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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레이디 가가 코르셋 의상은 단 한 사람을 위한 특별함을 상징해요”

코첼라 속 화제의 디자이너 규리킴

전혜빈 기자

2025. 06. 05

로맨틱 쿠튀르의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있는 한국인 디자이너 규리킴에게
레이디 가가 코첼라 무대 의상 제작 뒷얘기를 들었다.

레이디 가가, 샘 스미스, 도자 캣 등 과감한 패션의 팝 스타들이 선택한 한국인 디자이너 ‘규리킴’을 만났다. 올해 서른한 살인 김규리 씨는 런던 패션 스쿨 센트럴 세인트 마틴과 세계 최상위권 예술 명문 대학 왕립예술학교에서 수학하고 2023년 본인의 이름을 딴 브랜드 ‘규리킴’을 론칭했다. 브랜드 초반부터 현아, 아이브 등 국내 셀럽의 선택을 받았고, 급기야 올해 코첼라 페스티벌 무대에서 레이디 가가가 입은 의상을 디자인해 화제를 모았다. 해당 의상은 레이디 가가 공연 중 재생된 VCR 화면을 통해 공개됐다.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자리 잡은 그의 작업실에 들어선 순간, 과감한 형태의 피스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손바느질로 완성한 플리츠, 정교한 코르셋, 구조적인 크리놀린을 보니 동화 속 세상 같았다. 언밸런스하면서도 거친 텍스처, 독특한 실루엣 때문에 어떤 이들은 그의 옷을 두고 “잔혹 동화 같다”고 평하기도 한다. 

다소 퇴폐적이면서도 로맨틱한 외피 뒤에는 디자이너로서의 뚜렷한 가치관이 묻어있다. 규리킴은 재고 원단, 버려진 커튼 등을 재활용해 수작업으로 옷을 만든다. 그는 “환경이 무너지면 패션도 다 소용없다”고 말한다. 그의 또 다른 철학은 되도록 같은 피스의 옷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옷을 입은 사람 모두가 특별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늘 스스로에게 패션의 본질을 묻고, 아름다움의 새로운 기준을 제안하는 디자이너.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패션의 미학을 확장해나가는 규리킴을 소개한다. 

“배고파도 용돈 모아 옷 샀어요”

언제부터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나요.

중고등학생 때부터 옷을 정말 좋아했어요. 용돈을 받으면 옷을 사는 데 다 썼죠. 배를 곯더라도 옷 사는 건 못 참겠더라고요. 친구들이 좀 안 어울리게 옷을 입었다 싶으면 집에 데려가서 제가 가진 옷으로 더 멋있고 예쁘게 꾸며주는 걸 좋아했어요. 학교 다닐 때도 기술·가정 시간에 뭔가를 손으로 만드는 순간이 가장 즐거웠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게 됐어요.



전공이 패션 디자인이 아니라 마케팅이던데요.

패션디자인과를 정말 가고 싶었는데, 앉아서 하는 공부를 너무 싫어해서 성적이 안 좋았거든요. 어쩔 수 없이 점수에 맞춰 전공을 선택하다 보니 마케팅을 공부하게 됐어요. 그런데 역시나 공부에는 관심이 없더라고요. 졸업만 겨우 하고 서울패션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해서 패션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패션을 전공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요.

일단 두 분은 평범한 회사원이신데, 저를 완전히 이해해주진 못하셨어요. 부모님께서는 왜 이렇게 외면에만 신경 쓰냐고 혼내기도 하셨죠. 그래도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게 제 일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어요. 지금은 부모님께 좋은 결과물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기분 좋고, 또 부모님도 그런 저를 인정해주세요. 

영국 유학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한국에서는 봉제 등 디자인보다는 기술 위주의 교육을 받았어요. 셔츠 기본, 스커트 기본처럼 만들 수 있는 게 한정적이었죠. 그런데 저는 치마를 언밸런스하게 만들어보고 싶고 셔츠에도 퍼프소매를 달아보고 싶었어요. 더 실험적인 디자인을 해보고 싶었죠. 교수님께 제가 원하는 것을 말씀드리니까 유학을 권하셨어요. 바로 그 길로 유학을 결심하게 됐어요. 

영국에서는 어떤 걸 배웠나요. 

센트럴 세인트 마틴은 한국처럼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시스템이 아니에요. 옷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알아서 디자인해 오라는 식이죠.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곧 익숙해졌어요. 오히려 선생님들이 간섭을 최소화하고 학생이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두는 점이 저의 성향과 잘 맞았죠. 한국에서는 옷을 만드는 순서와 규칙을 배웠다면, 그곳에서는 규칙을 지키지 않고 마음껏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그런 환경이 자유분방한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런던 대학 코스튬에서도 근무했는데, 당시 샘 스미스의 백업 댄서 옷을 제작했다고요.

런던 대학 코스튬에서는 옷 만드는 법을 학생들에게 차근차근 알려주는 일을 했어요. 그러면서도 저만의 옷을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곤 했죠. 그것을 보고 미국의 팝 스타 아시니코의 스타일리스트가 옷을 빌려간 적이 있어요. 아시니코의 스타일리스트가 샘 스미스 스타일리스트한테 저를 추천했고요. 그래서 샘 스미스 백업 댄서 의상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정말 힘들고 정말 재미있었어요. 일단 시간이 너무 촉박했어요. 3일 동안 옷을 5피스나 완성해야 했거든요. 또 이틀 만에 옷을 가봉해서 샘 스미스의 댄스 연습실로 가야 했어요. 20~30명의 댄서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니 정말 멋있더라고요. 춤 연습을 하는 중간에 메인 댄서들에게 가봉한 옷을 입히고 안 맞는 부분을 수정했어요. 스타일리스트, 댄서분들의 반응이 모두 만족스러워서 신나게 옷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브랜드 론칭 전에 다양한 일을 경험했는데요. 

알렉산더맥퀸에서 패턴사로 일하기도 했고요.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어요. 또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로도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 길진 못했어요. 어디까지가 제 일의 범주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 경험 덕분에 결국 저는 스스로 일을 기획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게 제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내 이름, 규리킴

‘규리킴’이라는 브랜드 기획은 어떻게 했나요.

어떤 이름도 오래되면 식상할 것 같았어요. 그러느니 평생 저와 함께하는 제 이름으로 브랜드를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옷을 만드는 건 아니에요. 제가 디자인한 옷을 만들기 위해 돈이 필요할 뿐이죠.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걸 목표로 삼고 있어요. 

인스타그램 소개글에서 ‘one of a kind upcycled handmade collection(단 하나뿐인 업사이클 핸드메이드 컬렉션)’이라는 문구가 눈에 띕니다. 

저는 길거리에서 저와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그 옷을 다시 입지 않아요. 만들 때도 마찬가지예요. 제 옷이 그 옷을 입은 사람한테만 특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거든요. 똑같은 피스의 옷을 거의 만들지 않고 핸드메이드를 고집하는 이유입니다. 환경에는 원래 관심이 많았어요. 패션업계에서는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잖아요. 패션의 제작과 소비 패턴은 결국 환경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죠. 그래서 ‘패션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을 한 적도 있어요. 그런 와중에 업사이클이라는 해답을 얻었습니다. 사용하지 않은 재고 원단이나 커튼 등을 세탁해서 옷을 만들면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제가 원하는 아름다움을 완성해낼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코르셋이나 치마를 부풀리는 크리놀린 등의 디테일이 규리킴 옷에서 많이 보이는데요.

저는 앤티크한 것을 좋아해요. 특히 중세 유럽풍의 물건들을 좋아하죠. 영국에 가서 건축물이나 예술품을 보면 정말 경이로워요. 한국에서는 이태원 소품 숍에서 천사 석상 같은 것을 사곤 합니다. 코르셋이나 크리놀린도 그런 앤티크한 디테일이 들어가는 아이템이라서 좋아요.

코르셋이나 크리놀린을 만드는 과정은 어떤가요.

처음에 코르셋을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웠어요. 한국에서는 어떤 책에도 코르셋 만드는 법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해외에서 책을 주문해 코르셋을 만들었죠. 유튜브로 만드는 법을 찾아보기도 하고요. 사실 판매용 옷은 효율적인 제조 과정을 추구해요. 하지만 코르셋이나 크리놀린은 그런 과정에서는 미처 보이지 않는 엄청난 정성이 들어가거든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평범한 옷은 너무 많잖아요. 저만의 노력이 들어간 실루엣을 계속 탐구해나가고 있어요.

규리킴 브랜드 초반부터 현아, 아이브 등 다양한 셀럽이 옷을 입었어요. 팝 스타들과 작업도 함께했고요. 규리킴 인생에도 ‘실패’라는 것이 있었나요.

대학 석사과정 졸업 이후에 일 구하기가 어려워서 런던 한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 집에 오면 프리랜서로 다른 디자이너들 옷을 봉제하는 아르바이트를 또 했죠. 그런 생활을 1년 넘게 하고 나서야 런던 대학 코스튬과 알렉산더맥퀸에 근무하게 됐어요. 한국에서는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모전에도 많이 출품했는데, 떨어졌었고요. 

그래도 결국 많은 이의 선택을 받았네요.

제가 사실 공모전이나 면접에 약해요. 저 자신을 드러내거나 제 작품을 브리핑하는 것을 잘 못 하더라고요. 저는 제가 추구하는 스타일의 옷을 만드는 데만 재주가 있나 봐요. 그럼에도 규리킴을 알아봐 주시고 입어주시는 분들이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레이디 가가가 코첼라 페스티벌 VCR 화면에서 규리킴의 흰색 코르셋 드레스를 입었다.

레이디 가가가 코첼라 페스티벌 VCR 화면에서 규리킴의 흰색 코르셋 드레스를 입었다.

규리킴의 2025 SS 컬렉션. 코르셋과 크리놀린을 활용한 독특한 실루엣이 눈에 띈다.

규리킴의 2025 SS 컬렉션. 코르셋과 크리놀린을 활용한 독특한 실루엣이 눈에 띈다.

레이디 가가의 코르셋을 만들다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레이디 가가가 규리킴의 피스를 입어 화제가 됐어요.

샘 스미스 스타일리스트가 당시 레이디 가가 스타일링을 맡고 있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저와도 연결이 됐죠. 레이디 가가가 입을 피스가 필요한데, 입을지 확실하진 않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코첼라 무대에서 입을지도 몰랐고요. 그래서 정말 레이디 가가가 입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옷을 만들었고 결국 선택받았죠. 

레이디 가가 의상 작업에서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일단 레이디 가가가 입었던 의상을 많이 찾아봤어요. 화려하고 과감한 디자인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평범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스타일리스트 팀에서 장식이 있는 화이트 톤의 의상을 요구했어요. 코르셋 느낌이되 너무 몸을 조이지 않고 활동이 가능한 옷을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있었어요. 의뢰인의 요구에 맞추는 것도 제 역할이죠. 

주로 무대 의상을 만드는 건가요. 

사실 한국에서는 이런 코르셋과 드레스를 무대 의상이라고 여기죠. 하지만 외국에서는 그렇지 않거든요. 식사 자리나 이런 옷을 입고 싶은 날에도 드레스를 입어요. 그래서 저는 제 의상을 굳이 무대 의상이라고 정의하진 않습니다.

옷을 짓기 전에 입을 사람을 생각하나요.

아니요. 저는 오히려 옷을 만들면 그 옷의 주인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페르소나를 정해놓고 옷을 만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특정한 누군가를 생각하고 옷을 만들지는 않아요. 제가 만들고 싶은 이미지를 표현해놓으면 어떤 누군가가 와서 그 이미지를 더 완성하는 느낌이랄까요. 저와 추구하는 이미지가 비슷한 분들이 제 옷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요.

‘시간이 지나도 잃지 않는 것’이요. 한참 뒤에 봐도 여전히 아름답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해요. 자연스러운 것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질리지 않으니까요. 

작업할 때 아름다움을 위해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해요. 의상이 너무 섹시하거나 너무 여성스럽거나 너무 귀엽거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해요. 다양한 아름다움을 담으려고 하죠. 그래서 수정을 많이 합니다. 그래도 저만의 스타일은 있죠. 어떤 분은 규리킴의 스타일을 ‘잔혹 동화’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버석한 느낌에 로맨틱함을 섞은, 이렇게 상반된 무드를 조화롭게 표현하는 것이 규리킴의 스타일인 것 같아요.

올해 하반기 계획은 무엇인가요.

만들고 싶은 옷이 너무 많아요. 아이디어는 많은데 제 몸과 손이 못 따라오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제 아이디어를 실현해나가는 것이 1순위입니다. 예를 들면 의상에 좀 더 비즈를 달거나 등에 장식적인 포인트가 많이 들어간 피스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브래지어, 재킷 등 다양한 아이템에 코르셋을 활용한, 실루엣에 변주를 준 피스들을 제작할 계획입니다.

#규리킴 #레이디가가 #코첼라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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