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뒤덮인 후라노 언덕.
홋카이도를 선전하는 관광 포스터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후라노 지방의 자연 경관이다. 꽃으로 뒤덮인 언덕, 화려한 원색 스키복을 입은 젊은 남녀, 그리고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늘어선 정경이 눈에 선하다. 특히 여름 휴가철에는 일본 본토는 물론 한국, 중국, 대만 등지에서 외국 관광객도 몰려들어 꽃으로 뒤덮인 후라노 언덕을 향해 셔터를 누르기에 여념이 없다. 한적한 지방 도시도 이 시기엔 도심에서나 경험하던 정체 현상이 나타날 정도다. 그래서 이번 후라노 여행에는 간선도로를 벗어나 다이세쓰잔(大雪山) 자락을 따라 난 도로를 이용했다. 그 덕분에 오랜만에 이 산 곳곳의 아름다운 경관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후라노 지역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었다.
그중 노천 온천 후키아게로텐노유(吹上露天の湯)에 들른 것은 특별 보너스였다. 후키아게 노천탕은 과거 유명한 유료 온천이었으나 인기가 시들해지자 폐업을 했다가 1988년 도카치다케(十勝岳)의 화산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온천수의 온도가 높아지자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관할 지자체에서 정비사업을 펼쳐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후키아게 노천탕은 계곡 속의 수려한 경관과 양질의 온천수로 온천 애호가들에게는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다. 우리 가족이 노천탕에 도착했을 때는 옅은 안개비가 내리는 가운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사내들이 계곡에서 솟아나는 온천수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잔뜩 기대에 차 있던 가족, 특히 아내의 실망이 컸지만 다음을 기약한 채 아쉬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21년간 일본인의 가슴을 뒤흔든 드라마
1 무료로 개방되는 노천 온천 후키아게로텐노유.
일본인들조차 잘 모르던 후라노가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것은 1980년대 ‘기타노구니카라(北の國から)’라는 드라마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라노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서민들의 삶을 그려 일본판 ‘전원일기’라 할 수 있는 이 드라마는 후지TV에서 1981년부터 2002년까지 21년간 방영되며 큰 인기를 누렸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구라모토 소(倉本聰) 씨는 후라노로 이주한 뒤 로쿠고(麓鄕) 지역에서 임업에 종사하던 사람에게서 힌트를 얻어, 도쿄에 살다 고향 후라노로 이주한 아버지와 남매의 성장 과정을 그린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드라마가 장기간 방영되면서 홋카이도 내에서도 오지인 후라노를 찾는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 열기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식지 않고 있다. 2002년 12월에는 이 드라마에서 연인으로 나왔던 요시오카 히데타카(吉岡秀隆)와 우치다 유키(內田有紀)가 후라노에서 결혼식을 올려 다시 한 번 화제가 됐는데, 당시 환상적인 결혼식을 연출한 이도 구라모토 감독이다.
그러나 문화 예술의 고장으로서 후라노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데 구라모토 씨 못지않게 기여한 이가 또 한 명 있다. 그녀의 이름은 시노다 노부코(篠田信子). 시노다 씨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구라모토 씨의 활동을 지원하며, 후라노의 문화 예술 발전을 위해 반평생을 바친 산증인이다.
우리 가족은 몇 년 전 지인의 소개로 시노다 씨를 만났다. 성격이 호탕한 그녀는 첫 만남임에도 산기슭에 있는 그림 같은 자신의 통나무집으로 우리를 초대해주었다. 그때 지금은 후라노의 명소가 된 후라노연극공장(富良野演劇工場)의 설립 과정과 구라모토 감독과의 인연에 대해 들려주었다.
극작가 구라모토와 후원자 시노다의 만남
삿포로에 살던 시노다 씨는 1979년 후라노로 이주했는데, 당시 후라노의 첫인상은 문화다운 문화가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시노다 씨보다 앞서 후라노로 이주한 구라모토 감독이 각본가와 배우를 키우기 위해 후라노주쿠(富良野塾)라는 양성기관을 세우고자 동분서주하다 시노다 씨 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후라노주쿠는 2년간 공동 생활을 하며 창작과 연기를 배우고, 생활비는 주변 농가의 일을 도와 충당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1984년에 문을 열어 2010년 폐교하기까지 25기 3백75명에 이르는 졸업생을 배출했고 졸업생들은 폐교 후에도 ‘후라노그룹’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후라노주쿠를 응원해오던 시민들의 활동은 후라노연극공방(富良野演劇工房)이라는 NPO(비영리민간단체)의 창설로 더욱 조직화됐다. 앞서 설명한 대로 드라마 ‘기타노구니카라’ 덕분에 후라노가 전국적인 명소가 되자 1999년 시에서 구라모토 감독의 업적을 기리는 극장을 지었다(후라노연극공장은 2000년 4월 완공). 그러나 계획 단계에서부터 극장의 건설까지만 시의 몫이었고 운영은 시민의 몫이 됐다. 극장 운영은 적자일 게 불 보듯 뻔한 상황. 그때까지 구라모토 감독을 응원하는 일에 앞장섰던 시노다 씨 및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수수방관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도 시노다 씨가 구원 투수로 나섰다. 시노다 씨가 이끄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임인 후라노연극공방은 시로부터 1년간 극장 운영을 위탁받아 그해 10월 문을 연 것이다. 후라노연극공방 이사들은 각자 수천만원씩 운영비를 갹출했을 뿐 아니라 극장 안팎의 청소까지 도맡아 했고, 커피 한 잔도 운영비에서 쓰지 않을 만큼 헌신적으로 일한 끝에 당초 예상을 뒤엎고 첫 해부터 큰 흑자를 냈다. 이를 계기로 1년간의 위탁 경영이 3년으로 연장됐고, 현재는 일본 역사상 최초로 민간단체임에도 지정관리자 제도하에서 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듯 후라노가 문화 예술의 도시로 자리 잡기까지 의식 있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희생적인 봉사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의 활동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행정기관이나 시민들 모두 냉담한 반응을 보였을 뿐 아니라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시노다 씨와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똘똘 뭉쳐 후라노연극공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자, 그렇게 반대하던 이들이 어느새 처음부터 적극적인 지지자였던 것처럼 태도를 바꿨고,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의 자원봉사를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가 됐다.
2 일본에서 21년간 방영된 드라마 ‘기타노구니카라’의 무대가 된 돌집. 지금도 많은 관광객이 이 집을 찾아온다. 3 후라노의 문화 예술 후원자인 시노다 노부코 씨.
1 시민들의 힘으로 운영되고 있는 후라노연극공장. 2 시노다 씨와 시민들이 되살린 숲 속 공원 카페 아카나라.
일본 NPO법에 의해 최초로 인가받은 단체
한편 후라노연극공방은 NPO로서 3가지 분야에서 일본 1호라는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첫째, 일본 특정비영리활동촉진법(일명 NPO법)에 의해 최초로 인가받은 단체다. 1995년 수많은 사상자를 낸 한신·아와지(阪神·淡路) 대지진 때 구조와 복구에서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을 경험한 일본은 이들의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1998년 NPO법을 제정했다. 둘째, 그동안 공공시설의 관리와 운영은 지방자치단체 및 외곽단체에만 허락됐으나, 이 법의 제정으로 법인이나 단체에 포괄적으로 운영을 위탁하는 ‘지정관리자 제도’가 마련됐고, 후라노연극공방은 제1호 지정관리자가 됐다. 셋째, 공공기관이 설립한 극장을 100%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것도 일본에서 최초의 일이었다. 이렇듯 이 단체의 설립과 현재의 활동은 여러 면에서 선구적인 예를 만들어가고 있다.
시노다 씨는 NPO법에 관한 지식도 없고, 인가를 받은 선례도 없던 상황에서 직접 도쿄로 날아가 세미나에 참석해 정보와 지식을 습득한 후 발 빠르게 신청을 해서 법 제정 이후 가장 먼저 인가받은 단체가 됐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후라노를 문화의 마을로 만들고자 하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3 제라늄이 활짝 핀 닛싱 무인역의 여름. 사진 속 주인공들은 우프(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라는 농장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닛싱 카페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여행자들이다.
시노다 씨가 올해 들어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활동이 또 있다. 후라노 시 공원 안에 있는 카페 ‘아카나라(赤楢: 붉은 졸참나무)’가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과 함께 시로부터 운영권을 인수받았다.
이 카페는 원래 주인이 후라노 시에 기증한 것인데 시는 공원 부지 안에 있는 카페를 철거할 계획이었다. 이를 안 시민들이 시로부터 운영권을 인수받아 철거를 면하게 됐다. 현재 25명가량의 시민들이 자원봉사로 카페 운영을 돕고 있다. 얼마 전 스위스에서 온 손님들과 이 카페를 방문했을 때는 카페 소식을 듣고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도쿄에서 왔다는 모녀가 유창한 영어와 프랑스어로 우리 일행을 위해 서빙을 해주었고, 최근 가족과 함께 방문했을 때는 3명의 후라노 거주 주부 자원봉사자들이 친절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맞아주었다.
시민이 운영하는 숲 속 공원 카페 아카나라
통나무로 지어진 널찍한 카페 안으로 들어서면 나무가 주는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테라스에 앉아 마시는 커피는 후라노 숲 속의 공기와 어우러져 향기와 맛이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시노다 씨는 이곳에서 음악과 문학 강좌, 각종 전시회 등의 이벤트를 열어 예술의 도시 후라노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 가족이 찾아간 날에는 8월호에 소개한 야마구치 씨의 아기자기한 새집들이 전시돼 있었다.
아카나라라는 이름 그대로 카페 주변에는 졸참나무들이 적당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시노다 씨는 계절마다 다른 색의 옷으로 갈아입는 이 나무를 지켜보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라 했다. 이런 뜻있는 시민들이 없었다면 이 아름다운 카페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시노다 씨는 2009년 봄 후라노메세나협회를 조직했다. 고대 로마 시대의 고관 마에케나스(Maecenas)가 예술가를 후대했던 것에서 착안해 오늘날 메세나는 ‘예술 문화를 비호 지원하는 일’이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후라노메세나협회의 주요 활동은 초등학교 등을 방문해 어린이들에게 예술 체험을 시키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문화 예술의 세례를 흠뻑 받고 자라 문화적 소양을 갖춘 성인이 되고 또한 이곳에서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후라노를 아름다운 도시로 만드는 것이 궁극의 목표다. 시노다 씨는 아무리 바빠도 이 일만큼은 직접 동행해 활동의 결과와 장단점을 확인한다고 했다. 물론 이런 활동이 가능한 것은 지역의 기업, 강사, 학교의 협력 덕분이라며 공을 모두 주변에 돌렸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문화 예술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심성으로 승화시키려는 시노다 씨의 노력이야말로 감동적인 드라마, 또 다른 ‘기타노구니카라’가 아닐까 생각했다.쭞W
홋카이도 닛싱 역의 명예역장 황경성은…
고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했으나 복지에 뜻을 두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지역 사회의 문화·예술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kyungsung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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