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웃음꽃을 피운 태현이네 가족.
머리카락과 눈썹이 모두 빠지고 얼굴과 목이 검붉게 변한 모습에서 일곱 살 이태현군이 겪어온 고통을 짐작할 수 있었다. 태현이의 병명은 ‘염소형 단수성 골수백혈병’. 백혈병 가운데서도 매우 희귀한 질환이다. 어머니 송금영씨(38)는 “지난해 항암 치료와 두 차례 골수이식을 받을 때는 태현이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4월12일, 태현이네 가족은 1년 4개월 만에 장거리 외출에 나서며 오랜만에 웃음꽃을 피웠다. 천체망원경을 갖고 싶은 태현이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집과 병원에 갇혀 있다시피한 태현이는 ‘별나라’를 동경해왔다.
아버지 이기영씨(38)는 “지난해 봄엔 새싹이 돋는지, 꽃이 피는지 알지 못했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하면서 병약해진 아들을 목말을 태웠다.
이날 가족의 나들이는 희귀난치병 어린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한국메이크어위시(Make-A-Wish) 재단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메이크어위시 재단은 태현이네를 경기도 양평군 청소년수련원의 천문대로 초청했다. 천문대에 들어서는 순간 태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련원의 강당 문이 열리자 수십 개의 촛불이 무대까지 가족을 안내했다. 조명이 켜지고 마술사가 무대에 올랐다. 태현이네만을 위한 공연이 펼쳐졌다. 이날 태현이네는 세상의 중심에 있었다.
오색 빛깔의 손수건 마술이 끝날 무렵 커다란 손수건이 사라지자 무대엔 천체망원경이 나타났다. 태현이가 무대로 뛰어올라가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뚜껑이 닫혀 있어서 그래.”
마술사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태현이의 아버지 어머니도 이날만은 맘껏 웃었다. 이날 이벤트를 준비한 메이크어위시재단 서범석 자원봉사팀장(35)은 “태현이가 천체망원경을 통해 별자리뿐만 아니라 희망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밥 잘 먹고 안 아플 테니 엄마도 건강하세요”
백혈병을 앓는 이태현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희귀 백혈병에 걸린 것도, 힘겨웠던 투병생활도, 메이크어위시 재단이 마련해준 이벤트도 모두 꿈만 같다고 했다. 이들 가족에게 악몽이 시작된 것은 2003년 초. 태현이는 조금만 부딪혀도 쉽게 멍이 들었고 멍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자책하지 마세요. 그냥 운이 없을 뿐이에요.”
주치의는 아들의 병명을 알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송씨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난해 1월 항암치료가 시작되고 3월에는 동생 승빈이(5)의 골수를 이식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태현이의 면역력은 떨어졌다. 송씨는 언제부턴가 “아이를 고통 없이 데려가주세요”라고 기도했다.
두 달 뒤 2차 골수이식 수술. 다행히 결과가 좋아 태현이는 7개월 만에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초 태현이는 폐렴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태현이가 엄마 아빠에게 쓴 편지.
태현이에게 뜻밖의 전화가 걸려온 것은 지난해 8월. 그해 봄 우연히 병원에서 홍보물을 보고 메이크어위시 재단에 아들의 사연을 접수시켰는데 답신이 온 것이다.
“동생 승빈이와 함께 별을 보고 싶어요. 친구들에게 별을 보여줄래요. 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든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태현이는 재단 관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천체망원경을 선물받은 태현이와 승빈이는 잇달아 탄성을 내질렀다. 이미 눈시울이 붉어진 이들 부모는 만나는 사람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이들은 직접 별을 보려고 수련원 옥상에 설치된 천문대로 올라갔다. 잔뜩 낀 구름 때문에 달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청소년수련원 정창영 원장(68)은 태현이보다 더 안타까워했다. 정 원장은 7년 전 장손을 백혈병으로 잃은 아픔을 지니고 있었다.
“그 아이의 마지막 소원은 바다를 보는 것이었어요. 부모가 아이를 차에 태우고 대관령을 넘어 동해에 거의 다다랐을 때 아이가 숨졌습니다. 한 아이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태현이네 가족은 다시 강당에 모였다. 태현이의 두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백혈병 아이에겐 골수이식을 받은 날이 또 하나의 생일이다. 태현이는 하루 종일 손에 꼭 쥐고 있던 편지를 읽었다.
“엄마, 사랑해요. 밥 잘 먹그게요(먹을게요). 아나풀게요(안 아플게요). 엄마도 건강하세요. 우리 같이 이겨내요. 나는 우리 가족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엄마도 믿지. 우리 가족 파이팅!”
이 재단의 자원봉사자들과 수련원 관계자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눈물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송씨는 “그렇게 울고도 또 눈물이 나온다”며 억지웃음을 지으려 애썼다.
“태현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겠죠. 또 아픈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늘 이렇게 감사하며 살게요.”
태현이는 매일 이렇게 기도한다.
“8층 아이들이 빨리 나아 저처럼 퇴원할 수 있게 해주세요.”
8층은 태현이가 입원했던 병원의 소아암 병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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