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식당에서 만난 재민이(가명·9)는 한시도 가만있질 못했다. 의자에서 내려와 식당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를 서너 번, 그리고 식사 주문을 하고 식사가 나오는 10분 사이에 다리를 앞뒤로 휙휙 저으며 단무지를 세 접시나 집어먹었다. 더 이상 먹을 단무지가 없자 이번에는 플라스틱 젓가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는데, 결국 젓가락을 부러뜨리고 말았다. 재민이는 1년 전 중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진단을 받았다. 재민이 엄마 유성애씨(가명·38)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아이가 그저 활달한 편이려니 했는데, 학교에 입학한 후 여러 문제가 나타나 병원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입학하고 몇 달이 지난 후 담임선생님한테 재민이를 다루기가 너무 힘들다고 연락이 왔어요. 수업시간에 막 소리를 지르고 갑자기 밖으로 뛰어나간다고요. 아이들도 자주 때려서 친구 사이도 안 좋다고 하더라고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까닭인지 등교를 시키면 몰래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 밖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일도 잦아졌어요. 결국 휴학하고 치료를 받기 시작해서 지금 재민이는 동갑내기들보다 한 학년 아래예요.”
다섯 살 때 ADHD 진단을 받고 치료 중에 있는 윤호(가명·8)는 과잉행동은 나타내지 않고 주의력 결핍만 나타내는 경우. 윤호는 수업시간이나 숙제를 할 때 집중하지 못할 뿐 아니라 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지도 못한다. 엄마 김은미씨(가명·36)는 “윤호가 또래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게 가장 걱정”이라고 말한다.
ADHD가 발병할 확률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3배 높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란 지속적인 주의력 산만, 과다한 활동, 충동성을 특징으로 한 소아정신과 장애다. 교실에서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계속 움직이고, 수업 중이라도 교실 안팎을 제 맘대로 드나드는 행동은 ADHD 아동의 전형적인 특성. 책상에 앉아서도 숙제하기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세수하고 이 닦고 가방 챙기는 일을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는 ADHD 아동도 많다.
소아정신과 전문의들은 ADHD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말한다. 서울삼성의료원 소아정신과 외래환자들 중 3분의 1 정도가 ADHD 아동이라고. 초등학생의 ADHD 유병률은 약 3∼4%로 알려졌다. 한 학급에 1∼2명의 ADHD 아동이 있는 셈. 남자아이들의 경우 여자아이들보다 유병률이 3배가량 높다.
그렇다면 ADHD는 왜 생길까? 아직까지 ADHD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적·신경생물학적 취약성 등 선천적 요인들이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가 처한 환경이 ADHD의 발병이나 증상 악화에 영향을 미치며, 과잉행동 증상의 경우 혈중 납 농도, 임신 중 음주로 인한 기형아 출산, 자궁 내에서의 약물 노출, 심각한 두부 손상 등과 관련이 있다. 최근에는 ADHD 아동들은 전두엽 영역의 활동이 정상인보다 좁은 것으로 밝혀졌다.
ADHD 아동들 중 3분의 1은 성인이 되면 그 증상이 자연스럽게 완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소아정신과 전문가들은 치료하지 않고 그대로 둘 경우 그 증상이 심해지거나 우울증, 학습장애, 틱증후군(눈을 깜박이거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행동을 반복하는 증세) 등 다른 증상으로 번질 위험이 있다고 충고한다. 현재 소아정신과에서 ADHD 아동들에게 내리는 가장 흔한 처방은 약물 복용. 향정신성의약품에 속하는 중추신경자극제 메칠페니데이트가 가장 흔하게 쓰이는 약물인데, 뇌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ADHD 아동의 충동성과 과잉행동을 가라앉히고 주의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약물이 마약류인 향정신성의약품에 속하는 까닭에 많은 부모들이 중독 위험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4개월 전부터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에게 이 약물을 복용시키고 있는 주부 김씨는 “처음 복용을 시작했을 때는 소화불량 증세를 보여 약 먹기를 거부하던 아이가 약을 먹으면 공부가 더 잘되는 것 같다고 요즘은 자기가 먼저 약을 찾는다”면서 “이러다 중·고등학생이 된 후에도 습관으로 약을 찾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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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울병원 소아신경정신과의 홍성도 교수는 “아직까지 메칠페니데이트에 중독된 ADHD 아동의 사례가 보고된 것은 없다”며 “의사의 처방하에 복용하면 안전하다”고 말한다. 메칠페니데이트는 몸속에 축적되지 않고 배출되는 약물이기 때문에 중독 위험이 없다는 것. 때문에 아침에 복용한 약물의 약효가 떨어지는 저녁 무렵이 되면 ADHD 아동은 다시 과잉행동이나 충동성, 주의력 결핍 등을 나타낼 수 있다.
메칠페니데이트는 집중력을 향상시켜주는 효과가 있다는 점 때문에 ‘공부 잘하는 약’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홍성도 교수는 “아이의 집중력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ADHD가 아닌데도 약물을 처방해달라며 찾아오는 엄마들이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ADHD가 아닌 아이들이 이 약물을 복용할 경우에는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릴 수도 있다. 홍 교수는 “미국에서는 메칠페니데이트를 과량 복용할 경우 망상(妄想), 환청(幻聽), 환시(幻視) 등 정신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가 보고된 적 있다”고 전했다.
주의력 결핍·과잉행동의 정확한 원인 찾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
약물치료가 ADHD 치료법의 전부는 아니다. 약물은 그저 과잉행동을 보이거나 산만한 아이들을‘약효가 발휘되는 동안만’얌전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때문에 서울대병원 의료사회사업실의 박혜영 가족치료사는 “약물 복용으로 차분해진 아이에게 ‘행동을 잘하고 있다’고 자주 칭찬해줌으로써 아이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면서 부모의 헌신적인 양육을 통해 아이에게 사회생활에 필요한 행동규칙을 익히게 노력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최근 들어 언론보도 등을 통해 ADHD가 많이 홍보되고,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ADHD 치료약물의 효과 또한 널리 알려지면서 ‘혹시 내 아이도 ADHD가 아닐까’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다. 경기도 한 소도시의 초등학교 사회복지사 최씨는 “지난해 7월 전 학년을 대상으로 ADHD 자가 테스트를 가정통신문으로 발송했는데 의외의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기껏해야 한 학년에 4∼5명 정도가 ‘ADHD가 의심된다’는 자가테스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각 반마다 4∼5명의 아이들이 ‘ADHD가 의심된다’고 자가진단을 했다는 것. 그는 “아이가 좀 더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엄마들이 아이의 활달한 성격을 과장해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99년 미국의 행동소아과 의사인 폴 도킨박사는 소아과 의사들이 ADHD라고 진단한 2백45명의 아이들을 다시 진단한 결과 이 중 38%만 ADHD였을 뿐 나머지는 단지 학습장애만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들도 ADHD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아이의 문제를 올바르게 풀어가는 첫걸음이라고 지적한다. 3∼5세 아이들은 대개 매우 활동적인 편이어서 집중력이 부족하고 상당히 충동적이기 마련이다. 때문에 이 나이 또래의 아이들 중에서 ADHD 아동을 골라내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또한 빈혈이 있을 경우 주의력 결핍이 나타나기도 하며 갑상선이 건강하지 않은 아이는 서성거리는 행동을 나타낸다. 우울증이나 불안감이 주의력 결핍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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