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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댄스 장면에 반해 ‘댄스 웨어’ 불모지에 뛰어든 디자이너 이정희

■ 기획·구미화 기자 ■ 글·장옥경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4.04.09 17:25:00

웰빙 라이프를 추구하며 댄스를 즐기는 인구는 늘고 있지만 춤추는 여자의 섹시한 동작을 돋보이게 해줄 의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영화 속 댄스 장면에 반한 후 댄스 웨어를 만들기 시작해 불모지나 다름없는 시장을 개척한 디자이너 이정희씨. 일본에 이어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그를 만났다.
영화 속 댄스 장면에 반해 ‘댄스 웨어’ 불모지에 뛰어든 디자이너 이정희

“스치듯 봐서 영화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춤추는 여주인공의 댄스 웨어에 눈길이 고정됐어요. 의상이 너무 아름다웠죠. ‘맞아 내가 하고 싶은 게 저거야’ 하고 아주 강렬한 느낌이 왔어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가슴을 ‘꽝’ 때리는 내면의 메시지를 접한 쌤니 대표 이정희씨(38)는 그 길로 국내 댄스 웨어 시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때가 1998년경. 지금이야 웰빙 붐을 타고 스포츠댄스나 모던, 라틴 등 댄스에 관심이 많지만, 그 당시엔 소수의 동호인들만이 댄스를 즐기던 시기였다. 마땅한 옷이 있을 리 없었다.
댄스 웨어는 영국이 발달했다는 정보를 얻은 그는 영국의 카탈로그를 수집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정도 정보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런던의 남쪽에 위치한 노브리라는 지방에 갔어요. 그곳은 댄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모여 춤을 출 정도로 댄스가 활성화된 곳이에요. 그곳에서 샘플을 구해서 서울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뜯어 봤죠.”
당시만 해도 국내 패션은 평면 재단에 익숙한 상황. 옷밖에는 타조 털이 붙고 옷안에는 수영복이 들어가고 가슴엔 와이어가 있는, 입체적인 댄스 웨어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는 옷이 완성되자 모던댄스 챔피언을 찾아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반응을 기다렸는데 나온 대답은 “북한 옷 같다”였다. 얼마나 실망이 컸는지 그는 며칠동안 밥도 먹질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동안 힘없이 지내던 그는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번엔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은 국내보다 동호인이 3배나 많을 정도로 댄스문화가 활성화된 곳. 디자이너를 찾아가 패턴 공부도 하고 원단에 대한 연구도 한 후 돌아와 평면 재단에서 입체 재단으로 방향을 바꾸고, 소재도 대폭 개선했다. 옷에 다는 장신구도 조명을 받았을 때 반짝임이 좋은 스와로브스키 제품을 사용했다.
“세계화를 목표로 국내보다는 일본시장에 먼저 진출을 꾀했죠. 2000년 후반 직접 만든 옷을 들고 일본 업체를 찾아갔어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의상실에 제 옷을 걸어두었는데 특히 일본의 인기스타인 스키모토아야가 색상과 디자인도 좋고 옷이 편하다며 마음에 들어 했어요.”
당시 일본 NHK에서 스타들이 춤을 배우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스키모토 아야가 그의 옷을 입고 나가면서 화제가 됐다. 이후 스키모토 아야가 그의 팬이 되면서 쌤니의 옷이 알려지고 일본의 유명패션 잡지인 ‘댄스 뷰’와 ‘댄스 팬’에서도 그의 옷을 소개했다.
“댄스 웨어는 입었을 때 아름다운 것도 중요하지만, 댄스의 동작을 잘 살려줄 수 있어야 해요. 또한 가벼워야 하고 땀을 잘 흡수해야 하죠.”

야한 옷 만들다보니 ‘끼 많겠다’ 오해받기도
‘아르헨티나 탱고’의 경우 다리를 많이 사용해 춤을 추기 때문에 옷을 만들 때 팬티가 보이지 않으면서도 다리가 다 나오도록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말로는 쉬운 것 같지만 절개선이 몇 mm만 올라가도 천해 보이고 절개선이 몇 mm만 내려가도 답답해 보이기 일쑤. 이런 경계를 잘 파악하는 것이 댄스 웨어 디자인의 어려운 점이라고.
“저는 단 한벌의 옷을 만들 때도 반드시 피팅 모델을 써요. 두세번 고치는 과정을 거친 후 소비자의 손이 닿게 하죠.”

영화 속 댄스 장면에 반해 ‘댄스 웨어’ 불모지에 뛰어든 디자이너 이정희

그는 댄스 웨어 디자인을 넘어 공연예술무대에 기여할 수 있는 후원자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가 만든 옷은 대회복이 1백30여만원에서 2백50여만원선. 3백만원을 넘는 것도 있다. 처음 듣는 사람은 놀랄 수 있지만 특수 원단, 입체 재단에 반짝이는 장신구를 일일이 손으로 붙여가며 2주 이상 수작업으로 옷을 만든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꼭 비싼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연습복은 몇 만원에서 십 만원 안팎으로 싼 편이에요. 최근엔 연습복을 일상복과 겸할 수 있어 감각적인 여성들이 일상복으로 입기 위해 연습복을 많이 찾는 편이죠.”
댄스 웨어는 살사, 스윙, 아르헨티나 탱고, 플라멩코, 스포츠댄스 등 춤의 종류에 맞추어 디자인을 달리해야 한다. 느낌을 살려주지 못하면 옷과 사람이 서로 겉돌게 된다고. 따라서 디자이너가 춤에 대한 기본을 익히고 있어야 하는 것은 필수. 때문에 그 또한 댄스에 일가견이 있다.
“옷의 기능을 알려다 보니 터닝이나 포즈를 잡을 때 어떤가를 알아야겠더군요. 프로 수준은 못돼도 조금씩은 다 배웠어요. 지금도 배우고 있고요.”
춤을 출 때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무르녹아야 하는데 그는 춤을 추면서 ‘어떻게 하면 춤추는 사람을 예쁘게 보이게 할까, 디자인이나 기능적인 면은 개선의 여지가 없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완전히 빠져들지는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룸바 같은 경우는 왕에게 간택되기 위해 췄던 춤이에요. 예술성도 있지만 관능적인 면이 크죠. 아르헨티나 탱고도 사창가에서 시작된 춤이어서 끈끈하고 야해요. 춤 분위기를 따라 의상도 야하고 대범하니까 가끔 비즈니스를 하며 당황스러울 때가 있어요. 저도 이런 쪽으로 ‘끼’가 있겠거니 넘겨짚고 옷 얘기는 안 하고 ‘만나자’거나 ‘술 마시자’는 등 다른 얘기로 이끌고 가려는 경우도 있어요(웃음).”
92년 결혼해 열한살, 다섯살 남매를 두고 있는데 만일 남편에게 사업상의 어려움을 토로하면 “당장 그만둬” 할까봐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댄다는 그. 하지만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감당할 만하다며 활짝 웃는다.
그는 스포츠댄스뿐만 아니라 이집트에서 한국여자와 결혼, 한국 국적으로 귀화한 발리댄서 아메드씨를 후원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탱고나 스윙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춤 보급을 후원하고 있기도 하다. 댄스에 관련된 국내영화 몇 편에도 의상을 제작해 협찬한 바 있는 그는 앞으로 국내시장에 치중하면서 공연예술무대에서 예술가를 사랑하고 후원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한다.

여성동아 2004년 4월 4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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