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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모든 권력을 의심하라. 내 감정에 충실하라. 그러면 행복해진다.

강신주의 생각 수업

글·김지은 자유기고가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마이크임팩트 제공

2015. 02. 03

우울이 만연한 시대, 스스로의 감정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우울’과 ‘명랑’이라는 두 가지의 상반된 잣대로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돌아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철학자 강신주. 그의 용기 있는 목소리를 지상 중계한다.

모든 권력을 의심하라. 내 감정에 충실하라. 그러면 행복해진다.
“사랑이든 복수든 그것은 오직 자유로운 자, 혹은 강자만이 누릴 수 있는 욕망이라는 사실을. 약자는 원수를 용서할 자격조차 없다. 강자가 되었을 때에만 약자는 원수를 용서할 자격을 갖게 되니까 말이다. 그러니 해악을 당했지만 복수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다면 아주 천천히 힘을 키워서 강해져야 한다. 5년이든 10년이든 치욕을 잊지 말고 가슴속에 새겨야 한다. 마침내 해악을 가한 사람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게 되는 날, 우리는 진정 결정할 수 있다. 계획대로 복수를 추진할 수도 있고, 아니면 용서할 수도 있다.” -‘강신주의 감정 수업’(민음사) 中

강신주(47). 그는 누군가의 멘토나 선생이 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는 ‘별종’이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아내, 엄마의 모습을 자기애가 결여된 ‘노예’라 표현한다.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으면서도 아이 때문에, 무엇 때문에 이혼할 수 없다는 여자들은 사실 경제력 부족으로 혼자 살아갈 능력이 없어 핑계를 대는 것뿐이라며 대놓고 아픈 속을 후벼 판다.

철학자이자 ‘나는 누구인가’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의 감정 수업’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등 날카로운 철학적 담론과 현실적 비판을 담은 저서들을 펴낸 베스트셀러 작가 강신주 박사가 2015년 첫 달,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에게 다시 한 번 독설을 날렸다. 따뜻한 백 마디 위로의 말보다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한 것이 훨씬 행복에 가깝다는 그의 주장은 자아를 상실한 지 오래인 현대인들에게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1월 16일 서울 광운대학교에서 열린 명사 강연 릴레이 ‘롯데 그랜드 마스터 클래스 2015’에서 그가 던진 첫마디는 “유사 이래 민주주의 사회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였다. 그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갑을의 관계를 비롯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성추행 교수와 여대생, 시어머니와 며느리 등 우리 삶 곳곳에 산재한 억압적 관계를 열거하면서 이러한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양산해내는 것은 소수의 주인이 아닌 다수의 노예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수가 소수의 지배자에게 권력이 있다고 믿을 때 생기는 것이 ‘권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권력자들이 다수를 지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근과 채찍을 이용해 다수를 깨알처럼 쪼개놓는 겁니다. 채찍이 등 뒤에서 날아다니고 눈앞에 당근이 매달려 있으면 다수는 채찍을 맞으면서도 당근을 향해 쫓아갑니다. 고용주들은 정규직이란 당근과 비정규직이란 채찍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쪼개고, 비정규직은 또 계약직과 일용직으로 쪼갭니다. 그런 다음 쪼개진 다수를 경쟁까지 시킵니다. ‘너희들이 이기면 되잖아. 지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라고 합니다. 다수는 서로 경쟁을 하며 저들이 내 당근(일자리)을 빼앗는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을 하면 다 같이 죽는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모르니 인류 역사상 지배와 피지배 구조가 계속되어온 겁니다.”



그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권력 구조도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설명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어머니요? 힘없어요. 확 밀면 그대로 넘어가지요. 하지만 세상의 모든 며느리들은 시어머니가 자신에게 불이익을 줄 거라 믿고 있어요. 그러니까 불안해지고, 시어머니에겐 권력이 생기는 겁니다. 민주주의를 꿈꾸세요? 동등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을 꿈꾸세요? 그러려면 당근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당근을 거부하지 못한 채 노예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취업 준비생이 삼성을 거부할 수 있나요?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거부할 수 있나요?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권력과 억압의 관계 믿지 않아야 노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어

모든 권력을 의심하라. 내 감정에 충실하라. 그러면 행복해진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걸 할 때 명랑해지고,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할 때 우울해진다. 억압이 심해지면 우울이 깊어지는 것 역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명랑’과 ‘우울’의 도식은 관계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는 ‘가짜’로 점철된 감정들 속에서 ‘진짜’를 찾아내는 것이 ‘명랑’해지는 방법이라 설명했다.

“엄마를 사랑한다고요? 진짜? 엄마가 치매로 나를 못 알아보시고, 매일 똥오줌을 받아내야 하는데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사랑은 증명을 해야 해요. 용기, 지혜도 마찬가집니다. 인간의 감정은 증명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늘 점검해야 합니다. 남녀 관계도 마찬가집니다. 습관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어 만나는 거 말고 내가 이 여자(혹은 남자)랑 있는 게 ‘진짜’ 좋으면 ‘명랑’, 반대면 ‘우울’한 겁니다.”

그는 다시 처음의 주제로 돌아가 청중에게 감정을 지킬 용기가 있는지 되물었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지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우울해지는 겁니다. 우울은 노예의 덕목, 명랑은 주인의 덕목입니다. 주인은 자신이 원하는 걸 하고, 노예는 타인이 원하는 것을 합니다. 갑은 을이 을임을 자처할 때 생기는 겁니다. 나부터, 한 사람이라도 권력과 억압의 관계를 믿지 않을 때 노예의 삶에서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 내가 삶의 주인이었다고 해서 내일도 주인인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노예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감정을 지킬 용기가 부족하다. 사람의 감정은 부풀어 오른 풍선과도 같아서 화가 나고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꾹꾹 눌러 참다가 자기보다 약한 사람이 나타나면 비로소 ‘펑’하고 터지게 마련이다. 다짜고짜 큰소리부터 내는 남편, 인간이 되라며 호통치는 아빠…. 그들의 울분은 밖에서 스스로가 지키지 못한 자기감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시어머니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남편한테 푸는 아내도 마찬가지다. 시댁에서 돌아오는 길, 남편에게 운전 좀 조심해서 하라고 큰소리치는 아내. 남편이 운전을 정말로 조심해서 한다고 해도 아내는 끝끝내 어떻게든 남편의 운전 솜씨를 비난하고야 만다. 자기감정을 스스로 지키지 못한 사람은 동등한 관계마저 붕괴시키고 마는 것이다.

“자신이 주인인 사람은 자녀도 주인으로 키울 것이고 노예인 사람은 자식을 노예로 키울 겁니다. 주인은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주인이 돼보세요. 그리고 자식에게, 아내에게, 남편에게 스스로가 삶의 주인임을 보여주세요. 그러면 사랑하는 그들이 당신을 따스하게 안아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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