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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슈퍼맨 오빠이길 꿈꾸는 대한민국 남편에게

독일인 주부 유디트의 좀 다른 시선

기획 | 한여진 기자 글&사진 | 유디트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1.11.01 16:15:00

Dear. 슈퍼맨 오빠이길 꿈꾸는 대한민국 남편에게


나는 13년 전 독일 브레멘 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당시 독일에서 유학하고 있었다. 친구 결혼식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고, 첫날부터 자연스럽게 재미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어느 날 우리가 함께 학교에서 나와 브레멘 시내로 걸어가던 때 둘 다 학생이라 각자 책으로 가득 찬 무거운 가방을 들고 있었다. ‘아직 남편이 아니었던 그 사람’은 “내가 가방 들어줄까?” 하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 사람이 들고 있는 가방을 보면서 대답했다. “흐? 왜?” 독일 남자들은 이런 경우가 없기 때문에 나는 당황했다. 무거운 가방이 두 개 있고 사람도 두 명 있다면, 한 사람이 가방을 하나씩 들고 가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그때 그 사람의 호의를 받은’ 그날 이후 나는 한국 남자들이 참 예의바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런 호의는 좀 지나친 것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나는 그날 그 사람에게 내 가방을 건네주지 않았다.

Dear. 슈퍼맨 오빠이길 꿈꾸는 대한민국 남편에게

독일에서 유학 중이던 이희원씨와 만나 결혼한 유디트. 슈퍼맨 오빠를 꿈꾸던 남편은 유디트를 만나 친구 같은 남편이 됐다.



사실 그때 남편은 그렇게 호의를 베풀면 내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편은 나도 여자 가방 들어주는 남자를 좋아할 거라고 믿었던 거다. 그래서 내가 “흐? 왜?” 하고 되물었을 때 남편은 당황한 얼굴로 그냥 웃었다(어쩌면 무거운 가방을 두 개나 들지 않아도 돼 안도감을 느꼈을지도). 그날 저녁 나는 엄마와 통화하면서 그 ‘가방 사건’에 대해 얘기했다. 처음엔 엄마도 이 엉뚱한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나처럼 당황해하셨다. 그러곤 잠깐 생각한 후에 큰 소리로 웃으셨다. 내가 가방 들어주는 남자를 좋아할 거라고 믿은 남편이 엄마는 귀엽다고 하셨다. 가방 사건 이후에도 나는 가끔 그가 ‘순진한 신사가 되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다. 그 사람은 ‘자상하게 잘 돌봐주기를 내가 원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람이 남편이 된 지금, 나는 남편이 처음부터 가방을 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사실 남편은 걸어갈 때 뭔가를 드는 것을 지.독.히 싫어한다).

한국에서 남편과 함께 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신사답긴 했지만 순진하기 그지없었던 남편의 호의’는 ‘좋은 오빠가 되려는 무의식적 충동’에서 나온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을 알게 된 이후 열 살 위인 남편이 오빠 노릇을 하려 할 때마다, 예전의 엄마처럼 웃음이 절로 났다. 이후 나는 ‘오빠가 하려 했던 한국 남자들의 행동심리’를 유심히 관찰해봤다. 한국에서 살면서 남편이 예전에 “가방을 들어줄까?”라고 물었던 것이 한국 남자들의 전형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 대학교 강의를 나가면서 남학생이 여학생의 가방을 들고 가는 모습을 종종 본다. ‘오빠 남학생’이 ‘동생 여학생’을 위해 밥이나 커피를 사는 것도 자주 목격한다. 그리고 강의실에 불쑥 나타난 벌레 때문에 여학생들이 공포에 질려 크게 소리 지르고 남학생들이 ‘슈퍼맨 오빠’가 되어 불쌍한 벌레를 죽이는 장면도 여러 번 목격했다. ‘오빠’, 독일어에 이런 단어는 없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잘 알게 됐다.



Dear. 슈퍼맨 오빠이길 꿈꾸는 대한민국 남편에게


그러나 ‘훌륭한 오빠’를 보면 내 머릿속은 우습다는 느낌보다는 씁쓸한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된다. 한때 ‘훌륭한 오빠’였던 남자가 결혼해 사는 모습을 보면 머릿속이 무거워진다. 나는 한국에서 11년을 사는 동안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남편을 비난하는 부인들을 많이 봤다. 여자들은 남편에게 실망했다는 얘기를 자주 늘어놓는다. ‘옛날에 잘해주던 오빠’가 ‘아내를 무시하는 남편’으로 바뀐 데 대한 실망이 불평의 주 내용이다. 내 생각에는 ‘좋은 오빠가 좋은 남편이 될 거라 믿었던 것’ 자체가 잘못된 거였다. ‘좋은 오빠’와 ‘좋은 남편’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아무리 좋은 오빠랑 결혼한다 해도 결혼한 후에는 예기치 못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오히려 ‘오빠의 좋음’이 문제의 근본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좋은 오빠’는 ‘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남편’이 되고, ‘나약한 여동생’은 ‘말 잘 듣는 양처’가 돼 있다. ‘위에 있는 오빠’가 있으면 ‘아래에 있는 동생’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왜 많은 한국 여자들이 ‘아래에 있는 동생 노릇’을 굳이 맡고 싶어 하는 건지 여전히 궁금하다. 위에 있는 오빠는, 그가 아무리 잘 대해준다 해도 동생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래에 있는 동생은 잘해주는 오빠에게서 많은 혜택을 받는다 해도 동등한 인격체는 결코 될 수 없다.

나는 내 남편에게서 ‘생색 내는 오빠의 모습’은 절대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남편이 좋은 친구로 남아 있길 바란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있을 때, 남편이 내가 가려 하는 길을 막지 않길 바란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자유롭게 결정하길 바라며, 남편이 그것을 받아들이길 기대한다. 남편이 나를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도와주면 좋겠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편이 나의 자유로운 선택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나를 위해서라면 온몸을 바치는 슈퍼맨 같은 오빠’와 함께 살고 싶지는 않다.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도 나를 독립적인 사람으로 인정하는 친구 같은 남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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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트씨(40)는…
독일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 온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왔다. 현재는 강릉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강의를 나가면서 강원도 삼척에서 남편과 고양이 루이, 야옹이와 함께 살고 있다.

여성동아 2011년 11월 5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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