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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마당에서

작가 박완서가 전하는 ‘흙의 노래’

기획·이남희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6.08.24 11:49:00

자연은 우리에게 잔잔한 행복을 선사한다. 눈보라가 쳐도 언젠가는 봄이 오듯이 자연의 질서는 변함없는 법. “풀냄새를 맡으며 흙을 만지노라면 진정한 평화를 맛본다”는 한국의 대표 여성작가 박완서씨가 대자연의 축복 메시지를 보내왔다.
작가 박완서가 전하는 ‘흙의 노래’

이슬에 젖은 풋풋한 풀과 흙냄새를 맡으며 흙을 주무르고 있으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과 평화를 맛보게 된다.

요새도 새벽에 눈만 뜨면 마당으로 나가게 된다. 봄에는 이불 속의 등 따스운 맛에 벌떡 일어나기가 귀찮다가도 식물들의 웅성거림이 들리는 듯한 느낌 때문에 이부자리를 박찼던 것 같다. 밖에 나가 나날이 부드러워지는 공기와 흙의 감촉을 즐기며 마당을 어슬렁거리노라면 땅속에서 아직 움트기 전의 식물들이 부산하게 웅성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런 느낌은 고막에 와 닿는 음향은 아니지만 마음을 두드리기도 하고 무슨 영감처럼 소리 없이 사람을 깜짝 놀라게도 한다.
이른 봄 어느 날은 내 마음에만 들리는 밖의 그런 소란스러움 때문에 마당에 나가니 과연 대기 중엔 봄기운이 완연했지만, 봄 가뭄이 계속되고 잔설마저 사라지고 난 땅은 아직 양회바닥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 안에서 겨울을 난 풀씨나 뿌리들을 움트게 하려면 지표를 부드럽게 호미질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으로 마당을 거닐다가 문득 양지 쪽 꽃밭의 맨땅이 1cm 가까이나 금이 가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중장비차가 부실한 아스팔트길을 지나가면서 남긴 균열을 연상시키는 금이었다. 갈라진 틈 사이로 파란 이파리가 보였다. 지난해 상사초가 있던 자리이니 아마 상사초 이파리일 것이다. 저 연한 이파리가 이 딱딱한 땅에 아기 손가락도 들락거릴 수 있을 만한 균열을 일으키다니, 어찌 소리 없이 그 일이 일어났겠는가.
작가 박완서가 전하는 ‘흙의 노래’

정성스럽게 가꾼 텃밭을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박완서씨.


그렇게 씩씩하게 올라와 시퍼렇게 너울대던 상사초가 지금은 자취도 없다. 죽은 게 아니라 상사초는 이파리가 시들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이나 있다가 꽃대가 올라와 홀로 청승맞게 핀다. 그게 상사초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상사초처럼 땅에 균열을 일으키며 솟아오르는 식물이 또 하나 있는데 그건 복수초다. 복수초는 이파리보다 앞서 꽃이 피는데 꽃 판이 민들레보다 큰 노란 꽃봉오리가 직접 땅을 뚫으려면 상사초 이파리 못지않은 균열을 일으켜야 한다.
상사초와 복수초가 올라오고 나면 마당은 한층 소란스러워진다. 나무들이 물을 길어올리는 소리, 흙 속의 무수한 씨들이 서로 먼저 나가려고 부산을 떠는 소리가 날로 도타워지는 햇살 속에 파문을 일으키고 지표에 아지랑이를 만든다. 봄기운의 유혹을 못 이긴 산새들도 그때부터가 짝짓기 철이 시작된다. 제 나름의 온갖 미성으로 지저귀기 시작한다. 새벽잠을 깨우던 소리 없는 소요가 비로소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으로 바뀐다. 그때부터 내 일손도 바빠진다.



작가 박완서가 전하는 ‘흙의 노래’

가꾼 티 없이 자연스럽고 사철 꽃 피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마당
아파트에 살 때 땅 집에 살면 무엇 무엇을 해보고 싶다고 꿈꾸던 것을 다 해보았다. 그러나 채마밭 가꾸기는 일년만 하고 그만두었다. 약을 안 치니까 벌레만 꼬이고 잘 안 자라는 것도 문제였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가는 채소장수가 온갖 과일과 채소 이름을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 사주고 싶은 것도 문제였다. 무공해 채소도 좋지만, 농사 이외의 것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전문 농사꾼이 지은 걸 사주는 게 도리일 듯싶었다. 채마밭이 슬그머니 잔디가 되고, 꽃밭이 넓어졌다고 해도 손이 덜 가게 된 것은 아니다. 내가 맨땅을 가만 두지 못하고 꼭 뭐든지 심고 싶어하는 것처럼, 맨땅도 기온만 적당해지고 나면 한시도 맨땅으로 있으려 들지 않는다. 예서제서 푸르름을 내뿜는다. 푸른 것이 올라온다고 해서 다 상사초나 복수초처럼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잔디밭에서도 잔디보다 먼저 시퍼렇게 웃자라는 것들은 내가 원치 않는 클로버나 잡풀들이고, 꽃밭으로 남겨놓은 맨땅에서도 온갖 잡풀들이 아무리 김을 매줘도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 하룻밤 새에 어쩌면 그렇게 많이 퍼지는지, 그 넓지 않은 마당이 매일매일 나에게 만만치 않은 육체노동을 시킨다.
그러나 우리 마당 아니면 누가 나를 새벽부터 불러내어 육체노동을 시키겠는가. 나무그늘이나 꽃밭으로 남겨놓은 맨땅에서는 잡풀만 나는 게 아니다. 쑥, 씀바귀, 돗나물, 부추도 지천으로 난다. 저녁 반찬을 위해, 김치를 담그기 위해, 이슬 젖은 그런 것들을 소쿠리에 소복이 따 담는 맛을 무엇에 비길까. 우리 마당에서 난 거라고 그런 것들을 딸네나, 이웃하고 나누기도 한다. 우리 마당에서 지천으로 나는 돗나물을 건강식품이라고 반색하는 사람도 있다.
먹는 식물이라고 해서 마냥 자라게 할 수도 없다. 나는 우리 마당이 이랬으면 하는 꿈이 있다. 가꾼 티 없이 자연스러우면서도 한겨울 빼고는 사철 꽃이 피어 보기에도 좋고, 마음에도 위안이 되길 바란다. 남들한테 마당이 예쁘다는 칭찬도 듣고 싶다. 농사짓는 사람이 잘된 논밭을 보고 흐뭇해하는 건, 단지 풍족한 수확의 예감 때문만이 아니라 건강한 농작물이 주는 미적 만족감도 있을 것이다. 우리 마당에 대한 그런 조급한 기대 때문에 이른 봄부터 이미 온실에서 개화한 수입 봄 화초를 내놓고 파는 꽃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한 판, 두 판 사다가 여기저기 배치하고 땅속에서 겨울을 난 구근들도 보살피고, 여름에 필 일년초의 씨도 뿌린다. 그러는 사이 목련과 매화, 살구꽃, 앵두꽃, 자두꽃이 거의 같은 시기에 피고, 조팝나무, 라일락이 그 다음을 잇는다. 그것들이 한꺼번에 피었을 때 나는 나의 작은 집과 함께 붕 공중으로 떠오를 것 같은 황홀감을 맛본다.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는 행복감에는 불안감이 없다
나는 그 나무들이 꽃을 피우기 위해 견딘 모진 추위와 눈보라의 세월을 알기 때문에 오래오래 펴있기를 바라지만 봄꽃의 만개기는 일주일을 넘기지 못한다. 하필이면 무슨 심통인지 비바람이 불어, 그 꽃들을 무자비하게 떨군다. 딱딱한 꽃봉오리들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도록 끈기 있게 어루만지던 따사로운 햇살과 부드러운 미풍을 보낸 것과 똑같은 자연의 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조급하고 폭력적이다. 그러나 낙화한 자리에 어김없이 열매가 맺어있는 걸 보면 바람은 벌, 나비가 일일이 다 하기엔 역부족인 가루받이를 도와줬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고도 한두 차례 봄추위와 강풍이 지나고 나면 달렸던 열매들이 대폭 솎아져 실하게 자랄 것들만 남는다.



지금은 한여름이다. 그렇게 자연의 자애와 폭력을 견디고 난 열매들이 익어가고 있다. 청청한 이파리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빛깔로 익어가는 살구와 자두는 지금 한창 과육 사이에 단물을 저장하고 있다. 살구나무는 내가 따기에는 너무 키가 크다는 걸 아는지 잘 익은 순서대로 매일 아침 한 바가지씩이나 그 예쁜 열매를 떨군다. 자두는 키가 크지 않으니까 내가 눈으로 봐서 잘 익은 걸 따 먹을 수 있지만 까딱하다간 벌레들한테 먼저 먹히는 수가 있다. 그러나 내 눈썰미는 벌레한테 미치지 못한다. 내 경험으로는 벌레가 살짝 갉아먹기 시작한 걸 따 먹는 게 가장 당도 높은 자두를 따 먹을 수 있는 비결이다.
이렇게 나무에 매달린 것들을 수확하기도 바쁘지만, 땅 힘이 가장 왕성할 때이기 때문에 땅이 내뿜는 것들을 건사하기도 요새가 제일 바쁘다. 잔디도 아주 잘 자라기 때문에 깎아줘야 하지만 그 사이에 잡풀도 매일매일 제거해줘야 하고, 봄에 씨 뿌린 봉숭아, 백일홍, 과꽃, 나팔꽃도 모종하기 알맞은 크기로 자랐으니 제자리를 잡아줘야 한다. 마침 이른 봄에 사다 심은 온실 꽃들이 시들어가니 그것들을 뽑아버리고 그 자리에 심으면 될 것이다. 꽃밭의 이모작인 셈이다. 그러노라면 매일 아침 흙을 주물러야 한다. 이슬에 젖은 풋풋한 풀과 흙냄새를 맡으며 흙을 주무르고 있으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과 평화를 맛보게 된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행복했던 순간들도 남들 못지않게 많았고, 심장이 터질 듯이 격렬하게 행복했던 순간들은 지금도 가끔 곱씹으면서 지루해지려는 삶을 추스를 수 있는 활력소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크고 작은 행복감의 공통점은 꼭 아름다운 유리그릇처럼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고, 거기 순응하는 행복감에는 그런 불안감이 없다. 아무리 4월에 눈보라가 쳐도 봄이 안 올 거라고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변덕도 자연 질서의 일부일 뿐 원칙을 깨는 법은 없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배우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할 것은, 사물과 인간의 일을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가 아닐까.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이 혹은 누군가가 거두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

작가 박완서가 전하는 ‘흙의 노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자택에서 독서를 하고 있는 박완서씨.


박완서씨는요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1970년 40세의 나이로 제1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된 후 칠순을 넘긴 지금까지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너무도 쓸쓸한 당신’ ‘그 남자네 집’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낸 그는 ‘한국 문학의 축복’으로 불린다.

여성동아 2006년 8월 5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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