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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좋은 엄마 당당한 배우 전수경

“이혼 후 홀로서기 성공한 건 아이들, 그리고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무대 덕분”

글 김유림 기자 | 사진 조영철 기자

입력 2009.07.21 11:51:00

뮤지컬 배우 전수경은 ‘의외성’을 품고 있다. 무대 위에서는 뜨거운 열정을 내뿜지만 그 이면에는 마음 여린, 그래서 때로는 고지식해 보이는 또 다른 그가 있다. 지난해 결혼 15년 만에 홀로서기를 시작한 전수경은 결심하기까지 오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가 불러온 결과였다. 하지만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지금,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무대와 관객, 환호 속으로 다시금 뛰어들 준비가 돼 있다.
좋은 엄마 당당한 배우 전수경


해질 무렵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 연습실에서는 귀에 익은 노래 ‘댄싱퀸’이 흘러나왔다. 뮤지컬 ‘맘마미아’ 공연 준비로 분주한 그곳에서 전수경(41)을 만났다. 신나게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역시 그다웠다. 날렵한 몸짓은 그대로였지만 예전에 비해 다소 살이 오른 모습이었는데, 그에게 “건강해 보인다”고 하자 “지난해 위장병을 심하게 앓은 뒤 규칙적으로 식사를 했더니 살이 찌더라”며 웃었다.
지난해 전수경은 위궤양뿐 아니라 그보다 더한 마음의 병을 앓았다. 올봄 언론에 알려진 대로 15년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것.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오랜 세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는 그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엄마 아빠의 싸우는 모습보다는 떨어져 살지만 각자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주원성· 전수경은 93년 ‘뮤지컬 배우 커플 1호’로 화제를 모으며 결혼에 골인했다. 2002년에는 결혼 9년 만에 불임을 극복하고 인공수정으로 쌍둥이 딸을 얻어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신혼 초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 두 사람의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골이 깊어갔고, 아이들이 태어난 뒤에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고.
좋은 엄마 당당한 배우 전수경

“결혼하고 9년 정도 흘렀을 때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어요. 당장 이혼하고 싶었지만 ‘10년은 채우자’는 심정으로 꾹 눌러 참았죠. 마침 그 무렵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다시 한 번 희망을 품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부관계가 좋아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관계가 회복되기는커녕 점점 더 나빠졌고, 떨어져 있는 시간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별거로 이어졌죠. 그러다 지난해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사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 같고…, 또 아이들이 어릴 때 빨리 얘기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결단을 내렸어요.”

“가정적이지 않았던 남편, 따뜻하게 감싸주지 못한 내 탓도 커”
이미 오래전부터 아빠와 떨어져 살던 두 딸 지온·시온(8)은 올 초 이혼기사를 보고도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아빠와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는 생활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눈치라고.
“기사가 나자 아이들이 ‘엄마 아빠 진짜 이혼한 거야?’하고 묻더라고요. ‘이혼이 뭔지 알아?’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신문에 났잖아. 주원성·전수경 파경이라고. 그런데 엄마는 아직도 아빠를 사랑해?’ 하고 묻더군요. 아이들에게 모든 걸 설명해줄 순 없었지만, 엄마 아빠가 선택한 길이 서로를 위한 것이었고, 엄마 아빠가 헤어졌지만 아빠는 언제나 너희들의 아빠라고 얘기해줬어요.”
이혼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전수경은 “나는 극도로 현실적인 사람인 반면, 아이들 아빠는 몽상가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라고 답했다. 서로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보니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얼마 전 결혼한 친구가 부부교실에 다녀왔다면서 해준 말이 있어요. 남자와 여자의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요. 만약 아내는 남편이 꼬박꼬박 월급을 가져다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돈은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것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갈등이 생긴다는 거죠. 저희도 그랬어요. 저는 남편이 가정적이길 바랐고, 남편은 일적으로 성공해서 가족을 기쁘게 해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꾸 일을 벌이고, 밖으로 돌았죠. 그럼에도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주길 바랐을 텐데,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어린 나이에 결혼해 정신적으로 미성숙했던 탓도 큰 것 같아요.”
전수경은 “어디서든 아이들 아빠로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고, 행복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아이들과 관련된 일이라면 언제든 전 남편과 편하게 만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좋은 엄마 당당한 배우 전수경

재혼할 생각이 있냐고 묻자 그는 “남자친구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고는 “남자친구가 생기면 딸들에게도 당당하게 소개시키고 싶다”며 웃었다.
전수경은 올해 두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학부형이 됐다. 아이들에게 아빠 몫까지 해줘야 한다는 게 쉽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같은 반 엄마들과 함께 바자회를 열었어요. 열심히 물건도 팔고, 아이들 친구들에게 사인도 해줬죠(웃음). 직접 학교에 가서 보니까 두 아이 모두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아 마음이 많이 놓였어요.”
1분 간격으로 세상에 나온 두 딸은 쌍둥이인데도 다른 점이 많다. 지온이는 A형에 곱슬머리, 오른손잡이인 반면, 시온이는 B형에 직모, 왼손잡이. 키와 몸무게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데, 키가 크고 마른 지온이는 겉보기엔 약해 보이지만 건강하고, 몸무게가 더 나가는 시온이는 건강해 보이지만 감기에 잘 걸리고 시력도 안 좋다고. 전수경은 “그래서 아이 키우는 재미가 더 크다”며 밝게 웃었다.
5월 말부터는 ‘맘마미아’ 공연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일은 그에게 삶의 활력소나 마찬가지. 그가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이혼의 아픔을 털고 일어날 수 있었던 것도 언제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무대와 관객, 뜨거운 환호성 덕분이다.
좋은 엄마 당당한 배우 전수경

“나이가 들수록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20대 때는 뭔가 빨리 이뤄야 할 것 같아 아등바등했고, 30대 때는 어느 정도 노하우가 쌓이면서 일하는 게 마냥 재밌었던 것 같아요. 40대가 되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반면, 체력은 점점 떨어지죠(웃음). 그래도 젊은 친구들과 경쟁하는 게 즐겁고, 자극도 많이 받아요.”
그가 이번에 맡은 역할은 세 친구 중 개성 넘치는 성격의 ‘타냐’. 전수경은 2006년 초연 때부터 줄곧 타냐 역을 맡아 이번이 벌써 9번째다. 지난해 영화 ‘맘마미아’가 국내에 상영됐을 때는 타냐 역의 크리스틴 바란스키와 똑 닮은 외모로 지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고. 그는 “그분이 나이가 많아서 그렇지, 내가 먼저 타냐 역을 했으니 그분이 날 닮은 거 아니냐”며 웃었다. “여러 번 타냐를 연기하면서 성격도 비슷해졌을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성격으로 보면 책임감 강하고 진지한 도나, 로지에 가깝다”고 말했다.
“흔히 뮤지컬 배우 하면 자유분방할 거라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지 못해요. 원칙주의자고, 남자들한테 인기도 많지 않죠(웃음). 그렇기 때문에 타냐 역을 통해 대리만족을 많이 느껴요. 무대에서만큼은 타냐처럼 매력적인 여자가 된 것 같고, 모든 남자들이 제 뒤를 졸졸 따라다닐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웃음).”
젊은 시절 그는 ‘선머슴’ 같았다고 한다. 키가 크고 개성 있는 외모 때문에 예쁜 여주인공 역할은 거의 맡지 못했다고.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시절 동기인 설경구와 로맨스 연기에 도전했다가 서로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만리장성’이라는 연극이었는데 저는 주인공 미란 공주 역을 맡았고, 설경구씨는 시공을 초월해 미란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현대인 역할을 했어요. 애절한 사랑얘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모두 어찌나 뻣뻣하게 연기를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요. 덕분에 제 별명이 ‘여자 설경구’였다니까요(웃음). 연극을 마치고 나서 서로 ‘멜로연기는 더 이상 하지 말라’고 충고했던 기억이 나요.”

“두 딸 예쁘게 키워 양팔에 팔짱끼고 다니며 ‘미녀삼총사’라 불리고 싶어요”
올해 연기경력 20년째에 접어든 전수경은 오랜 세월 ‘뮤지컬 스타’로 군림하며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하지만 그에게도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97년 ‘브로드웨이 42번가’ 앙코르 공연 때는 경비절감 문제로 ‘정리해고’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고.
“초연 때 제가 맡았던 도로시 역이 더블캐스팅이었는데, 앙코르 공연이 시작되자 저만 빼더라고요. 둘 중 한 명만 캐스팅한 거죠. 더 서운했던 건 동료 연기자 중 어느 한 명 나서서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더라는 거예요. 오랫동안 한 팀, 한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연습했던 사람들이 다들 나 몰라라하는 것 같아 많이 서운했고, 무엇보다 능력 없는 저 자신에게 화가 났죠. 그 일을 겪으면서 실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외국 작품의 경우 현지 스태프와의 의견충돌도 피할 수 없는 일. 2007년 ‘맘마미아’ 앙코르 공연 때는 성대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오디션을 봤다가 결국 떨어져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전년도에 공연했던 배우들은 형식적으로 치르는 오디션인 줄 알았는데, 제 목소리를 듣고는 회복 불가능하다며 탈락시키더라고요. 우리나라 스태프들은 제가 목 상태가 안 좋아서 그렇다는 걸 알았지만 외국 스태프는 그게 아니었어요. 공연까지 10개월이나 남아 있었는데도 냉정하게 거부하더군요. 나중에 목소리가 회복된 뒤 다시 오디션을 볼 수 있어 다행이었죠.”
어느덧 40대에 들어선 전수경은 최근 들어 ‘맘마미아’ ‘메노포즈’ 등 중년 여성의 애환을 다룬 작품에 주로 출연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메노포즈’ 연출자로 나서 폐경기 여성의 심리상태를 실감나게 표현했다. 그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여자로서 내 또래 여성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맘마미아’를 보면 도나의 딸 소피가 결혼식을 올릴 때 섬마을 여자들이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줄을 지어 결혼식장으로 이동하잖아요. 중년 여성들의 우정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대중문화는 젊고 예쁜 여자들의 러브스토리는 넘쳐나는 반면, 나이 들고 소외된 여성의 얘기는 잘 다루지 않는데, 앞으로는 중년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전수경은 공연장을 찾는 주부들이 그 시간만큼은 즐겁고 흥겨운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고 말한다. 마음은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싶은데도 남의 시선을 의식해 점잔 빼고 있는 주부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그는 “당당하게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여자가 아름답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엄마로서 두 딸에게 바라는 점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여자로 자라면 좋겠어요. 어떤 시련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시련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사람, 바르고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요. 아이들에게 부모의 이혼이라는 큰 상처를 안겨줘 미안하지만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더욱 노력하며 살 거예요.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두 딸 팔짱을 끼고 ‘미녀삼총사’라 자칭하며 거리를 활보하고 싶어요(웃음).”

여성동아 2009년 7월 5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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