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불후의 명작! 카프리 팬츠가 돌아왔다

안미은 프리랜서 기자

2026. 07. 02

올여름 20세기 중반 오드리 헵번이 사랑해 마지않던
카프리 팬츠가 돌아왔다. 더 자유롭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변주되며 과거의 명성을 다시 누리는 중이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을 지나온 이들에게 카프리 팬츠는 꽤 익숙한 이름이다. 그 시절 레이디라이크 룩을 상징하던 추억의 팬츠가 2026년 여름 다시 트렌드 중심에 섰다.

카프리 팬츠의 유래는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출신 디자이너 소냐 드 레나트가 이탈리아 남부 카프리섬에서 영감을 받아 선보인 것이 시작이었다.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길이는 노출의 부담을 덜고, 밑단의 작은 트임은 곡선미를 살리면서도 움직임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당시 여성복의 기준이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볼륨에 있었다면, 카프리 팬츠는 이를 비껴가는 실용적인 대안이었다. 이후 카프리 팬츠는 20세기 중반 상징적인 뮤즈들의 옷장을 거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은 카프리 팬츠를 유행의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 중 한 명이다. 특히 영화 ‘로마의 휴일’(1955)과 ‘사브리나’(1956)를 통해 보여준 발목 위로 짧게 떨어지는 팬츠와 납작한 플랫 슈즈의 조합은 헵번식 클래식 룩의 대표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 이후 마릴린 먼로, 브리지트 바르도,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당대 스타일 아이콘들이 스크린 안팎에서 카프리 팬츠를 즐겨 입으며 유행은 빠르게 번졌다. 2000년대 초반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패리스 힐튼을 비롯한 여러 팝 스타들이 로라이즈 카프리 팬츠를 대담하게 소화하며 Y2K 감성을 대표하는 아이템으로 인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젠더리스 흐름이 패션계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카프리 팬츠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다리 라인을 드러내는 타이트한 핏은 구시대적인 디자인으로 비쳤고, 어중간한 길이 역시 다리를 짧아 보이게 한다는 인상을 줬다. 한때 자유롭고 활동적인 여성의 상징이었던 카프리 팬츠는 그렇게 한동안 트렌드 밖으로 밀려났다.

다채롭고 자유롭게 변주된 디자인

카프리 팬츠가 다시 돌아온 건 단순히 Y2K에 대한 향수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와이드 팬츠와 배기 진 같은 헐렁한 팬츠의 유행이 이어지면서, 익숙한 실루엣에 피로감을 느낀 패션계가 이전 세대가 촌스럽다고 밀어낸 아이템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신축성 있는 원단으로 다리 라인을 강조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의 카프리 팬츠는 다채로운 컬러와 패턴을 입고 자유롭게 변주된다. 그 흐름은 이번 봄여름 컬렉션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셋업 연출이다. 캐롤리나헤레라는 1980년대에서 영감을 받은 슬림한 라인의 버건디 재킷과 카프리 팬츠 셋업으로 트렌드의 부활을 알렸다. 아크리스 역시 강렬한 레드 블레이저와 팬츠 셋업을 통해 카프리 팬츠가 슈트의 일부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랄프로렌은 크림색 트렌치 재킷과 카프리 팬츠를 한 벌로 맞춰 입어 차분하고 품격 있는 분위기를 완성했고, 프로엔자슐러는 블랙 재킷에 여유 있는 핏의 카프리 팬츠를 더해 한층 젠더리스한 인상을 남겼다. 클래식에 뿌리를 둔 카프리 팬츠는 컬러와 패턴을 만나면 전혀 다른 얼굴이 된다. 베르사체는 레드와 블루, 그린을 뒤섞은 컬러 블록으로 카프리 팬츠를 연출해 Y2K 감성을 끌어올렸다. 드리스반노튼 역시 플라워 패턴이 돋보이는 옐로 카프리 팬츠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자벨마랑은 카프리 팬츠를 좀 더 보헤미안적으로 풀어냈다. 오래된 벽지를 떠올리게 하는 복고풍 패턴의 톱과 카프리 팬츠를 이어 붙이듯 연출하고, 가죽 벨트로 마무리해 자유로운 인상을 남겼다. 또, 샌디리앙은 새틴 재킷과 스커트 셋업에 레이스 시스루 카프리 팬츠를 레이어드해 뻔하지 않은 로맨틱 룩을 완성했다.

스타일리시한 시티 룩 연출 

거리로 나서면 분위기는 더 다양해진다. 런웨이가 카프리 팬츠의 가능성을 넓혔다면, 리얼웨이는 이를 일상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톡 튀는 컬러나 패턴이 들어간 카프리 팬츠는 그 자체로 룩의 포인트가 되므로 상의는 단순하게 입는 게 좋다. 깅엄 체크 패턴의 카프리 팬츠에 화이트 톱을 매치한 패션 인플루언서 리스 블루트스타인과 소피아 보만이 적절한 예다. 디지털 크리에이터 클로 데이비처럼 산뜻한 블루 카프리 팬츠에 솔리드한 레드 탱크톱을 더해 경쾌함을 살린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도시적인 무드를 연출하고 싶다면 블랙 컬러가 답이 된다. 패션 크리에이터 캐서린 카르포바는 드레시한 화이트 셔링 블라우스에 블랙 카프리 팬츠를 착용해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이다는 톱과 팬츠를 올 블랙으로 맞춰 세련된 시티웨어의 본보기를 보였다. 고프코어의 여운도 이어진다. 7부 길이의 레깅스가 유행하며 카프리 팬츠가 액티브웨어로까지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패션 컨설턴트 미칼 커티스와 크리에이터 루비 린은 편안한 티셔츠에 무릎까지 오는 레깅스 소재의 팬츠를 매치하며 트렌드를 이끌었다. 이런 변화는 카프리 팬츠가 더 이상 휴양지의 낭만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때 카프리섬의 한적한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던 뮤즈들이 입던 팬츠는 이제 바쁘게 움직이는 현대 여성들의 일상 속으로 깊이 파고들고 있다. 그것도 아주 스타일리시한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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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 게티이이미지 사진제공 베르사체 샌디리앙 캐롤리나헤레라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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