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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녀

‘임신 소문으로 마음고생’ 소프라노 조수미 솔직 인터뷰

기획·김명희 기자 / 글·박경아‘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2008. 01. 23

연말연시 후배 성악가들과 함께 공연하기 위해 귀국한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자궁을 드러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그가 임신설로 상처 받은 지난날의 아픔과 평범한 여성으로 살고 싶은 속내를 처음으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임신 소문으로 마음고생’ 소프라노 조수미 솔직 인터뷰

“빨래와 청소도 하고 장도 보고, 때로는 책도 읽으면서 여자로서의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고 카라얀이 ‘천상의 목소리’라고 극찬한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45). 그는 12월20일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유니버설 뮤직 전속계약 발표 및 오페라 갈라쇼 ‘조수미와 위너스’ 공연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소박해 보이는’ 새해 소망을 밝혔다.
화려한 빨간 드레스가 돋보인 그는 “2008년에는 오페라보다는 음반작업과 콘서트가 많이 계획돼 있다”며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콘서트 활동을 많이 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그가 오페라 활동을 접는 것은 아니다.
“오페라를 하면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이 많아요. 게다가 가끔 음악적으로 ‘준비가 안 된’ 사람들과 작업을 하느라 힘들 때가 있어요. 앞으로는 내가 행복할 때, 음악적으로 성숙한 사람들과 오페라를 하고 싶어요.”
그가 말하는 ‘집’은 이탈리아 로마 교외에 있다. 그 집에는 새들의 지저귐이 멈추지 않는 제법 널찍한 정원이 있다. 그는 일 년 중 절반을 호텔에서 보낸다. 그가 스무 살 나이에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 뒤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면서 잃은 게 있다면 ‘일상의 삶’이다. 머무는 시간이 짧아도 그에게 집은 언제나 마음의 안식처다.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것이 여행이에요. 혹시 목이 상할까봐 호텔방에서 자주 나가지도 못하고 방에서 가습기를 틀어놓고 전전긍긍하면서 사람답지 못하는 삶을 살거든요.”

‘임신 소문으로 마음고생’ 소프라노 조수미 솔직 인터뷰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앞두고 함께 출연하는 바리톤 강형규와 함께 블루스를 선보이는 조수미.


성악가에게 감기는 가장 무서운 적이다. 목이 잠기게 되면 공연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 10년 전 쓴 수필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2007년 다시 개정해 펴낸 ‘아름다운 도전’에서 그는 “목소리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갓난아이”라고 표현했다.
“몇 시간씩 희열에 차서 노래를 부르고는 진이 빠진 채 빈 호텔방에 돌아가면 허탈해요. 노래란 어떤 맘으로 관객과 접하고 있는지 어떤 악기보다도 잘 드러내줍니다. 진정 아름다운 사람일 때, 나눠줄 게 많을 때 관객에게 진정어린 노래로 다가갑니다. 아름다운 목소리, 재능과 테크닉은 관객을 3초는 혹하게 할 수 있어도 오래갈 수 없거든요. 새해만큼은 집이란 나만의 공간에서 사색하고 책도 읽고 가족들과 일상을 나누며 마음을 풍성하게 가다듬고 싶어요.”

자궁근종 수술로 아이 갖지 못하게 됐는데 임신설 나돌아 상처 받아
조씨는 2003년 초 세간에 떠돈 임신설에 대해 오랫동안의 침묵을 깨고 “사실이 아니다”라며 “자궁근종 수술을 받은 것이 와전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이 열리던 날 방영된 KBS 토크 프로그램 ‘남희석 최은경의 여유만만’에서 “2003년 호주 공연 때 심한 하혈로 공연을 취소한 일이 임신설로 번졌다”며 “그 일로 결국 자궁을 드러냈다”고 고백했다.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됐는데 임신했다는 루머까지 나돌아 너무 힘들었어요. 제 꿈이 내 아이를 갖는 것이어서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입양도 고려했는데 한곳에 머물러 살 수가 없으니 포기하고 말았죠. 음악을 그만두면 제가 살 수 없을 테니까요.”
그는 부친 장례식 날 무대에 올라야만 했던 가슴 아픈 기억도 털어놓았다. 2006년 4월 프랑스 파리에서 공연 중이던 그는 부친 임종소식을 전해 듣고도 눈물을 삼키며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다. 스무 살 때 유학을 떠나 아버지 임종도 못 지키게 된 딸이 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졸업정원제였다. 서울대 음대 수석으로 들어갔으나 사랑에 빠져 놀기 바쁘다보니 52등으로 꼴찌를 차지해 대학에서 제적될 위기에 처했던 것.
사실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이탈리아 유학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출국할 날이 가까웠는데도 비행기표 값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웠다고 한다. 유학 후 5년 동안 귀국을 못한 이유도 사실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유학 때문에 그의 첫사랑이자 유일한 사랑과도 이별을 해야 했다.
“순수하고 애틋한 사랑을 했어요. 그 후 그런 사랑을 해보지 못했어요. 최근까지도 그분께 전화해 목소리만 듣고 전화를 끊곤 했어요. 마치 모닥불 같은 은근한 사랑이죠. 한 번은 그분이 제 연주회에 다녀간 것을 알고는 잠이 안 왔어요.”
부친 장례식은 물론 동생 결혼식에도 참석 못한 그도 나라에서 부를 때에는 만사 제쳐놓고 달려왔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는 메트로폴리탄 공연을 취소하고 달려왔다. 마침 그가 서울시 홍보대사를 맡았을 때 당시 서울 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 받은 인상이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어요. 앞으로 경제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언제 어떤 식으로든 한국이 필요하다면 제 일을 제쳐놓고 달려오겠어요.”
유니버설 뮤직과 5년 동안 5장의 앨범을 발매하기로 한 그는 ‘세계 민요집’ ‘러시아 가곡집’ 등 친근한 곡들을 2008년 주요 레퍼토리로 삼을 계획이다. 지난 한 해 ‘라 트라비아타’ 등 두 편의 오페라 도전에 성공한 그는 연말연시 ‘조수미와 위너스’ 콘서트를 연다.
이번 콘서트는 재능 있는 후배들과 한 무대에 서고 싶다는 그의 바람으로 마련됐다. 공연 기획부터 일일이 그의 손을 거친 콘서트 무대엔 소프라노 손지혜,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테너 이정원·정호윤, 바리톤 서정학·강형규 등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이 함께 등장한다.
“제가 걸어온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을 우리 관객에게 소개하고 함께 북돋워주는 기회를 갖고 싶었거든요. 재능 있는 분들이 많아 함께 할 몇 분을 선정하기 어려웠어요.”
‘카르멘’ ‘춘희’ ‘세비야의 이발사’ 등 대중적인 레퍼토리로 구성된 이번 콘서트는 12월16일 광주에서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2008년 1월3일까지 모두 9회에 걸쳐 전국에서 열린다.
“제 집은 로마에 있지만 제 고국은 한국입니다. 제가 최고의 공연을 하고 싶은 나라도 한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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