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4S가 있다. 사우나(sauna), 시벨리우스(Sibelius, 핀란드 국민 음악가), 시수(sisu, 포기하지 않는 정신), 그리고 오늘 얘기하려고 하는 산타클로스(Santa Claus)가 그것이다.
핀란드에 산타가 산다는 이야기는 1920년대 핀란드 한 라디오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로부터 비롯됐다. 그는 산타클로스가 순록을 타고 다닌다는 속설에서 착안해,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순록이 많이 서식하는 핀란드 북부 라플란드에 실제로 산타클로스가 살고 있다고 말해버렸다.
이 황당한 선포는 세월이 흘러 흘러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며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인 엘리너 루스벨트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영부인은 1950년대 초 루스벨트 대통령의 핀란드 공식 방문을 앞두고 핀란드 정부 측에 진짜 산타클로스를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전달했다.
핀란드 정부는 라디오 진행자의 거짓말이 초래한 엄청난 결과에 당황했지만 미국 대통령 부인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하룻밤 사이에 조그만 조립식 오두막집을 짓고 그곳에 급조한 산타 할아버지를 배치시켰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핀란드 라플란드 지방, 로바니에미 시에 위치한 산타 마을의 효시가 됐다.
1 핀란드 라플란드 지방 로바니에미 시에 위치한 산타 마을에서 만난 산타와 요정들. 2 동화 속 나라 같이 꾸며진 산타 마을.
모든 편지에 답장해주는 친절한 산타
지난 9월 초 필자는 산타 마을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그곳에서 몇 년째 산타를 돕고 있는 한국인 여성 김정선 씨(써니 요정)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방문객들이 산타를 만나기 전 마을 중앙의 흰색 선(북위 66° 32‘ 35”, 북극권이 시작되는 지점)을 몇 번 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줬다. 산타 마을에서는 이 선을 한 번 넘을 때마다 정신 연령이 한 살씩 어려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음이 메마른 어른들은 선을 여러 번 넘어 순수한 동심으로 돌아가야만 산타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그 선을 넘어 지붕이 뾰족한 동화 나라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집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시계추가 움직이고 이상한 지구본 그림이 그려진 벽이 나왔다. 써니 요정은 산타가 어떻게 세계 모든 아이들의 소원을 다 들을 수 있는지, 그리고 산타가 하룻밤 만에 어떻게 수많은 아이들에게 다 선물을 배달할 수 있는지 흥미진진한 얘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산타가 아이들의 소원을 다 들을 수 있는 것은 핀란드 북부 산악 지대에 위치한 전설의 산 ‘코르바 툰투리’(‘코르바’는 핀란드 말로 ‘귀’, ‘툰투리’는 ‘산’이라는 뜻)에 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이 거대한 귀 모양이어서 청력이 약한 할아버지지만 전 세계 어린이의 소원을 다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선물 배달을 완료하는 비결은 건물 입구에서 봤던 지구본 그림과 시계추 덕분. 산타는 지구 자전의 속도를 조절하는 능력을 가져 하루의 길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
그럴듯한 설명을 들으며 걷다 보니 어느덧 산타 접견실까지 도착했다. 스르르 문이 열리자 산타가 나타났는데, 얼굴의 반은 수염으로 덮여 있어 자세한 생김새는 알 수 없지만 눈빛만으로도 따뜻하고 인자한 할아버지임을 알 수 있었다. 산타는 필자에게 한국에 관해 이것저것 물은 뒤 장기자랑을 요구(?)했다.
산타 마을의 또 다른 핵심 부서인 우체국을 방문했다. 그곳에는 세계 여러 나라 어린이들이 산타에게 보낸 편지들을 분류해 전시해놓고 있었다. 지금까지 산타가 받은 가장 긴 편지라는, 루마니아 어린이들이 합심해서 보낸 무려 414m나 되는 편지도 투명한 통 속에 전시돼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산타는 편지를 보낸 모든 어린이들에게 답장을 해준다는 것이다. 한국 어린이들의 편지를 번역해 산타에게 전달하는 일은 써니 요정이 맡고 있는데, 지금까지 받은 편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으로 교도소에 있던 아빠가 딸을 위해 쓴 편지를 꼽았다.
올 크리스마스는 한번 미리 준비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이와 함께 시간적 여유를 두고 산타 할아버지께 다음 주소로 편지를 보내보자.
Santa Claus, Santa Claus‘s Main Post Office, 96930 Napapiiri, Finland.
눈 오는 어느 날, 핀란드 산타 마을에서 시공을 뚫고 오는 한 통의 답장 편지를 상상하는 즐거움이 클 것 같다. 이날을 기다리며 모두 ‘미리 크리스마스’!
이보영 씨는…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교육공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1999년부터 핀란드에 거주하고 있으며 핀란드 교육법을 소개한 책 ‘핀란드 부모혁명’ 중 ‘핀란드 가정통신’의 필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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