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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ADHD, 이렇게 극복했어요

중증 ADHD 앓는 아들 직장인으로 키워낸 주부 이경숙

글·강지남 기자 / 사진ㆍ조영철 기자

2006. 01. 11

수업시간에 자기 맘대로 돌아다니고 딴 생각을 하느라 혼자서는 외출 준비도 못하는 중증 ADHD 환자였던 아들을 어엿한 직장인으로 키워낸 주부 이경숙씨. “부모가 건강해야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는 그가 들려준 ADHD 극복기.

중증 ADHD 앓는 아들 직장인으로 키워낸 주부 이경숙

이경숙씨(48)의 집안 곳곳에는 시선을 잡아끄는 아름다운 그림들이 여러 점 걸려 있다. 모두 이경숙씨가 직접 만든 한지그림공예 작품들. 밑그림을 그리고 여러 색깔의 한지들을 손으로 잘게 찢어 붙여 만든 것들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한지그림공예를 시작한 그는 현재 한지그림공예 강사로 주부들과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일본 대학의 초청을 받아 일본에서 여러 번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는 평범한 가정주부에 불과했던 자신을 한지그림공예가로 만들어준 사람이 다름 아닌 ADHD 환자인 아들 경태씨(24)라고 소개했다. 경태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에서 중증 ADHD 진단을 받았다.
“하루 종일 아들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무척 힘들고 지쳤어요. 남편과의 다툼도 잦았고, 쌓인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마구 화내는 걸로 풀기도 했어요. 차라리 아들을 안고 뛰어내리자고, 부산 앞바다에 가서 같이 빠져 죽자고 맘먹은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나약해지면 아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마음도 다스리기 위해 한지그림공예를 시작했어요.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다섯 번째 전시회를 열었는데, 모두 아들 덕분이에요(웃음).”
경태씨의 ADHD 증상은 매우 심각했다. 아침마다 아들을 등교시키기 위해서는 일일이 쫓아다니며 ‘일어나라, 화장실 들어가라, 세수해라, 이 닦아라, 밥 먹어라, 가방 챙겨라, 신발 신어라’ 등 수없이 잔소리 해야 했다. 경태씨는 수업시간에 혼자 교실 안팎을 돌아다니고, 알림장을 써오지 못하고, 운동장 조례시간에는 다른 아이들은 모두 줄 서 있는데 혼자서 반 푯말 주위를 뺑뺑 돌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참다못한 한 교사가 경태씨를 의자에 앉혀놓고 한 시간 동안 전깃줄로 묶어놨던 일은 지금도 이경숙씨를 눈물짓게 한다.
“경태는 네 살 때 두 살 터울인 누나가 엄마에게 한글을 배우자 어깨너머로 혼자 한글을 깨쳤어요. 그래서 천자문도 가르쳤더니 금세 외우더라고요. 암기력은 좋지만 수리력은 참 약해요. 지금도 계산에 약해요. 도덕 과목도 잘하지 못하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처하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을 이해 못하는 듯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병원에서 ADHD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와 행동치료 등을 시작하면서 이씨는 어떻게든 아들의 증상을 낫게 해 성인이 되면 혼자 힘으로 살 수 있게 키우겠다고 굳게 맘먹었다. 그는 아들의 병을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아동행동수정’이라는 수업을 듣기도 했다. 학생들은 모두 심리학 전공자들이었고, 일반 가정주부는 자신뿐이었다고.
그는 이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아이 양육법에 적용시켰다. 먼저 경태씨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하게 만들기 위해 ‘스티커 제도’를 도입했다. 전자오락기 등 아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선물을 구입해 장롱 속에 넣어놓고 정해진 숫자 이상의 스티커를 얻으면 그 선물을 꺼내준 것.
“등교 전에 해야 하는 일들을 종이에 적었어요. 일어나기→세수하기→밥 먹기→가방 챙기기 하는 식으로 해야 하는 일들을 순서대로 화살표로 표시했죠. 그리고 스스로 제대로 행동했는지 체크하도록 했어요. 그리고 잠자기 전에 함께 점수를 매기고 그에 상응하는 스티커를 줬어요. 제대로 안 하면 줬던 스티커를 빼앗았고요. 아이는 게임하듯 생활습관을 몸에 익히고, 저는 잔소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었죠.”
그러나 경태씨가 중학교에 진학한 후 마음 찢어지게 아픈 일들이 생겨났다. 다른 아이들보다 행동이나 지능이 약간 모자란 탓에 아이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하고 오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 이경숙씨는 담임교사를 찾아가 따지는 대신 교사와 아이들을 경태씨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해 아이를 데리고 교탁 앞에 섰어요. 아이 옷을 벗겨 멍든 상처들을 보여주면서 ‘경태는 병을 앓고 있어 너희들과는 좀 다르다. 너희들과 똑같이 행동하라고 경태에게 요구하는 것은 소아마비 환자에게 똑바로 걸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면서 경태를 이해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어요. 자주 학교에 찾아가고,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한지그림공예를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경태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애썼습니다.”

중증 ADHD 앓는 아들 직장인으로 키워낸 주부 이경숙

이경숙씨의 한지그림공예작품.

중증 ADHD 앓는 아들 직장인으로 키워낸 주부 이경숙

경태씨의 초등학생 시절 사진.


이경숙씨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경태씨는 일반 고등학교까지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전문대학에도 합격했다. 하지만 이씨 부부는 경태씨를 대학에 보내는 대신 노인복지관에서 3년 동안 봉사활동을 하도록 했다.
“ADHD 증상이 많이 호전됐지만 그래도 혼자 힘으로 대학에 다니고 학점을 관리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남편과 상의해서 경태에게 장기적인 사회 적응훈련을 시키기로 했어요. 우선은 자신이 늘 도움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용하고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하고 싶어 노인복지관에 보내기로 했어요.”
섣불리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사람들에게 놀림이나 무시를 당해 상처 입을 수 있지만, 노인복지관에는 사회복지사들이 있어 경태씨를 따뜻하게 대해줄 수 있다는 점도 노인복지관을 선택한 이유였다. 중·고교 시절 엄마와 함께 등교했던 경태씨는 혼자서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노인복지관으로 출근해 설거지, 청소, 노인 목욕시키기, 동사무소 심부름 등 갖가지 일들을 도왔다.
노인복지관에 다닌 지 2년째 됐을 때 이경숙씨는 저녁시간을 이용해 경태씨를 직업전문학교 요리학교에 보냈다. 훗날 자신이 세상을 떠나도 혼자서 밥해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는데, 경태씨는 1년 동안 한식, 중식, 양식 등 다양한 요리를 배웠다. 요리학교를 다니는 동안 가족들은 경태씨가 학교에서 해온 음식으로 저녁을 때우며 맛을 품평해줌으로써 경태씨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컴퓨터 수리를 배우도록 했다. 경태씨가 늘 즐겨 사용하는 컴퓨터를 스스로 고치고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한 달 전부터 경태씨는 지하철 택배 일을 하고 있다. 이는 그의 첫 번째 직업으로 혼자 택배업체를 찾아가 면접을 보고 채용됐다. 이씨는 “지하철 택배는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훈련을 할 수 있고, 물건 전달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라서 첫 번째 직업으로 적당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경태가 열흘치 월급으로 15만1천원을 받아왔을 때 기뻐 어쩔 줄 몰랐어요. 제 도움 없이 자기 힘으로 처음 벌어온 돈이니까요. 액수는 적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큰 보물인 것 같아 은행에 넣어놓기도 불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스크랩해두었어요(웃음).”
그는 얼마 전 아들을 키우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맛보았다고 한다.
“늦은 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데, 경태가 제 옆으로 오더니 ‘엄마 무슨 생각해? 하긴 엄마도 힘들겠지…’ 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엄마, 조금만 참아요. 내가 돈 벌면 엄마 다 줄게. 엄마 통장에 다 넣어줄게’ 하더라고요. 그 순간 눈물이 핑 돌면서 행복했어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힘이 솟더라고요.”

ADHA 자녀 둔 부모는 아이 걱정 잊고 몰두할 수 있는 취미 가져야
다른 ADHD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충고해주고 싶다는 그는 정부에도 한 가지 바람이 있다고 말한다. 정상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장애인 판정을 받을 수 없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에 놓인 ADHD 아이들을 위한 사회훈련 프로그램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의 집 옥상에는 작은 식물원이 있다. 식물을 직접 키우는 걸 좋아하는 남편과 경태씨를 위해 2년 전 만든 공간이다. 남편과 아들은 이곳에 상추, 배추, 아욱, 무 등 채소와 꽃들을 심고 정성 들여 가꾸고 있다. 식물원 바로 옆은 이경숙씨의 한지그림공예 작업공간이다. 이씨는 ADHD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아이 걱정을 완전히 잊고 몰두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개발하라”고 충고한다.
“ADHD 아이들은 뒤치다꺼리해줄 게 많기 때문에 부모가 지치기 쉬워요. 스트레스가 쌓이면 가족들에게 화를 내게 돼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요. 부모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해질 수 있는 법이에요. 아이 챙기는 만큼, 스스로를 챙겨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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