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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유인경의 해피토크

미래를 결정하는 오늘의 시간

입력 2009.03.11 12:01:00

미래를 결정하는 오늘의 시간

이상미_Road map - a windy day_60×60cm_장지에 채색_2008



가스펠 가수로 유명했던 박혜경씨와 오랜만에 만났다. 그가 준 새 명함에는 뜻밖에 반찬회사 대표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나 이제 반찬가게 아줌마야”라고 수줍어하는 그의 곁에서 친구가 설명을 곁들였다.
 “이 사람이 노래도 잘 부르지만 더 잘하는 게 요리예요. 친정엄마가 워낙 솜씨가 뛰어나 우리 친구들이 얘네 집에 가면 항상 배 부르게 먹었다니까. 공연을 앞두고도 항상 단원들이나 동료를 위해 도시락을 준비해오고 집에 초대해 음식을 해주는데 다들 맛있다고, 그냥 얻어먹기 미안하니 제발 사먹게 해달라고 해서 만든 게 주문 반찬가게예요.”
 친구의 말을 듣고 있던 박혜경씨는 행복한 표정이었다.
 “노래를 부를 땐 남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경쟁심, 재능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열등감도 느끼는데 요리를 만들 때는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맛있게 먹여야겠다, 정성을 다하자는 마음에 더 즐겁더라고요. 하루 종일 어떤 재료를 쓸까, 이번엔 어떤 양념과 배합할까 궁리하고 몸을 움직이는데도 피곤하지 않아요. 생각해보니 내가 노래를 부른 시간보다 요리를 하며 보낸 시간이 더 많아요. 엄마에게 손맛을 물려받았겠지만 꾸준히 요리를 했거든. 그러니 노래보다 요리가 전문분야일지도 몰라.”


천재는 재능 아닌 노력으로 탄생

때론 재능보다 열정과 투자하는 시간이 성공의 빛을 발하게 만든다. 여러 연구가 이를 입증한다. 캐나다 몬트리올 맥길대학의 대니얼 레비틴 박사는 독일 베를린 음악학교에서 5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학생들이 20세가 될 때까지 연습한 시간을 계산했다. 그 결과, 최고 연주자로 평가받는 학생은 1만 시간 이상, 단지 좋은 학생이란 평가를 받는 연주자는 누적 연습 시간이 8천 시간가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가 되려면 재능을 타고나도 연습이 필요하고, 최고 중의 최고는 그보다 훨씬 더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경과학자인 대니얼 레비틴은 어느 분야에서건 세계 수준의 전문가, 마스터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1만 시간의 법칙’을 만들었다. 1만 시간이란 하루 3시간씩 한 분야에 투자할 경우 대략 10년이다. 만약 하루 10시간씩 투자하면 3년 정도 걸린다. 요리건, 영어공부건, 악기연주건 1만 시간은 투자해야 전문가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시크릿’ 핵심저자 중 하나인 존 아사라프는 이를 ‘잉태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씨앗이 잉태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듯, 꿈을 꾸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 중 하나인 말콤 글래드웰이 최근에 펴낸 ‘아웃라이어’란 책은 우리가 막연히 갖고 있던 성공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뒤집는다. 그는 모차르트, 비틀스, 빌 게이츠 등 우리가 타고난 천재로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이 사실은 기회를 잘 잡고 엄청난 노력을 해서 천재가 된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6세에 작곡을 했다고 알려진 타고난 신동 모차르트의 경우 가장 초기작은 음악가인 아버지가 대신 만들어줬을 가능성이 크고 어린 시절에 작곡한 협주곡 역시 다른 음악가의 작품들을 섞어 배열한 수준이지만, 21세 때 작곡한 협주곡 9번부터는 진정한 걸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협주곡을 만든 지 10년 만에 탄생한 작품이니 1만 시간의 법칙이 맞아떨어진다.

미래를 결정하는 오늘의 시간

이상미_Road map - a windy day_60×60cm_장지에 채색_2008 (2)


 1960년, 영국의 리버풀이란 촌동네에서 그저 열심히 노력하는 고등학교 록 밴드였던 비틀스는 독일의 함부르크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당시 함부르크는 로큰롤 클럽이 없어 영국 등 각지에서 다양한 록밴드 그룹을 데려다 연주를 시켰다. 엄격한 고향과 달리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함부르크에서 그들은 급료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음향도 훌륭하지 않은 클럽에서 밤이고 낮이고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고 또 실컷 즐겼다.
리버풀 무대에서는 고작 1시간만 연주할 수 있어서 가장 잘하는 곡만 반복해 연주했지만, 함부르크에선 하루 8시간씩 여러 곡과 새로운 연주방법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함부르크 시절을 마쳤을 때 그들은 탄탄한 실력을 갖춘 밴드로 거듭났고 팝계의 전설이 됐다. 빌 게이츠 역시 타고난 지능보다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일찍 더 많은 시간을 컴퓨터에 집중할 수 있었던 환경 덕에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들 수 있었다. 컴퓨터가 대중에게 막 보급될 무렵, 극성 어머니회가 컴퓨터 터미널을 설치해 컴퓨터 클럽을 운영한 것이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1만 시간이라면 엄청나게 긴 시간으로 여겨진다. 하루 3시간씩 투자해 10년이 지나야 한다. 지금이라도 시작한 사람은 10년 뒤엔 적어도 한 분야엔 전문가가 돼 있거나 실질적인 성공을 거둔다. 10년 전, “요즘은 다들 대학에 진학하니 경쟁력을 가지려면 대학원이라도 가야 하는 것 아냐?”라는 나의 말에 자극받았던 한 후배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틈틈이 공부해 벌써 석사 학위는 물론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그런데 정작 곁에서 바람을 잡던 나는 해마다 대학원 입학원서만 만지다가 귀찮다고 포기해서 박사는커녕 석사 학위 근처에도 못 갔다.
전업주부이지만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며 손님 접대를 즐기는 남편 덕분에 수시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야 했던 나의 시누이는 55세에 한 음식전문채널이 주최한 테이블코디네이터 공모전에 참여하며 이력서에 ‘전문 주부 경력 30년!’이라고 당당히 밝혀 상을 받았다. 지금은 파티플래너를 꿈꾸며 매일 집과 식탁을 근사하게 꾸민다.
 “평균 수명 100세가 꿈이 아닌 고령화 사회가 오는데 나의 후반생을 무슨 일을 하며 보낼까”라는 게 요즘 나의 화두다.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자한 일은 뭘까. 그 일을 하면서 즐겁고 가슴이 떨리고 행복한 일은 뭘까. 아무리 오래 해도 전혀 지겹거나 고통스럽지 않은 일은 뭘까. 기자이지만 기사를 쓰는 시간이 썩 길지는 않고, 맛있는 음식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늘어나는 뱃살에 금방 후회되고, 수다 떠는 것도 재미있지만 남들에겐 민폐일 수도 있고….
 공부건, 운동이건 심지어 비타민을 먹는 것조차 꾸준히 하는 것을 못하는 내가 그나마 세수, 이 닦기와 더불어 매일 하는 것은 책 읽기다. 좋은 책을 읽을 때, 훌륭한 문장을 발견할 때 난 여전히 가슴이 뛰고 행복해져서 빨리 다른 사람과 이 감동을 나누고 싶어진다. 그럼 앞으로 아이들이나 노인들에게 책을 권하고 읽어주거나 독서캠페인을 펼칠까? 그런데 이 일은 보람은 있지만 돈이 안 될 것 같다.
 책 읽는 것 외에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자한 것은 남의 이야기 들어주기다. 취재나 인터뷰는 물론 지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사람들은 내게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풀린다고 했다. 그럼 ‘제게 털어놓으세요’라는 들어주기 상담소를 만들까. 하루에도 몇 번씩 ‘여러 가지 문제 연구소’를 세웠다 닫았다 하면서 나의 후반생을 궁리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우리 인생은 달라진다. 1만 시간을 따지기 전에 먼저 내게 주어진 매 순간을 감사하게 여기고 잘 써야겠다. 나중에 ‘쓸데없이 인생을 낭비한 죄’로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미래를 결정하는 오늘의 시간

▼유인경씨는…
경향신문사에서 선임기자로 일하며 인터뷰 섹션을 맡아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직장 여성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인데 성공이나 행복을 위한 가이드북이 아니라 웃으며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실수담이나 실패담을 담을 예정이다. 그의 홈페이지(www. soodasooda.com)에 가면 그가 쓴 칼럼과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여성동아 2009년 3월 5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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