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3주차인 H씨가 찾아왔다. 그는 기운이 없고 입맛도 잃어 체중이 계속 줄고 있다고 고민했다. 자연적인 임신이 되지 않아 한방 치료 후 임신에 성공한 그는 병원 치료가 태아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봐 망설이다가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지자 병원을 찾아온 것이었다.
입덧은 대개 임신 6주부터 시작해 2~3개월째 가장 심하다가 4~5개월 되면 점차 사라진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하루 종일 구토 증세가 있거나 밥 냄새가 싫어지고 식사를 하지 못해서 영양 및 신진대사의 불균형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를 ‘임신오조’라고 한다. 이 경우 임신부가 급격히 수척해질 뿐 아니라 태아의 발육에도 영향을 미친다.
임신은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인데 왜 이렇게 힘든 시기를 겪어야 하는 것일까? 임신 초기 2~3개월은 태아의 중추신경계와 중요한 장기가 형성되는 시기이면서 동시에 자연유산도 잘 일어나는 시기다. 따라서 임신부의 몸은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적인 상태가 돼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움직임도 적어지며, 특정 음식을 거부하게 된다.
체질·상황 따라 처방 약도 달라
입덧의 증상은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 가볍게 넘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도 못 마실 정도로 심한 사람도 있다. 평소 소화기가 약하거나 신경이 예민한 성격의 사람에게 심하게 나타나며, 임신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많은 경우에도 증상이 심해진다. ‘동의보감’에는 본래 체질이 약하거나 담음이 있는 사람에게 잘 생기며, 비위가 허약하고 간의 기능과 위의 기능이 조화를 잃었을 때 입덧이 심해진다고 나와 있다.
입덧은 ‘건강한 임신의 증거’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편하게 하고 이 시기를 보내는 것이 좋다. 혹시 ‘내가 잘 못 먹어서 아기가 잘 크지 않으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초기의 태아는 아주 작고, 많은 영양분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임신오조’는 임신부와 태아의 안전에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다. 안태금출탕, 보생탕, 가미이진탕 등이 임신오조 치료에 효과가 있다.
많은 임신부들이 ‘임신 중에 한약을 복용해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하는데 한약재는 임신 중 복용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있으며 태아와 자궁을 안전하게 하는 안태약을 비롯해 임신 중 나타나는 오저, 태동 불안, 소화 불량, 기력 저하, 감기, 요통 등 임신부에게 처방되는 한약은 임신부와 태아에게 무해한 약재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복용해도 된다. 우리 선조들이 수백 년 동안 임신부에게 처방해왔기 때문에 충분히 임상실험을 거쳤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유산 방지 한약과 순산을 위한 한약을 복용한 임신부를 추적 조사한 여러 연구에서 한약 복용으로 인한 기형아 출산 등 태아에 문제가 생긴 경우는 없었으며 오히려 유산율이 감소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한약 중에서도 임신 중에 피해야 할 약은 90여 종이 넘는다. 이런 금기약은 환자의 체질·증상·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한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받아 복용해야 한다.
이경섭 원장은…
경희대 여성의학센터 교수, 강남경희한방병원장. 여자로 태어나 자라고 노화되는 일생을 한의학적으로 예방·관리·치료하는 데 전념하는 한방부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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