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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한국계 여기자 유나 리

전 세계 이목 집중!

글 이설 기자 | 사진 AP 로이터 제공

입력 2009.09.22 16:58:00

한 걸음 두 걸음, 그가 전용기에서 조심스레 내렸다. 백지장처럼 창백한 얼굴이었다. 깊숙이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넨 뒤 곧장 딸에게 달려갔다. 와락 엉겨붙는 아이를 안고 한참을 주저앉아 울었다. 보는 이의 마음도 촉촉하게 젖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더 큰 관심을 모은 유나 리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한국계 여기자 유나 리


“딸 하나와 함께 요리도 만들고 머리도 빗겨주고 춤추고 놀기도 합니다. 저녁식사 후 가족과 산책도 하고 남편과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바로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또 가족에게 소홀할까봐 이제야 인사를 전합니다. 석방을 위해 힘써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LauraAndEuna.com’은 북한에 억류됐던 기자들의 석방을 위해 만들어진 사이트. 두 여기자 중 한국계인 유나 리(36·이승은)는 최근 이 사이트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지난 8월5일 집에 돌아온 뒤 휴식을 취하던 그가 처음 외부에 띄우는 메시지였다. 글에는 엄마가 북한에서 보낸 음성메시지를 듣고 또 들었다는 딸 하나와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앨 고어 전 부통령이 설립한 미국 케이블 커런트TV 소속인 유나 리와 로라 링(32)은 북한에 억류된 지 141일 만에 풀려났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직접 날아가 담판을 지었다. 두 사람이 체포된 것은 올해 3월17일. 중국 지린성 옌지 북한 접경지역에서 탈북자를 취재하다가 국경선을 넘은 것이 문제가 됐다. 당시 동행한 이탈리아계 카메라 기자 미치 코스와 조선족 가이드는 잡힌 직후 탈출했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껄끄럽던 시기에 발생한 억류사건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6월 북한이 두 여기자에게 ‘불법입경죄’‘ 조선민족적대시죄’로 12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하자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간 한국은 미국 못지않게 이 사건에 촉각을 세웠다. 북한도 북한이지만 두 여기자 중 한 명이 한국계인 것도 이유였다.
유나 리는 한국에서 태어나 9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갔다. 예술분야 명문 종합대학인 샌프란시스코의 아카데미 오브 아트(Academy of Art)에서 영화와 방송을 전공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리랜서로 웹 마스터, 프로그램 편집 등을 담당하던 그는 2005년 커런트TV에 입사한다. 그의 직함은 프로듀서(producer)와 편집자(editor) 업무를 동시에 맡는 프레디터(preditor). 한 보도에 따르면 그는 탈북 취재와 관련, “미국 젊은이에게 어필하기 위해 빠른 편집과 다양한 음악을 넣은 작품을 만든다. 이번 탈북자 다큐멘터리도 그런 방식으로 제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족으로는 샌프란시스코 템플침례교회에서 만나 결혼한 희극배우 마이클 샐디트씨와 사이에 4세의 딸을 두고 있다. 딸 하나는 한국말도 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부모는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남편 샐디트씨는 한 인터뷰에서 “아내의 부모님이 미국에 사는 딸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어서 안타까워했다”고 말했고, 동생 지나 리씨는 부모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그의 부모는 미국 방문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나 리는 취재진을 피해 당분간 휴식을 취한 뒤 한인사회 등 주변에 인사를 전할 계획이다.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한국계 여기자 유나 리

10여 년 전 미국 이주, 꼼꼼하고 동료 돕는 데 적극적이라는 평가
한편 국내 누리꾼들은 귀국 후 보인 로라 링과 유나 리의 행보에 대한 흥미로운 비교분석을 내놓았다. 먼저 비행기에서 내릴 때 로라 링은 두 손을 번쩍 들어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유나 리는 깊숙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기자회견 당시 로라 링은 바지 주머니에 한 손을 넣은 여유 있고 당당한 자세로 회견문을 읽었지만 유나 리는 뒤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가족과 상봉해서도 로라 링은 비교적 많은 이야기를 나눈 반면 유나 리는 눈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후 로라 링은 북한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유나 리는 아무런 입장 표명이 없었다. 한마디로 로라 링이 더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로라 링이 취재를 주도했다” “유나 리는 한국계라 정치적인 영향을 고려해 처신을 조심하는 것이다” 등의 추측이 나오지만 확인된 것은 없다. 다만 로라 링은 탐사보도 전문기자인데다 친언니가 유명 북한전문 기자인 반면 유나 리는 영상 편집 기자라는 점에서 첫 번째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로라 링의 언니 리사 링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북한 내부’로 이름을 알렸다. 전문가들은 탐사보도 기자인 로라 링에게도 이번 경험은 중요한 커리어 자산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사는 물론 책과 방송 등으로 활용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유나 리는 한국어에 능통해 조력자 신분으로 동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목사의 이야기도 이를 뒷받침한다. 두 기자는 취재 전 중국 내 탈북자 문제에 정통한 천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천 목사는 한 인터뷰에서 “당초 서양인을 보내려 했으나 ‘탈북자 취재는 비공식적으로 이뤄진다’는 조언에 아시아계 기자로 교체했다. 한국말이 유창한 유나 리씨는 중국에서 취재하는 동안에도 전화를 걸어와 진행상황을 알렸다”고 말했다. 커런트TV 동료들은 “유나는 꼼꼼하고 동료를 적극적으로 돕는 배울 점이 많은 친구”라고 증언했다.
이들은 북한 억류 당시 따로 떨어져 초대소에 머물렀지만 가끔 가족과 통화를 하고 달걀프라이와 토스트 등 미국 식단도 제공받았다. 하지만 24시간 내내 감시원이 방을 지키는 감금생활을 했으며,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아 언제 노동교화소에 끌려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밥에 돌이 섞여 나오고 물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불편한 부분도 많았다.
한편 미국에서는 두 기자가 북한에서 겪은 이야기가 책이나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대형 출판사 하퍼콜린스는 두 사람에게 북한 억류부터 석방까지 전 과정을 기술하는 대가로 1백만 달러(약 12억3천만원)를 제시했다. 일부 방송사는 두 사람과 독점 인터뷰를 위해 수백만 달러를 제공할 의사를 밝혔다.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도 “위험에 처한 두 여기자를 전직 대통령이 구출한다는 스토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좋은 소재”라며 영화화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가족은 “아직은 아무런 계획도 없다”는 반응이다.

여성동아 2009년 9월 5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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