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의 주된 사례는 남자든 여자든 ‘섹스를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 든다’는 것이다. 흔히 성적욕구결핍증이라고 하는데 그보다는 성적욕구가 저하된 상태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 남자들의 경우 성욕 저하는 발기 여부와 상관없이 섹스를 하고 싶은 욕구 자체가 없는 것으로 성욕을 느끼는데도 발기가 안되는 발기장애와는 다르다.
명예퇴직 등 스트레스로 성욕 저하된 경우
몇 달 전 한 주부가 찾아와 남편이 성관계를 전혀 하지 않는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남편은 37세로 결혼한 지 7년이 됐는데, 2년 전 다니던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당했다고 했다. 처음엔 명예퇴직을 당했으니 화도 나고 앞으로 살아갈 일이 걱정돼 그런가 보다 했는데 2년이 지나도록 나아지지 않아 걱정이 된다며 고민을 토로했다.
남편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도서관과 컴퓨터학원에서 공부를 하다 밤에 들어와서도 자기 방에서 컴퓨터만 하다 그냥 잔다고 하니 아내로서는 황당할 것이다. 심지어 아내가 성관계를 가지려 노력을 해보기도 했지만 남편이 성적인 욕구가 없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얘기를 듣고 솔직히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예퇴직이라는 큰 충격을 받았더라도 보통 3~6개월, 길어도 1년 정도 정신적 고통을 겪다 자기 삶을 되찾기 마련이다. 2년은 너무 긴 시간이다. 남편의 행동 또한 남자들이 애인이 생겼을 때 흔히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이런 경우 남편에게 상담을 받으라고 하면 외도 사실이 밝혀질까봐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오지 않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내가 전화를 걸어 “부부문제로 상담을 받으러 왔더니 박사님이 당신을 꼭 만나야 한다고 했다”고 하자 남편은 뜻밖에도 순순히 다음 날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약속한 날에 나를 찾아왔다.
상담을 할 때는 우선 상담자의 성 라이프를 자세하게 파악하는데, 그는 섹스에 대해 ‘아이를 낳기 위한 것, 부부가 살면서 하는 것이지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아이 둘을 낳은 후 더 낳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데다 명예퇴직으로 인한 고통으로 섹스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지금도 자기보다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동료는 남아 있는데 자기가 명예퇴직을 당한 것에 대해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혹시라도 외도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이런저런 유도질문을 해봤지만 외도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지금 그의 관심은 새로운 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뿐이었다.
심리적인 이유가 파악됐더라도 질병 등 의학적인 문제가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특히 성욕이 저하됐을 때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성적인 쾌감을 느끼는 호르몬인 옥시토신 수치를 체크해야 한다. 그래서 병원에서 호르몬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가지고 다음 주에 오도록 했다.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순전히 심리적인 요인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내게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아내에게 생활비를 충분히 주었고, 집도 장만했고, 아이도 둘 낳았다”며 “그럼 됐지 뭘 더 해줘야 하냐”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섹스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냐, 아내가 너무 밝히는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부부 성관계를 할 때의 체위를 물어보았더니 그는 정상위 외에는 해본 적도 없었다. 애무를 한 적도 없었고, 성적으로 아내에게 어떤 배려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만큼 성에 대해 보수적이고 무지했다.
부부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이 부부처럼 5년 넘게 같은 체위만 하는 등 부부 성관계 패턴이 단조롭고 의무적으로 하다 보면 재미없고 질릴 수밖에 없다. 나는 그에게 부부에게 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줬다. 성은 자식을 낳는 목적 외에도 부부간에 쾌락과 사랑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행위임을 설명했다.
또한 섹스는 누가 해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야 하는 사랑의 행위라고 일러줬다. 따라서 섹스를 하며 자신이 쾌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쾌감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에게 “아내가 어느 때 오르가슴을 느꼈는지 기억하냐”고 묻자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교육용 성 비디오를 보여줬다. 비디오를 보던 그는 무척 놀라며 “학창시절 포르노비디오를 본 적이 있는데 구역질이 날 정도로 너무 징그러워 며칠 동안 밥도 못 먹었었다. 그런데 이 비디오를 보니 성이 아름다운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또한 비디오와 책을 보여주며 여러 가지 섹스 체위와 각각의 체위들이 어떤 만족감을 주는지 등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그는 37세가 되도록 이런 성교육을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며 제대로 교육을 받고 싶다고 했다. 성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부터 그는 내가 짜준 프로그램대로 케겔운동, 성감대 찾기 등 성 테크닉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심리치료도 병행했다. “명예퇴직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생에서 치명적인 게 아니다. 서양에선 직업을 많이 바꿀수록 동기의식이 강한 사람으로 평가되며, 직장을 많이 옮긴 사람이 승진도 빠르다”고 들려줬다. 그는 내 얘기에 공감을 하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 고치려는 의지를 갖고 있어 쉽게 치료가 됐다. 아내가 “상담을 한 후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고맙다”는 전화를 해왔을 정도였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씩 부부관계를 한다고 했다.
참고로 성욕 저하의 원인이 호르몬 부족인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호르몬 치료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폐경기 여성에게 테스토스테론 처방을 하는데 호주의 임상실험 보고에 따르면 테스토스테론 저하와 여성의 성적욕구 저하는 큰 상관이 없다고 한다. 또한 테스토스테론은 남성호르몬이어서 장기 투여하면 머리털과 목소리가 굵어지고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5% 정도 부족하다면 의사는 2~3%만 높이는 처방을 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나머지는 성기능 훈련을 통해 스스로 채우는 것이 좋다.
발기장애로 성관계를 할 수 없는 경우
다음으로 남자들이 많이 고민하는 것이 발기부전이다. 얼마 전엔 한 남자가 찾아와 하소연을 한 일이 있다. 40대 후반의 직장인이었는데, 영업 때문에 술을 많이 마시고 스트레스 때문에 담배를 많이 피우다 보니 지난해부터 발기장애가 왔다고 했다.
발기장애는 처음부터 전혀 발기가 안되는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는 발기가 50~60% 정도밖에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상태가 남자를 더 힘들게 만든다. 차라리 처음부터 발기가 안되면 그냥 포기하는데 어느 정도 발기가 되니까 삽입을 하려고 애를 쓰다 결국 실패하기 때문이다.
그는 발기가 안되자 비아그라와 같은 발기부전치료제를 복용했다고 한다. 남자들은 대부분 아내에게 발기장애 사실을 숨기고 몰래 이런 약을 먹는다. 이 남자도 그랬다. 그런데 며칠 전 약을 먹다가 아내에게 들켰다고 했다. 이 경우 아내는 봤어도 못 본 척해야 한다. 오히려 ‘약을 먹어서라도 나를 만족시켜주려고 노력하는구나. 이렇게까지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당신 지금까지 이거 먹고 나랑 한 거야? 이런 거 먹고 하려면 나랑 하지도 마” 하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 남자는 그 후 아예 발기가 안되는 상황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난 그에게 아내와 함께 상담받을 것을 권했고, 일주일 후 그는 아내와 함께 찾아왔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발기장애인 것을 전혀 몰랐던데다 비아그라가 나쁜 정력제인 줄 잘못 알았다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남자의 발기장애에서 심리적인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했다. 또한 성에 대해 부부가 함께 고민할 수 있어야 진정한 부부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이 남자처럼 발기강도가 50~60% 정도밖에 안되는 경우 아무리 혼자 노력을 해도 더 이상 발기가 안된다. 오히려 아내가 눈치 채기 전에 빨리 발기강도를 키워야 한다는 조급함과 불안함 때문에 위축돼 더 떨어져버린다. 하지만 아내가 남자의 성기를 애무해준다든지 오럴섹스를 해주면 약을 먹지 않아도 발기강도가 70% 이상으로 높아져 삽입이 가능해진다. 일단 삽입이 되면 남자가 자신감이 생겨 100% 발기를 하게 된다.
이것은 부부가 성적인 대화를 나눌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남자가 여자를 만족시켜주어야 한다’는 자존심 때문에 애무해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아내 역시 남편이 알아서 다 해주기를 바라는 입장이었던데다 자기가 먼저 애무를 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봐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런 선입견을 버리라고 충고했다.
짜릿했던 섹스 떠올리는 연상 훈련, 성감대 찾기, 자위행위 훈련…
요즘 발기장애라고 하면 원인이 심리적이든 신체적이든 상관없이 발기부전치료제를 먹는다. 하지만 이 약은 심장질환, 당뇨, 고혈압, 비만인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을 뿐 아니라 이런 질환이 없는 사람들도 장기간 복용했을 때의 부작용에 대한 검증이 안 끝난 상태다. 더 큰 문제는 의존성의 심화다. 심리적으로 이 약을 안 먹으면 발기가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더욱 약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남자의 아내가 남편이 약을 먹은 것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가진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남편이 종종 자기의 의사나 주위 여건과는 전혀 상관없이 무조건 섹스를 요구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이 약을 먹고 약효가 떨어지기 전에 섹스를 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섹스는 남녀가 사랑을 전제로 해서 하는 행위인데 이 부부에서 보듯이 약은 섹스가 사랑이 아닌 동물적 욕구배설을 하기 위한 도구로 만든다.
충분히 상담을 한 결과 나는 이들 부부에게 사랑의 마음을 회복시켜주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동안 약을 먹었기 때문에 섹스는 가능하지만 사랑의 교환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부인은 성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고 남자가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었다. 나는 남자에게는 케겔운동과 함께 신혼 초의 짜릿했던 섹스를 떠올리는 연상훈련을 하도록 했고, 아내는 성감대 찾기와 자위행위를 통해 스스로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켰다.
또한 남편이 이미 약에 대한 의존도가 강했기 때문에 아내로 하여금 오럴섹스와 남자의 성기자극 방법을 알려줬다. 그리고 케겔운동을 통해 질 근육을 강화시키도록 했다. 질 근육을 스스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으면 남편의 성기가 삽입됐을 때 적절한 자극을 줘서 발기강도를 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몇 달 동안 충분한 훈련을 하고 심리적인 결합이 전보다 훨씬 강해지면서 이제는 2주에 한 번씩 만족스러운 섹스를 한다고 한다. 약을 먹지 않아도 발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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