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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치는 사랑에 관한 잠언으로 가득한 소설 ‘슬픈 카페의 노래’

기획·김동희 기자 / 글·민지일‘문화에세이스트’

입력 2006.10.18 15:18:00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고독한 인간들의 기이하고 슬픈 사랑을 그려낸 작품.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던 여주인공이 사랑으로 인해 변화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통해 불가사의한 사랑의 힘과 떨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고독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가슴을 치는 사랑에 관한 잠언으로 가득한 소설 ‘슬픈 카페의 노래’

발라드(ballard)는 춤곡이란 원래 의미보다 흔히 이야기 곡, 담시(譚詩) 곡으로 번역한다. 예전엔 영웅전설이나 명망가의 연애비화를 담은 곡을 말했지만 최근엔 감상적 사랑 노래를 대개 발라드라 부른다. 대화 형식으로 하고자 하는 얘기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데 멜로디도 좋지만 가사에 더욱 무게를 둔다. 명쾌하게 정의하자면 발라드는 등장인물과 스토리가 아주 뚜렷하며 지극히 센티멘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노래다.

미국 남부 하면 고집스럽고 괴팍한 백인, 핍박받는 흑인, 덥고 끈적끈적한 기후와 저음으로 흐느끼듯 깔리는 노래가 연상된다. 카슨 매컬러스가 쓴 ‘슬픈 카페의 노래’는 남부의 그런 분위기를 강하게 담은 소설이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송(song)이 아닌 발라드다. 등장인물은 개성이 뚜렷하며 이야기는 섬뜩하고 기이하다. 쇠사슬에 묶인 죄수들이 땡볕 아래 흐느적대며 일하는 모습과 영혼의 바닥에서 흘러나오는 저음의 노래가 교차하듯 이야기는 전개된다. 서두에 제시한 사랑의 정의가 몽환적 분위기를 타고 읽는 이의 가슴으로 밀려든다.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지를 수 있다. 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면서도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 있고, 의미 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도 모른다.”

보잘것 없는 사람도 격렬하고 무모한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미국 조지아주 어느 황량하고 작은 마을. 세상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것같이 ‘외롭고 슬픈’ 동네다. 여름은 작열하는 태양으로 하얗게 불타오르고 겨울은 짧지만 혹독하다. 사람들은 방적공장에서 일하며 그야말로 살기 위해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먼지 나는 큰길, 무너질 것 같은 목조건물, 방 두 칸짜리 집들로 이어진 이 마을에선 밤에 도무지 할 일이라곤 없다. 무료의 극치. 그러나 한때는 이곳에도 카페가 있었다. 거기 기이하고 비틀린 것일망정 사랑이 있었다. 그에 따라 삶의 활기가 있었고 이야기가 있었다.

카페 주인은 미스 아밀리아. 사팔뜨기로 키와 골격, 근육이 웬만한 남자보다 크고 강했다. 자연히 남자들을 눈 밑으로 보았다. 사료공장을 물려받아 코담배 등을 파는 생필품 가게로 운영하는 그녀는 돈의 노예. 인색하고 야비하며 마을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 궁리만 했다. 그런 그녀 앞에 어느 날 볼품없는 곱추 라이먼이 나타난다. 키 140cm에 움푹 들어간 파란 눈, 작은 입술. 야비하고 뻔뻔해 보이는 얼굴. 어느 면으로나 아밀리아의 사랑을 얻기엔 부적격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 도도하던 아밀리아가 곱추에게 빠지는 게 사랑인 것을. 작가는 어떻게 이런 사랑이 가능한지 방문을 열어 살림을 보여주듯 설명한다.



“어떤 사람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증조할아버지가 돼서도 20년 전 어느 날 오후,거리에서 스쳤던 한 낯선 소녀를 가슴속에 간직한 채 계속해서 그녀만을 사랑할 수도 있다. 목사가 타락한 여자를 사랑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배신자일 수도 있고 머리에 기름이 잔뜩 끼거나 고약한 버릇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어디로 보나 보잘것없는 사람도 늪지에 핀 독(獨)백합처럼 격렬하고 무모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라이먼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아밀리아의 성격은 변한다. 베풀 줄 알게 됐다. ‘가운데로 쏠린 두 눈이 남몰래 간직한 슬픔을 나누며 마주보는 듯한’ 사팔뜨기 얼굴에 웃음이 감돌았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라이먼을 위해 카페도 열었다. 카페 선풍기엔 색색의 종이리본이 날리고 토요일 밤에는 늘 손님들로 흥청거렸다. 마을엔 갑자기 활기가 돌았다. 사람들은 카페에서 술을 홀짝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켜 카페를 만들고 카페는 다시 사람과 마을을 변화시켰다.

6척이 넘는 장대한 아밀리아가 난쟁이 곱추 라이먼에게 빠진 것이 불가사의한 사랑의 힘이라면 라이먼이 메이시에게 빠진 것도 그렇게밖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메이시는 아밀리아의 전남편. 그녀와 결혼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사랑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성정이 포악한 그도 사랑할 땐 유순했지만 사랑받지 못하고 집에서 쫓겨나자 본성이 되살아났다. 여러 차례 강도짓을 해 감옥에 갇혔다가 겨우 가석방으로 풀려나왔다. 그런데 그런 메이시를 본 순간 곱추의 가슴엔 사랑이 피어났다.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비굴한 구애의 웃음을 흘린다.

이성, 동성으로 얽힌 비틀린 애증의 삼각관계가 파멸로 치달아
가슴을 치는 사랑에 관한 잠언으로 가득한 소설 ‘슬픈 카페의 노래’

메이시는 한때 아밀리아를 사랑했고, 아밀리아는 라이먼을 사랑하고, 라이먼은 메이시를 사랑하는 비틀린 삼각관계. 뒷바퀴가 앞바퀴를 쫓지만 끝내 잡지 못하는 사랑의 숨바꼭질이 시작되며 카페엔 긴장이 감돈다. 이 불편하고 끈적거리는 관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연주되는 변주곡을 작가는 냉정하게 듣고 본다. 그리곤 칼로 두부를 치듯 사랑을 정의한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온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데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고독한 것임을 영혼 깊숙이 느낀다. 이 새롭고 이상한 외로움을 알게 된 그는 그래서 괴로워한다. … 우리들은 대부분 사랑받기보다 사랑하기를 원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간단명료하게 말한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힘들고 불편하게 느낀다. 사랑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증오하게 되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연인을 속속들이 파헤쳐 알려고 들기 때문이다.”

작가의 사랑관이 이렇다면 이성, 동성으로 얽힌 애증의 연결고리가 파멸로 달려가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터질 듯한 긴장이 극에 달하고 아밀리아와 메이시는 카페에서 일대 격투를 벌인다. 싸움이 아밀리아의 승리로 결판나려는 순간 곱추가 메이시를 도와 전세가 역전된다. 두 남자는 아밀리아가 가진 모든 걸 때려부수고 함께 도망간다. 홀로 남은 아밀리아는 그 후 3년간 곱추를 기다리다 끝내 카페 문을 널판자로 봉쇄하고 침잠한다.

사랑의 변주곡은 끝났다. 만남의 광장, 카페는 폐쇄됐다. 사람들은 다시 무료와 나태의 늪에 빠졌다. 비록 그게 병적인 사랑일지라도 변화를 수반했지만 광풍이 지난 후 변화는 소멸했다. “이제는 좋은 술을 구할 수가 없다. 마을에서 도무지 할 일이라곤 없다. 물방아용 저수지 주위를 걷거나, 썩은 나무 그루터기를 걷어차본다든가 하는 것이 전부다. 영혼은 지루함으로 점점 부패해간다.”

…마을에서 4km쯤 떨어진 고속도로에선 쇠사슬에 묶인 죄수들이 일하고 있다. 강렬한 햇볕과 땀 냄새에 찌든 죄수 중 누군가 침울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어느새 다른 목소리가 어울리고 결국 굵은 합창으로 이어진다. 언젠가는 죽을 운명의 죄수들…사랑의 노예들…언젠가 폐쇄될 카페의 뜨내기손님들…. 열림원 펴냄, 장영희 옮김.
글쓴이 카슨 매컬러스(1917~1967)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서 태어나 남부를 무대로 활약한 여성 작가. 여러 차례 뇌졸중을 일으켜 거동이 불편했으며 쉰 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소외된 사람들의 열망과 고독을 담담한 문장으로 그려냈다. 대표작으로 ‘슬픈 카페의 노래’ 외에도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금빛 눈에 비친 것’ 등이 있다.

화가 이보름
이화여대 동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8차례의 개인전을 열었고, 도쿄, 워싱턴, 파리 등에서도 수차례 단체전과 초대전을 가졌다. 대한민국미술대전, 구상전, 단원미술대전, 서울미술대상전에서 특선을 수상했으며 동국대 한국화과에 출강하고 있다.


여성동아 2006년 10월 5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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