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나의 바람과 기도가 무색하게 반려동물의 호흡과 심장박동은 점점 느려지고, 마지막 숨을 내뱉으며 우리는 이별을 맞이했다. 언젠간 내 곁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버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가끔 TV에서 보았듯이 우리가 서로 이별할 준비가 됐을 때, 고통 없이 편안히 잠들듯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나의 반려견 ‘다롱이’는 고통스러워하다 힘겨운 사투를 끝내고 내 품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필자와 가족들은 멍한 상태였다. 눈물은 나지만 딱히 무슨 감정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웠고, 머릿속은 복잡했다. 집 안의 물건들은 모두 그대로인데 다롱이만 없었다. 때가 되면 각자 출근을 하고 학교에 갔으며 할 일을 하고 돌아와서는 식사를 하고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일상 속에 항상 존재하던 다롱이가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던 모습도, 자기도 달라며 식탁 옆에서 짖던 소리도, 잠을 자고 있을 때면 어느새 찾아와 내 옆에서 자고 있던 온기도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2개월은 괴로워하며 일상을 보냈고 또 몇 개월은 조금 나아진 상태로, 다음 몇 개월은 그보다 좀 더 나아진 상태로 살았다.
딱히 언제부터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기는 없었다. 하지만 펫로스 증후군에서 말하는 이론적인 애도 기간은 2개월이라고 한다. 2개월을 넘겨 슬퍼하면 과한 것일까. 하지만 수년을 함께해온 사랑스럽기 그지없던 털 뭉치 막내를 슬퍼하기에 2개월은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필자는 사별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사후 세계나 망자와의 재회에 집착하는 증상으로 특징 지어지는 ‘지속성 복합 애도장애(persistent complex bereavement disorder)’의 진단 기준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런데 사별에 대한 정신질환인 지속성 복합 애도 장애는 1년 이상 지속될 때 진단이 내려진다. 물론 이것은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사람’을 사별하는 데 대한 진단이지만, 반려동물도 때로는 그와 같은 혹은 그 이상의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최소한 1년까지 반려동물의 죽음을 슬퍼해도 괜찮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 사별로 인한 슬픔의 기간이 아닌 ‘정도’에 대해서도 우리는 살펴보아야 한다. 기간은 1년이 채 되지 않았더라도 감정적 반응이 상당해 우울증이나 PTSD와 같은 정신적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심리검사를 실시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2006년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멜리사 헌트 박사와 야니즈 패딜라 박사는 ‘반려동물 사별 설문지 검사(PBQ · Pet Bereavement Questionnaire)(표1)’를 개발했다. 16개 문항에 대해 체크한 점수들을 합산한 뒤 16점을 뺀 점수가 자신의 PBQ 점수다. 멜리사 헌트와 야니즈 패딜라의 2006년 연구를 기준으로 평균 점수는 28점이다. 평균보다 높다고 해서 무조건 반려동물 사별과 관련된 심리적 문제나 펫로스 증후군이 심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상위 30%를 나누는 기준인 36.6점, 대략 37점이 더 명확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또한 사별 초기에는 당연히 높은 점수가 나올 수밖에 없으므로 최소한 3일 정도 이후에 점수를 확인해야 한다. 점수가 변화되는 양상도 중요하다. 만약 시간이 흘러도 점수가 감소하지 않는다면 우울증이나 PTSD, 불안장애와 같은 다른 정신적 문제로의 발전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이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기를 반드시 권한다.
예를 들면 반려동물과 관련된 물건을 보거나 TV에서 다른 반려동물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내 반려견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들은 죄책감과 무기력감, 수면 문제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에 대해 ‘나는 산책을 오래 시켜주지 못했지만 최소한 하루에 한 번은 나와서 산책과 야외 배변을 시켜줬다’ ‘여행을 갈 때 한 번도 빼놓은 적이 없다’는 생각을 통해 반박해볼 수 있다. 혹은 ‘나는 내 반려동물을 완벽하게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했지만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했던 보호자다’라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밀려드는 죄책감에 대해 스스로 반박해보는 것은, 우리가 사별로 인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와주는 행동일 수 있다.
때로는 수용적인 생각들을 통해 이런 반박에 접근해볼 수도 있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어떤 반박을 하기도 어렵고, 생각을 수정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그립지 않게 되는 것’은 불가능해서다. 오히려 ‘이 정도도 그리워하지 않고 살 수는 없어’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나의 반려동물인데 힘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욕심이겠지’ ‘그리움이라는 것은 나쁜 감정이 아니니 나는 이것을 가지고도 잘 살아갈 거야’라고 생각해보는 수용 중심적인 접근들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애도를 하면서 힘든 감정들이 한바탕 지나가고 나면 이전에 느꼈던 편안함이나 행복감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이 다시 찾아온다. 하지만 자책할 필요는 없다. 애도라는 것은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삶을 되찾고, 목표를 다시 설정하며, 힘을 내서 살아가는 과정 또한 애도다. 이번 2024 파리 올림픽 마라톤수영에서 우승하여 금메달을 획득한 네덜란드 샤론 판 루벤달 선수는 우리가 반려동물 사별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반려견이 죽고, 내 세상은 멈춰버렸고, 저는 수영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몇 주 동안 몸에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 구토를 하고 3kg이 빠졌어요. 그때 아버지가 ‘반려견을 위해 꼭 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반려견을 위해 올림픽에서 한 번 더 수영하고 싶었어요.”
-2024 파리 올림픽 마라톤 수영 금메달리스트 샤론 판 루벤달
슬픔을 이겨내고 살아간다고 해서 슬픔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그때의 괴로움과 슬픔을 불러낼 수 있지만 단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러지 않는 것이다. 충분히 슬퍼하고 그리워했다면 그다음에는 그들이 우리의 삶에 찾아와주었음에 감사하자. 또 그들을 기억하며 다시 용기를 내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무지개다리 너머의 존재들이 우리에게 가장 바라고 있는 모습일 테니까.
#펫로스 #펫로스증후군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필자와 가족들은 멍한 상태였다. 눈물은 나지만 딱히 무슨 감정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웠고, 머릿속은 복잡했다. 집 안의 물건들은 모두 그대로인데 다롱이만 없었다. 때가 되면 각자 출근을 하고 학교에 갔으며 할 일을 하고 돌아와서는 식사를 하고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일상 속에 항상 존재하던 다롱이가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던 모습도, 자기도 달라며 식탁 옆에서 짖던 소리도, 잠을 자고 있을 때면 어느새 찾아와 내 옆에서 자고 있던 온기도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2개월은 괴로워하며 일상을 보냈고 또 몇 개월은 조금 나아진 상태로, 다음 몇 개월은 그보다 좀 더 나아진 상태로 살았다.
딱히 언제부터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기는 없었다. 하지만 펫로스 증후군에서 말하는 이론적인 애도 기간은 2개월이라고 한다. 2개월을 넘겨 슬퍼하면 과한 것일까. 하지만 수년을 함께해온 사랑스럽기 그지없던 털 뭉치 막내를 슬퍼하기에 2개월은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필자는 사별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사후 세계나 망자와의 재회에 집착하는 증상으로 특징 지어지는 ‘지속성 복합 애도장애(persistent complex bereavement disorder)’의 진단 기준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슬픔은 정상적인 것일까?
정신질환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증상들이 일정 기간 존재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 예를 들면 우울증은 2주 이상 대부분 우울감이나 수면 문제, 식욕 저하, 자살 사고와 같은 증상들이 지속돼야 한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재경험, 회피, 과각성과 같은 증상이 1개월 이상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사별에 대한 정신질환인 지속성 복합 애도 장애는 1년 이상 지속될 때 진단이 내려진다. 물론 이것은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사람’을 사별하는 데 대한 진단이지만, 반려동물도 때로는 그와 같은 혹은 그 이상의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최소한 1년까지 반려동물의 죽음을 슬퍼해도 괜찮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 사별로 인한 슬픔의 기간이 아닌 ‘정도’에 대해서도 우리는 살펴보아야 한다. 기간은 1년이 채 되지 않았더라도 감정적 반응이 상당해 우울증이나 PTSD와 같은 정신적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심리검사를 실시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2006년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멜리사 헌트 박사와 야니즈 패딜라 박사는 ‘반려동물 사별 설문지 검사(PBQ · Pet Bereavement Questionnaire)(표1)’를 개발했다. 16개 문항에 대해 체크한 점수들을 합산한 뒤 16점을 뺀 점수가 자신의 PBQ 점수다. 멜리사 헌트와 야니즈 패딜라의 2006년 연구를 기준으로 평균 점수는 28점이다. 평균보다 높다고 해서 무조건 반려동물 사별과 관련된 심리적 문제나 펫로스 증후군이 심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상위 30%를 나누는 기준인 36.6점, 대략 37점이 더 명확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또한 사별 초기에는 당연히 높은 점수가 나올 수밖에 없으므로 최소한 3일 정도 이후에 점수를 확인해야 한다. 점수가 변화되는 양상도 중요하다. 만약 시간이 흘러도 점수가 감소하지 않는다면 우울증이나 PTSD, 불안장애와 같은 다른 정신적 문제로의 발전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이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기를 반드시 권한다.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필자가 펫로스 증후군으로 힘들어하는 내담자들을 만나면 꼭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애도는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인데, 잘 흘러가야 할 시냇물이 막히듯이 특정한 문제로 인해 정체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대개 다수의 내담자가 지나치게 왜곡된 죄책감으로 정상적인 애도를 해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반려동물과 관련된 물건을 보거나 TV에서 다른 반려동물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내 반려견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들은 죄책감과 무기력감, 수면 문제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에 대해 ‘나는 산책을 오래 시켜주지 못했지만 최소한 하루에 한 번은 나와서 산책과 야외 배변을 시켜줬다’ ‘여행을 갈 때 한 번도 빼놓은 적이 없다’는 생각을 통해 반박해볼 수 있다. 혹은 ‘나는 내 반려동물을 완벽하게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했지만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했던 보호자다’라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밀려드는 죄책감에 대해 스스로 반박해보는 것은, 우리가 사별로 인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와주는 행동일 수 있다.
때로는 수용적인 생각들을 통해 이런 반박에 접근해볼 수도 있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어떤 반박을 하기도 어렵고, 생각을 수정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그립지 않게 되는 것’은 불가능해서다. 오히려 ‘이 정도도 그리워하지 않고 살 수는 없어’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나의 반려동물인데 힘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욕심이겠지’ ‘그리움이라는 것은 나쁜 감정이 아니니 나는 이것을 가지고도 잘 살아갈 거야’라고 생각해보는 수용 중심적인 접근들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샤론 판 루벤달 선수가 손목에 새긴 반려견 발바닥 모양 타투를 가리키고 있다.
“반려견이 죽고, 내 세상은 멈춰버렸고, 저는 수영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몇 주 동안 몸에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 구토를 하고 3kg이 빠졌어요. 그때 아버지가 ‘반려견을 위해 꼭 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반려견을 위해 올림픽에서 한 번 더 수영하고 싶었어요.”
-2024 파리 올림픽 마라톤 수영 금메달리스트 샤론 판 루벤달
슬픔을 이겨내고 살아간다고 해서 슬픔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그때의 괴로움과 슬픔을 불러낼 수 있지만 단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러지 않는 것이다. 충분히 슬퍼하고 그리워했다면 그다음에는 그들이 우리의 삶에 찾아와주었음에 감사하자. 또 그들을 기억하며 다시 용기를 내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무지개다리 너머의 존재들이 우리에게 가장 바라고 있는 모습일 테니까.
<표1> 반려동물 사별 설문지 검사
*참고문헌: Melissa G. Hunt & Yaniz C. P. Dalmau (2006) Development of the Pet Bereavement Questionnaire Anthrozoos A Multidisciplinary Journal of The Interactions of People & Animals, 19(4), 308-324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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