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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마야의 일기장을 엿보다

“떠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기획 · 김유림 기자 | 글 · 김성욱 자유기고가 | 사진 · 조영철 기자

입력 2015.04.01 11:10:00

마야가 에세이를 출간하고 작가로 데뷔했다.
로커 ‘마야’가 아닌 여자 ‘김영숙’의 일과 가족에 대한 솔직 담론.
가수 마야의 일기장을 엿보다
가수 마야(본명 김영숙·40)가 앨범이 아닌 책을 들고 돌아왔다. 6년 전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 일주를 했던 여정을 담은 로드 에세이집 ‘나 보기가 역겹다’(뮤토뮤지크)를 출간한 것. 카리스마 여전사, 폭발적인 가창력 등 가수 마야를 수식하는 단어는 주로 강한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출간한 책 역시 뭔가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가수 마야가 아닌 인간 ‘김영숙’이 오랫동안 다락방에 간직했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지난 2009년 마야는 오토바이에 옷 두 벌을 싣고 전국에 있는 람사르 습지를 찾아다녔다. 람사르 습지는 람사르협회가 지정, 등록하여 보호하는 습지로 우리나라에서는 경남 창녕 우포늪, 전남 무안갯벌과 순천만 보성갯벌 등이 대표적이다. 11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마야는 틈틈이 여행에서 느낀 감정과 기억들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기를 6년, 조각조각 흩어진 글들이 하나의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다.

“그때 나이가 서른넷이었어요. 그동안 가수, 연기자라는 이름으로 달려왔는데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죠. 생명력이 느껴지던 ‘진달래꽃’이라는 노래는 데뷔 때의 천진함이나 순수함은 사라지고 원숙한 중견 가수의 ‘진달래 할미꽃’이 되어 버렸더라고요(웃음). 표류하는 정체성에 대한 작은 실마리라도 찾고 싶어서 무작정 여행을 떠났어요. 그때는 일탈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폭발 직전이었거든요.”

여행을 떠나는 순간, 마야의 인생은 새롭게 시작됐다. 낯선 곳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도 큰 감동을 주었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 것 자체가 이미 그에게는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

그는 습지 투어를 준비하면서 무리인 줄 알면서도 마치 해치워야 할 숙제라도 되듯 빡빡한 일정을 짜 내려갔다. 첫날 인천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를 시작으로 태안(두웅 습지)-무안(갯벌)-목포를 거쳐 제주도는 배를 이용해 오토바이를 싣고 바다를 건너 도착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제주를 한 바퀴 돈 후에는 순천의 순천만갯벌을 거쳐 창녕(우포늪)-울산(무제치늪)-평창(오대산 습지)을 마지막으로 여정을 마쳤다.



“목포에서 제주도로 가기 위해 여객 터미널로 향하는 날 비가 엄청 쏟아졌어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비가 많이 와서 배에 오토바이를 고정시키다가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죠. 누구나 살다 보면 원하지 않은 것들로 인생이 꽉 찬 기분이 들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일종의 삶의 무게이겠는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타인이 내게 바라는 기대감 등으로 가슴이 답답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여행을 하면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걸 느낄 수 있어요. 특히 혼자 여행할 때 더 많은 걸 볼 수 있어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한발 떨어져 인생을 여유 있게 바라보게 되거든요.”

남자에게 지지 않으려 오토바이 시작

가수 마야의 일기장을 엿보다
마야가 오토바이와 인연을 맺은 때는 중학교 2학년 가을이다. 마야는 어렸을 적부터 남자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며 말타기, 술래잡기하던 남자아이들이 어느덧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여자라며 그를 무시하는 일이 잦았다. 오토바이를 처음 탔던 그날도, 한 남자아이는 낡은 배달용 오토바이를 타고 마치 자신이 어른인 양 그 앞에서 으스댔다. 그 모습이 몹시 눈에 거슬렸던 마야는 용감하게 오토바이에 올랐다. 잠시 후, 앞바퀴가 공중으로 들리면서 오토바이는 나뒹굴었고 그는 크게 다쳤다.

“처음 오토바이를 탔던 때를 생각하면, 또래 남자한테 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여자는 못해’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재미를 느껴 여기까지 오게 됐죠. ‘무엇 때문에 바이크 타기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온몸으로 맞는 바람 때문’이에요. 특히 산길을 달리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깨어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행복해요. 그때의 기분은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들어요.”

무릎이 까지고 팔꿈치에 피가 나기를 여러 번, 이후 또래 여자아이들이 동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거나 연예인 사진을 모을 때 마야는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에 빈 병을 주우러 다니면서 용돈을 벌었다.

“당시에 크고 무거운 ‘델몬트’ 주스 병이 가장 비싼 값을 받았어요(웃음). 대학생 때는 채소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계단이 많은 집을 갈 때는 무거운 짐 때문에 힘들었지만 골목골목 누비며 오토바이를 타는 맛에 즐기면서 일할 수 있었어요.”

이번 책에는 그동안 방송에서는 좀처럼 공개하지 않았던 그의 가족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 있다. 마야는 태어나서 초등학교 1학년까지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당시 가정 형편이 어려웠는데, 다른 식구들은 모두 서울 불광동에 살았지만 마야는 충북 청주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조부모가 운영하던 양계장에서 인부들이 밥을 먹고 잠깐 짬을 내 쉬고 있을 때면 마야는 ‘물새 우는 강 언덕’이라는 노래를 간드러지게 불렀다. 첫 곡이 끝나고 박수가 이어지면 앙코르 곡으로 ‘동백아가씨’를 불렀다. 어린 소녀의 청명한 목소리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나왔고, 아저씨들이 쥐여준 용돈으로 주머니가 두둑해지기도 했다.

“지금도 ‘할머니, 할아버지’란 말을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져요. 여섯 살 때 하도 심심해서 불장난을 하다가 양계장까지 태운 적이 있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범인이 저라는 걸 모르셨어요(웃음). 가족과 떨어져 외로운 시기이기도 했지만 두 분이 계셨기에 시골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힘들었던 유년 시절, 아버지와의 화해

가수 마야의 일기장을 엿보다
조부모와의 생활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끝이 났다. 다시 서울에서 식구들과 함께 살게 됐지만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 부모와의 거리감도 컸다. 열한 살 위의 큰언니가 그에게는 엄마 대신이었다고 한다. 직장인이던 언니는 퇴근길에 과자며 과일을 사와 마야에게 건네주곤 했다. 주말에 약속이 있어서 외출 준비를 할라치면 어린 마야가 함께 가겠다고 떼쓰며 울어 약속 시간에 늦기도 일쑤. 그런 언니가 스물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때, 마야는 큰 산 하나가 무너져 내린 듯한 기분이었다. 책에도 그때 당시의 심정을 담담하게 기록해놓았다. 1989년 여름, 스물네 살이던 마야의 언니는 친구들과 함께 계곡으로 피서를 떠났다가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려 세상을 떠났다. 너무 예쁘고 착했던 언니를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보내기에 마야는 그때 너무 어린 열세 살 어린 소녀였다. 엄마 같은 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한동안 믿기 힘들었다는 그는 “이제 언니 얼굴은 기억 속에 희미해졌지만, 언니의 따뜻했던 미소만큼은 기억에 남아 있다”고 말한다.

아버지와의 사이는 썩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일주일에 몇 번씩 가방을 챙겨 낚시터로 떠나는 아버지가 야속하기만 했다. 그런 아빠를 대신해 어머니가 가정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며 마야는 ‘낚시 좋아하는 남자와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고. 20대가 되고 대학을 가겠다며 집을 나선 후 마야는 아버지와 연락을 끊고 살았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러 4집 앨범을 만들면서 겨우 다시 아버지의 얼굴을 봤다. 단단하고 호랑이 같았던 젊은 시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휠체어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 따뜻한 말 한마디, 칭찬 한마디 없었던 아버지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카메라를 그에게 말없이 건넸다고 한다.

“나이 들고 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에 눈물이 쏟아졌어요.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저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셨던 것 같아요.”

당뇨 합병증으로 눈도 안 보이고, 발끝이 썩어 걸을 수도 없는 아버지는 때로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며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마야는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무뚝뚝한 딸이 돼버린다. 아버지를 만날 때면 “자주 올게요”가 전부일 때가 많다.

다시 여행 얘기로 돌아오면, 마야에게 여행은 만병통치약이다.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은 곳은 인도. 2012년 1월 그는 배낭을 메고 무작정 인도로 떠났다. 하지만 풍토병에 걸리는 바람에 여행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는데, 오히려 그동안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던 여러 가지 고민들에서 서서히 해방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멍하니 하늘만 보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는 사이에 신기하게도 엉켜 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하나씩 정리가 되더라고요. 당시 가장 큰 고민은 ‘나는 누구인가’였어요. 사람들은 짧은 머리에 당차고 거침없는 마야를 원하지만, 지금처럼 긴 머리에 여성스러운 마야도 저거든요. 늘 대중이 원하는 모습으로 무대 위에 서면서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신이 싫게 느껴졌는데, 인도를 여행하면서 그런 고민들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었어요. 결론은 그런 고민조차도 모두 버렸을 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거예요. 떠나보니 평소 느끼지 못했던 소중한 것에 대해 깨닫게 되더라고요.”

가수 마야의 일기장을 엿보다

6년 전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누빌 때의 마야. 혼자 여행할 때 더 많은 걸 보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인생의 주체는 나, 하고 싶은 일 해야 후회 없어

첫 번째 인도 여행에서 사색을 통한 깨달음을 얻었다면, 두 번째 때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떠나서인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에 머물며 힌두어를 공부하고, 문화센터에서 인도의 전통 춤인 ‘까딱춤’도 배웠다. 해가 졌는지도 모르고 인도 시장, 골동품 가게, 공연장 등을 누비며 현지 문화를 몸으로 익힌 마야는 그들이 전통을 고수하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모습에 무릎을 쳤다고 한다. 결국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우리 소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며 국악 이론과 미학을 공부했다. 4집 이후 소속사에서 나와 홀로서기 중인 그는 모든 일을 혼자 결정하고 추진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어떤 일이든 자신이 주체가 되지 않고서는 언제나 후회가 남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실패하더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후회가 없어요. 지금 잘하고 싶은 일은 탁구, 영어, 목재 가구 만들기, 천연 발효 식초 만들기 등등 너무 많아요. 해야 하는 일은 작곡 연습, 노래 연습, 음반 마무리 작업, 체력 단련, 4월 공연 준비 등 이 역시 많죠(웃음). 해야 하는 일은 매일매일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반면, 하고 싶은 일은 지금 바로 용기를 가지고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못하게 되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균형을 맞추며 해나가기가 정말 힘들어요.”

마야는 이번에 출간된 책 내용을 토대로 ‘뮤콘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다. 뮤콘드라마란 뮤지컬과 연극과 콘서트가 혼합된 형태이다. 가수이자 연기자로, 게다가 작가로 데뷔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려니 많이 설렌다는 가수 마야. 그의 진솔하고 열정 어린 글이 힘들고 지친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디자인 · 최진이 기자

여성동아 2015년 4월 6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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