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쿠르디와 형 갈립.
우리에겐 멀고도 생소한 땅 시리아에 내전과 이슬람 무장 세력 IS의 등장, 대규모 난민 사태라는 무시무시한 불행의 씨앗이 날아든 것은 최근의 일이다.
20011년 시리아에서 발발한 반정부 시위는 대규모 유혈 사태로 이어졌고, 정부군과 반정부군 사이의 충돌은 미국과 러시아, 이란 등 제3국들의 개입으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됐다. 2001년 발발한 9 · 11 테러의 배후로 알카에다를 지목한 미국은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고 알카에다의 우두머리 알 자르카위를 사살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알카에다 세력은 새로운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 IS를 조직한다. 2010년 IS는 주활동 무대를 이라크에서 시리아로 옮기고 반군 세력들과 결탁해 세를 넓혀나갔다. 그러다 최근에는 정부군과 반정부군, IS가 각축을 벌이는 삼각구도로 전쟁의 양상이 변화했고,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 시리아 땅에 살고 있던 민간인들이다.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가 20만 명을 넘어섰으며, 폭격으로 도시가 파괴되고 생활 터전이 무너져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됐다. 이 때문에 1천8백만 명의 인구 중 절반 이상이 시리아 땅을 벗어나 난민 신분으로 이웃 국가를 떠돌거나 배 또는 육로를 이용해 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시리아 인구 절반이 탈출, 난민 수용으로 고민하는 유럽
영국의 한 어린이가 ‘난민에게 방을 제공하겠다’는 문구를 들고 정부의 관심을 요구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난민을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이들 국가들이 끝없이 유입되는 난민들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난민을 향한 인도주의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늘어나는 한편으론, 극우주의자들의 반이민 정서도 세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쿠르디의 죽음은 유럽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난민 문제를 조금 더 적극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전쟁의 고통과 참혹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우리에게 쿠르디의 죽음은 아이의 죽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 디자인 · 김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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