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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성재의 수상한 매력

글ㆍ진혜린 |사진ㆍ동아일보 사진DB파트, SBS 제공

입력 2013.11.15 13:54:00

연기력과 인지도에 비해 어쩐지 작품 운이 없다 싶은 배우였다. 가진 것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느낌이랄까. 그랬던 이성재가 정상 궤도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진지하게 엉뚱한 만 43세 아저씨의 치명적인 매력이 SBS 월화드라마 ‘수상한 가정부’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배우 이성재의 수상한 매력


앙다문 듯한 야무진 입술에 예리한 눈매, 구릿빛 피부를 한 이성재(43)는 나이 마흔이 넘은 남자가 이토록 멋질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이른바 슈트발 잘 받는 다부진 체격도 한몫했다. 여기에 배우로서 그만이 가진 존재감을 얹으면 완벽한 남자, 배우 이성재가 완성된다. 어쩌면 그가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외모와 연기력이 그가 가진 전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완벽해 보였던 그의 모습이 실제 이성재를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밤새 드라마 촬영을 하고 이른 아침 귀가해서는 제대로 눕지도 못한 채 침대 머리맡에서 꾸벅꾸벅 조는 그의 모습에서 이 시대 가장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느낀 것은 비단 기자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홀로 포장마차를 기웃거리거나 편의점에서 사발면과 삼각김밥으로 요기를 하는 모습 속에는 중년 남성의 외로움이 배어 있다. 또 한편으로, 아이언맨 가면을 쓰고 동작까지 따라 하며 영웅 흉내를 내는 불혹을 넘긴 남자의 자태는 웃음을 참지 못할 만큼 엉뚱해 보이면서도 애잔하다.
어쩌면 이 시대의 가장, 중년 남성들이 겪고 있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이성재는 자신의 삶 속에서 유쾌하게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 달간, 매주 무장해제된 그의 삶을 엿보고 나니 새로운 드라마를 소개하러 나선 자리에서조차 그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전혀 다른 이성재가 보였다.
“작품 제의를 받았을 때 원작에 대한 믿음도 컸고,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 상황적으로 저와 가장 가까운 역이에요. 극 중 첫째 딸이 18세인데 실제 제 딸도 딱 18세거든요. 신기했죠. 항상 아이들과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한 명이 아니라 네 명과 함께해서 즐거워요.”
‘수상한 가정부’에서 이성재가 맡은 은상철이란 인물은 많은 부분 실제 이성재와 맞닿아 있다. 특히 자녀를 필리핀에 유학 보낸 후 기러기 아빠로 지냈다는 설정 자체만으로도 ‘나 혼자 산다’의 이성재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비교 체험 이성재 vs 은상철
No.1 기러기 아빠라 불륜 저지른다고? 당치도 않소!


배우 이성재의 수상한 매력

‘수상한 가정부’에서 이성재는 자신의 불륜으로 아내가 자살한 상황에서도 내연녀만 생각하는 지질한 은상철 역을 맡았다.



수상한 은상철 드라마 속 이성재는 “내가 아는 가장의 도리는 ‘송금’뿐이었다”고 말한다. 이는 아내와 아이들을 모두 필리핀으로 떠나보낸 후 홀로 남은 자신은 돈을 송금하는 기계로 취급받았다는 외로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은상철은 외로움을 보상받기라도 하는 듯,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윤송화(왕지혜)와 불륜을 저지른다. 이에 은상철은 ‘애정의 총량 법칙’을 들먹이며 불륜을 합리화한다. “사람한테는 애정의 총량이라는 게 있어서, 어딘가 쏟아부어야 할 애정의 절대치가 있다”는 것. 물론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지만.



이성재의 솔루션 실제 이성재는 2010년 아내와 두 딸을 캐나다로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다. 하지만 기러기 아빠가 겪는 외로움을 치유하는 방법에서는 은상철과 전혀 다르다.
먼저 가족과 함께 일산에 살던 그는 살림을 줄여 서울로 이사를 했고 보고 싶을 때 영상 통화로 그리움을 달랜다.
물론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심심하다고 몸서리를 치는 ‘나 혼자 산다’의 이성재처럼 외로움은 기러기 아빠들의 공통된 고민일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이성재는 연예인 동료와 등산을 하거나, 현재 살고 있는 성동구 옥수동 근처를 산책하거나, 혼자 영화를 보는 등 외로움을 떨쳐낼 수 있는 여러 방법을 터득했다.
“극 중에서는 돈 기계, ATM기로 불리고 있지만 실제의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송금합니다. 그 돈으로 생활하는 가족들을 보면 흐뭇해요.”
이성재가 가족들에게 보내는 것은 비단 돈뿐만이 아니었다. 캐나다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아빠의 사랑을 듬뿍 담은 ‘선물’을 보내는 것은 애정의 총량을 지키는 방법 중 하나. 처음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사서 보내던 그는 최근에는 무용을 공부하고 있는 첫째 딸의 무용복을 직접 골라 보내고, 유난히 추운 캐나다에서 겨울을 보낼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부츠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성재는 “많은 부분 은상철과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른 점은 하나 있다”며 “은상철은 아내가 없는 사이에 바람을 피웠고 나는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며 통쾌하게 웃는다.

No.2 사랑하는 척 연기하는 거잖아!
수상한 은상철 몇 년간 떨어져 지내던 아이들과 아내의 죽음 이후 함께 살게 되면서 은상철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아이들을 “진짜 사랑하는지 모르겠다”며 갈팡질팡하는 지질한 아빠. 엄마가 아빠의 불륜 사실을 알고 배신감에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아챈 아이들이 방황하고 있는데도 은상철은 오로지 윤송화의 환심을 사고 싶은 마음뿐. 첫째 딸 은한결(김소현)의 눈에 아빠는 자식들을 사랑하는 척 연기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성재의 솔루션 언제나 그는 두 딸과 아내가 자신의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말하곤 했다. ‘나 혼자 산다’에서 시시때때로 아이들과 영상 통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공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늘 아이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자상한 아빠다.
“작품에서 큰딸로 나오는 김소현 양을 볼 때마다 제 딸들이 생각나요. 방금 작은아이한테 문자가 왔는데 기대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성재의 모습은 포근했다. 배우로서 발돋움을 시작한 1996년 결혼해 일찌감치 품절남이 된 이성재. 부모가 된다는 건 그만큼의 희생이 필요한 일이었고 그는 늘 든든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캐나다에 가기 전 아내가 딸 문제로 학교에 자주 불려갔어요. 한번은 가출을 해 인천까지 가서 잡아 온 적도 있었죠. 배우의 딸이라는 사실이 스트레스가 된 것 같아요.”
부모의 위치가 자녀에게 주는 영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딸의 방황과 혼란을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성재 또한 아버지의 그늘이 힘들었던 때가 있었으니까. 이성재의 아버지는 삼성종합건설(현 삼성물산 건설사업부) 사장을 역임한 기업인 이강태 씨.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사장까지 지낸 아버지 앞에서 둘째 아들 이성재는 한없이 작아진다. 하지만 배우가 되겠다는 아들이 못마땅했던 아버지, 장성한 아들에게 여전히 “정신 차려”라고 호통 치는 아버지의 진심이 이제 장성한 딸을 둔 아빠 이성재에게도 전해졌을 것이다.

여성동아 2013년 11월 5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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