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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용감한 선택을 했나

대한항공 사무장, 그리고 퍼스트클래스

글·김명희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KBS영상캡처 뉴시스 제공

입력 2015.01.15 16:08:00

조현아 전 부사장과 함께 대한항공 ‘땅콩 리턴’ 사건의 또 다른 주인공인 박창진 사무장.
그가 용기를 내 전말을 밝히지 않았더라면 이번 일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승산 없는 싸움에 나섰다”는 그의 용기로 밝혀진 진실과 반전에 주목한다.
그는 왜 용감한 선택을 했나
“항공 승무원들은 좁은 공간에서 일하며 누구보다 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저의 행동으로 인해 피해를 보기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불합리한 일들이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박창진(42) 사무장이 대한항공 회항 사건 발생 일주일 후인 12월 12일 한 뉴스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그에게 앞선 일주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훼손되는 것을 겪어야 했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지난 12월 5일 뉴욕 JFK 공항, 이날 오전 0시 50분 출발 예정이던 인천행 대한항공 KE086 비행기가 활주로로 이동하던 중 갑자기 방향을 틀어 게이트로 돌아오더니, 한 사람을 내려놓고 떠났다. 바로 기내 서비스를 책임지던 박창진 사무장이었다.

이 사건은 3일 후인 12월 8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비행기 일등석에 탑승했던 조현아(41)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견과류의 일종인 마카다미아 서비스를 문제 삼아 승무원을 질책하는 과정에서 사무장을 기내에서 내리게 했다는 것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맏딸로, 말하자면 대한항공의 ‘로열패밀리’다.

이에 대한항공은 재빨리 보도자료를 통해 “비상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항공기를 제자리로 돌려 승무원을 내리게 한 것은 지나친 행동이었다”고 사과하면서도 “승무원의 서비스 문제를 지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해명했다. 출발 시각을 늦춰가면서, 자칫 위험할 수 있는 리턴을 감행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회사의 임원으로서 직원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 차원이었다는 대한항공의 해명은 수긍이 되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기내 서비스 및 호텔사업 부문 등 대한항공의 모든 보직에서 퇴진(부사장 직함과 칼호텔네트워크, 왕산레저개발, 한진관광 등의 대표이사직은 유지)하는 선에서 마무리되는가 싶던 이 일은, 그러나 당사자인 박창진 사무장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는 12월 12일 국토교통부에서 이 사건에 관한 조사를 받은 후 KBS, SBS와의 인터뷰를 통해 조 부사장으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가 털어놓은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12월 5일 퍼스트클래스에선…

승객들이 탑승을 완료하고, 비행기 문을 닫는 작업이 완료될 즈음, 한 승무원이 조현아 전 부사장이 (마카다미아) 서비스에 불만을 제기해 매뉴얼을 찾는다며 그를 다급하게 찾았다는 것이다. 그가 최근 마카디미아 서비스 내용이 바뀌었는데, 그 매뉴얼이 저장된 태블릿 PC에는 수정된 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고, 그런 사정을 조 부사장에게 이야기하며 매뉴얼을 숙지하고 그대로 실행했다고 하자, 조 전 부사장은 “왜 바뀐 교범을 갖고 다니지 않느냐”며 고성을 질렀다고 한다. 박 사무장은 “이 과정에서 조 부사장이 플라스틱 파일로 자신의 손등을 내리치고 무릎을 꿇리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승무원이 서비스를 매뉴얼에 맞게 했더라도 우선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 동양적인 서비스 정신이기 때문에 참았는데, 거기서 화를 풀지 않고 지속적으로 화를 냈습니다. ‘나중엔 승무원이 다 맞게 (서비스) 했는데, 당신이 내게 제대로 얘기해주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화를 낸 거 아니냐, 그러니 당신 잘못’이라고 하더군요.”

이런 그의 주장은 일등석에 타고 있던 다른 승객이 “조 부사장이 고성과 함께 승무원의 어깨를 밀쳤다”고 증언하면서 거의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이후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국토교통부는 대한항공에 대해 운항정지 또는 과징금 부과 행정처분을 결정하고 조 전 부사장을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 12월 18일 검찰에서 12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또한 검찰은 박창진 사무장과 승무원들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하는 등 증거를 인멸하고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로 대한항공 객실담당 상무를 소환해 조 전 부사장이 이를 지시했는지 여부도 조사 중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교통부가 12월 12일 박 사무장을 조사할 당시 20분 가까이 바로 이 객실담당 상무를 동석시킨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오너 일가의 도를 넘는 행동과 회사 측의 부적절한 대응이 빚어낸 대한항공 회항 사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건 불이익을 감수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선 박창진 사무장의 용기 있는 선택 덕분이었다. KBS와의 인터뷰에서 “두렵지 않는냐”는 질문에 그는 “진실을 말했기에 두렵지는 않다. 다만 어머니가 편찮으신데 이런 소식을 접하고 더 많이 아파하실 것 같아 걱정”이라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또한 “많은 고통과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을 거란 걸 예상은 한다. 그러나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자존감을 찾기 위해 나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도 말했다.

영 BBC도 “Nut Rage” 보도 그것이 알고 싶다!


그는 왜 용감한 선택을 했나

대한한공 A380 일등석 내부.

비행기에선 왜 ‘갑의 횡포’가 자주 발생할까.

비즈니스석에 탑승, 라면을 주문했다가 설익었다고 승무원을 폭행한 일명 ‘라면 상무’ 사건, 출발 시간에 늦어 탑승을 저지하는 직원을 때린 ‘신문지 회장’ 사건 등은 모두 비행기를 무대로 발생한 사건이다.

정신과 전문의 김현철 씨는 “현대 사회에선 계급이 사라졌지만 비행기에선 일등석, 비즈니스, 이코노미로 등급이 나뉜다. 이것이 ‘갑들’의 특권 의식을 부추기는 기재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모든 일등석 승객들이 ‘갑질’을 하는 것은 아니다. 김현철 씨는 “열등감이 있는 사람일수록 특권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상하관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열등감이 특권의 상징인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에서조차 만회되지 않자 감정적으로 폭발(rage·격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외신에서 이번 사건을 ‘Nut rage’라고 표현한 것이 매우 적절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A380 일등석, 얼마나 대단하기에.

A380은 여객기 중에서도 가장 크고, 럭셔리해 ‘하늘을 나는 호텔’이라고 불린다. 프랑스 에어버스 그룹이 생산하며, 2층 구조로 대당 평균 5천억원 선. 총 10대의 A380 기종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항공은 세계적으로 A380 항공기를 모범적으로 운항하는 항공사로 꼽힌다. 지난해 11월 말에는 에어버스가 주관한 ‘A380 기술 심포지엄’에서 ‘A380 항공기 최우수 운항상’을 수상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빛을 잃었다.

항공사는 A380을 구입해 자사의 콘셉트 대로 인테리어를 변경한다. 대한항공 A380은 좌석별로 일등석 12석, 비즈니스 94석, 이코노미 3백1석 등 총 4백7석. 조 부사장이 탔던 인천∼뉴욕 노선의 경우 유류할증료를 포함해 왕복에 이코노미석 2백8만원, 비즈니스석 7백14만 원, 일등석 1천3백12만원이다. 가격차가 나는 만큼 확실히 돈 값을 한다. 일등석 앞뒤 간격(83인치)은 일반석의 2.4배, 좌석당 면적(5.2㎡)은 6.5배에 달해 훨씬 더 편안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비행할 수 있다. 2억 5천만원 상당의 좌석은 180도 뒤로 젖혀져 침대처럼 안락하다. 전담 직원이 탑승 전 과정을 도와주고, 기내식은 원하는 시간에 고급 테이블웨어에 코스 요리로 샴페인과 함께 제공된다. 항공사에 따라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최고급 오리털이나 양모 소재 침구 세트가 제공되며 에미레이트 항공 일등석은 스파 시설도 갖추고 있다. 최고급 기종인 만큼 승무원들도 A380에 오르려면 회사마다 까다로운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이번 사건 피해자인 박창진 사무장과 승무원도 이미 사내에선 자질과 능력을 검증받았다고 볼 수 있다.


디자인·최정미

여성동아 2015년 1월 6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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