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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이 사람의 주장

인터넷이 아이를 크게 만든다 주장하는 연세대 교수 황상민

“사이버공간에서의 실수나 잘못은 현실세계에서보다 수정하기 쉬워 문제해결 능력 쉽게 배울 수 있어요”

글·구미화‘신동아 기자’ / 사진·김성남 기자

2005. 09. 13

‘아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에 공부한다면 성적이 쑥쑥 올라갈 텐데…’ 하며 안타까워하는 부모들이 많다. 부모에게 인터넷은 아이의 공부를 방해하는 훼방꾼이자 골칫거리. 하지만 오랫동안 인터넷과 인간의 심리에 대해 연구해온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인터넷을 잘 활용하면 아이를 성공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이 아이를 크게 만든다  주장하는 연세대 교수 황상민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서점가에 각종 자녀교육 관련서들이 넘쳐난다. 그중엔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른 책들도 적지 않다. 국내외 명문대에 합격한 저자의 이름이 적힌 책이나 특정 시기를 콕 집어 ‘그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공부법’을 소개한 책들을 보면 부모로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여기 또 한 권의 책이 부모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43)가 쓴 ‘세상이 변해도 성공할 아이로 키워라’다. 아이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높은 사교육비를 기꺼이 감당하고, 집값이 비싼 동네로 이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것도 감수하는 부모에게 ‘세상이 변해도 성공할 아이로 키우는 방법’이라는 데 솔깃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막상 황 교수의 주장을 들어보면 부모들은 금세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른다. 어려운 용어를 구사하며 학술적인 내용을 늘어놓아서가 아니다. 인터넷 게임과 채팅, 아바타 거래 등이 아이의 성공과 직결된 키워드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란 아이들로 하여금 책에서 멀어지게 하는 공부 훼방꾼이자 각종 범죄의 온상으로까지 비쳐지는 존재인데, 그런 인터넷을 통해 성공의 발판을 다진다니…. 부모로선 선뜻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인터넷과 게임이 공부와 대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황 교수는 “우선 공부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단지 학교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라면, 시험에 나올 만한 내용을 외우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겠죠. 그런데 학교시험은 잘 보면서 전국 단위로 보는 모의고사 성적은 나쁜 아이가 있어요. 반대로 학교성적은 별로인데 모의고사를 잘 보는 아이도 있고요. 그럼 진짜 공부 잘하는 아이는 누구일까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같은 교내 시험은 대개 정해진 교과범위 안에서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들 중에서 문제가 출제된다. 반면 모의고사는 훨씬 광범위한 교과범위에서 익숙하지 않은 형태의 문제들이 출제된다.
자신이 직접 공부해보고,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쳐본 황 교수는 정해진 범위 내의 답이 정해져 있는 공부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평소에는 엇비슷해 보이던 아이들의 진짜 실력은 바로 익숙하지 않은 문제, 돌발 상황에서 판가름된다는 것. 그런 점에서 그는 아이들이 해야 할 ‘공부’가 정해진 범위에서 나오는 정해진 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쨌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에 대비하는 공부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모들 대부분이 한번도 아이들의 공부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분들에게 공부는 언제나 해야 하는 것, 시켜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자신들이 정해진 내용 안에서 정해진 답을 찾는 공부만 해왔기 때문에 자녀에게 그것과 다른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해요. 더군다나 부모 자신의 문제해결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확신을 갖지 못하고 아이 교육문제로 늘 불안해하죠. 그렇다 보니 남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남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해법을 좇느라 정신이 없고요.”
황 교수는 “많은 부모들이 경제교육, 영어교육, 초등학교 4학년 때 하지 않으면 안 될 학습, 대치동 교육법 같은 교육 ‘미신’을 좇고 있지만 현재와 미래의 놀라운 변화를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건 삶에서 순간순간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문제해결 능력”이라고 말한다. 아이의 인생에는 부모가 나서서 해줄 수 없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아이 스스로 그러한 일들을 탐구하고 분석하고 해결해갈 힘이 없다면 그 아이는 분명 삶의 좌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는 게 황 교수의 생각이다.

시험점수를 향상시키는 데만 골몰해서는 성공하는 아이로 키울 수 없어
요즘 부모들은 대개 70~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우리 사회는 산업화의 정점에 있었고, 대학에 들어가 산업 역군이 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길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부모가 자란 환경과 지금의 아이들이 자라는 시대는 삶의 목적부터 사회가 개개인에게 기대하는 바, 성공요인 등이 확연히 다르다. 그런 점에서 황 교수는 “눈앞에 보이는 시험점수를 향상시키는 데만 급급해서는 성공하는 아이로 키울 수 없다”고 말한다. 부모들이 자신이 배우고 경험한 것에만 의존해 자녀를 양육하려고 하기보다 시대의 변화와 세대 차이를 인정하고, 아이가 사회에 발을 들여놓게 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인터넷이 아이를 크게 만든다  주장하는 연세대 교수 황상민

“요즘 부모들이 어렸을 때는 골목과 놀이터에서 지냈지요.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이 놀면서 세상을 배우는 곳은 인터넷 사이버 공간과 게임이에요. 아이들에게 인터넷은 하나의 세상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 이상을 사이버 공간에서 보내며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배워가요. 인터넷 공간은 어른들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예상해 만든 것이 대부분이지만, 놀랍게도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훨씬 잘 이해하고 빠르게 적응하죠.”
사람은 자기와 익숙하고 자기가 잘하는 것을 더 많이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이 사이버 공간에 점점 더 빠져들고 사이버 공간에서 배운 것을 현실 세계에 적용시키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황 교수는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갖가지 문제, 부모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까지도 접하며 판단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게 된다”고 말한다. 물론 자기가 하고 있는 경험이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게임에 몰두하면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이때 부모가 아이가 하는 일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질문하면 아이 스스로 끊임없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경험이 현실세계에서 하는 경험과 똑같은 효과를 내게 된다는 것이 황 교수의 생각이다.
“아이들에게 사이버 공간은 세상을 경험하는 창이자 여러 시행착오를 겪는 실험 공간이에요. 아이가 거기서 무엇을 배우는가를 알려고 하기보다 자신들이 익숙한 공부, 책에서 답을 찾는 공부에 방해되는 것으로만 여기는 부모의 태도가 잘못된 거죠. 한마디로 앞으로 문제도 확실하지 않고 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그것에 대비해 사이버 공간에서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데 부모가 그것을 못하게 막는 형국이에요.”
황 교수는 유치원생부터 중학생까지 네 아이를 둔 아빠다. 막내를 제외하고는 모두 ‘조금 심하다’고 할 만큼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지만 황 교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인터넷이 아이들 교육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이가 인터넷을 활용해 즐겁게 놀았고, 스스로 노는 법을 터득했으며 또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것을 배운 건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은 아이가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어서 사회성을 기르지 못한다고 걱정하며, 음란물을 접할까 노심초사한다. 이에 대해 황 교수는 어른들이 어린 시절 놀이를 통해 희로애락을 경험했듯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관계를 맺고 사회성을 기르며 현실세계에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듯 사이버 세상에도 좋고 나쁜 것이 공존하고 있어 인터넷에서 겪은 시행착오가 오히려 현실세계에서의 잘못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성세대는 사이버 공간의 옳고 그른 것들을 자기네 기준으로 판단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을 무조건 막으려고 하고, 또 막을 수 있을 거라 믿어요.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죠. 현실세계에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해요. 나쁜 것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기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죠. 사이버공간에서의 실수나 잘못은 현실세계에서보다 수정하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롤 플레이를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에요. 시뮬레이션을 많이 해본 사람이 맨땅에 헤딩하는 사람보다 훨씬 수월하게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은 뻔하죠.”
황 교수가 이렇듯 인터넷이 자녀교육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면 많은 부모들의 머릿속엔 당장 아이에게 컴퓨터와 인터넷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런 다음 조기 영어교육의 최적기를 따져보듯 인터넷을 언제쯤 시작하면 좋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이어질 것이 뻔하다. 황 교수는 “아이들을 인터넷 세상에 언제쯤 들여보내야 할까 하고 묻는 건 아이들에게 최선의 것, 최고의 것만을 주고 싶어 하는 부모의 욕심 때문”이라며 “배가 고플 때 밥을 먹어야 하듯 인터넷 역시 아이가 흥미를 가지고, 그것을 사용하는 데 신체적 조건이 맞을 때 시작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아빠가 컴퓨터를 하는 모습을 지켜본 황 교수의 자녀는 네 살 무렵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보였는데 초등학생이 된 지금은 어떤 인터넷 사이트는 저질이라고 아빠에게 귀띔할 만큼의 판단력을 스스로 갖게 됐다고 한다.
아이들과 인터넷이 그토록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부모도 아이들만큼 컴퓨터와 인터넷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황 교수는 부모가 인터넷과 컴퓨터에 대해 잘 아는 것보다 인터넷을 즐겨 하는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관심과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부모가 컴퓨터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어요. 아이가 하는 것의 가치를 인정해주면 되죠.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하는 경험을 부모가 인정하지 않고 공부에 방해되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점이에요. ‘적당히 해라’ 소리만 할 게 아니라 ‘재미있니?’ ‘뭘 하니?’ ‘그걸 어떻게 하게 됐니?’ 하며 관심을 보이고, ‘그래 너 참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걸 다 하니’ 하며 아이의 실력을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해요. 부모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빠 엄마는 그걸 잘 모르는데 이야기 좀 해줄래’ 하고 물어보세요. 요즘 자녀교육이 어려운 건 과거엔 부모가 아이를 앉혀놓고 이것저것 가르치는 것이 자녀교육이었고, 또 가르칠 만큼 세상을 잘 알았지만 지금은 그 관계가 상당히 수평적으로 변했기 때문이에요. 부모가 잘 모른다고 아무 생각 없이 아이를 방치하거나 ‘머리가 나쁘다’ ‘게으르다’며 아이 탓을 할 게 아니라 아이가 경험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고, 아이가 뭘 추구하고 있고, 또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물어보고 관찰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했죠. 이제 더 이상 부모가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교육이 되지 않아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고도의 문제해결 능력 가졌다는 공통점 갖고 있어
인터넷이 아이를 크게 만든다  주장하는 연세대 교수 황상민

“배고플 때 밥을 먹어야 하듯, 인터넷 역시 아이가 흥미를 가질 때 시작해야 한다”는 게 황상민 교수의 지론이다.


황 교수는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 한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모두 학창시절 공부를 썩 잘했던 건 아니라고 말한다. 황 교수가 생각하는 그들의 공통된 성공 요인은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습관처럼 해결하다 보니 고도의 문제해결 능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경우 게임을 통해 습관적인 문제해결 행동을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게임 환경 속에서 과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하려는 아이들은 현실에서든 게임에서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정보를 누구보다 빠르게 습득하며, 자신이 직면한 문제에 영향을 주는 일이 발생하면 그것이 해결되도록 적극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그 결과 문제에 대한 긍정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내며 그러한 경험을 통해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문제해결을 하는 습관적인 행동과 사고방식을 익히도록 이끌어줘야 하는 부모에게 황 교수는 ‘상상기법’을 적용해보라고 일러준다. 상상기법은 자신이 가진 문제가 무엇이라고 상상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게임의 경우 게임 상황을 파악하고, 게임세계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확인하는 것은 바로 문제가 무엇인가를 상상하는 것이다. 그 다음엔 그 문제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을 떠올려본다. 단순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부모로서 자녀가 어떤 아이가 되기를 원하는가?’라고 물으면 많은 부모들이 ‘평범한 아이’라고 답해요. 하지만 막상 평범한 아이를 마음속에 그려보라고 하면 스스로 자신의 바람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죠. 상상기법을 사용해 자신의 문제를 마음속에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힘든 일이에요. 하지만 자녀가 어떤 아이가 되기를 원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떠올려보려고 하세요. 이런 행동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반복될 때 가장 큰 효과를 가집니다.”
황 교수는 “부모들이 인터넷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이런저런 자녀교육법에 흔들리지 말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받아들이는 교육환경을 인정해야 한다”며 “그것이 바로 사이버 세상이자 게임세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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