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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1천억원 매출, 사업가로 우뚝 선 김영애

“사업 시작할 때 주변 사람 모두 말렸지만 신념과 용기가 있으면 못해낼 게 없어요”

글·김명희 기자 / 사진ㆍ박해윤 기자

입력 2006.04.03 16:04:00

탤런트 김영애가 황토 화장품으로 5년 만에 매출 1천45억원을 달성해 화제가 되고 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자금난에 허덕이기도 하고 연예인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남모를 설움도 많이 겪었다는 김영애. 힘든 시절을 겪은 탓인지 요즘도 초심을 잃지 않고 소박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가 들려주는 성공 스토리.
5년 만에 1천억원 매출, 사업가로 우뚝 선 김영애

황토 화장품으로 매출 1천억원 신화를 이룬 김영애는 기회가 된다면 1년에 한 편 정도 좋은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싶다고 한다.


1천억원, 선뜻 실감이 나지 않는 액수의 돈이다. 사업가로 변신한 탤런트 김영애(55)가 지난 5년 동안 황토 화장품 브랜드 ‘참토원’으로 벌어들인 돈은 자그마치 1천45억원. 지난 3월 중순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참토원 본사에서 만난 김영애는 자신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출액이 얼마라는 것보다 저희 제품이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서 에스티로더, 랑콤 등 세계적인 명품 화장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판매되는 것을 보니 인정받았다는 충족감이 들고 자랑스러워요.”
2002년 첫해 25억원이던 참토원의 매출액은 2003년에는 무려 10배인 2백50억원으로 늘어났고, 2005년에는 4백5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김영애는 “처음엔 내수시장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일본과 대만, 미국 등에도 수출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또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에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으며 4월에는 전북 정읍에 위치한 제 1 생산단지 옆에 2단지를 준공하고 생산라인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지난해 프랑스 세계미용박람회에 출품하면서 내심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제품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현지 반응이 썰렁하면 국가적으로도 망신이잖아요. 이튿날부터 그런 걱정이 기우였다는 걸 깨닫게 됐죠. 첫날 제품을 써보고 간 남자들이 피부가 몰라보게 좋아졌다면서 다음 날 부인들을 데리고 다시 오더라고요. 그걸 계기로 외국 진출에 더욱 자신감을 얻었어요.”

알코올의존증 등에 시달리며 아프던 몸이 가뿐히 나아
김영애는 경영을 따로 배우지 않은 자신이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로 제품에 대한 믿음과 열정을 꼽았다. 오랜 연예활동으로 누적된 스트레스와 협심증, 알코올의존증 등으로 고생했던 그는 98년 네 살 연하 남편 박장용씨(51)를 만나 자신이 황토의 효능을 직접 체험한 후 사업에 뛰어들었다.
“제가 원래 몸이 안 좋아 98년엔 수차례 병원에 실려 갈 정도였어요. 그때 지인의 소개로 황토 사업가이자 건강 카운슬러였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치료를 받았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몸이 가뿐해지더라고요. 그 후 황토의 효능에 확신을 가지게 됐죠.”
그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술로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황토와 인연을 맺은 후 술을 거의 입에 대지 못할 정도로 체질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제 그는 “술을 끊은 후 사는 재미가 덜해졌다”고 농담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알코올에 초연해졌다.
“이제는 술을 마셔도 와인 한두 잔이 고작이에요. 몸에서 받질 않으니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가 없죠. 오랜 친구 같은 술을 끊고 나니 인생의 큰 즐거움 하나가 사라진 것 같아 섭섭하기도 해요(웃음).”
제품에 대한 확신만 가지고 무작정 사업에 뛰어든 그는 초반에는 고생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동안의 어려움을 다 말하자면 책 한 권도 넘을걸요. 좋은 황토를 찾아 서해안 청정지역을 이 잡듯 헤매고 다녔죠. 그 덕분에 서해안 지리는 손금 보듯 훤하게 알게 됐어요(웃음). 또 제품을 만들고 나서 홈쇼핑에 들어가기까지 6개월이 걸렸는데 그 사이 처음엔 자금이 달려 직원들 월급도 못 줄 정도였죠.”

5년 만에 1천억원 매출, 사업가로 우뚝 선 김영애

판매망을 확보하지 못한 그는 직접 방송국에 가져가 선후배 연기자들에게 팔기도 하고, 동네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판매를 했다고 한다.
“당시 이휘향, 김용건, 이보희씨 등 동료 탤런트들이 도움을 많이 줬어요. 직접 써보고 입소문을 내주었죠. 당시 ‘여인천하’에 출연 중이던 이보희씨는 다른 동료들에게 주문을 받아서 팔아주기도 했어요. 요즘은 지인들에게 저희 제품을 선물로 나눠주기도 하지만 그때는 ‘공짜’라는 게 없었어요. ‘깍쟁이’처럼 무조건 돈 받고 팔았죠. 아무튼 그때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어요.”
연기자로서 쌓아온 반듯한 이미지가 사업에 도움이 됐을 법도 한데, 김영애는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게 통하겠어요? 특히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눈은 냉정해요. 연기자로 먼저 얼굴이 알려졌기 때문에 사업가들에게는 ‘아마추어’로 비쳐진 거죠. 알게 모르게 불이익도 많이 당했어요. 친정이나 다름없는 방송에서도 연예인 사업가의 틀에 가두고 흥미 위주로 다루는 데 그쳐 좀 섭섭했어요(웃음). 그런데 얼마 전 ‘MBC 스페셜’에서 제 사업과 성공 노하우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 ‘세계의 여성 CEO’편을 방영하면서 친정에서도 드디어 인정받은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죠.”
소극적이고 남들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인 그는 사업을 하면서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고 한다. 자신을 챙기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나서 힘이 돼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그는 사회 환원에도 적극적이다.
“장학사업을 하고 있는데 회사가 커갈수록 규모를 늘릴 생각이에요. 무엇보다 사원 복지에 투자를 많이 하려고 하죠. 저희 회사에는 여직원이 많은데 여자에게는 육아가 중요하잖아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또 여건이 된다면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을 위한 쉼터도 만들고 싶고요.”

사업 파트너로 만나 사랑을 키운 남편과는 지금도 신혼부부처럼 지내
5년 만에 1천억원 매출, 사업가로 우뚝 선 김영애

든든한 사업 파트너이기도 한 남편 박장용씨와 함께.


2002년 결혼한 그는 아직 신혼처럼 지낸다. 그와 남편은 사업에 있어서는 한치의 일그러짐 없이 뜻이 일치하지만 가정으로 돌아가면 여느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제가 A형이라 모든 일에 민감한 반면 남편은 전형적인 B형 남자라 좀 둔한 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남편이 무심코 한 말에 저는 상처를 받지만 남편은 제가 왜 그런지 이해를 못하는 식이에요(웃음).”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AB형이 뛰쳐나가면 O형은 따라나가고 A형은 혹시 ‘나 때문에 저 사람이 나간 건 아닌가’걱정을 하는 반면 B형은 신경도 안 쓰고 무심하게 밥만 먹는다는 세간의 농담을 인용하며 “우리 부부가 꼭 그렇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마음의 여유가 묻어났다.
그는 아들에 대해서도 편안하게 말을 이었다. 프랑스 유명 요리학교 ‘르 코르동블루’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은 지난해 귀국, 현재 군 복무 중이다.
“사춘기에 부모가 갈라섰으니 상처를 많이 받았을 거예요. 그래도 어른스러운 편이라 별 내색을 하지 않았어요. 제가 재혼을 할 때도 ‘엄마가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며 용기를 주었죠.”
“아들에게 엄하기만 했지, 자상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내는 김영애. 하지만 그는 “내 아들이기에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고, 앞으로도 자기 앞가림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친정아버지가 엄한 편이어서 그게 싫었는데 어느 날 보니 저도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제 아들을 대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아들은 저를 좀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사실 그 아이는 아직도 모르고 있지만 처음 상근 예비역 판정을 받았을 때 어떻게 현역으로 입대시킬 방법이 없을까 알아보기도 했어요(웃음). 남자들에게는 그렇게 자신을 단련하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게 제 생각이거든요.”

요즘도 김밥 라면 먹으며 소박한 생활, 돈이 행복의 기준 아니라는 사실 깨달아
5년 만에 1천억원 매출, 사업가로 우뚝 선 김영애

헤아리기 힘들 만큼 큰돈을 번 김영애. 하지만 그는 요즘도 김밥과 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10만원이 넘어가는 물건을 살 때는 몇 번이나 고민하는, 소박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돈이 있으면 사는 게 좀 편해지겠지만 그게 꼭 행복의 기준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히말라야 옆에 있는 부탄이라는 나라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며 산대요. 돈이 많아서 행복하냐고요? 형편이 어려울 때는 사람들한테 밥 한끼 사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지만 이젠 마음 놓고 밥을 살 수 있는 게 행복이라면 행복이죠(웃음).”
2003년 KBS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를 끝으로 방송활동을 중단한 그는 지난해 말 심한 향수병을 앓았다고 한다. 앞으로의 연기활동 계획을 묻자 그는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피로가 누적된데다 갱년기가 겹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몹시 힘들었어요. 그때 며칠 쉬면서 생각해보니 최근 몇 년간 돈은 벌었지만 정말 마음 편하게 웃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연기를 할 때거든요. 그런데 이젠 딸린 식구들이 많으니 도망가고 싶어도 갈 수 없어요(웃음). 아주 참기 힘들면 1년에 한 작품 정도는 할 생각인데, 그때는 연기가 ‘외도’가 되겠죠.”
다른 사람들이 다 불가능하다고 말리는 일에 뛰어들어 성공을 일궈낸 김영애. 그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능력은 무궁무진하다”며 “목표가 있다면 자신감을 가지고 밀어붙이라”고 조언했다.
“제가 사업을 시작할 때 열이면 열 사람이 다 말렸어요. ‘니가 무슨 사업을 하느냐’고요. 그래도 해냈잖아요. 김영애도 하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왜 못하겠어요? 바른 목표가 있다면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세요.”

여성동아 2006년 4월 5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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