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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유인경의 Happy Talk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아이라는 존재

일러스트·정지연

2006. 05. 04

하인스 워드 모자의 금의환향은 감동적이었다. 낯선 땅에서 고된 일을 전전하면서도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낸 김영희씨의 모습에서 어머니가 위대한 존재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모성애는 타고난 것이기보다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며 얻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론 짐 같고 구속 같지만 아이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고 어려움을 이겨낼 희망을 갖게 된다.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아이라는 존재

매스컴에서 하도 유난을 떨어 조금 떨떠름하긴 했지만 하인스 워드 선수 모자의 금의환향은 감동적이었다. 청와대부터 민속촌에 이르기까지 어딜 가나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다니며 “우리 어머니야말로 진정한 MVP, 오늘날의 나는 어머니가 만드신 것”이라고 말하는 워드 선수의 말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게다가 그 매력적인 살인미소라니….
하도 우리 어머니, 우리 어머니라고 말하며 모든 공을 어머니에게 돌리니 노무현 대통령이 “교과서에 싣고 싶을 만큼 훌륭한 말들이고 효자상이라도 주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힘들여 대학 졸업을 시켜도 빈둥거리고 노는가 하면, 사업자금 대달라고 조르기나 하고, 출세 시켜 놓았더니 나 몰라라 만나기도 힘든 아들 때문에 억장이 무너진 어머니들은 워드 선수 모자를 보며 부러움에 가슴을 쳤을지 모른다.
워드 선수의 어머니 김영희씨는 지금은 아들 덕분에 멋진 집과 벤츠 자동차를 소유하고 어디를 가나 귀빈 대접을 받지만 29년 전, 아니 불과 몇 년 전까지 피눈물 흘리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유난히 편견과 차별이 심한 대한민국에서 검은 피부의 아들을 낳았을 때, 그리고 남편에게 버림받았을 때, 낯선 미국 땅에서 하루 3군데의 직장을 전전하며 아들을 공부시키고 키우면서 가슴엔 피멍이 맺히지 않았을까.
그래도 어머니 자리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기에 자신을 냉대했던 조국에 금의환향해서 효자 아들이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행복한 순간을 누릴 수 있었으리라.

어려움 속에서도 어머니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위대한 어머니
물론 워드 선수도 처음부터 말 잘 듣는 효자는 아니었다고 한다. 반항도 하고, 핏줄을 부정도 하고, 엄마를 창피하게 여기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성공한 후에, 자신도 자식을 낳은 후에는 어머니가 얼마나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했는지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때론 욕도 하고 때리기도 했지만(자식을 잘 키우려면 때려야 한다고 김영희씨는 강조했다. 나도 딸에게 이 말을 강조하고 싶다!) 항상 “넌 잘 될 거다. 그리고 항상 높은 곳에 있을 때 내려올 때 생각하며 겸손해라”란 교훈을 준 엄마의 진심을 이해한 것이다.
난 이제라도 김영희씨가 워드 선수의 자랑스러운 엄마로서만이 아니라 개인 김영희씨로도 자유로운 삶을 누렸으면 한다. 위대한 엄마도 좋지만 여성으로, 인간으로 자기만의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면 왜 안 되는가. 심심풀이 삼아 인근 학교에서 급식 만드는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댄스교실에도 나가고 동네의 찰리 아저씨랑 브리지 게임도 하면 좋겠다.
어머니란 정말 위대한 존재다. 하느님이 너무 바빠 일일이 우리를 돌볼 수 없어 이 땅에 어머니를 만들어주셨다는 말을 믿는다. 하지만 모성애란 절대 타고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끝없이 배우고 노력해야 제대로 된 엄마 역할을 할 수 있다.
요즘은 자신의 일 때문에 아이를 잘 돌보지 않거나 재혼에 걸림돌이 될까봐 이혼할 때 양육권을 포기하는 엄마들이 너무나 많다. 반대로 지나치게 아이들을 위해서만 살며 하루 24시간을 아이만을 위해서 시간표를 짜는 열혈 엄마들도 너무 많다. 후자도 정상은 아니다. 아이를 낳았으면 성장과 교육을 책임져야 하지만 자신의 인생 전부를 아이에게 올인하는 것은 아이에게도 부담되는 일이다.
“엄마가 되면 여자이기를 포기해야 하나요?”
출산을 앞둔 한 주부가 물었다.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아이라는 존재

“여자니까 엄마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물론 아이를 둔 엄마가 자기 외모 가꾸는 데만 열중하거나 다른 남자와 연애하는 것은 당연히 문제가 있어요. 하지만 여자란 의미가 그런 것에만 있는 건 아니죠.”
난 엄마가 되면서 내가 진정한 여자나 인간이 됐다고 느꼈다. 불편하게 생각됐던 두 가슴이 아이에게 생명줄이라는 것을 확인했고, 젖을 물리고 목욕시키고, 아이가 아프면 피가 마르고,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가 “엄마~” 하며 가슴에 파고드는 순간 피로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체험을 하며 남자가 아니라 여자로 태어난 것에 감사했다.
물론 아이는 구속이자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다. 딸아이 때문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밤늦게 다니지도 못하고, 마음은 굴뚝같아도 젊은 오빠들과 놀아볼 수도 없고, 아이 엄마라고 하면 성희롱조차 받을 기회가 없고(?), 조인성이나 김래원 같은 청춘스타의 미모에 침을 꼴딱 삼키면서도 사윗감이란 생각을 먼저 해야 하고, 우리 아이가 앞으로 어떤 남자를 만나고 어떤 직업을 선택해 살아갈지 걱정이 앞서는 것을 보면 아이는 내 등에 매달린 무거운 십자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딸아이를 생각해 부정한 일, 추잡한 사건에 가담하지 않게 되고 딸아이에게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 않도록 언행에 신경을 쓰게 되며, 그 어떤 어려운 순간에도 딸아이를 떠올리면 가슴이 환해지니 아이는 내가 품고 있는 구원의 십자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온갖 마귀를 다 물리칠 수 있는 게 아닐까. 물론 무식한 귀신은 부적도 못 알아봐서 효험이 없긴 하지만….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통해 성장하는 우리들
얼마 전에 한 아주머니가 작가 공지영씨를 비난했다. 공씨가 낳아 기르는 세 아이의 성이 모두 다르다는 기사를 읽었나보다.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세 번이나 결혼한 걸 떠드느냐고 했다. 하지만 난 공씨 편이다. 세 번의 결혼이 부럽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자신의 감정과 사랑에 충실해서 그 대가 역시 치른 것, 무엇보다 세 번의 결혼에서 얻은 세 아이, 그것도 성이 다 다른 아이를 모두 자신이 책임지고 엄마 역할을 한다는 것이 대견스러웠다. 그래서인지 세 아이들에게 호주제가 폐지됐으니 엄마 성을 따르겠냐고 물었을 때 “그냥 이대로 살래요. 그리고 ‘공’이란 성이 별로예요”란 말을 할 만큼 아이들 역시 당당하고 자유롭게 성장하는 것 같다.
토요일 오후, 모처럼 딸아이에게 청바지를 사준 후 물었다.
“넌 엄마 어떤 점이 제일 마음에 드니?”
딸아이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어떤 점이 제일 마음에 안 드느냐고 묻는 게 상식인데…. 뭐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지. 그리고 어쩌겠수, 내 엄마인 걸….”
‘엄마는 옷도 사주고, 재미있는 말도 잘 해주고 내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맛있는 식당도 잘 데려다 주고, 야단도 잘 안 치고…’ 등의 칭찬을 기대했다 완전히 배신당했다.
“난들 어쩌겠니, 네가 내 딸임엔 틀림 없으니….”
삐쳐서 말하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딸아이는 “엄마의 변치 않는 이런 유치함이 맘에 들어”라며 웃었다. 가끔은 딸아이가 내 엄마 같다.

유인경씨는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아이라는 존재
경향신문에서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메이커’ 편집장. 얼마 전 ‘대한민국 남자들이 원하는 것’을 펴낸 뒤 KDI, 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등 ‘아저씨’들이 많은 곳에서 강의 초빙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그의 홈페이지(www.sooda sooda.com)에 가면 그의 다른 칼럼들을 읽어볼 수 있으며 진솔한 대화도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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