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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주세요

간암 투병중인 남편 뒷바라지하며 어린 남매 키우는 중국교포 주영숙씨 사연

■ 글·최호열 기자 ■ 글·안소희 ■ 사진·정경진

2003. 07. 31

10년 전, 한국으로 시집와 농사를 지으며 살던 중국교포 주영숙씨는 가난을 이기기 위해 남편과 함께 상경, 온갖 고생을 한 끝에 흩어진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살 작은 둥지를 마련했다. 하지만 행복을 느낄 겨를도 없이 올해 초 남편이 간암 판정을 받으면서 절망에 빠진 주씨의 딱한 사연.

간암 투병중인 남편 뒷바라지하며 어린 남매 키우는 중국교포 주영숙씨 사연

간암으로 투병중인 남편을 지켜보는 주영숙씨의 심경은 막막하기만 하다.


중국교포인 주영숙씨(34)가 친척의 중매로 한국에 시집온 것은 10년 전. 조선족이지만 중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말을 거의 모르던 그가 혈혈단신 한국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남편 유영두씨(42)를 믿었기 때문이다.
영숙씨에게 한국은 모든 게 낯설기만 한 나라였다. 특히 중국에서 도시생활만 한 그였기에 강원도 산골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 유씨는 세상에 둘도 없이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고 시부모도 가난하지만 따뜻한 분들이라 영숙씨는 이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한국생활에 적응해나갈 수 있었다. 또 생소하기만 한 농사일도 열심히 해나갔다. 딸 지혜(9)와 아들 효상이(8)가 연년생으로 태어났기에 부부는 더욱더 열심히 농사일에 정진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해가 갈수록 빚이 늘어갈 뿐이었다.
“농사일이란 게 잘해야 본전치기고 한해 망치면 몇년 동안 갚아야 할 빚만 남더군요. 3천만원 주고 산 콤바인을 3년 후에 되팔면 6백만원을 받아요. 그동안 콤바인으로 몇천만원을 어떻게 벌겠어요? 모두 빚이죠.”
사실 유영두씨 가족의 가난은 그 뿌리가 깊다. 아버지 유학종씨(71)가 20년이 넘게 광부로 일하다가 진폐증을 얻은 후 30년 가까이 병마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해 전부터는 어머니 김정숙씨(68)마저 이름도 모르는 병을 앓고 있다.
“시어머님께서는 병원에서조차 병명을 모르는 희귀병으로 몇해 전부터 바깥 출입을 전혀 못하세요. 식사도 죽 이외에는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고 거의 움직이지도 못해요. 뇌신경세포가 점점 굳어가기 때문이라는데 병원에서도 그 원인을 알 수가 없대요. 지금 아버님께서 어머님 병간호를 하고 계세요. 어머님께서는 증세가 심각해지도록 전혀 내색을 안하셨어요. 다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봐 그러신 거죠. 어머님이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못 받으시니 답답하기만 해요.”
내내 밝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지나온 삶을 얘기하던 영숙씨도 시어머니 얘기에 말을 잇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몇년 동안 집안 일은커녕 방문 밖으로 나서지도 못하고 있다고 하니,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 가족들의 고통이 어떨지 짐작이 갔다.
유씨 부부는 뿌리깊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4천만원이 넘는 빚만 안은 채 3년 전에 고향을 떠났다. 농사일을 계속해봐야 먹고사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한 시부모에게 두 아이를 맡긴 채 서울로 올라온 영숙씨는 식당일부터 건물청소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남편 영두씨도 1주일에 6일을 차안에서 새우잠을 자며 화물차 운전을 했다.
“어떤 때는 새벽엔 청소일을 하고 낮에는 파출부를 하고, 저녁엔 식당 주방일을 하는 등 하루 16시간씩 일하기도 했어요. 말이 16시간이지 하는 일이 다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잖아요. 아이들 아빠도 1주일에 한번 집에 오면 모습이 말이 아니었죠.”
그렇게 1년 넘게 고생한 끝에 돈을 조금 모은 부부는 보증금 1천만원 하는 옥탑방을 마련, 아이들을 데려와 다시 네 식구가 모여 살 수 있게 되었다. 빚도 조금씩 줄여갔다. 올봄에는 빚도 1천4백만원으로 줄었고, 대출을 받아 아이들이 공부할 책상을 놓을 수 있도록 방 두칸짜리 집으로 이사할 계획도 세웠다. 무엇보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영숙씨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작은 행복을 느끼곤 했다.

간암 투병중인 남편 뒷바라지하며 어린 남매 키우는 중국교포 주영숙씨 사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는 주씨 부부.


하지만 그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남편 영두씨가 속이 불편하다며 동네 병원을 찾았다가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은 것이다. 검진 결과 간모세포종(간암) 판정을 받았다. 간암이란 원래 증상이 없어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간을 ‘침묵의 장기’라고 한다.
“진단을 받은 게 올해 3월이었습니다. 믿어지지 않았죠. 이제 겨우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가 했는데….”
‘절망’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인 두 아이를 생각하면 그저 눈앞이 캄캄해질 뿐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생각할수록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곧바로 큰 병원으로 옮겨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다행히 의사들은 “남편은 위중한 상태지만 치료에 따라 좋아질 수 있는 경우”라며 용기를 주었다.
영두씨는 먼저 약물로 암세포의 전이를 막고 간에 퍼져 있는 암세포를 줄여나가는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3개월 동안 5차례에 걸친 항암치료 결과 영두씨의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앞으로도 최소한 4차례 이상 입원해 항암치료를 더 해야 하고 수술도 해야 하는데, 넉넉지 못한 집안형편이라 치료비를 생각하면 가슴이 꽉 막혀온다고 한다.
현재 한달 수입이라곤 정부보조금 50만원과 영숙씨가 틈틈이 주방일을 하며 벌어오는 40여만원이 전부다. 남편 병간호와 아이들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한달에 들어가는 치료비만 해도 1백만원이 넘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다. 지금까지 들어간 치료비 약 5백만원은 주위의 도움으로 겨우 마련했지만, 앞으로 들어갈 치료비가 어림잡아도 1천만원이 넘는데 어떻게 마련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버티지도 못했을 거예요. 퇴원 할 때 집에 가서 읽어보라며 한 의사 선생님이 봉투를 주셨어요. 집에 와서 보니 힘내라는 편지와 함께 40만원이 들어 있더라고요. 교회분들도 쌀이며 성금을 모아 전해주시고 병원에서도 성금을 모아 주셨어요. 그밖에도 고마우신 분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그 분들이 저에겐 살아있는 하느님이죠. 그래서 희망을 버릴 수가 없어요.”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영숙씨 부부에게 희망이 되어 준 것은 ‘사람’이다. 낯모르는 사람들의 도움이 이들에게는 한줄기 빛과 같이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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