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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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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 관계에 대한 새로운 생각

독일인 주부 유디트의 좀 다른 시선

기획·한여진 기자 글&사진·유디트

2011. 09. 28

고부 관계에 대한 새로운 생각


1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처럼 한국 남자와 결혼한 외국인 친구를 만났다. 같은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금세 친해져 여름 방학 때 한국어 수업에 함께 다니기로 약속했다. 한국어 수업이 시작되기 며칠 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안해요. 방학 때 한국어 수업을 같이 못 들을 것 같아요.”
“아, 그래요? 왜요?”
“시어머니가 한국어 수업에 다니는 대신 집에서 한국 요리를 배우라고 하시네요. 남편도 시어머니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요.”
“아, 네….”

2 그 일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그 후 한국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며느리들의 속사정을 알게 됐다. 한국 시어머니들은 아들과 며느리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일이 많다는 것을 말이다. 한국에서 산 지 11년 된 지금도 한국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맺어지는 ‘이상한 관계’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요즘도 가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왜 갈등이 생기는지, 해결책은 없는지 생각하곤 한다.

3 친구의 일을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의 시어머니가 왜 그런 행동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친구가 방학 동안 요리를 배울지, 한국어를 배울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독일이라면 이런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원만한 고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의 사생활을 존중해줘야 한다. 한국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많은 것을 바란다. 그래서 한국에서 좋은 며느리가 되기 위해서는 ‘가식’이 필수인 듯 하다. 솔직한 며느리일수록 시어머니를 실망시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식’도 하루이틀이다. 아무리 인내심이 뛰어나고 타고난 여우라도, 아들 며느리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한국에서는 평생 좋은 며느리가 되기는 힘들다.
한국에서는 여자가 결혼하는 것을 ‘시집간다’라고 표현한다. 이 말에는 여자가 결혼하면 친정을 떠나 며느리로서 시집의 일원이 되는 것이란 뜻이 담겨 있다. 이런 사고방식을 처음 접했을 때 당황스러웠다. 더불어 ‘만약 내가 독일 남자와 결혼했다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시집간다’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에는 여자가 결혼해 친정을 떠나 남편의 가족 안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이는 한 명도 없다. 젊은이들이 결혼하면 그 부부가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신랑이 시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랑과 신부 둘 다 자신의 부모를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이니까. 당연히 시부모나 장인, 장모 누구도 그들의 가정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
물론 시부모는 소중한 분들이기에 며느리도 시부모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며느리가 시부모의 생활을 존중하는 것처럼 시부모도 며느리와 아들의 새로운 삶을 존중해야 한다.

고부 관계에 대한 새로운 생각

1 결혼식날 시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2 십여년이 넘게 한결같이 며느리를 이해하고 존중해주시는 시어머니. 3 11년전 결혼을 하면서 한국의 시집 문화를 알게 됐다는 유디트. 그는 결혼은 ‘시집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남녀가 만나 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4 친구의 경우를 다시 생각해보자. 나는 시어머니보다 남편의 행동이 더 이해 하기 어렵다. 한국의 보통 남자들에게 ‘효심’이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착한 아들’과 ‘좋은 남편’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국 남자들도 여럿 봤다. 하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 착한 아들 쪽을 선택한다. 친구의 남편도 예외가 아니다. 고부 갈등을 없애기 위해 며느리에게만 양보를 강요한다면, 그 관계가 장기적으로 유지될까? ‘남편’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갈등하는 일도 언제나 ‘아들이나 남편이라는 이름의 매개체’로 인해 벌어진다. 따라서 행복한 고부 관계를 위해서는 아들이자 남편의 올바른 처신이 필요하다.



5 며느리들의 행동도 바뀌어야 한다. 아직도 친구가 ‘스스로에 대해 내린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 물론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을 남편에게만 의지하고 사는 그의 처지도 알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소한 갈등이 두려워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 후 더 이상 그 친구를 만나지 않지만, 그가 아직도 시어머니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을지 궁금하다.

6 한국에서 사는 한 한국의 풍습과 문화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시어머니를 좋아하지만 ‘훌륭한 한국 며느리’는 영원히 되지 못할 것 같다. 다행히 시어머니는 나의 이런 생각을 이해해주신다.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나에게도 ‘시어머니(!)’가 생겼다. 독일 남자와 결혼했더라면 절대 없었을 시어머니가 생긴 것이다. 나의 시어머니가 나를 이해해주시고 양보도 많이 해주셨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기분 좋게(!)’ 시댁에 갈 수 있다. 정말로 좋은 며느리이고 싶어 하는 나, 그런 내가 진짜 좋은 며느리가 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생각과 행동에 달려 있다. 내가 결혼한 사람은 시부모님이 아니라 남편이니까!

고부 관계에 대한 새로운 생각


고부 관계에 대한 새로운 생각


유디트씨(40)는…
독일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 온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왔다. 현재는 강릉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강의를 나가면서 강원도 삼척에서 남편과 고양이 루이, 야옹이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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