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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LIFE IN NEW YORK

미국 미국인 미국음식

푸드 칼럼니스트 미령·셰프 로랭 부부 맛을 탐하다

글·사진 | 이미령, 로랭 달레,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2. 12. 17

미국 미국인 미국음식

1 독일계 미국인은 전 국민의 17%, 6천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비록 미국에 살지만 매년 독일 전통에 따라 옥토버페스트(맥주 축제)를 열고 있다. 2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열린 옥토버페스트에 참가한 어린이들. 3 옥토버페스트 기간 신시내티는 독일 분위기가 물씬하다. ‘도나우 슈바벤’이라 적힌 안내판.



“뉴욕은 미국이 아냐. 뉴욕만 보고 미국을 봤다고 할 수 없어. 파리만 보고 프랑스를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뉴욕에 놀러온 프랑스 친구들이 늘 하는 소리다. 그들의 말처럼 뉴욕은 미국의 다른 도시와 확연히 다르다. 특별한 도시다. 세계 각국의 인종들이 몰려 있는 것은 물론 처음 들어보는 희한한 이름의 음식들도 골목골목에서 마주칠 수 있다.
뉴욕이 미국을 설명해주지 못한다면 도대체 어떤 도시가 미국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 미국은 어떤 나라? 미국인은? 미국음식이란 무엇을 말하지?
뉴욕에 오기 전에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질문들이다. 미국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미국이나 미국인에 대해 안다고 쉽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한국과 프랑스에 살 때는 선입견과 편견만 가지고 미국과 미국인을 아주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 년간 뉴욕에 살며 미국 각지를 여행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미국이 진짜 미국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살면 살수록 더 알 수 없는 게 미국이란 나라다.

살면 살수록 알 수 없는 게 미국
뉴욕만 벗어나면 전혀 다른 미국이 펼쳐진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것은 파멜라와 스티브 부부다. 둘 다 오하이오 출신으로 독일계 조상을 두었다. 스티브에 따르면 오하이오 주에는 독일계 조상을 둔 미국인들이 모여 사는 타운이 많다고 한다. 뉴욕에 사는 동안 이들 부부와 일주일에 한두 번씩 꼭 만났고, 어쩌다 파티 의뢰없는 명절이면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가족이나 다름없이 지낸 이들이 지난 5월 고향인 신시내티(오하이오 주 남서부 도시)로 이사를 가 무척 서운했는데,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9월 20일경 시작해 10월 초까지 계속되는 축제) 기간에 신시내티로 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이번에 신시내티에 오면 스카이라인 칠리(http://www.skylinechili. com/story.php)를 꼭 먹어봐야 해.”
전화기 너머 파멜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카이라인 칠리는 신시내티로 이민 온 한 그리스 청년의 아메리칸 드림이야. 역사가 오래 된 식당이라고. 정말 맛있는 칠리야.”
내가 신시내티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냐고 묻자 파멜라는 “그 정도는 아니고, 스카이라인 칠리라는 레스토랑이 오하이오와 캔터키 주 몇 군데에 있다”라고 했다. ‘스카이라인 칠리’는 향토음식이라기보다 신시내티 사람들이 즐겨먹는 일종의 패스트푸드나 컴포트 푸드(Comfort Food)인 것 같다. 핫도그나 파스타 위에 기름진 칠리를 듬뿍 얹고 치즈가루를 산더미로 쌓아 먹는다는 파멜라의 설명 때문이었다. 나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자 파멜라는 더욱 적극적이 됐다.
“물론 신시내티가 뉴욕은 아니야. 뉴욕이야말로 미식천국이니까. 하지만 옥토버페스트에 가면 이런저런 독일 음식들을 경험할 수 있어. 브라트부어스트(Bratwurst : 돼지고기 소시지), 사우어크라우트 볼(Sauerkraut balls : 독일식 양배추 절임), 감자팬케이크, 프레첼(Pretzels), 점보피클(Jumbo Pickles), 쉬트루델(Strudel : 과일을 잘라 얇은 밀가루 반죽에 싸서 구운 과자), 돼지족발…같이 가자.”
거절할 수 없었다. 친구들도 보고 싶었다. 게다가 나와 로랭은 독일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 결국 9월 말 신시내티로 갔다. 2년 전 크리스마스 이후 두 번째 신시내티 행이었다.

신시내티에서 펼쳐진 독일계 미국인들의 옥토버페스트
파멜라와 스티브처럼 독일계 미국인들은 전 국민의 17%, 6천만 명에 이른다. 아일랜드계와 영국계를 앞서는 가장 많은 민족군이다. 토마스 만, 헨리 밀러, 닐 암스트롱, 벤 아플렉, 샌드라 벌록, 조니 뎁, 조디 포스터, 조세프 퓰리처, 브루스 윌리스 등이 독일계 조상을 둔 미국인들이다.
그럼 파멜라와 스티브와 같은 독일계 미국인들을 ‘표준 미국인’이라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조상들이 들고온 햄버거와 핫도그가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것처럼? 커다란 오이 피클을 간식처럼 먹는 미국 사람들, 해마다 옥토버페스트 기간 중 독일 뮌헨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독일 맥주 축제를 벌이는 사람들!
미국 대선을 앞두고 신시내티에서 만난 스티브는 “이번에 롬니가 반드시 이겨야 해! ”라고 말했다. 스티브가 사는 동네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듯, 집 앞 잔디밭에 각자 지지하는 공화당 정치인의 이름이 적힌 팻말이 꽂혀 있었다.
“미국이 더는 전 세계의 놀림감이 되도록 내버려둘 수 없어. 여기저기서 휘둘리고 있잖아. 경제도 엉망, 내정도 엉망, 국제 외교도 엉망. 엉망진창이야! ”
스티브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2012년 11월 6일 대선에서 미국인들은 오바마의 연임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오바마 재선을 결정한 ‘미국인’은 누구인가? 이번 대선 투표 결과에서 인종별 편차는 어마어마하다. 선거인단 승부에서 오바마가 332대 206명으로 롬니를 압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체 국민 득표수는 50% 대 48%다. 250만 표 차라 한다. 미국이 백인과 유색인 둘로 갈라져 스스로를 ‘미국인’이라고 부르는 상황이다. 흑인의 93%가 오바마에게 몰표를 던졌고 백인 유권자의 59%는 롬니를 선택했다. 라틴계 유권자들의 71%가 오바마를 선택했고, 롬니에게는 27%만 표를 던졌다. 아시아계도 오바마를 선호했다고 한다. 만일 백인 남성만 투표했다면 롬니는 대부분의 주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오바마는 오레곤, 워싱턴, 메인, 매사추세츠, 버몬트 주에서만 승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의원도 37대 501로 롬니의 대승이었을 거라나. 뉴욕을 한 발만 벗어나도 스티브처럼 ‘전통적인 작은 정부와 강한 미국’을 공약한 롬니를 무조건 지지하는 수많은 백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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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큰 잔 가득 채워진 맥주와 인형. 2 전통 의상을 입은 남성들이 독일 맥주 맛을 자랑하고 있다. 3 행사장에서 시식을 하는 여성. 4 독일 전통 빵 프레첼을 파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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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핼러윈데이(10월 31일)와 추수감사절(11월 셋째주 일요일)을 앞두고 넬트너 농장에서 색색의 호박을 파는 모습. 2 뉴욕 주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독일 퍼레이드가 열린다. 독일 전통 의상을 입은 남녀가 행진을 하고 있다.



두 개의 미국과 두 종류의 미국인을 보면서 도대체 ‘미국 음식’이란 무엇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친구들에게 물어도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스티브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글세, 우리나라는 이민국가라. 전 세계 여러 나라 이민들이 들고온 음식들이 현지화된 것을 미국 음식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독일 이민들이 가져온 핫도그나 햄버거, 멕시코 이민들이 소개한 타코, 이탈리아 남부 스타일 피자가 시카고 피자로 변형되고, 동유럽 유태인들이 들고온 빵이 뉴욕 베이글로, 아프리카 이민들의 프라이드치킨, 펜실베이니아 더치(Pensylvania Dutch)들의 콘 수프나 달걀국수, 영국계 이민들이 소개한 뉴잉글랜드 클램차우더(Clam Chowder) 수프, 프렌치 캐나디언들의 검보나 잠발라야 같은 케이준 음식, 일본 이민들이 소개한 캘리포니아롤(196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 이민 온 일본 스시 셰프가 미국 사람들이 김을 씹어 먹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자 김을 안으로, 밥을 밖으로 해서 게살이나 오이, 아보카도 등을 얹어 롤을 말기 시작해 큰 인기를 끔), 김치 타코나 불고기 샌드위치 같은 것은 한국 이민들 영향이겠고, 데이비드 장(한국 이민 1.5세로 뉴욕의 유명 셰프)이 소개한 변형된 보쌈요리도 어떻게 보면 한국음식이라기보다 미국음식이라 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겠어? 데이비드 장 스스로도 자기 음식을 코리안 푸드라고 하지 않고 그냥 미국음식으로 이해해 달라고 하잖아?”
미국이 극명하게 갈라져 있고 인종별 편차가 심해 ‘미국’과 ‘미국인’을 쉽게 정의내릴 수 없다하더라도 ‘미국 음식’은 그나마 스티브의 말대로 설명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 음식이 미국에 들어오면 표준화를 거쳐 ‘미국 음식’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중국 음식, 러시아 음식, 타이 음식, 멕시코 음식, 한국 음식, 이탈리아 음식, 프랑스 음식, 독일 음식, 영국 음식 등 본국에서 먹는 것과 조금 다르거나 미국 본토 재료들을 섞어 미국적으로 퓨전하면 ‘미국 음식’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으로 넘어 온 이민들이 소개한 각국 음식들이 미국식 표준화를 거쳐 다시 외국으로 수출되고. 음식도 공산품처럼 대량 생산되고 포장해서 팔리지 않나, 햄버거는 맥도널드, 핫도그는 웬디스, 프라이드 치킨은 캔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통해 세계 구석구석까지 들어가 ‘미국 음식=정크푸드’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전 세계적으로 ‘맥도널드화(McDonaldization)’ 현상을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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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핼러윈데이에 빼놓을 수 없는 인형과 호박들. 4 뉴욕에서 열리는 독일 퍼레이드의 흥겨운 모습. 5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파멜라(오른쪽)와 함께한 이미령.



오바마를 뽑은 이도, 롬니를 지지한 이도 모두 미국인
이번 가을 신시내티 옥토버페스트에서 친구들과 독일 맥주와 독일 소시지를 먹으며 ‘반’으로 나뉜 미국을 생각해보았다. 오하이오를 퍼플 스테이트(Purple State: 공화당, 민주당의 상징 색깔인 빨강색과 파랑색이 반반씩 섞여 정치적으로 보라색이라는 뜻)라고 한 스티브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오바마와 롬니는 오하이오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스티브와 파멜라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흑인과 히스패닉들이 많이 사는 동네를 지날 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며 백인들이 사는 동네와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스티브는 “신시내티에는 아직도 인종적 이슈들이 있어”라고 했다. 스티브와 파멜라가 사는 동네에 롬니를 비롯한 공화당 정치인들의 이름이 잔디밭을 장식하고 있었다면 유색인종 거주 동네에서는 오바마의 사진이 많이 보였다. 롬니를 지지하는 스티브와 파멜라 부부는 옥토버페스트에서 독일 음식들을 먹고, 오바마를 지지하는 유색인종들은 프라이드치킨이나 타코를 먹으며 각자가 거주하는 동네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정치를 논했을 것이다.
‘미국인’이란 이들 모두를 일컫는 것. 우리가 흔히 연상하듯 와스프(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만 미국인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백인들과 유색인종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꾸려나가는 ‘미국’에서, 타코와 김치를 즐겨먹는 ‘미국인’들이 언젠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겠다. 흑인 대통령으로 연임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을 보며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푸드 칼럼니스트 이미령, 셰프 로랭 달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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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랭 달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출신으로 파리 에콜 데 카드르, 시티 오브 런던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뉴욕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 르노 사와 브이그 텔레콤에서 일했다. 마흔 살이 되기 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러 2007년 2월 말 뉴욕으로 와 맨해튼 소재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조리를 배우고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 수 셰프로 근무하다 최근 한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이미령은 연세대 음대,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파리 에콜 노르말 드 뮤직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브이그 사에서 국제로밍 및 마케팅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현재 뉴욕에서 Le Chef Bleu Catering을 경영하며 각종 매체에 음식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두 사람은 런던 유학 중 만나 결혼했다. 저서로는 ‘파리의 사랑 뉴욕의 열정’이 있다. mleedallet@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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