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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진양혜의 그 여자 그 남자

전방위 엔터테이너 남궁연

드러머에서 미디어 아티스트까지

기획 · 김지영 기자 | 글 · 진양혜 아나운서

입력 2015.04.15 14:24:00

“지난해 국립극장 제야음악회를 기획, 연출하고 혼자 울었어요. 40세가 되니 나이에 대한 공포가 오더라고요. 평생 자유 직업인으로 일했는데 언제까지 계속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도 느끼게 되고, 제가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늦은 나이에 공연 연출을 하려고 처음부터 독학으로 하나하나 배웠는데 7년 만에 국립극장이라는 큰 무대에서 꿈을 이뤘으니 그 자체로 큰 성취이자 완성이었죠. 여전히 긴장감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50세부터는 막 살 겁니다. 하하하.”
드러머로 출발해 작곡가, 방송인, 기획자, 연출가, 미디어 아티스트에 이르기까지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어온 남궁연의 인생 이야기.
전방위 엔터테이너 남궁연
인간 남궁연(48)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은 모호함이었다. 신나게 드럼을 치며 재기 발랄한 의견을 피력하고 유려한 말솜씨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매력이 있는 사람, 고졸 학력에 악보를 못 보지만 어린 나이에 독학한 드럼 연주로 이미 프로 세계를 섭렵하고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력의 소유자, 자유롭고 제멋대로일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다르게 직접 만나보면 깍듯하고 정중한 태도로 상대를 당황케 하는 의외성을 지닌 인물. 스스로 “친절하지만 친해지기 어렵고 술 한 방울에도 취기가 확 올라 마시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 사람을 명쾌하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생전 저명한 교수이자 공학자였던 아버지와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윤보선 전 대통령 동생의 외손자로 살아온 성장 배경은 물론, 태어난 집에서 지금껏 사는 점마저도 범상치 않은 그를 만나러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후문 인근에 있는 그의 자택이자 작업실을 찾았다.

공연 연출가로 새 출발, 국악의 세계화 꿈꿔

▼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주로 공연 작품들을 연출하고 있어요. 아이디어가 넘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즐기고 있습니다. 무대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고 신경 썼던 과거에 비해, 무대 뒤에 숨어서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지금이 참 좋습니다.



▼ 유명한 방송인이었고 드러머로서도 각광받았는데, 연출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마흔 살이 되면서 두려워지더군요. 죽을 날이 가까워 오는데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도 들고, 제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나 하는 질문을 저 자신에게 하게 되고. 그러던 어느 날 정말 방송을 못하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음악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가십을 이야기해야 하고, 아티스트들이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팔아야 하는 현실에 회의가 들었죠.

▼ 그래서 공연 연출을 하겠다고 결심했나요.

그런 회의가 들 무렵 한 방송국의 ‘서울 디지털 포럼’이라는 국제 행사에서 공연 기획을 하게 됐는데 그게 제 인생을 바꿨어요. 연사로 참여한 사람들이 대단한 전문가들이었어요. ‘구글’의 에릭 슈미트도 있었고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과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됐죠. 계속 교류하면서 곧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래하겠다 싶어 지식 산업에 관심을 가졌죠. 그때 우리나라가 한창 IT 강국으로서 자신감이 넘쳐 있었는데, ‘우리나라에 광범위하게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충격이 컸어요. 트위터 초기 버전도 봤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1년 반 만에 세상이 바뀌더라고요. 재미있고 흥미로웠죠. 첨단 기술을 예술에 접목시켜 사회적 이슈들을 창출하고 싶었어요. 또 연출을 필연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웠어요. 모든 걸 독학으로 익힐 수밖에 없어서 무척 힘들었어요. 원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경험해야 했기 때문에 무보수로 협력하며 필요한 것들을 익혀나갔죠.

▼ 할 만했나요.

죽을 맛이었죠. 나이 마흔에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아요. 20대 젊은이들과 같이 배워야 하고, 돈은 계속 들어가고. 그런 우울한 상황 속에서 7년여의 시간이 흐르니 이제야 좀 자리가 잡혀갑니다.

▼ 신선한 공연과 기획들을 많이 해서 저는 늘 승승장구하는 줄 알았어요.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늘 생각이 많다는 거죠. 머릿속이 항상 복잡해요. 지금도 인터뷰 끝나면 뭘 해야 할지 머릿속에 있어요. 이런 것들이 괴롭죠. 무대에서 막상 공연을 한다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죠. 그동안 해온 일들을 바탕으로 지난해 국립극장이라는 큰 무대에서 ‘제야음악회’를 연출했다는 것이 뿌듯해서 공연 끝나고 혼자 울었어요.

전방위 엔터테이너 남궁연

IT 분야의 첨단 기술을 예술에 접목해 사회적 이슈들을 창출하고 싶다는 남궁연.

▼ 국립극장에서의 연출이 큰 의미가 있나요.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는 자신을 설명할 많은 형용사들을 요구하죠. 출신 학교와 연출 경력 같은 설명이요. 아시다시피 제가 그런 설명을 할 게 좀 없잖아요. 대학을 졸업하지도 못했고, 정식으로 연출 코스를 밟은 것도 아니고요. 저를 설명할 만한 공신력 있는 명사가 제겐 의미가 크죠. 국립극장 제야음악회처럼 국립 기관의 자체 공연 연출을 했다는 것은 저로서는 큰 성취예요. 한때 그냥 드러머였다가 독학으로 연출을 공부해 뜻을 이뤘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대수롭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 연출가로서 지향하는 바는 뭔가요.

국악의 세계화예요. 국악은 아직 세계화가 안 된 유일한 예술 상품이에요. 저는 좋은 상품에 선투자하는 마음으로 오래전부터 국악의 세계화를 준비했어요. 올해부터는 좀 특별한 방법으로 국제 소비자 취향에 맞춰 국악을 무대에 올리려고 해요. 예를 들면 외국 친구들에게 이메일로 장구 연주 네 마디를 보내고 그에 어울리는 서양 음악 소스를 찾아서 보내달라고 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삭발은 불효 반성의 발로, “머리카락 자랍니다”

▼ 일종의 지식 나무를 이용한 국제적 콜래보레이션이군요. 기대됩니다. 작업 방식에 나타나듯이 사회적 통념과 다르게 사는 점이 남궁연 씨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는 부모님 덕이 크죠. 어릴 때부터 부모님, 특히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하며 자랐죠. 제가 대학 진학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도 강요하지 않으셨어요. 그뿐 아니라 제가 어떤 선택을 해도 압력을 가하거나 다른 걸 강요하신 적이 없어요. 그래도 저 나름대로는 공학자인 아버지와 음악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참 처절하게 살았어요. 아버지는 당신의 뒤를 이어서 제가 뭔가를 이루길 바라셨죠. 하지만 저는 점점 음악에 빠져들었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 나이트클럽에 드나들었어요. 그곳에선 정말 큰 소리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거든요. 황홀했어요. 그러다 아버지께서 직접 저를 고발하셨어요. 한 대학교수가 자기 아들을 직접 고발했다고 엄청 화제가 됐죠. MBC ‘뉴스데스크’의 ‘카메라 출동’이라는 코너에 두발 자유화의 첫 폐해 사례로 제가 나왔을 정도로요.

▼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나요.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어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할까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제게 이런 말씀을 남기셨어요. ‘세상에는 상상, 공상, 현실이 있는데 현실이 될 수 없는 것은 공상이고 아직 현실이 되지 않은 것은 상상이다. 너는 상상이 많은 것 같으니 그걸 현실로 만들라’고요. 결국 저를 지지하고 인정해주시긴 했지만 아쉬움이 있어요. 저도 아버지가 하신 만큼은 제 뜻을 이루고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어요. 제 일에 첨단 기술을 자꾸 접목시키는 것도 제가 좋아해서이긴 하지만, 공학자의 아들로서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아요.

▼ 언제부터 지금의 헤어스타일을 고수했나요.

처음에는 길게 길렀는데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후 그동안 너무 불효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삭발을 했죠. 그 당시 KBS 방송국에서 삭발을 규제해서 클론의 구준엽 씨도 꼭 두건을 쓰고 방송에 출연했는데, 저는 효심의 발로로 이를 선택한 것이니 방송국에서 제재 없이 출연시키라고 했어요. 그래서 계속 이 머리로 방송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죠. 제 머리카락, 다 자랍니다. 하하.

▼ 드러머, 작곡가, 방송인, 기획자, 연출가, 미디어 아티스트 등 이력이 정말 다채로워요.

사람들은 보통 사람과 다른 길을 가면 용기 있다고 하는데, 왜 용기라는 표현을 쓰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제 길을 찾아온 것뿐이에요. 주위에 자동차를 정말 좋아해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분이 있어요. 기술도 좋고 돈도 잘 벌죠. 또 다른 지인은 요리하는 걸 무척 좋아해서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서 음식점을 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1970년대 문화를 향유하며 사는데 정말 멋있어요. 그런 부류가 매력 있는 사람들이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요. 그렇게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야 해요. 부모는 그 길을 찾도록 옆에서 도와줘야 하고요.

▼ 예전에 대학에서 특강을 많이 했는데 학생들에게 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줬나요.

당시 제 별명이 ‘자퇴 머신’이었어요. 지금 배우는 것이 앞으로 하고 싶어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과감히 방향을 수정하라고 했거든요.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호남선과 경부선철도의 벌어진 각도가 약 10도인데 시간이 갈수록 거리가 점점 멀어져서 결국 다른 종착역에 다다르죠. 중간에 몇 번 내려서 방향과 목표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우리 사회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어린 나이에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된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데, 그런 문화에 동조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에겐 ‘지금 충분히 바꿀 수 있다. 너희들은 이제야 겨우 20대다. 나는 40세에 다시 시작했다’고 말해줘요.

현실과 환경을 혼동하는 요즘 세태 안타까워

그는 얼마 전 ‘음악을 하고 싶은데 현실은 음악을 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온 한 학생을 떠올렸다. 그가 그 학생에게 건넨 답은 ‘음악을 하고 싶은 것이 현실입니다’였다.

“한 달 후 그 학생에게서 ‘음악을 시작했다’는 연락이 왔어요. 문제는 많은 사람이, 자신이 뭔가를 하고 싶어하는 상황이 현실인데도 사회가 만들어놓은 껍데기와 현실을 바꿔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뭔가를 먹고 싶은 것이 현실이죠. 돈이 있고 없고는 환경이에요. 현실과 환경을 구분해야지, 환경을 현실로 착각하면 안 돼요. 환경은 바꿀 수 있어요. 환경 때문에 무엇을 못한다면 정말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권투 선수가 10대를 맞고 11대를 때려서 승리했다면 10대 맞은 것은 쉽게 간과되고 이겼다는 사실만 부각되죠. 제가 좋아하는 배우 미키 루크가 재기에 성공한 것은 힘든 시간을 버텼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고요. 이제 결과만 보지 말고 과정에 좀 더 관심을 갖고 과정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나요.

지금 이곳(서울 서대문구 대신동 자택, 이대후문 바로 건너편)이 제가 태어난 집이에요. 여전히 여기서 살고 있어요. 이 동네에는 제 유년의 기억이 넘쳐요. 그래서 못 떠나나 봐요. 어린 시절 버스에서 마주쳐서 인사드렸던 동네 아저씨 중 한분이 고 함석헌 선생이고, 동네 빵집 가면 늘 커피 마시고 계시는 김동길 선생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이 동네가 그랬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제가 유치원 가는 길이 이 동네 사는 교수님들의 출근길이었어요. 어린 제가 유치원을 가면서 그런 분들과 함께 나눴던 대화가 지금껏 기억에 남아 있어요. 제가 워낙 늦둥이여서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는 공포가 있었는데, 어느 날 한 교수님과 나눈 대화 덕분에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지금 바로 앞에 지나가는 차가 곧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차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나중에 소중한 사람들을 볼 수 없는 때가 오겠지만 그렇다고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그때 기억하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네 곁에 있는 거란다’라고 말씀해주셨죠.

전방위 엔터테이너 남궁연
▼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자랐네요. 부러워요. 궁극적으로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50세 이전까지 열심히 살다가 50세부터는 마음껏 자유롭고 멋지게 살려고요. 이제 2년 남았네요. 50세가 되면 여행 다니고 자고 싶을 때 맘껏 자면서 막 살 거예요.

◇ Epilogue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눈 그와의 대화를 한정된 지면에 싣기 위해 편집하는 과정은 힘이 들었다. 다양한 비유와 예시를 들며 들려주는 그의 생각과 경험들을 다 옮기지 못해 아쉽다. 언젠가 첨단 기술이 제약 없이 사용되는 때가 오면 인터뷰 지면에 그의 작품이 담긴 영상 클립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물론 꼭 종이 책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이런 생각은 상상일까 공상일까? 50세가 되면 막 살겠다는 그를 다시 방송에서도 보고 싶다.

사진 · 지호영 기자

디자인 · 최진이 기자

여성동아 2015년 4월 6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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