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STYLE

power woman

행복을 찾아 떠도는 방랑자 윤선주 ‘짠 컴퍼니’ 대표

글 오홍석 기자

2022. 03. 07

방송국 PD, 변호사, 글로벌 기업 임원…. 대중이 선망하는 여러 직업을 거친 윤선주 ‘짠 컴퍼니’ 대표가 이번에는 메타버스 창업에 도전장을 냈다. 미디어에서 금수저, 엄친딸로 소개되는 그는 실제로 어떤 사람일까.

윤선주(45) ‘짠 컴퍼니’ 대표 이름 앞엔 으레 ‘금수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딸, 이수성 전 국무총리의 조카이니 “아니다”라고 손사래 치기도 어렵다.

윤 대표를 따라다니는 키워드는 하나 더 있다. ‘엄친딸’이다. 대원외고·서울대를 나와 하버드대 로스쿨과 케네디스쿨에서 공부한 그는 학력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SBS 예능 PD, 로펌 변호사, 글로벌 교육기업 ‘EF’ 아시아 대표 등을 지낸 커리어도 소개를 다 하자면 숨이 찰 정도다. 그런 윤 대표가 높은 연봉과 화려한 직함을 뒤로하고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들었다. 3월 론칭을 앞둔 메타버스 음주 플랫폼 ‘짠(jjaann)’. 요즘 핫한 메타버스와 음주의 만남이라니, 대체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궁금했다.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두루 거쳤고 높은 지위까지 오르셨는데 스타트업 창업에 나선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제가 ‘짠’ 창업 이전에 가졌던 직업이 제게 안 맞는 일은 아니었어요. 방송국에서도, 글로벌 교육 기업에서도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고 일적으로 재미도 느꼈어요. 하지만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한두 가지씩 마음에 걸리는 게 있더라고요. 방송국 PD는 너무 재미에만 치우친 일이라고 느껴져 그만뒀어요. EF에서는 학생들이 성장하는 걸 보며 보람을 얻었지만, 일부 부유한 학생들에게만 도움을 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고요. 제 사업이 아니다 보니 큰 틀을 바꿀 수는 없더군요. 그래서 창업을 하게 됐어요.

창업 아이템으로 메타버스 음주 플랫폼을 선택하셨네요.

짠은 어른을 위한 메타버스를 표방해요. 저는 10년 전부터 비대면 술자리를 즐겼어요. 그때는 비대면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지만요. 대학원을 같이 다닌 친구들과 화상 통화를 하며 술자리를 갖곤 했죠. 그걸 사업화하기로 마음먹은 거예요. 저는 물리적으로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 짠에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면 좋겠어요. 이 플랫폼을 통해 한국 문화를 해외에 소개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제 경험에 비춰보면 한국의 음주 문화인 ‘K드링킹’은 세계인이 충분히 매력을 느낄 만해요. 글로벌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출시도 안 한 서비스의 글로벌 진출 계획까지 세우신 점이 놀라운데요. K드링킹의 어떤 점이 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거라고 보시는 건가요.

한국의 음주 문화는 ‘과음’이라는 요소만 빼면 정말 완벽한 ‘그룹 액티비티’예요. 참석자들이 동지애를 느끼고 단합하게 해주죠. 또 제가 EF에서 아시아 대표로 일하며 아시아 여러 나라에 출장을 다녔는데, 한류가 생각보다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더군요. 제가 PD로 일할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연예인 000는 술자리에서 어때?”이기도 했고요. 셀러브리티가 팬들과 편안하게 어울리는 술자리를 메타버스에 마련한다면,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곳곳이 들썩이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으로 이미 윤종신, 규현, 하하, 지상렬 같은 셀럽 섭외를 완료했어요. 이분들께 ‘술자리 자키(SJ)’라는 이름을 붙여드리려 해요. 한류 스타가 짠에 SJ로 출연해 K드링킹을 소개하기 시작하면 해외로 쉽게 뻗어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데 진심이시군요.

그럼요. 짠이라는 이름을 정할 때도 얼마나 고민했는지 몰라요. 한국말이면서 외국인이 발음하기 쉬운 단어가 무엇일까 한참을 궁리했죠. 저는 한국 문화를 알리는 걸 좋아해요. 하버드대에 다닐 때 해외 학생들이 한국에 놀러 오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어요. 짠의 인터넷 주소에 ‘.com’ 말고 ‘co.kr’을 붙인 것도 ‘한국의 메타버스’라는 점을 드러내고 싶어서예요. 미래에 전 세계인이 건배사로 ‘치어스(cheers)’ 대신 ‘짠~’을 하도록 만드는 게 제 목표이기도 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비대면 술자리가 흔해졌는데 짠만의 차별점이 있나요.

맞아요. 비대면 술자리는 이제 흔하죠. 그런데 제가 관찰해보니 비대면 술자리의 콘텐츠는 100% 사람이더라고요. 사람이 재미있으면 술자리가 즐겁지만 그렇지 않으면 분위기가 루스해져요. 이런 들쭉날쭉함을 잡기 위해 짠은 ‘술 게임’ 같은 재미를 주는 장치를 만들었어요. 제가 예능 PD를 하면서 배운 건데, TV 프로그램도 MC와 게스트에만 의존하면 시청률이 들쭉날쭉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콘텐츠를 갖고 있으면 최소 ‘중박’은 치거든요.

코로나19가 끝나면 사람들이 다시 오프라인 만남을 선호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드네요.

제 경험에 따르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는 순간 저녁에 술자리를 갖기 어려워져요. 많은 30~40대가 가정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칼퇴’하고 집에 들어가죠. 하지만 나이가 든다고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욕구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거든요. 저는 이런 분들이 짠에 와서 30분이라도 재미있게 놀다 가면 좋겠어요. 또 짠에 테마별로 방을 만들어 관심사가 겹치는 사람들이 술을 매개로 만나는 네트워킹 창구가 되도록 하고 싶다는 꿈도 있어요. 코로나19 이전에 식약처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이미 음주 인구의 약 40%가 ‘홈술’을 하더라고요. 1인가구 증가 추세를 봐도 온라인 술자리는 앞으로 더 많아질 거라고 예상합니다.

‘술을 매개로 한 네트워킹 창구’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한국에서 ‘인맥’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죠. 그런데 살다 보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할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이직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과 만나보고 싶지 않겠어요. 그런 분들이 짠에서 모이는 거죠. 또 주식 투자전문가, 심리상담가가 출연해 편하게 술을 마시며 조언을 들려주는 자리도 마련할 예정이에요.

요즘 메타버스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해요. 짠이 구현하려는 메타버스는 어떤 세상인가요.

분명한 건 100% 가상현실은 아니라는 거예요. 현실과 가상이 혼재된 세계죠.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얼굴을 보고 술을 마셔요. 그 장소는 포장마차도 될 수 있고 뉴욕 센트럴파크도 될 수 있는 가상세계를 구현하려고 해요. 같이 놀다가 상대방이 술이 부족해지면 친구가 술을 보내줄 수도 있죠. 온라인에서 선물을 하면 집으로 배달이 오는 오프라인적인 요소를 추가하는 겁니다. 가상세계에 각자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 1차는 A네 집에서 즐기고, 2차 때는 다 같이 클럽도 가는, 그런 메타버스를 상상하고 있어요.

윤 대표가 만들어내려는 짠에 대한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렸다. 그러자 윤선주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안정적인 집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아왔을 것 같은 그가 한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도전을 하는 이유는 뭘까. 그를 이토록 열정적으로 살게 하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대표님의 커리어를 보면 브레이크 없이 일에만 몰두하는 ‘워커홀릭’일 수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그러신가요.

워커홀릭이요….

질문을 듣고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내 수긍했다. “워커홀릭이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사람과 같이 있을 때 행복하고 충전이 된다고 느껴요. 여러 명이 같이 역할을 분담해 팀으로 일할 때 즐거워요. 그때 재미와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면 일을 재미있어서 하시는 거네요.

저는 성공 지향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정말 재미있어서 하는 거죠. 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다 보면 그 결과에 모두 영향을 받으니 책임감도 갖게 되죠. ‘완벽주의 성향’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워커홀릭이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의 목표는 앞으로 10년간 최선을 다해 짠을 성공시키고, 10년 후부터는 돈 버는 일을 더 이상 할 필요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겁니다. 짠을 해서 번 돈으로 기부도 하고, 짠을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워커홀릭인데 술자리를 좋아하셨고 그걸 사업 아이템으로 정했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저는 부지런하면서 게으른 사람이에요. 대학 때 공부도 안 하고 술만 엄청 마셨죠. 사람을 만나는 일이니까요. 평소에는 화장도 잘 안 하고 세수하고 로션 바르는 것도 귀찮아해요. 운동도 별로 안 하죠. 귀찮아하지 않는 게 몇 가지 있다면 육아, 인터넷 쇼핑, 그리고 일이에요. 일도 사람들과 함께니까 즐겁고 부지런히 하는 거죠.

군중 속에서 고독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시군요. 그러면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주요 원동력인 건가요.

제가 살아가는 데 힘을 얻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사실 어린 시절 제 오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그 일이 벌어졌을 때 저도 죽고 싶다는 충동을 굉장히 많이 느꼈어요.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는 엄마 때문이었죠. 나마저 없어지면 얼마나 더 슬퍼하실까 하는 생각에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했어요. 이후 오빠 대신 두 목숨을 산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살았죠. 나이가 들면서 과부하가 걸리다 보니 이제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오빠한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갖고 있죠. 또 이제는 남편이 제 삶에 큰 힘이 돼줘요.

아, 그 이야기는 들었어요. 아버지가 공무원인 게 싫어서 절대 공무원이랑은 결혼 안 한다고 선언해놓고는 결국 외교관과 결혼하셨다고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웃음).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제가 뭘 하든 전적으로 응원해주셨어요. 다행히 남편도 절 전적으로 응원해주는 스타일이에요. 남편이 외교관이다 보니 세계 각지를 돌아다녀요(현재도 윤 대표 남편은 미국 보스턴에서 연수를 받고 있다). 그런데 결혼하기 전 “나를 따라다니지 말고 당신 하고 싶은 걸 계속하라”는 말을 여러 번 했어요. 창업을 결심하게 된 것도 남편이 지속적으로 권유한 덕분이죠.

윤 대표의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 배경 화면은 일곱 살 아들과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 윤 대표는 글로벌 교육 기업 EF에서 일할 당시, 아시아 대표로 승진하면 홍콩지사에서 근무하는 관례를 깨고 아이와 함께 있기 위해 회사를 설득해 한국에 남았던 적이 있다. EF를 그만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잦은 해외 출장과 밤낮 없는 업무 때문에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한다. 현재 남편은 미국에 있고 창업 초기라 한창 바쁠 텐데, 아이와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아이를 낳은 뒤 커리어에 변화가 생긴 부분이 있나요.

아이를 낳기 전 저는 회사의 기대가 100이라면 150을 하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니 세상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더라고요. 책임감 때문에 일을 100만큼 하면서도, 아이와 충분히 함께하지 못해 미안할 때가 많았어요.

회사를 그만둔 지금도 여전히 바쁘시지 않나요.

엄마들 사이에서 “인생의 오복 중 하나는 이모님 복이다”라는 말이 있어요(웃음). 다행히 아이와 잘 지내는 이모님(육아 도우미)을 만나 요즘 좀 안심하고 있어요. 운이 좋죠. 예전에는 아이가 깨 있을 때 10분이라도 더 이야기하려고 야근을 하다 노트북을 챙겨서 집에 가곤 했어요. 아이를 재운 뒤 잔업을 했죠. 그러다 이런 생활을 벗어나게 된 계기가 생겼어요.

계기요.

제가 EF에 있을 때 아시아 대표로 독일 여성분이 오셨어요. 세쌍둥이 아들과 딸 하나를 둔 분이었죠. 그분이 홍콩에 부임하기 전 스위스 본사에서 근무했는데, 아빠는 독일에 있는 주말부부였대요. 그런데 어쩜 아이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예의 바르고 사랑을 듬뿍 받은 티가 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물어봤죠. “아이들을 정말 잘 키우신 것 같은데 비결이 뭔가요?”

그분 말씀이 “해외 출장 등으로 집을 비울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다른 믿을 만한 분에게 아이들을 맡긴다”는 거예요. 그렇게 당신은 일에 전념하는 거죠. 평일 저녁에 사람을 만나고 때로는 사우나 가서 몸도 푼다고 해요. 그렇게 업무와 재충전을 충분히 한 뒤 주말에 집에 있을 때는 아이들을 위해 자기 시간과 역량의 100%를 투입하는 거죠. 아이들이 부모님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요. 저는 그 전엔 일을 하면서도 아이 생각을 하고 그러다 녹초가 돼 주말에는 누워만 있었어요. 정반대로 하고 있었던 거죠. 그분께 많이 배웠어요.

실리콘밸리에서는 ‘엄마 창업자’들에 대한 편견이 강하다고 하더군요. ‘엄마들은 육아에 신경 쓰느라 회사 일에 전념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는 거죠. 엄마 창업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그런 편견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실리콘밸리는 아이를 봐줄 베이비시터를 구하기 힘든 환경이다 보니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아직 창업 초기이다 보니, 번 돈을 아이 봐주시는 이모님께 다 드리는 상황이에요. 생계형 사업가죠(웃음). 진지하게 말씀드리면, 지금 하신 질문은 근거 없는 편견이라고 생각해요. ‘엄마 창업자’는 여성이라는 큰 타깃 고객층을 이해하기에 최적화된 사업가예요. 제 생각에는 창업자가 엄마라서 좋은 점이 훨씬 많을 것 같네요.

인터뷰를 마치고 기사 작성을 위해 90분에 걸쳐 이어진 윤 대표와의 대화 녹취록을 풀었다. 검색해보니 ‘사람’이라는 단어가 모두 116번 등장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윤 대표가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묻는다는 질문이었다. 그는 여러 번에 걸쳐 “저는 스스로에게 지금 내가 행복과 재미를 느끼는지 묻고 또 물어요”라고 말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행복(happiness)과 만족(satisfaction)을 구분하며 “행복은 순간적인 감정이다. 반면 만족은 삶의 목적을 달성하면서 느껴지는 감정으로 타인과의 비교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설명했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윤 대표는 돈과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행복을 붙잡기 위해 끊임없이 유랑하는 방랑자였다.

윤선주 대표의 이직 Tip
49 대 51 법칙

윤선주 대표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 직원, 방송국 예능 PD, 국제변호사, 다국적 기업 아시아 대표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이직을 고려하는 직장인을 위해 팁을 물었다.

이직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이 현재 상태를 바꾸는 결정을 할 때만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제 생각은 달라요. 우리에겐 현 상태를 유지할 것이냐 변화를 줄 것이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봐요. 예를 들어 지지부진한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관계를 지속한다”와 “관계를 끝낸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 거죠. 이 가운데 무엇을 택할지 정하는 저만의 방법은 ‘49 대 51 법칙’입니다. 저는 후회 없는 선택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결정을 하든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남기 마련이에요. 저는 늘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신중하게 저울질한 뒤 이렇게 생각하죠. “내가 다른 결정을 내렸으면 51만큼 후회했을 텐데 지금은 49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직업을 여러 번 버리셨는데, 사표가 쉽게 던져지던가요.

한번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저를 “사표 던지는 여자”라고 소개하시더라고요. 굉장히 당황스러웠어요(웃음). 제가 사표를 쉽게 던졌을 거라 많이들 생각하시는데 아니에요.

매번 치열하게 고민했어요. 저는 스스로 경험주의자라고 생각하는데요. 남들이 좋다고 하는 직업이라도 제가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편이에요. 그때 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죠. “내가 행복한가.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나.” 이런 질문을 충분히 한 뒤 내린 결정이었어요.

나이가 들면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할 거라는 조바심이 들지는 않던가요.

저는 하버드대 로스쿨에 다닐 때도 나이가 많은 그룹에 속했어요. 당시 정원이 550명이었는데 제가 나이로 치면 상위 30명 안에 들었거든요. 35세에 변호사 생활을 시작할 때는 이미 또래 친구 가운데 로펌에서 파트너로 일하는 사람도 있었죠. 그래도 조바심을 느끼지 않았어요. 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거든요. 유학 생활, 거쳐 가는 직업 하나하나가 다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가고 싶은 길이 뭔지 탐구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래요. 제가 바라는 길을 향해 가고 있다는 확신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음주 메타버스를 운영하는
CEO의 술자리 캐릭터


윤선주 대표의 하버드대 유학 시절 별명은 ‘장군’이었다고 한다. 술자리를 휘어잡으며 선두에서 진두지휘하는 모습에 붙은 별명이라고. 어떤 모임이든 시작 전 윤 대표 집에서 예열 차원의 ‘프리 드링킹(pre-drinking)’부터 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고 한다. 윤 대표는 이번에 새로 만든 짠 컴퍼니 명함에 자신의 직함을 ‘CEO 겸 주모’라고 새겼다. 선두에 서기도 하지만 이리저리 술자리 파티원을 챙기며 빈 잔을 채우는 자신 모습이 ‘주모’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라고 한다.




#짠컴퍼니 #음주메타버스 #윤선주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