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절대 안 할 겁니다.” (2004년 총선)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인생의 로드맵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1월9일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과의 만남에서)
“공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면 아름다운 패배도 좋아요.” (3월 초 ‘한겨레21’ 공식 인터뷰)
“3월 안에는 결정을 내리겠습니다.”(3월7일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 이전 개소식)
서울시장 출마 여부를 놓고 관심의 초점이 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49)의 최근 달라진 심경변화다. 열린우리당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아온 그가 이제 ‘결심 굳히기’에 들어갔다. “여러 가지 구상을 하며 생각을 가다듬고 있다”는 말로 시간을 끌면서 열린우리당과의 지속적인 교감 속에 선거캠프 구성과 정책개발 작업에 착수한 것. 입당은 이미 확정됐으며, 입당 날짜와 후보 추대 방식을 최종 조율하고 있다는 것이 여권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미 열린우리당의 이계안 의원, 민병두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만큼, 강 전 장관이 이들과 당내 경선을 벌일 것인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여당은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 전 장관을 띄워 어떻게 인기몰이를 할 것인지 구상에 여념이 없다.
최근 강 전 장관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열띤 취재경쟁이 벌어졌다. 서울시장 출마 계획에 대한 그의 답변을 듣기 위해서였다. 지난 3월7일 오후 그가 대표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 지평의 사무실 이전 개소식에는 현관문을 봉쇄할 정도로 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40여 분간 기자들과 숨바꼭질하던 그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질문을 연신 “호호호”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사람들을 허무하게 만들 정도로 짧지만, 특유의 재치가 담긴 답변이 이어졌다.
-서울시장은 언제 출마하실 건가요?
“오늘은 그런 얘기 하는 날이 아니에요. 제 개인적인 일과는 연관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많이들 드시고 가세요.”
-사무실을 시청 앞으로 옮긴 이유가 있다면?
“(크게 웃으며) 여기가 원래 명당자리로 알려져 있잖아요. 저도 돈 좀 많이 벌어보려고….”
-지난 3월4일 가족회의는 어땠어요?(한 일간지에 강 전 장관이 서울시장 출마를 놓고 가족회의를 열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4일 가족회의? 그게 뭐예요?”
-아직 고민이 안 끝나셨습니까?
“인간의 고민이 끝날 날이 있겠어요?”
-요즘은 무엇이 제일 고민이십니까?
“그러는 기자님은 고민이 뭐예요?”
3월7일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 이전 개소식에는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을 취재하기 위해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말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이명박 시장은 “강 전 장관이 춤추고 놀기 좋아하니 공무원들도 매일 놀 수 있지 않겠냐”며 그를 비판한 바 있다.)
“…….”
-(그렇게 하고 싶다던) 연애는 안 하시나요?
“(잠시 굳어 있던 표정에서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연애할 기회를 안 주시니까….”
지난해 말만 해도 강 전 장관은 정치권 입문 계획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한 언론사에 칼럼을 기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법무장관 시절과 여성인권대사로서의 활동을 정리하는 2권의 책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 강 전 장관은 이날 기자에게 “제가 먼저 제안했던 일들이 결국은 이렇게 돼버려(모든 개인적인 계획이 미뤄져) 미안하다”며 자신에게 새로운 과제가 생겼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이날 개소식에는 열린우리당 김두관 최고위원과 유선호 의원, 한나라당 김학원 의원 등 3명의 정치인이 방문했다. “정치인들에게 일절 행사 초대장을 발송하지 않았다”는 것이 지평 관계자의 설명이다. 오히려 수많은 법조계, 여성계, 학계, 시민단체 인사들의 방문이 주류를 이뤘다.
지은희 덕성여대 총장, “강 전 장관 출마할 경우 확실히 밀어줄 것”
이 자리에서 만난 지은희 덕성여대 총장(전 여성부 장관)은 “지금까지 강 전 장관이 걸어온 길도 여성운동의 일환이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인만큼, (그가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면) 힘껏 밀어주고 싶다”고 소신을 밝혔다. 최민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총장은 “그분처럼 ‘상큼한’ 스타일의 정치인이 많이 나오면 많은 국민의 마음이 환해질 것 같다”며 강 전 장관의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강 전 장관은 지난 3월16일 열린 지은희 덕성여대 총장 취임식에 참석하며 지 총장과의 친분을 또 한 번 과시했다. 그는 축사를 통해 “참여정부 초기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친분을 쌓기 시작해 서로 흉금을 털어놓는 언니 동생의 관계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이 서울시장에 출마할 경우 지은희 총장을 비롯한 여성계 인사들은 그의 든든한 아군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그의 리더십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공직 경험이라고는 1년 5개월 동안 법무장관으로 재직한 것에 불과해 그의 능력이 아직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 최근 민주노동당 김종철 서울시장 후보는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강 전 장관은 차라리 서울시장에 출마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리인, 정동영 의장의 구원투수인 만큼 노무현 정부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김 후보의 주장이다.
이러한 비판과 염려에 맞서, 지금껏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선거와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지금 강 전 장관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한 지인이 강 전 장관에게 “진흙탕 같은 정치판에는 왜 가려고 하느냐”고 묻자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제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왜?”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한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밝힌 소신은 ‘한국 정치문화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좋은 서울시장을 뽑자는 것도 우리가 한 번 살다 가는 이 공간을 함께 나누면서 즐겁게 살자는 것인데, 선거 과정도 즐겁고 아름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선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거나 과대포장하거나 마음에 없는 말을 하거나 하는 추한 꼴을 보이면 안 될 것입니다. 새로운 영역에서, 그것도 매우 위험한 영역에서 저를 지킬 수 있는가. 마음을 내야 하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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