽 쪽부터 관객으로 채워진다.
4월 6일 3백7회 더하우스콘서트의 주인공은 하모니카 연주자 박종성(26) 씨였다. 2011년 1월 첫 데뷔 앨범을 낸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하모니카를 전공한 연주가다. 박창수 씨는 우연한 기회에 율하우스에서 녹음한 박종성 씨의 연주를 듣고, 그를 하우스콘서트에 초대했다.
저녁 8시가 되자 불이 꺼지고 피아노 옆에 하이라이트 조명이 켜진다. 여러 번 무대에 섰을 텐데도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긴장됐는지 박씨의 얼굴은 살짝 굳어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무대 앞으로 나와 공연을 소개했다. 연주자와 대략의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한 뒤 마지막으로 “공연 후기는 많은 연주자들에게 힘이 됩니다”라며 꼭 공연 후기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좋은 후기로 채택된 관객에게는 다음 번 방문 시 동행인 입장료를 면제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해맑은 미소를 지닌 훈남 아티스트 박종성 씨가 무대에 오르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신이 서본 무대 중 가장 작은 데다 소리가 크지 않은 악기인 하모니카를 마이크도 대지 않고 연주하는 것은 처음이라 긴장한 듯했다. 객석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한 그는 손바닥만 한 악기를 입에 대고 ‘현악기와 관악기의 중간’쯤 되는 음색을 터뜨렸다. ‘오버 더 레인보’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탱고 곡, 자신의 앨범에 수록된 자작곡 등을 연주했다. 1시간 20분가량 진행된 공연 중간중간 연주자와 관객들은 간단한 농담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긴장을 풀었다.
1 제307회 하우스콘서트 하모니카 연주자 박종성 씨와 기타리스트 박윤우 씨. 2 율하우스에서만큼은 벽면이 가장 좋은 자리로 손꼽힌다.
‘더하우스콘서트’의 호스트 박창수 씨는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10년째 이 일을 이끌어오고 있다.
공연이 끝나고 스태프가 분주히 움직이며 2부 행사를 준비했다. 와인과 간단한 안주, 주스를 가져와 하우스콘서트를 파티로 탈바꿈시켰다. 1부의 주인공이던 박종성 씨 역시 2부에서는 작은 파티의 참석자가 됐다. 그에게도 하우스콘서트 첫 공연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됐다.
“제가 연주하는 하모니카의 경우에는 소리가 작은 악기라 마이크 없이 무대에 서는 것은 무리예요. 하모니카가 지닌 소리를 마이크를 통해서가 아닌 생생하게 관객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만족스럽죠. 무대의 경계가 없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어요. 제 숨소리 하나까지 집중해서 듣는 관객들을 보니 놀랍네요. 이 정도 집중도가 있는 무대는 어디에서도 만나보기 어려울 거예요.”
파티에서 만난 한 20대 여성 관객은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친언니의 소개로 이곳을 알게 됐는데 언니는 이미 하우스콘서트 마니아라고 했다.
“한 달 전 윤종신 씨와 ‘신치림’으로 활동 중인 가수 하림 씨 공연을 보러 처음 왔다가 푹 빠졌어요. 보는 사람도 다들 신나 하고, 끝나면 간단한 와인 파티가 준비돼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할 수도 있고요. 한국인들은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어려워하는데 ‘하콘’에서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게 돼요. 한 번 참석하니 계속 오고 싶어지더군요.”
서로가 좋아서 하는 일,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일
연주자도 관객도 만족도가 큰 ‘더하우스콘서트’를 만들어가는 사람은 박창수 씨를 중심으로 25세부터 36세까지 총 10명이다. 관객으로 왔다가 ‘하콘’에 빠져 일을 돕게 된 사람도 있고, 해보고 싶은 일이라며 제 발로 찾아온 사람도 있다. 가장 오래된 멤버는 9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이제까지 ‘하콘’을 거쳐간 사람도 많다. 졸업생만 20명 가까이 되는데 모두들 각자의 영역에서 인정받고 있다. ‘하콘’ 출신들 중에서는 공연기획사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난 일꾼들이 많다. 이곳을 그만둔 뒤에도 관객으로 찾아온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제대로 못할 때는 화를 내죠. 모든 게 완벽한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니까요. 작은 공연이라도 영상, 녹음, 공연 섭외, 관리 등 스태프마다 맡은 일이 다양해요. 이렇게 한 달에 두 번씩 공연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노하우가 쌓였죠. 호흡이 맞지 않을 때도 있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아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공연을 만드는 데 집중하죠.”
하우스콘서트 프로그램은 이미 1년 치 스케줄이 잡혀 있다. 같은 악기는 연속으로 배치하지 않고,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번갈아 하는 등 공연 전반의 강약을 조절한다. 공연과 파티를 준비하는 하콘지기들에겐 보수가 없다. 박창수 씨가 가끔 밥을 사는 게 전부다. 그런데도 좋아서 하는 일이라 모두들 묵묵히 따른다.
“제가 돈이 많아서 하우스콘서트를 연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건 아니에요. 적자가 나면 났지 흑자는 날 수 없는 구조죠. 만약 돈을 벌었다면 이 친구들에게 보답했을 겁니다.”
입장료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변함없이 2만원. 돈을 생각했다면 입장료도 올렸겠지만, 그는 좋은 공연을 보기 위해 비싼 돈 내고 큰 공연장을 찾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만 해도 성공을 거둔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피부로 와 닿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모두가 즐거운 일 아닐까요?”
박창수 씨가 하우스콘서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면 다른 멤버들은 각각의 파트를 맡은 연주자인 셈이다. 그리고 공연 때마다 새로운 협연자가 등장한다. 그들의 삶 자체가 한 편의 협주곡이다.
공연 후에는 음악회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담소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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