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패키지여행을 할 때마다 맞닥뜨리는 풍경이 있다. 아빠(남편)는 빼놓고 모자 혹은 모녀끼리 여행 온 사람들이다. 중국 생활 첫해 국경절 연휴 때 시안으로 여행 갔을 때였다. 비행기든 기차든 표를 구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패키지여행을 등록했는데 여행객 40여 명 가운데 서너 팀이 모자 혹은 모녀였다. 아버지가 시간 낼 때까지 기다리다 다 같이 여행을 못하느니 가족 중 가능한 사람들끼리 여행하는 것이다.
가족계획으로 대부분 자녀를 한 명밖에 두지 않은 중국 가정에서 어쩐지 아버지가 소외되는 듯한 모습은 어버이날을 맞는 아이들의 태도에서도 읽을 수 있다. 중국에는 ‘어머니의 날(5월 둘째주 일요일)’과 ‘아버지의 날(6월 셋째주 일요일)’이 따로 있다.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이때 아이들의 반응이 사뭇 다르다고 한다. 엄마에게 길고 살가운 편지를 쓰는 아이들이 아빠에게는 “쓸 말이 없다”면서 편지 쓰기를 꺼리거나 혹 쓴다 해도 몇 줄 안 된다는 것이다.
학부모 참여 수업에 참가한 중국의 아버지들. 젊은 아버지들은 과거보다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다.
가정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중국 역시 ‘자녀교육은 어머니 몫’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 같다. 실제로 학부모회의 참석자들의 70% 이상이 어머니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에서도 아버지의 부재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래서 학교에서 아버지 대상의 회의를 따로 마련해 아버지들이 자녀의 학교생활에 관심을 갖도록 독려하기도 하고, 홍콩에서는 바쁜 아버지를 대상으로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저녁 식사 하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중·고등학교로 진학할수록 아빠의 교육 참여율 높아
하지만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중국의 아버지들은 한국의 아버지들에 비해 육아에 적극적인 편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에게 식사를 차려주는 아빠, 휴가를 내서 학부모회의에 참석하는 아빠가 적지 않다. 앞서 학부모회의 참가자들의 다수가 엄마들이라고 했지만 뒤집어보면 30%는 아빠라는 얘기다. 초등학교보다 중·고등학교로 갈수록 아빠들의 참석률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아빠가 학교를 찾았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처럼 ‘무슨 일을 하기에 대낮에 학교에 왔을까’라는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는 경우는 없다. 무엇보다 중국 아빠들은 잦은 야근과 회식, 술자리 등에 떠밀려 가정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드물다. 매일 늦기 일쑤인 한국 남자들의 귀가시간을 듣는 중국 여자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그걸 어떻게 참고 사느냐”며 눈이 휘둥그레진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퇴근 후 집으로 직행하는 중국 아빠들이 자녀와 함께 어울리는 시간도 자연히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전거 뒤에 아이를 태우고 등하교시키는 아빠, 아파트 공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탁구·배드민턴·축구 등을 즐기는 아빠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부자유친(父子有親)이 된다.
물론 아빠가 교육 측면에서 똑 부러지는 엄마에 비해 뒤떨어지는 건 중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빠의 이런 점이 오히려 아이의 독립심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 열 살인 왕자오리는 엄마가 출장으로 집을 비울 때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고 숙제도 혼자 잘 한다. 엄마 대신 아빠가 식사며 등하교, 숙제 등을 살뜰하게 챙기지만 자오리는 “아빠는 어쩐지 미덥지 않아서”라는 농담을 던지며 자기 일은 스스로 해결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하물며 아빠야 말해 무엇 하랴. 중국은 요즘 아이 키우는 일은 엄마만으로 혹은 엄마 같은 아빠만으로는 부족하며, 전통적인 엄부자모(嚴父慈母)든 요즘 세상의 엄모자부(嚴母慈父)든 아이에게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필요한 존재라는 걸 깨달아가는 중이다.
이수진씨는…
문화일보에서 14년 동안 문화부·산업부·경제부 기자로 일하다 지난해부터 중국 국무원 산하 외문국의 외국전문가로서 인민화보 한글판 월간지 ‘중국’의 한글 책임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중1, 초등 5학년 아들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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