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영의 공간 도슨트
생활의 미감을 끌어올리는 공간을 찾아갑니다. 트렌드는 물론 고유성과 정체성을 갖춘 디자인부터 음식, 공간 속 숨은 이야기까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보고, 듣고, 먹는 특별함을 선사합니다.
산다는 건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다. 어찌 될지 알 수 없음 속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한다. 누구나 매 순간 시험에 들고, 시험에 실패하면 좌절 끝에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한다. 이에 반해 이 시간을 수용의 자세로 받아들이고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이들도 있다.
‘흙을 굽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소일베이커’ 양혜린 대표는 진정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산업디자인, 요리, 레스토랑 베이커리 등 누구의 강요도 아닌 오직 자신의 의지로 시작한 경험은 약 10년의 대장정 끝에 ‘도자기’라는 종착역에 도달했다.

양혜린 대표는 고등학교 유학 후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에 입학해 산업디자인과 요리를 전공했다. 흙과 나무, 플라스틱 등을 사용해 디자인을 창조하는 산업디자인과 다양한 식재료로 근사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에 흥미를 느낀 것. 졸업 후에는 두 영역을 아우를 수 있는 분야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키친웨어 디자인, 레스토랑 베이커리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낙심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길이 보일 것이라는 믿음에 거침없이 도전했고 결국 테이블웨어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디자인과 요리를 접해본 양혜린 대표의 시선이 테이블웨어로 향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그는 “당시 국내에 부담 없이 오래 사용할 수 있는 테이블웨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며 “디자인이 뛰어나면 가격이 비싸고, 저렴한 제품은 퀄리티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세련된 디자인, 부담 없는 가격, 편안하면서도 효율적인 테이블웨어 브랜드가 국내에 있으면 좋겠다고 느낀 것. 그 후 기획부터 제품 라인업, 마케팅 등 브랜드 론칭을 위한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냈고, 약 1년간의 준비 끝에 2015년 소일베이커를 열었다.
소일베이커는 도자기의 쓰임과 음식의 담음새를 생각하며 만든 테이블웨어를 선보인다. 사실 ‘도자기’ 하면 근엄하고 무거운 느낌이 강하다. 생활 식기로는 음식을 담는 기능만 강조됐을 뿐 아티스트적으로 디자인된 케이스는 많지 않다. 양혜린 대표는 “도자기가 사람들에게 더욱 친근한 존재가 되길 바랐다”며 “평소 음식을 먹을 때 가치를 뒀던 그릇의 사용이나 조화 등이 도자기 사업으로 이어지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양혜린 대표는 꾸밈없이 솔직하고,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이다. 도자기를 활용해 일상에서 필요한 걸 만들고 이를 통해 디자인, 요리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런 그에게 소일베이커를 이루는 것들과 공간이 주는 힘, 그리고 다가올 새로운 챕터에 관해 몇 가지 물음을 던졌다.
산업디자인과 요리가 소일베이커 탄생에 어떤 영향을 줬나요.
산업디자인과 요리를 빼놓고 소일베이커를 논할 수 없어요. 브랜드의 탄생은 물론 정체성, 특별함을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을 줬거든요. 산업디자인은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것’을 넘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등 효율성까지 추구하는 학문이에요.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며 익혔던 학습 덕분에 디자인과 효율성이 조합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죠. 또 다양한 테이블웨어 라인을 구축할 수 있었던 건 요리의 영향이 커요. 요리를 통해 조리 기술뿐만 아니라 플레이팅, 서빙의 흐름, 음식이 그릇에 담기고 나눠지는 구조까지 파악할 수 있었거든요. 브랜드 론칭을 위해 산업디자인과 요리를 공부한 건 아니지만, 두 영역이 시너지를 내며 소일베이커만의 특별함을 구축했다고 생각해요. 덕분에 그릇이라는 한정된 카테고리 안에서도 더 깊고 다층적인 고민을 할 수 있었고요.
테이블웨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며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을 것 같아요.
디자이너와 운영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조금 더 예쁘고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디자이너의 마음과 합리성, 실용성을 중시하는 운영자로서의 가치가 늘 상충했거든요. 또 도자기라는 소재 자체가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고 변수가 많더라고요. 흙, 유약, 불 등 모두 자연을 기반으로 한 재료들이라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죠. 초반에는 이럴 때마다 빨리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상황이 크게 바뀌진 않더라고요. 오히려 유연한 자세를 가지고 차분하게 대응해야 스트레스도 덜 받고 그릇의 완성도도 높아졌죠. 그래서 지금은 제품 스케줄을 최대한 여유 있게 잡고 있어요. 또 언제든 변수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항상 긴장감을 가지고 있고요. 도자기가 가진 고유한 속도에 맞춰가는 법을 조금씩 터득하고 있습니다.

도자기에 집중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엔 비용적인 제약이 컸어요. 브랜드 초기에는 볼이나 커팅 매트처럼 재료를 손질하고 준비할 때 사용하는 도구를 론칭한 뒤 점차 확장할 계획이었어요. 그래서 스테인리스나 친환경 플라스틱 등을 다루는 공장을 많이 찾아다녔는데, 몰드 비용부터 생산 수량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더라고요. 그러다 발견한 게 도자기였어요. 도자기는 산업디자인을 공부할 때 많이 접했던 재료라 친숙했고, 소량 제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대안이 됐죠. 지금 다른 소재에도 관심을 갖고 있지만, 도자기가 메인인 건 변함없어요. 무엇보다 도자기를 오랜 시간 다뤄보니 도자기로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당분간은 도자기에 집중할 계획이에요.
소일베이커의 제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나요.
제품 라인이나 목적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활용성과 구성을 가장 먼저 고민해요. 브랜드 초기에는 한식과 양식을 모두 담아낼 수 있도록 무광 유약과 소지(흙)의 질감을 살리는 데 집중했어요. 그 후에는 한국의 아름다움과 ‘맛미(味美)’를 전하고자 하는 취지의 미담 라인 등 다양한 영감을 기반으로 한 제품을 기획해왔습니다. 기획이 어느 정도 확정되면 스튜디오에서 샘플을 만들어요. 저를 비롯한 스태프가 샘플을 실제로 사용해보면서 여러 차례 수정 단계를 거치죠. 모두가 만족할 만한 퀄리티가 나오면 출시되고요. 소량이나 1차 제작만으로도 판매가 가능한 제품은 스튜디오에서 직접 생산하지만, 대부분은 경기도 여주에서 제작합니다.
도자기의 고장이라는 명성 때문에 여주를 선택한 건가요.
맞아요. 여주는 특히 생활 도자기 제작에 월등해요. 일상 속 테이블웨어를 선보이는 소일베이커의 의도를 가장 잘 구현해낼 수 있는 곳이죠. 사실 여주의 공방, 공장들과의 협업이 처음부터 순탄치는 않았어요. 가격적인 메리트는 있었지만 디자인 표현 및 생산 과정에서 한계점이 존재했거든요. 그럼에도 천천히 맞춰나가면서 약 10년을 함께하고 있어요. 그간의 작업을 통해 소일베이커는 물론 관계 업체들도 많이 발전하고 변화했거든요. 지금처럼만 협업해나가면 충분히 새롭고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도자기를 다루기 힘들진 않나요.
도자기는 정말 예민하고 까다로운 그릇이에요. 매번 다양한 변수가 존재해서 항상 플랜 B를 고려해야 하죠. 특히 여주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샘플 몰드를 먼저 제작한 뒤 다양한 테스트를 거쳐요. 같은 소지와 유약을 사용하더라도 가마의 특성, 온도, 환경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때문에 이 과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테스트를 통과하면 본격적인 생산을 위한 몰드를 만들고 이후 본생산에 들어가요. 이 단계에서도 역시 다양한 변수가 존재합니다. 10년째 꾸준히 생산 중인 제품도 흙의 굽힘이나 유약 반응에 따라 작은 차이가 생기거든요. 그래서 모든 제품을 생산 이후에도 계속 관찰하고 조정, 연구해가며 완성도를 높이고 있어요.


‘소일베이커’ 하면 정동점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들이 많아요. 정동 특유의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소일베이커와 조화를 이뤘죠.
소일베이커가 신사동에 자리 잡은 지 10년, 정동은 이제 3년이 됐어요. 많은 분이 소일베이커의 첫 공간을 정동점으로 생각하시더라고요. 아늑하고 고요한 공간의 분위기와 브랜드의 무드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인 것 같아요. 사실 소일베이커 정동점이 위치한 신아기념관은 처음부터 계획했던 공간은 아니었어요. 우연히 소개받아 방문했는데 한눈에 반해버렸죠.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들어오는 길, 오래된 붉은 벽돌, 창밖으로 보이는 덕수궁 중명전의 풍경까지. 그 안에서 소일베이커의 다양한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거든요. 정동점은 철저하게 브랜드의 고유성을 담아낸 곳이에요. 공간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도록요.
정동점은 조금 어둡고 조용한 무드라면, 압구정점은 밝고 활기찬 분위기예요.
압구정점은 좀 더 일상에 가까운 공간이에요. 정동점이 하나의 풍경처럼 조용하고 느린 감도를 담았다면 압구정점은 도시 안에서의 리듬과 흐름을 반영했죠. 그래서 좀 더 밝고 유연한 분위기를 풍겨요. 압구정점에는 쇼룸뿐만 아니라 사무실, 도자기 스튜디오, 요리 스튜디오까지 함께 있어요. 이곳을 구상할 때 가장 주안점을 뒀던 게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것’이었거든요. 도자기가 어떤 고민과 기획 단계를 거쳐 제작, 포장돼 고객에게 전달되는지 그 흐름이 직접 느껴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죠. 더불어 고객들이 매장에서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며 자신만의 식생활에 대입해볼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그릇이 식탁 위에 놓였을 때 어떤 장면이 그려질지까지 상상할 수 있도록요. 그래서 공간에 조명과 가구의 밀도를 높이고 각 제품 라인을 비교, 조합해볼 수 있도록 큐레이션했습니다. 정동점이 소일베이커의 공예스러운 결을 보여준다면 압구정점은 일상의 흐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일상에서 사용하는 도자기를 만들다 보니 공간 역시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고 있어요. 저희는 늘 사람들이 소일베이커의 제품에 가치를 둘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요. 그릇이 단순히 소모되는 제품이 아니라, 편안하면서도 소중함이 깃든 존재가 되길 바라거든요. 그 마음이 공간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소일베이커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무드는 너무 딱딱한 화이트 큐브의 구조도, 부담스러운 고급 갤러리도 아니에요. 길 가다가 부담 없이 들어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 점을 베이스로 조명, 소품 등에만 변화를 주며 새로운 지점을 만들어나가고 있어요. 손님들에게 종종 “여유로운 미술관에 놀러 온 느낌”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그때마다 소름이 끼쳐요. 저희의 의도를 100% 알아주신 것 같아서요.

소일베이커의 무드, 그릇 컬렉션 등은 대표님의 취향이 반영된 건가요.
모든 걸 스스로 해내야 했던 론칭 초기에는 제 취향이 많이 반영됐어요. 하지만 지금은 팀원들과 함께해나가기 때문에 좀 더 균형 잡힌 결과물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소일베이커 본래의 잔잔하고 투박한 디자인 위에 팀원들의 다채로운 감각이 더해지고 있거든요. 이로 인해 브랜드 자체도 더욱 풍성해졌고요. 앞으로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기대도 됩니다.
그릇의 진열 방법도 궁금합니다.
저희는 시즌에 따라 그릇을 달리 세팅해요. 계절마다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 다르듯 그에 어울리는 그릇도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시즌별로 추천 라인을 구성하고, 제품의 진열 방식이나 배치를 조금씩 바꿔가며 계절의 리듬을 공간 안에 녹이고 있어요. 또 같은 그릇이라도 계절, 무드에 따라 달리할 수 있는 세팅 방법도 선보여요. 집집마다 주방, 테이블 등의 분위기가 다르잖아요. 손님들이 그릇을 자신의 공간에 두었을 때 어떻게 어우러질지 상상할 수 있도록 여러 소재와 컬러를 입은 도구들도 함께 세팅하죠. 같은 그릇이라도 조명, 배경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주니까요.
소일베이커는 합리적인 가격대로도 유명해요. 퀄리티와 가격은 상충하는 면이 많을 텐데 어떻게 타협하나요.
사실 너무 고민되는 부분이에요. 퀄리티를 높이면 투자 비용이 증가하는데, 그러면 결국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거든요. 하지만 저희는 좋은 제품을 더 많은 분이 부담 없이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가격대를 높이지 않기 위해 재료 선택부터 생산 과정까지 정말 많은 고민과 타협을 합니다. 소일베이커의 운영 원칙 중 하나인 ‘스스로 사고 싶은 제품을 만든다’처럼, 디자인과 품질은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을 지켜내는 것이 저희의 방향이자 목표거든요. 이 같은 균형을 앞으로도 꾸준히 지켜나갈 예정이고요.
소일베이커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요.
브랜드 고유의 결과 분위기는 변하지 않을 거예요. 10년 후에도 도자기를 기반으로 한 다이닝 컬처 작업을 이어나가고, 쇼룸을 통해 고객과 내밀한 관계를 유지할 계획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컬러, 무늬 등 작은 요소에 포인트를 준 제품을 선보이고 싶어요. 현재의 제품 디자인에 재미있는 요소들을 추가하는 식으로요.
대표님 개인적인 목표도 궁금해요.
가족으로서의 나, 일하는 나, 친구로서의 나 그리고 온전한 나. 그 모든 모습이 하나의 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나’라는 사람이 어디서든 하나의 모습을 비춰야 주변 사람들이 저를 더욱 믿고 따라주는 것 같거든요. 그 모습에 저는 행복을 느끼고요. 삶의 균형을 오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소중히 돌보면서 천천히, 꾸준히 노력하며 살고 싶어요.
#도자기 #홈테이블 #그릇 #소일베이커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소일베이커
생활의 미감을 끌어올리는 공간을 찾아갑니다. 트렌드는 물론 고유성과 정체성을 갖춘 디자인부터 음식, 공간 속 숨은 이야기까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보고, 듣고, 먹는 특별함을 선사합니다.

소일베이커 양혜린 대표.
‘흙을 굽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소일베이커’ 양혜린 대표는 진정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산업디자인, 요리, 레스토랑 베이커리 등 누구의 강요도 아닌 오직 자신의 의지로 시작한 경험은 약 10년의 대장정 끝에 ‘도자기’라는 종착역에 도달했다.


디자인과 요리를 접해본 양혜린 대표의 시선이 테이블웨어로 향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그는 “당시 국내에 부담 없이 오래 사용할 수 있는 테이블웨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며 “디자인이 뛰어나면 가격이 비싸고, 저렴한 제품은 퀄리티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세련된 디자인, 부담 없는 가격, 편안하면서도 효율적인 테이블웨어 브랜드가 국내에 있으면 좋겠다고 느낀 것. 그 후 기획부터 제품 라인업, 마케팅 등 브랜드 론칭을 위한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냈고, 약 1년간의 준비 끝에 2015년 소일베이커를 열었다.
소일베이커는 도자기의 쓰임과 음식의 담음새를 생각하며 만든 테이블웨어를 선보인다. 사실 ‘도자기’ 하면 근엄하고 무거운 느낌이 강하다. 생활 식기로는 음식을 담는 기능만 강조됐을 뿐 아티스트적으로 디자인된 케이스는 많지 않다. 양혜린 대표는 “도자기가 사람들에게 더욱 친근한 존재가 되길 바랐다”며 “평소 음식을 먹을 때 가치를 뒀던 그릇의 사용이나 조화 등이 도자기 사업으로 이어지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양혜린 대표는 꾸밈없이 솔직하고,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이다. 도자기를 활용해 일상에서 필요한 걸 만들고 이를 통해 디자인, 요리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런 그에게 소일베이커를 이루는 것들과 공간이 주는 힘, 그리고 다가올 새로운 챕터에 관해 몇 가지 물음을 던졌다.

산업디자인과 요리를 빼놓고 소일베이커를 논할 수 없어요. 브랜드의 탄생은 물론 정체성, 특별함을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을 줬거든요. 산업디자인은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것’을 넘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등 효율성까지 추구하는 학문이에요.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며 익혔던 학습 덕분에 디자인과 효율성이 조합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죠. 또 다양한 테이블웨어 라인을 구축할 수 있었던 건 요리의 영향이 커요. 요리를 통해 조리 기술뿐만 아니라 플레이팅, 서빙의 흐름, 음식이 그릇에 담기고 나눠지는 구조까지 파악할 수 있었거든요. 브랜드 론칭을 위해 산업디자인과 요리를 공부한 건 아니지만, 두 영역이 시너지를 내며 소일베이커만의 특별함을 구축했다고 생각해요. 덕분에 그릇이라는 한정된 카테고리 안에서도 더 깊고 다층적인 고민을 할 수 있었고요.
테이블웨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며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을 것 같아요.
디자이너와 운영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조금 더 예쁘고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디자이너의 마음과 합리성, 실용성을 중시하는 운영자로서의 가치가 늘 상충했거든요. 또 도자기라는 소재 자체가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고 변수가 많더라고요. 흙, 유약, 불 등 모두 자연을 기반으로 한 재료들이라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죠. 초반에는 이럴 때마다 빨리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상황이 크게 바뀌진 않더라고요. 오히려 유연한 자세를 가지고 차분하게 대응해야 스트레스도 덜 받고 그릇의 완성도도 높아졌죠. 그래서 지금은 제품 스케줄을 최대한 여유 있게 잡고 있어요. 또 언제든 변수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항상 긴장감을 가지고 있고요. 도자기가 가진 고유한 속도에 맞춰가는 법을 조금씩 터득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비용적인 제약이 컸어요. 브랜드 초기에는 볼이나 커팅 매트처럼 재료를 손질하고 준비할 때 사용하는 도구를 론칭한 뒤 점차 확장할 계획이었어요. 그래서 스테인리스나 친환경 플라스틱 등을 다루는 공장을 많이 찾아다녔는데, 몰드 비용부터 생산 수량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더라고요. 그러다 발견한 게 도자기였어요. 도자기는 산업디자인을 공부할 때 많이 접했던 재료라 친숙했고, 소량 제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대안이 됐죠. 지금 다른 소재에도 관심을 갖고 있지만, 도자기가 메인인 건 변함없어요. 무엇보다 도자기를 오랜 시간 다뤄보니 도자기로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당분간은 도자기에 집중할 계획이에요.
소일베이커의 제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나요.
제품 라인이나 목적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활용성과 구성을 가장 먼저 고민해요. 브랜드 초기에는 한식과 양식을 모두 담아낼 수 있도록 무광 유약과 소지(흙)의 질감을 살리는 데 집중했어요. 그 후에는 한국의 아름다움과 ‘맛미(味美)’를 전하고자 하는 취지의 미담 라인 등 다양한 영감을 기반으로 한 제품을 기획해왔습니다. 기획이 어느 정도 확정되면 스튜디오에서 샘플을 만들어요. 저를 비롯한 스태프가 샘플을 실제로 사용해보면서 여러 차례 수정 단계를 거치죠. 모두가 만족할 만한 퀄리티가 나오면 출시되고요. 소량이나 1차 제작만으로도 판매가 가능한 제품은 스튜디오에서 직접 생산하지만, 대부분은 경기도 여주에서 제작합니다.
도자기의 고장이라는 명성 때문에 여주를 선택한 건가요.
맞아요. 여주는 특히 생활 도자기 제작에 월등해요. 일상 속 테이블웨어를 선보이는 소일베이커의 의도를 가장 잘 구현해낼 수 있는 곳이죠. 사실 여주의 공방, 공장들과의 협업이 처음부터 순탄치는 않았어요. 가격적인 메리트는 있었지만 디자인 표현 및 생산 과정에서 한계점이 존재했거든요. 그럼에도 천천히 맞춰나가면서 약 10년을 함께하고 있어요. 그간의 작업을 통해 소일베이커는 물론 관계 업체들도 많이 발전하고 변화했거든요. 지금처럼만 협업해나가면 충분히 새롭고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도자기를 다루기 힘들진 않나요.
도자기는 정말 예민하고 까다로운 그릇이에요. 매번 다양한 변수가 존재해서 항상 플랜 B를 고려해야 하죠. 특히 여주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샘플 몰드를 먼저 제작한 뒤 다양한 테스트를 거쳐요. 같은 소지와 유약을 사용하더라도 가마의 특성, 온도, 환경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때문에 이 과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테스트를 통과하면 본격적인 생산을 위한 몰드를 만들고 이후 본생산에 들어가요. 이 단계에서도 역시 다양한 변수가 존재합니다. 10년째 꾸준히 생산 중인 제품도 흙의 굽힘이나 유약 반응에 따라 작은 차이가 생기거든요. 그래서 모든 제품을 생산 이후에도 계속 관찰하고 조정, 연구해가며 완성도를 높이고 있어요.

소일베이커 정동점은 서울시 중구 신아기념관 안에 위치해 있다. 낮은 조도와 아늑한 분위기로 브랜드의 고유성을 담아냈다.


소일베이커가 신사동에 자리 잡은 지 10년, 정동은 이제 3년이 됐어요. 많은 분이 소일베이커의 첫 공간을 정동점으로 생각하시더라고요. 아늑하고 고요한 공간의 분위기와 브랜드의 무드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인 것 같아요. 사실 소일베이커 정동점이 위치한 신아기념관은 처음부터 계획했던 공간은 아니었어요. 우연히 소개받아 방문했는데 한눈에 반해버렸죠.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들어오는 길, 오래된 붉은 벽돌, 창밖으로 보이는 덕수궁 중명전의 풍경까지. 그 안에서 소일베이커의 다양한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거든요. 정동점은 철저하게 브랜드의 고유성을 담아낸 곳이에요. 공간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도록요.
정동점은 조금 어둡고 조용한 무드라면, 압구정점은 밝고 활기찬 분위기예요.
압구정점은 좀 더 일상에 가까운 공간이에요. 정동점이 하나의 풍경처럼 조용하고 느린 감도를 담았다면 압구정점은 도시 안에서의 리듬과 흐름을 반영했죠. 그래서 좀 더 밝고 유연한 분위기를 풍겨요. 압구정점에는 쇼룸뿐만 아니라 사무실, 도자기 스튜디오, 요리 스튜디오까지 함께 있어요. 이곳을 구상할 때 가장 주안점을 뒀던 게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것’이었거든요. 도자기가 어떤 고민과 기획 단계를 거쳐 제작, 포장돼 고객에게 전달되는지 그 흐름이 직접 느껴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죠. 더불어 고객들이 매장에서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며 자신만의 식생활에 대입해볼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그릇이 식탁 위에 놓였을 때 어떤 장면이 그려질지까지 상상할 수 있도록요. 그래서 공간에 조명과 가구의 밀도를 높이고 각 제품 라인을 비교, 조합해볼 수 있도록 큐레이션했습니다. 정동점이 소일베이커의 공예스러운 결을 보여준다면 압구정점은 일상의 흐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도자기로 꾸민 일상의 따뜻한 순간
두 지점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지만 화이트 톤, 넓은 통창, 여유로움 등 공간을 이루는 요소들은 비슷한 것 같아요.일상에서 사용하는 도자기를 만들다 보니 공간 역시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고 있어요. 저희는 늘 사람들이 소일베이커의 제품에 가치를 둘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요. 그릇이 단순히 소모되는 제품이 아니라, 편안하면서도 소중함이 깃든 존재가 되길 바라거든요. 그 마음이 공간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소일베이커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무드는 너무 딱딱한 화이트 큐브의 구조도, 부담스러운 고급 갤러리도 아니에요. 길 가다가 부담 없이 들어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 점을 베이스로 조명, 소품 등에만 변화를 주며 새로운 지점을 만들어나가고 있어요. 손님들에게 종종 “여유로운 미술관에 놀러 온 느낌”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그때마다 소름이 끼쳐요. 저희의 의도를 100% 알아주신 것 같아서요.


밝은 분위기의 소일베이커 압구정점. 조명, 가구 등을 활용해 테이블웨어가 일상에 흡수된 모습을 표현했다.
모든 걸 스스로 해내야 했던 론칭 초기에는 제 취향이 많이 반영됐어요. 하지만 지금은 팀원들과 함께해나가기 때문에 좀 더 균형 잡힌 결과물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소일베이커 본래의 잔잔하고 투박한 디자인 위에 팀원들의 다채로운 감각이 더해지고 있거든요. 이로 인해 브랜드 자체도 더욱 풍성해졌고요. 앞으로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기대도 됩니다.
그릇의 진열 방법도 궁금합니다.
저희는 시즌에 따라 그릇을 달리 세팅해요. 계절마다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 다르듯 그에 어울리는 그릇도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시즌별로 추천 라인을 구성하고, 제품의 진열 방식이나 배치를 조금씩 바꿔가며 계절의 리듬을 공간 안에 녹이고 있어요. 또 같은 그릇이라도 계절, 무드에 따라 달리할 수 있는 세팅 방법도 선보여요. 집집마다 주방, 테이블 등의 분위기가 다르잖아요. 손님들이 그릇을 자신의 공간에 두었을 때 어떻게 어우러질지 상상할 수 있도록 여러 소재와 컬러를 입은 도구들도 함께 세팅하죠. 같은 그릇이라도 조명, 배경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주니까요.
소일베이커는 합리적인 가격대로도 유명해요. 퀄리티와 가격은 상충하는 면이 많을 텐데 어떻게 타협하나요.
사실 너무 고민되는 부분이에요. 퀄리티를 높이면 투자 비용이 증가하는데, 그러면 결국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거든요. 하지만 저희는 좋은 제품을 더 많은 분이 부담 없이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가격대를 높이지 않기 위해 재료 선택부터 생산 과정까지 정말 많은 고민과 타협을 합니다. 소일베이커의 운영 원칙 중 하나인 ‘스스로 사고 싶은 제품을 만든다’처럼, 디자인과 품질은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을 지켜내는 것이 저희의 방향이자 목표거든요. 이 같은 균형을 앞으로도 꾸준히 지켜나갈 예정이고요.
소일베이커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요.
브랜드 고유의 결과 분위기는 변하지 않을 거예요. 10년 후에도 도자기를 기반으로 한 다이닝 컬처 작업을 이어나가고, 쇼룸을 통해 고객과 내밀한 관계를 유지할 계획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컬러, 무늬 등 작은 요소에 포인트를 준 제품을 선보이고 싶어요. 현재의 제품 디자인에 재미있는 요소들을 추가하는 식으로요.
대표님 개인적인 목표도 궁금해요.
가족으로서의 나, 일하는 나, 친구로서의 나 그리고 온전한 나. 그 모든 모습이 하나의 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나’라는 사람이 어디서든 하나의 모습을 비춰야 주변 사람들이 저를 더욱 믿고 따라주는 것 같거든요. 그 모습에 저는 행복을 느끼고요. 삶의 균형을 오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소중히 돌보면서 천천히, 꾸준히 노력하며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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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소일베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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