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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이지은의 서른 “이제 절반 이상 만족”

문영훈 기자

입력 2022.06.17 17:35:26

앨범만 나왔다 하면 음원 차트 줄 세우기를 하는 ‘아이유’는 자신의 본명으로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이지은에게 불안이라는 게 있을까. 하지만 그는
“내가 과연 열심히 사는 걸까를 계속 의심하는 20대를 보냈다”고 털어놨다.
2018년 5월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 ‘어느 가족’으로 제7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같은 달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호평 속에 종영했다. 연출·각본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고루 찬사를 받은 이 작품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것은 배우 이지은의 연기다. 2011년 드라마 ‘드림하이’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데뷔한 그는 ‘나의 아저씨’에서 사채 빚에 시달리는 ‘지안’ 역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시청자들은 무대 위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 아이유의 내면에 감춰진 이지은을 목격했다.

이지은의 연기를 지켜본 사람 중에는 고레에다 감독도 있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나의 아저씨’를 보고 홀딱 반해” 이지은을 그의 새 영화 ‘브로커’에 ‘소영’ 역할로 캐스팅했다. 이미 송강호·강동원·배두나 등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의 출연이 확정된 뒤다.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연기 전쟁터에서 이지은은 제 몫을 충분히 해냈다. 송강호는 국내 시사회에서 “살벌하게 잘했다”고 이지은의 연기를 평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지은은 “감개무량”이라면서 “시차 적응에 실패했기 때문인지 칸에서도, 서울에서도 매일 꿈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며 웃었다.

프랑스 칸에서 완성된 영화를 처음 접했다고요.

정말 떨렸어요. ‘첫 장면에 나 나오는데?’ ‘저 장면 굉장히 중요한 신인데 내가 어떻게 했더라’ 계속 생각하면서 긴장된 마음으로 봤어요.

막이 내리자 12분간의 기립 박수를 받았습니다. 관객 호응은 어땠나요.

좋았어요. 현장에서 연기하는 사람들은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감이 잘 안 잡히거든요. 생각보다 많이 웃기도 했고 훌쩍훌쩍 소리가 극장에 들릴 만큼 울기도 해서 배우들끼리 “와 많이 웃는다” “와 많이 운다” 하면서 소곤거렸어요(웃음).

지은 씨도 영화와 함께 울고 웃었나요.

저도 그랬어요. 특히 송강호 선배님이 말하는 장면은 거의 다 웃기더라고요. 저게 웃긴 신이었나 싶은 순간에도 웃겼어요.



‘대배우’ 송강호와 연기하는 경험은 어땠나요.

매 순간 놀라웠어요. 촬영 직전까지, 송강호 선배님과 함께 연기해야 하는 신이 가장 떨렸어요.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가장 덜 떨려요. 그게 송강호 선배님의 힘이겠죠. 급기야 상대 배우까지 몰입하게 하는 힘,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이지은의 얼굴

이지은은 송강호에게 경의를 표했지만 영화는 ‘소영’으로 열리고, 닫힌다. ‘브로커’는 소영이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는 교회에 자신의 아들 ‘우성’을 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소영은 한 아이의 어머니이자 자신이 낳은 아이를 버린 범죄자, 그리고 또 다른 범죄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관객이 쉬이 몰입하기 어려운 캐릭터지만 칸영화제에서 첫 상영이 끝난 후 이지은의 연기에 호평이 뒤따랐다.

해외 평론가들의 평가를 직접 번역해보기도 했다고요.

“이지은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고레에다 감독이 이지은의 얼굴을 많이 활용한 것 같다”는 평이 기억에 남아요(웃음). 그걸 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감독님이 제 리액션 컷을 많이 써주신 것 같아요. 믿어주셨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어요.

소영을 연기하기가 까다롭지 않았나요.

정말 고민이 많았죠. 엄마 역할은 처음인 데다 어두운 과거까지 있는 인물이잖아요. 엄마로 그려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수와의 감정선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그와) 또래의 여자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는 한 명의 청춘 같기도 해요. 소영이 가지고 있는 많은 설정 중의 하나로만 보이지 않게끔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 지안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지안의 얼굴이 소영에게 없지는 않아요. 다만 소영은 표현하는 인물인 데 반해 지안은 표현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이 다르죠. 지안은 구태여 세상에 말을 얹기 싫어하는 인물이에요. 많은 생각을 하고 모든 걸 관찰하고 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 사람이죠. 극 중에서 자신을 “3만 살”이라고 말하기도 하잖아요. 지안이 이렇게 윤회를 거친 인물 같다면 소영은 처음 태어난 사람 같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감정을 다 표현하고 참는 구석이 없는 사람이죠.

어느 쪽이 평소의 본인과 더 가깝나요.

어렵네요.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소영이랑 좀 더 가깝지 않나 싶어요. 저는 지안처럼 체념한 듯 모든 걸 받아들이면서 살지 않거든요. 소영처럼 불안해하고 그 불안감을 겉으로 티 내는 사람인 것 같아요.

소위 ‘센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 제안을 받았을 때 걱정하지 않았나요.

감독님의 전작을 많이 봤기에 걱정하지 않았어요. 인물에게 부여된 설정을 한 번도 노골적으로 연출하신 작품을 본 적이 없거든요. 소영을 포함해 모두가 사연이 있는 인물이지만 이를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다른 가치관과의 동행

1995년 영화 ‘환상의 빛’으로 감독 데뷔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일본 사회에서 소외된 한구석을 스크린으로 데려다 놓는 데 능한 인물이다. 1988년 도쿄에서 벌어진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 ‘아무도 모른다’(2004), 할머니의 연금과 물건을 훔쳐 생활하는 가족을 다룬 영화 ‘어느 가족’(2018)이 대표적이다. ‘브로커’ 역시 다양한 화두를 던진다. 미혼모 문제와 아동 유기, 그리고 생명. 극 중에서 수진(배두나)이 자신의 아들을 버린 소영에게 적개심을 드러내자 그는 “낳기 전에 죽이는 게, 낳아서 버리는 것 보다 죄가 가벼워?”라고 항변한다. 이에 대해 이지은은 “자신의 가치관과는 다른 대사”라고 말했다.

“저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산모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장면을 찍기 전 감독님께 질문을 드렸어요. 그게 소영의 개인적인 생각인지, 감독님이 소영의 입을 빌려 말하고자 하는 영화의 주제인지를요. 감독님은 소영 개인의 가치관이라고 말해주셨어요. 이 영화는 각각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 동행하는 과정이라고요. 소영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만, 감독님의 설명을 듣고 의문이 사라졌어요.”

감독에게 손 편지를 받았다고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 편지로 감독님이 배우들에게 각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해줬어요. 저는 소영이 구속당했을 때를 가정해 형사가 취조하고 소영이 답하는 형식의 편지를 받았죠. 그 편지를 통해 대본에 등장하지 않는 소영의 생각을 알게 됐어요. 저도 감독님에게 소영의 선택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어요. 항상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셨죠.

다시 손 편지로 답장을 썼다고 하던데요.

촬영장에서 긴장을 많이 했어요. 현장 분위기는 너무 좋았지만 거기에 너무 젖어들면 해야 할 일을 못 하고 경거망동할까 봐 대본 외적인 이야기는 거의 나누지 않았고요. 막상 촬영이 끝나니 그간 하지 못한 말들이 많아 아쉬웠어요. 언제 또 제가 감독님을 뵐지 모르니 편지를 썼죠. 제게 얼마나 좋은 기회였고, 정말 감독님의 팬이라는 내용이었죠.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에 나오는 대사인 “태어나줘서 감사하다”를 ‘파파고’로 번역해 돌려드렸어요.

고레에다 감독은 현장에서 배우와 함께 촬영하며 이야기를 완성해나가는 연출 스타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반에는 어려웠어요. 감독님이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가볼까요” 하면 ‘준비가 안 됐는데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후반에는 더 좋은 게 얻어걸릴 수도 있는 기회라고 여기고 임하니 여러 버전으로 연기하는 게 좋더라고요. 나중에는 감독님께 “다시 가보고(찍어보고) 싶습니다” 제안하기도 했죠. 아역 배우를 대하는 감독님의 태도도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최대한 부담되거나 힘든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너무 애쓰시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인간적인 감동을 받았어요.

30대 이지은, 그리고 아이유

이지은의 또 다른 이름은 ‘아이유’다. 칸영화제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화제에 올랐다. 송강호가 그의 드레스를 두 차례 밟은 일, 한 인플루언서에게 소위 ‘어깨빵’을 당한 일, 칸영화제 레드카펫 주위로 아이유의 앨범을 든 팬들이 몰려든 일 등이 모두 실시간 기사로 쏟아졌다. 그가 배우와 동시에 K-팝 스타의 정체성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는 증거일 터.

칸에서 아이유의 팬을 만날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브로커’ 팀을 보러 왔다는 그 자체도 믿기지 않았는데 제 CD를 들고 있는 분들까지 많아서 신기했어요. ‘이렇게 먼 곳에 유애나(아이유 팬을 부르는 호칭)가 있다니’ ‘내 앨범은 직구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 편이 많다는 생각에 힘이 됐죠.

2008년 데뷔 이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나요.

휴식이라는 개념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더라고요. 제게는 사실 지금이 쉬는 시간 같아요. 지금 당장 뭘 만들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홍보 일정이 빠듯하긴 하지만 머리를 바쁘게 움직일 일이 없으면 저는 휴식이라고 생각해요.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됐습니다.

저는 16세에 데뷔해서 그때부터 20대를 시작한 것 같았어요. 남들보다 긴 20대를 보내며 서른이 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있었죠. “서른 되면 다 괜찮아져”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물론 그걸 다 믿은 건 아니지만 좀 더 어른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과 지금 서 있는 곳에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이제 서른 살이 된 지 6개월이 지났는데 절반 이상은 그렇게 됐다고 생각해요. 전력으로 애쓰고 있다는 마음도 덜 들고요. 그래서 남은 30대를 더 기대하고 있어요.

치열하게 살았다는 증거 아닐까요.

20대 때 가장 힘들었던 기억 중 하나는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거였어요. 물론 바빠서 몸은 고됐지만 만족이 잘 안 됐어요. 하지만 20대라는 한 챕터를 끝내면서 되돌아보니 곡이든, 낙서든, 작품이든 계속 치열하게 무엇인가를 남겼더라고요. 뭐가 됐든 몸부림친 흔적들을 보면서 당시에 할 수 있는 만큼 전력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커진 건지, 기준이 낮아진 건지 모르겠지만(웃음). 이제는 좀 내가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30대 아이유가 들려줄 음악도 궁금합니다.

휴식 시간이라고 말했지만 고백하자면 계속 곡을 쓰고 있긴 해요(웃음). 앞선 곡들과 달랐으면 좋겠다는 욕심 때문에 계속 탈락시키고 있지만요. 언제 앨범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20대 때와는 다른 시각의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이지은 #브로커 #아이유 #여성동아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DAM엔터테인먼트



여성동아 2022년 7월 7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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