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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고통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육아휴직 감행 공군 조종사 이상범 대위

EDITOR 조윤

입력 2019.12.12 17:25:24

남성이 대부분인 수직적 군 조직에서 당당히 육아휴직을 감행한 이상범 대위. 1년간의 육아를 통해 그가 얻은 건 ‘아빠의 육아 없이 행복한 가정도 없다’는 깨달음이다.
“아내 고통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육아는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자 사람이 살아오면서 가장 오랫동안 끊임없이 해온 일임에도 왜, 어째서,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여전히 힘들기만 한 걸까. 

여기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육아가 덜 힘이 들기 위해선 ‘아빠 육아’가 필수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 이상범(32) 대위는 “육아는 여성이 해야 한다는 말뚝 같은 생각에서 우리 모두가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1년간의 육아휴직을 통해 ‘육아 전쟁’을 직접 치러본 전직 ‘전업육아대디’의 뼈 있는 충고이자 조언이다. 

올해 각각 다섯 살, 한 살 된 남매를 둔 이 대위는 첫째 딸이 15개월 됐을 무렵인 2017년 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육아휴직을 내고 직장에 다니는 아내를 대신해 아이를 돌봤다. 시작은 앞서 ‘독박 육아’를 하며 지친 아내가 던진 한마디 “네 아이니 네가 한번 키워봐”라는 말에서 비롯됐다. ‘그깟 육아쯤’이란 생각으로 호기롭게 도전한 육아 대디의 삶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고 체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군인 아빠는 24시간 잠시도 쉴 틈 없는 육아, 가사와의 전쟁에서 무참히 패배했다. 잔병을 달고 사는 건 물론 우울증까지 찾아오며 몸과 정신이 함께 메말라갔다. 

힘들고 또 힘든 육아를 직접 경험한 뒤 그는 오늘도 육아로 본인 없는 하루를 보냈을 이 땅의 수많은 육아맘들의 고충을 깊이 이해하게 됐고, 육아는 반드시 아빠도 함께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담아 지난 10월 ‘아빠 육아로 달라지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놨다. 이 책은 어떻게 아이를 키울 것인지를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부모에 집중하고 어떻게 육아를 바라봐야 하는지에 초점을 둔다. “아빠가 함께 육아하면 인생이 바뀐다”고 말하는 이 대위의 ‘육아병법’은 무엇일까.


“아내 고통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군인으로서 육아휴직을 하는 게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드문 경우지만 저희 군에서는 앞서 남성 부사관과 장교가 육아휴직을 했어요. 조종사의 경우 연간 계획이 전년도에 이미 완성되기 때문에 육아휴직이 쉽지는 않죠. 남성 조종사 중에 딱 한 분이 육아휴직을 냈는데 그분은 부부 모두 조종사라 좀 특별한 경우였고요. 어쨌든 제도적으로 보장이 되는 일이니 아무 문제가 없을 걸로 생각했어요. 윗분들은 육아휴직 시 따르는 경제적 어려움을 걱정해주기도 하셨지만 ‘조종사가 육아휴직을 해도 되냐’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있던 것도 사실이죠. 



육아를 직접 해보니 어떻던가요. 

솔직히 육아휴직을 하기 전엔 아이를 보며 집에서 쉬고 싶은 생각이 컸어요. 한 손엔 커피를 들고 한 손으론 유모차를 끌고 다니며 육아하는 유럽의 ‘라테 파파’를 동경하기도 했죠. 휴직 전 아빠 육아 관련 책을 섭렵했는데도 현실은 전혀 다르더군요. 아이는 ‘눈뜬 순간부터 잘 때까지 함께 있는 직장 상사’ 같았어요. 24시간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죠.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매년 정기적으로 체력 테스트를 통과해온 만큼 체력은 자신 있었는데 휴직 기간 동안 잔병치레를 많이 했어요. 감기는 달고 살았죠. 원래 모든 걸 계획한 뒤 실행하는 성격인데 육아와 가사는 내 맘대로 되는 게 없었죠.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땐 ‘짐승’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웃음). 

엄마의 육아와 아빠의 육아에 차이가 있나요. 

아빠가 엄마보단 육체적으로 더 오랫동안 활발하게 놀아줄 수 있다는 것 외엔 누가 더 잘하고 말고는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아빠의 육아가 선행돼야 전체적인 육아를 잘할 수 있단 거예요. 대부분의 가정에선 아내가 육아를 하죠. 그런데 남편도 육아를 해봐야 아내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고,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남편이 덜어줘야 아내가 스스로를 돌보며 재충전하고 다시 육아할 힘을 얻을 수 있어요. 

책의 핵심이 바로 아빠 육아가 필수란 거죠. 육아를 하면서 책까지 낸 이유가 뭔가요. 

우선 저처럼 어려움을 겪었고 겪고 있는 엄마들을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육아의 주체가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해야 제대로 된 육아를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육아 서적이 그 부분에 대해선 많이 다루지 않아요. 육아는 원래 힘든 거고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엄마 육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시대를 끝내고 싶었어요. 육아는 여성이 해야 한다는 사회의 편견이 있잖아요.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주지도 않고요. 직접 경험해보니 육아를 강요받는 사회에서의 여성들의 어려움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선진국처럼 아빠, 엄마 구분 없이 부부가 함께 육아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단 포부가 생기더군요. 


“아내 고통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 직장에서 남성이 육아휴직을 내는 게 현실적으로 쉽진 않아요. 

아빠도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를 키워보는 게 육아를 확실히 이해하는 방법이에요. 하지만 가정마다 생각과 사정이 다르고 사회적 제도도 한계가 있으니 무조건 남성도 육아휴직을 하라기엔 무리가 있죠. 그래서 중요한 건 일을 하는 남편이 아내의 도움 없이 하루 중 온전히 육아를 전담하는 시간을 갖는 거예요. 부부가 저녁 식사를 오후 7시에 마치고 아이가 10시쯤 잔다고 치면 남편이 육아를 할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정도예요. 이때 한 시간 반은 온전히 육아만, 나머지 반은 온전히 가사만 할 것을 권해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남편이 직접 육아를 해보고 아내를 이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에요. 

비슷한 맥락에서 ‘육아에 있어 반드시 양육자를 변수로 고려하라’고 강조하기도 했어요. 

뜻대로 되지 않는 육아로 심한 우울증을 앓았어요. 육아휴직을 하고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면서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이 오히려 실수를 불렀고, 죄책감이 곧 우울감으로 이어지더군요.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고 모든 게 의미 없게 느껴졌어요. 결국 아이를 돌보기 힘든 상황까지 갔죠. 저처럼 많은 이가 육아에 있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만을 생각해요. 하지만 그보다 주 양육자에 대한 배려가 선행돼야 해요. 오로지 자신만 생각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육아는 힘든 일이니까요. 비행기를 타면 ‘비상 상황 발생 시 유아를 동반한 승객은 먼저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뒤 아이에게도 씌워주세요’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잖아요. 부모의 안전이 담보돼야 아이도 돌볼 수 있단 의미죠. 

주 양육자에게 어떤 배려가 필요하다고 느꼈나요. 

제가 제안하는 건 ‘육아휴가’ ‘육아수당’ ‘복직에 대한 다짐’이에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육아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 해요. 운동이든 모임이든요. 또 육아를 하다 보면 ‘이 커피 한 잔 값이면 키즈 카페 한 시간인데…’라는 생각을 하며 모든 돈을 아이에게만 투자하게 되죠. 하지만 부부가 합의해 생활비의 일부는 주 양육자에게 육아수당으로 주면 좋겠어요. 육아수당이 있으면 정당한 노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저는 생활비 가운데 10만원을 육아수당으로 하고 맛있는 걸 사 먹었죠. 또 아이가 자라서 어린이집에 갈 때쯤이면 갑자기 여유 시간이 생기면서 공허함을 느끼기도 쉬워요. 하지만 그땐 복직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고 여성들의 경우 남편이 복직을 말리는 경우도 많더군요. 가능하다면 육아에 앞서 복직에 대한 계획과 다짐을 해두세요. 그래야 육아하는 동안 정신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요. 

그래서 결국 ‘아빠 육아로 달라지는 것들’은 무엇이었나요. 

육아, 정말 힘듭니다. 하지만 제가 육아를 함으로써 아내가 조금 더 편하게 일할 수 있게 되고, 그 덕분에 가정이 화목해진 게 가장 큰 보람 아닐까요. 복직한 지금도 귀가 후엔 일정 시간 반드시 육아를 하니 두 아이 모두 저를 아주 잘 따라요. ‘가화만사성’이라고 하잖아요. 남편의 육아는 가정의 기쁨을 가져옵니다.
 
같은 남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많은 남성이 직장에서 밤늦게까지 고생하며 일하는 게 가정을 위해서라고 생각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다면 아내의 마음을 다시 한 번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요즘 황혼 이혼과 졸혼을 하는 부부가 크게 늘고 있어요. 젊은 시절 육아와 가사로 고통 받은 아내들이 이제는 자신의 삶을 살겠다며 이별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이런 걸 보면 아빠 육아는 결국 남편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도 해요. 지금 아내와 아이, 가정을 돌보지 않으면 나와 내 가정의 미래는 더 힘들어질 거예요. 한편으론 남성의 육아와 육아휴직에 대해 양가 부모님의 반대, 직장 내부의 따가운 시선과 주위의 편견 등 외부적 제약도 존재하죠. 이 역시 남성들이 스스로 바꿔나가야 해요. 부부가 함께하는 육아 문화를 만들어놓으면 아이들이 자라 더 행복한 미래를 누릴 수 있을 겁니다. 아빠 육아는 나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행복 저축’이에요.


기획 정혜연 기자 사진 박해윤 기자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이상범




여성동아 2019년 12월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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