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반 웃소에 대한 멤버들의 기억은 동아리와 스타트업 사이 그 어딘가쯤이다. 리더 고탱을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관광학부 동기인 해리와 디투, 대학 후배이자 여자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 성희, 친동생 태훈, 고탱 지인의 제자 우디 등 여러 관계성으로 엮인 사이라 더 그런 분위기가 났다. 서울영상고를 졸업하자마자 합류한 우디는 초반의 웃소에 대해 “사무실에 모여 일을 하는 건지, 먹고 노는 건지 불명확한 우리의 모습은 현실 시트콤 같았다”고 기억한다. 형의 요청으로 도와주러 오는 대학생이었던 태훈은 당시를 “맡은 업무가 있다기보다 어떻게든 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떠올린다.
그럼에도 청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치킨 한 마리를 모두가 나눠 먹을지라도 콘텐츠를 묵묵히 내놓자 결국 통했다. 웃소의 무기는 일상 속 무해한 웃음이다. ‘유형별 공감’을 비롯해 ‘피하기’ ‘하찮은 대회’ ‘합숙’ 시리즈, 장편 ‘환생학교 요괴반’ 등은 참신하되 선을 넘지 않는다. 덕분에 웃소 멤버들은 인천시교육청 홍보대사를 여러 해 동안 맡기도 했다. 탄탄한 인기를 바탕으로 2019년 법인을 설립한 웃소 직원은 현재 멤버들을 포함해 총 14명으로 불어났다. 유튜브 채널 외에도 숏폼 콘텐츠 제작, 캐릭터 사업, 출판 등 다양한 영역으로 뻗어가는 중이다. 이번 10주년 기념 첫 에세이 ‘10년째 합숙 중’도 모든 과정을 웃소의 힘으로 해냈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70만 원의 작은 사무실,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10주년이다. 경기도 부천의 웃소 스튜디오에서 웃소 멤버들을 만났다. 단체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어색한 웃음을 짓던 멤버들은 이내 웃음 경쟁을 벌였다. 은근히 진행하는 우디, 지목받은 질문만 대답하는 해리, 너무 진지해지면 웃기고 싶은 고탱, 웃기다가도 적재적소 필요한 멘트를 해주는 디투, 떨다가도 시키면 잘하는 성희, 초롱초롱한 눈으로 집중한 태훈, 말만 꺼내면 관심이 집중되는 막내 소정 등 ‘인터뷰할 때 유형’ 편을 시청하는 느낌이었다.
‘한양즈’에서 막내 소정까지 웃음으로 뭉친 10년
에세이를 쓰면서 각자 기억을 맞춰보는 기회가 됐을 것 같아요.고탱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웃소 5주년쯤 됐을 때 생방송에서 “나중에 10년째가 되면 에세이를 쓰자. 그 정도 되면 우리가 쓸 얘기가 많지 않을까?”라는 얘기를 나눴어요. 5년이 금세 지나가더라고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쓰게 됐죠. ‘그때 이 친구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 알게 된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아마 써놓고 뺀 글들로도 책 한 권은 더 나올걸요(웃음).
고탱 님은 대기업 온라인 콘텐츠 PD를 그만두고 일종의 스타트업에 뛰어들 때 부모님께서 반대하지 않으셨나요.
고탱 크게 반대하셨죠. 하하. 인턴십을 마치고 최종 합격했는데 그만두겠다고 선언했거든요. 얘기를 꺼냈을 때 두 분의 표정이 잊히지 않아요. 제가 살면서 세 번 삐딱선을 탔어요. 고등학교 때 자퇴하고 혼자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그건 좀 아니지 않겠니?” 해서 다시 다니고, 대학교 때 갑자기 미국에 건너가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가 그때도 부모님의 회유로 돌아왔는데요. 이번만큼은 진짜 해보고 싶고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부모님은 “꼭 그래야만 하겠니?”라고 물으셨지만, 결국 웃소를 시작했죠.
2014년 디투의 대학원 졸업 기념 여행에서 함께 일해보자고 해리와 디투에게 제안했는데, 두 사람은 왜 제안에 응했나요.
디투 저희도 고탱의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당황했죠. ‘안 그래도 청년 실업률이 높은 이 시점에 그렇게 고생해서 취직했는데 그만두고 같이 일하자고? 신뢰가 쌓이니까 드디어 나한테 사기를 치는구나’ 생각했어요(웃음). 하지만 당시 저도 취업 준비생이었기 때문에 시간은 많으니까 취업 준비하면서 한번 해보자고 했죠. 당시 저한테는 친구들이랑 추억 쌓는 게 큰 의지가 됐거든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해리 사실 고탱이 은근슬쩍 계속 얘기했거든요. 같이하자고요. 매번 농담으로 넘기다가 어느 날 갑자기 PD도 그만두고 제안하니까 “왜 그래?”라는 말부터 나왔죠. 그런데 우리 돈 뜯는 것도 아니고 시간만 투자하면 되니까 재미있게 시작했어요.
구독자 수도 적고 조회수도 잘 안 나올 때 월급은 제대로 나왔나요.
우디 월급이 많진 않아도 있었어요. 그런데 월급이 안 들어오는 적이 있었어요. 닷새, 열흘 정도 기다리다가 한 달쯤 지났을 때 얘기를 쓱 꺼냈었어요. 제가 얘기하니까 다들 멋쩍게 웃으면서 그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생겼는데, 그때 좀 오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재미있게 일하는 그 상황을 깨고 싶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면 애써 외면하며 버텼던 것 같아요.
고탱 소위 ‘존버’라고 하잖아요. 다들 점점 사회인에 가까운 나이로 가고 있고, 수익은 제자리에서 요동치기만 하니까 ‘앞으로도 지속 가능할까?’ 고민하는 순간이 있었죠.
성희 딱 못 버티기 직전부터 돈이 되기 시작했어요(웃음). 다행히 환상을 깨지 않고 딱 한계치에 다다랐을 때 유형 시리즈가 터지면서 웃소가 조금씩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죠. 그게 채널 개설 후 한 4년 정도 됐을 때예요.
우디 태훈은 우리가 오르락내리락할 때 어땠나요?
태훈 급여는커녕 제가 먹은 밥값 계산도 엄마 카드로 했어요. 그때 저는 멤버들과 같이 있어도 이게 직업이라고 여기지 않고 놀러 왔다고 생각했죠.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게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서서히 바뀌었어요.
소정은 웃소가 잘되고 나서 2020년 마지막으로 합류해 나름의 부담이 있었겠어요.
소정 웃소 들어오기 전 PD로 활동하고 있었고 웃소를 연예인처럼 봤어요. 우연한 계기로 같이 촬영하면서 함께하게 됐는데, 당시 웃소가 왜 나를 원하는지 잘 몰랐어요. 그래서 초반에는 ‘내가 맞춰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보니 영상에서도 그렇게 보였나 봐요. 제가 웃소와 잘 안 어울린다는 댓글들이 있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런 댓글이 보이면 멤버들이 “서로 맞춰가는 과정도 잘 지켜봐 달라”고 대댓글을 썼더라고요. 그때 멤버들의 마음을 좀 알게 됐어요. 그러다 ‘우리가 이제 좀 생각이 동기화됐구나’ 느끼면서 아주 편해졌어요.

유쾌한 막내 소정(왼쪽)과 훈남 태훈, ‘작은아버지’ 해리, 래퍼를 꿈꿨던 남건이 아빠 디투.
“학연·지연·혈연이니까 10년 한 거예요”
촬영과 편집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성희 촬영은 격주로 해요. 촬영 주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작업하고, 그다음 주는 하루 정도 기획 회의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개인 채널 활동을 하거나 볼일을 보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고탱과 우디는 메인프로듀서라 기획 주에도 출근해 다른 직원들과 일해요.
고탱 한 명씩 다 본인이 기획해서 촬영하고 편집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공간과 업무를 좀 분리했어요. 따로 마련된 제작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기획과 편집, 기타 업무들을 진행하고 여기 스튜디오에서는 멤버들과 촬영을 해요.
디투 개인 채널 촬영과 편집은 각자 알아서 하고요. 뭐, 동생을 시켜도 되고(일동 폭소).
멤버들이 아끼는 영상과 아쉬운 영상은 뭔가요.
성희 ‘우리 오늘 하루만 영업합니다’ 시리즈가 있어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집을 영화관이나 공항처럼 꾸며서 놀았던 콘텐츠예요. 준비할 때는 진짜 힘들었는데 경험하는 신을 찍을 때는 진짜 어린아이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즐겼어요. 아쉬운 건 기억에서 빨리 지워서 없어요.
고탱 저는 아쉬운 영상이 있어요. ‘배신 퀴즈 쇼’를 제가 야심 차게 준비했는데, 상금까지 걸고 진행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저조해서 아쉬운 콘텐츠예요. 해리는 뭐 있어?
해리 제 애착 콘텐츠는 ‘3자 대결’이에요. 촬영할 때 편하게 놀듯이 찍을 수 있었어요. 아쉬운 콘텐츠는 딱히 없어요.
우디 저는 ‘쿡소’에 애착이 많이 가요. 처음 쿡소를 찍을 때는 우리가 다 요리를 많이 해보지 않은 상태였거든요. 지금은 다들 요리를 정말 잘해요. 서로 만들어 준 음식을 먹을 때 다 맛있다고 칭찬할 정도로 잘하게 된 게 쿡소 덕분이죠.
소정 저는 아끼는 영상은 너무 많고요. 아쉬운 영상은 프랑스에 가서 찍은 ‘루팡을 잡아라’예요. 그 영상이 진짜 재밌거든요.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보는데, 조회수가 잘 나오지 않아서 프랑스에서 찍은 콘텐츠들이 좀 마음 아픈 자식들이에요.
어떤 영상을 봐도 클린해요. 무해한 웃음을 위한 원칙이 있나요.
우디 원칙은 없는데 댓글 반응을 살피거나 각자가 찍을 때 무언가 신경이 쓰였다든지 편집본을 보다가 누가 “이런 내용이 나와도 괜찮은 거야?” 물으면 그때그때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성희 예를 들면 방향성이 이런 거예요. 구독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은데 그때마다 “가족이 같이 밥 먹으면서 본다”는 말을 많이 해주세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 큰 보람을 느껴요. 그래서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결로 가는 게 우리한테는 맞겠단 생각을 합니다. 아직도 배우는 과정이에요.
고탱 저도 비슷해요. ‘이 콘텐츠를 보고 우리 할머니도 웃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우리 할머니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 또 할머니가 보시고 눈살을 찌푸리지 않게끔 머릿속에 추상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놨어요. 그렇게 해도 사람들한테 피드백을 받는 부분이 있으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네’ 반성하면서 가이드라인을 쌓아가는 거죠.
관계성에서 오는 웃음도 많죠. 학연·지연·혈연 집단의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태훈 서로 아는 사이다 보니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팀워크를 맞추기가 정말 좋아요. 특히 이 사람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어서 유형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돼요. 단점은 사적인 우리들의 관계가 일로 넘어오지 않아야 하는 때도 분명히 있는데 그러지 못할 상황에서는 어려움을 느끼기도 해요. 특히 저는 고탱과 형제이다 보니까 상하 관계가 분명히 있어요. 형, 누나, 언니, 오빠에게는 동생이 이길 수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동등한 관계로 교정해나가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어요.
해리 그래도 학연·지연·혈연으로 묶여 있으니까 10년간 해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실 회사였으면 몇 번 헤어졌을 것 같거든요(웃음). 자주 싸워요. 싸우고 감정 상하는 일이 생겨도 어쨌든 여러 관계로 묶여 있으니 화해할 수밖에 없어요. 단점은 표정을 못 숨긴다는 거. 서로 너무 잘 알다 보니까 본인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데 이야기하게 되는 부분들이 생겨요. 집안일이라든지 투자 실패도 표정을 보면 다 알고요.
고탱 하하. 우리의 장점은 우리끼리 있을 때가 좋다는 건데, 다른 사람들과 함께했을 때 우리 관계가 단점이 되는 순간이 있어요. 우리끼리 워낙 가깝고 속속들이 알고 있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 틈이 없는 거죠. 이런 걸 조심해야 해요.
특히 성희는 팀원이자 아내로서 멤버들의 불만을 고탱에게 전하는 동시에 힘도 실어줘야 하잖아요. 어떻게 균형을 맞추나요.
성희 그게 진짜 어렵더라고요. 초반에는 제가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고탱한테 충고를 하기도 하고, 반대로 다른 멤버들한테 얘기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결과가 오히려 좋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웃소에서는 그냥 다른 멤버들과 똑같이 성희로 있어요. 그게 저도 편하고요. 물론 고탱에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은 많아 보여요(웃음). 그럴 땐 집에 가서 대화로 풀어주고, 또 여기 와서는 덮고 그렇게 해나가고 있어요.

고탱·성희 부부가 서고 우디가 앉아 포즈를 취하자 멤버들이 가족사진 같다며 웃었다.
크리에이터란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직업
멤버들이 나이 들어가면서 웃소에서 다루는 얘기가 달라질 텐데요. 멤버와 채널의 나이 듦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나요.고탱 우리가 제일 많이 이야기 나누는 부분이에요. 워낙 유튜브 생태계가 빠르게 변하고, 우리는 새로운 걸 하고 싶잖아요. 그런 고민 안에서 어제랑 다르게, 지난달과 다르게 조금씩 해오다 보니 지금까지 온 거고 그런 변화들이 나이 듦으로 보일 수도 있겠죠. 자연스러운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새로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텐데 잘 겪어나가면 좋겠어요.
디투 사실 우리 팀이 콘텐츠 크리에이터치곤 좀 나이가 많은 편이에요.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하고 그게 쌓여서 세월이 될 뿐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이 채널을 만들 때 어린 친구들을 겨냥하지는 않았거든요.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어린 친구들이 우리를 많이 좋아해줬는데, 10년이 흘러 그때 초등학생이던 친구들이 지금은 다 성인이 됐어요. 사인회 때 “초등학교 때부터 봤는데 지금 군대 갔다 왔다”는 경우도 있었어요. 시간이 흘러도 우리가 여전히 크리에이터인 것처럼 이 친구들도 계속 우리를 봐주고, 또 새로운 친구들이 우리 콘텐츠를 보러 와주는 식으로 계속 흘러간다면 만족스럽지 않을까요.
하긴 웃소 안에서도 20대부터 40대까지 시간의 차이가 있잖아요.
소정 아무래도 웃소가 30대 중반 정도의 화젯거리를 다루다 보니 제가 또래 친구들과 만나도 결혼이나 아이 같은 얘기를 저도 모르게 하는 그런 건 있어요. 친구들이 “한 세대를 앞서 사는구나”라고 얘기해주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나이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아요. 해리랑 저랑 11세 나이 차가 나는데 만약 해리를 너무 깍듯하게 대하면 오히려 어색해지잖아요. 그냥 친구 대하듯이 하는 게 좋은 방향 같아요.
우디 저는 10년 전, 20대의 저와 30대 형들이 같이할 때는 소정처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30대의 저와 40대 형들이라면 어느 정도 서로 예의를 갖추는 게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변화가 생기고 있어요.
고탱 형들이 이제 너무 나이 들었구나?
소정 같이 나이 들어가는 거죠(일동 폭소).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소정 일단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요. 하하.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헛된 꿈이 되지 않게 평소 일상에서 재미있을 만한 장면들을 많이 남겨놨으면 좋겠어요. 제 조카들도 가끔 챌린지 영상을 찍어서 보내주는데, 그 순간이 정말 귀중해 보이는 거예요. 또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부분들을 캐치하는 능력도 조금씩 키워나가면 도움이 될 거예요.
고탱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을 꿈꾼다는 자체가 특히 어린 친구들한테는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이 되어준다고 생각해요. 재미있게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배워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10년 동안 웃소를 하면서 ‘크리에이터는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란 점을 느꼈어요.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학생이 있다면 지금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나아가 사회를 알아가는 배움의 과정으로 활용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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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홍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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