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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 둔 엄마 여성학자 오한숙희 “당당한 여자로 딸 키우기”

글·송화선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07.11.14 10:37:00

여성학자이자 방송인인 오한숙희씨는 두 딸을 키우고 있는 ‘딸딸이 엄마’다. 그는 딸이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면 먼저 엄마가 역할 모델이 돼야 한다며 직접 딸을 키우며 익힌 비결을 공개했다.
두 딸 둔 엄마 여성학자 오한숙희 “당당한 여자로 딸 키우기”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보다 뛰어난 여성을 뜻하는 ‘알파 걸’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요즘 남녀공학에서는 남학생이 성적 뛰어나고 리더십 강한 여학생들에게 눌려 지내는 경우가 많아 아들 둔 엄마들의 고민이 많다는 얘기도 들린다. 바야흐로 ‘여성 상위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이에 대해 여성학자 오한숙희씨(48)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건 맞아요. 하지만 얼마 전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맞벌이 가정에서 남자의 하루 가사 노동시간은 32분인데, 여자는 2백38분이나 되더라고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남녀 차별 문화가 여전하다는 거죠.”
그는 “지난 2007년 5월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가직 공무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21.5%이지만 5급 공무원 중에는 9.4%, 3급은 4.3%, 2급과 1급엔 한 명도 없다”며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고도 말했다.
그가 이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여성학자이면서 동시에 두 딸을 둔 엄마이기 때문. 그는 희록(19)·희령(16) 두 딸을 키우며 늘 “남녀 차별 사회에서 딸을 당당하고 평등한 사람으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가 찾은 첫 번째 길은 딸을 존중하는 것. 딸을 아들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는 세상의 시선 앞에서 딸이 상처받지 않도록, 더 많이 자랑스러워하고 존중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저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늘 ‘엄마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한 건 너를 낳은 것’이라고 말했어요. ‘엄마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너를 원했다’고요. 그 말을 듣고 아이의 천진한 얼굴 가득 만족과 기쁨이 퍼져나가는 걸 보면 저 자신도 행복해졌죠.”
그는 “아이가 기운 없어 보일 때 슬며시 옆구리를 찌르며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이 뭐라고 했지?’라고 물으면 바로 ‘나를 낳은 거!’라는 대답이 나왔다”며 “우리 모녀 사이에 수없이 반복된 이 대화가 딸에게 세상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자존감을 심어줬을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사회를 접하고, 남자와 여자 앞에 다르게 펼쳐져 있는 현실을 조금씩 알게 될 때 딸 키우는 엄마가 할 일은 ‘그릇된 고정관념을 흔들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 ‘포청천’이라는 드라마가 유행을 했어요. 희록이가 그 드라마에 나오는 호위무사의 칼을 본뜬 장난감을 사고 싶어하기에 ‘절대 동생이나 다른 사람에게 휘두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같이 동네 가게에 갔죠. 그런데 다른 엄마들은 ‘여자아이가 무슨 칼이야, 안 돼!’ 하며 안 사주더라고요. 엄마한테 칼 사달라고 조르다 손목이 잡힌 채 가게 밖으로 끌려가는 아이가 우리 아이를 선망에 찬 눈으로 보는 게 느껴졌어요.”

두 딸 둔 엄마 여성학자 오한숙희 “당당한 여자로 딸 키우기”

딸이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면 엄마가 먼저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여성학자 오한숙희씨.


그는 “그런 일이 반복되면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이 칼이나 총을 들고 멋지게 폼을 잡을 때 무서워서 피하고 도망다니는 역할을 하게 된다”며 “그럴수록 남자아이들은 신이 나고 여자아이들은 두려움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딸들은 다섯 살만 넘으면 세상으로 나가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사회인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죠. 그럴 때 부모가 가장 걱정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신체적으로 약자인 딸이 신체적 폭력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거잖아요. 딸을 집안에 가둬놓을 게 아니라면, 어릴 때부터 적극적으로 그 부분에 대한 대책을 찾아야 해요.”

딸 키우는 엄마가 할 일은 사회의 그릇된 고정관념을 흔들어주는 것
그는 “여성으로 이스라엘의 총리가 된 골다 메이어는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여자들의 야간 통행을 금지시키자는 제안을 듣고 ‘성폭력을 예방하려면 여자가 아니라 남자들을 야간에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며 “딸을 키울 때 필요한 건 이런 자신감과 당당함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자세로 어떤 문제든 당당하게 맞서야 이겨낼 수 있어요. 우리 딸들이 안전과 자유를 지키는 방법도 ‘피하기’가 아니라 ‘정면 대응하기’여야 하죠. 사실 호신술의 기본은 기싸움입니다. 제가 호신술 강사에게 들은 바로는, ‘덤빌 테면 덤벼 봐’ 하는 눈빛으로 일단 상대를 제압해야 한다고 해요. 다음 단계는 소리 지르기죠. 버스나 지하철에서 남자들이 잡거나 만졌을 때 ‘놔!’ 한마디만 힘 있게 해도 파렴치범을 떨쳐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여자들은 그게 안 돼요.”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딸에게 맘껏 소리 지르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아주 어린 시절엔 집이 떠나가게 큰 소리를 지르던 아이도 자라나면 ‘여자답게’ 사는 것에 길들여지며 목소리가 잦아들기 쉽다. 그래서 틈틈이 큰 소리를 지르며 기를 발산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영화에서 봐도 여자는 남자가 다가오면 ‘소리를 지르겠어요’라고 위협만 하지, 정작 큰 소리를 못 내잖아요. 평소 큰 소리를 내본 적이 없고 여자는 큰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일종의 금기가 암묵적으로 체화돼 있기 때문이에요. 딸을 키울 때는 그 금기를 깨버리셔야 해요. 산에 데려가 크게 ‘야호’를 외치게 하고 배가 아플 때까지 ‘더 크게! 더 크게!’ 독려하세요.”
마지막으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엄마가 딸의 ‘희망’이 돼주는 것이다. 딸은 엄마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 모든 딸은 엄마를 사랑하게 마련이지만, 엄마의 삶을 존경하고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딸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 그는 “딸에게 ‘넌 나처럼 살지 마’라고 말한다고 해서 딸이 다르게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말 딸을 사랑한다면 스스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가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성장하는 것은 딸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늘 여성들에게 ‘내 딸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말해요. 자식은 부모가 말한 대로 사는 게 아니라, 부모가 살아간 대로 살게 마련이니까요.”
오한숙희씨는 최근 이런 자신의 딸 교육법을 담아 ‘딸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의 다음 목표는 곧 스무 살이 되는 큰딸 희록이를 위해 ‘스무 살의 여자에게 인생 선배가 주는 삶의 지침을 담은 책’을 쓰는 것이라고 한다.
“언제부턴가 제 삶의 목표는 우리 딸들이 보기에 자랑스러운 엄마, 닮고 싶은 여성이 되는 거였던 거 같아요. 앞으로도 그 생각을 간직하며 딸과 더불어 성장해가고 싶습니다.”

여성동아 2007년 11월 5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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